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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54화 (154/241)

00154  불모의 황무지  =========================================================================

- 쉬아악!

- 샤아아아!

세스터스는 접근해오는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불릿에게 입을 열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가로대열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셰실리코프, 놈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기왕이면 카텐령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했던 크레파토스에게 묻는 것이 좋겠지만 그는 지금 올리비아를 저택에 데려다주러 간 상태, 그렇다면 그나마 실전경험이 풍부한 셰실리코프에게 묻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여기서 서식하는 놈들이 아닙니다. 저 멀리 다른 나라의 사막에서 발견된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만, 이곳은 불모의 황무지이지 않습니까?”

“으음….”

얕은 신음을 흘리는 불릿. 그도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자이언 스콜피온을 본 적이 있었으나 혹시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물었던 것이었는데, 잠시 잊고 있던 불모의 황무지라는 장소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다.

“그렇지, 여기는 불모의 황무지였지.”

불모의 황무지는 분명 모래가 존재하는 곳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평평하고 단단한 바닥이 있었고, 무엇보다 생물이 생존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물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곳, 그게 바로 불모의 황무지였으니 말이다.

사사사삭-

4쌍의 발로 기어오면서 기형적일 정도로 거대한 앞발을 휘젓는 자이언트 스콜피온.

그러면서도 대열은 유지하는 것이, 마치 잘 훈련된 용맹무쌍한 전사를 보는 듯했다.

“비정상적이긴 하군.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어.”

“어? 냄새나?”

흙덩이는 불릿의 말에 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자신의 체취를 맡았는데 그것이 귀여웠던지 불릿의 심각한 표정이 단숨에 풀어져버렸다.

“흙덩이의 땀냄새라면 내 기꺼이 맡아줄 의향도 있으나, 지금은 그걸 말하는 게 아니란다.”

“…각하, 취향이….”

“쓰읍.”

뭔가 좀 이상한 발언이었기에 크레파토스가 나서려했으나 자연스럽게 입을 비집고 새어나온 잇소리에 뒤로 물러섰다.

“여기서 말하는 냄새란 자연적이지 않은 현상, 그러니까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을 때 쓰는 표현이다.”

“흙덩이처럼?”

고개를 갸웃, 하며 묻는 그녀의 물음에 불릿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대답해주었다.

“내 손길도 인위적이라면 인위적이겠지. 네가 내 것이 되었으니 말이야.”

“…히힛, 나는 불릿꺼, 헤헤헤.”

배시시 웃으며 뒷짐을 지고 몸을 흔드는 흙덩이. 그러나 그들의 정면에는 코앞까지 다가온 몬스터떼가 있었다.

- 샤아아!!

“선두, 방패 들어! 후진, 창 들어!”

“방패!”

촤촤촥!

“창!”

처처척!

병사들이 각기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려하는 이때, 불릿은 흙덩이의 손을 맞잡고선 정령력을 흘려보내주었다.

우우웅-.

“흙덩아, 오랜만에 나랑 둘이서 싸워보자.”

“나 이제 주먹 쾅 못하는데??”

흙덩이는 이제 온전한 육체를 지니게 되어서 정령일 때처럼 신체의 일부를 날릴 수가 없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도 하고, 기술을 펼치는 것에도 제한이 따랐기에 흙덩이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불릿은 생각한 것이 있기에 말을 걸었으리라.

“죽음의 대지 기억하지?”

“그거 잔인해. 사람들 다치면 어떡해?”

“잘 피해서 쓰면 되지.”

정령이었을 때는 불릿을 제외한 인간은 모두 싫어했던 흙덩이였지만, 이젠 오욕칠정을 모두 느끼고 있었기에 연민과 두려움, 안쓰러움과 같은 감정도 알았다.

“자, 병사들에게 전갈들이 다가오기 전에 빨리 써보자. 범위는 가로로 길게, 할 수 있다면 모든 자이언트 스콜피온에게 닿을 수 있도록.”

자신의 정령력 절반 정도를 흙덩이에게 흘려보내준 불릿의 말에 흙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정신체가 아니었기에 불편하더라도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정령력을 흘려보내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릿에게서 전해지는 정령력의 속도가 너무도 느렸으니 말이다.

“해볼게!”

이에 흙덩이는 병사들의 앞으로 성큼 나서더니 새하얀 원피스를 펄럭이며 정령력을 퍼부었다.

“죽음의 대지!”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슉!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거대한 돌송곳.

못해도 2미터는 될법한 크기였기에 이것에 관통당한다면 사지가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 끼에에에에!!

- 키야아아악!!

콰직콰직콰콱

우득, 빠각, 뽀지직!

꾸드드드득-!

한 방에 모든 자이언트 스콜피온이 꿰뚫리더니 비명과 함께 갑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면서 바수어진 갑각의 사이로 내장이 흘러나왔는데, 놈들은 그대로 꼬챙이에 꿰인 모양으로 동작을 정지했다.

파르르르--

사후 경련인 것인지, 아니면 곤충의 모양을 띤 탓인지 움찔움찔 더듬이나 팔 등이 떨리고 있었다.

(전갈은 동물로 구분되지만 곤충이라 표현하는 것이 괜찮을 듯싶어…, 누구한테 설명하는 걸까?)

단숨에 쓸려나간 몬스터의 무리에 잔뜩 근육을 팽창하며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은 허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이게….”

“우와아…쩐다…….”

“작은아씨께서 장난이 아니로군.”

“괜히 각하의 배필이시겠는가?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게지.”

병사들은 감탄사를, 기사인 십인장들은 역시나라는 생각을 주고받으며 이 놀라운 광경에 저마다의 말을 보태고 있었다.

“아직 접근하지 말라! 확실히 죽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응? 저기저기, 있잖아.”

“…아, 예. 작은아씨. 무슨 일이신지요?”

이제 막 명령을 내리려던 세스터스는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흙덩이에게 공손히 대답하였는데, 흙덩이는 불릿을 바라보더니 조그마한 입술을 열었다.

“불릿이 나한테 힘을 주면 갈아버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해줄까?”

외관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미소녀가 섬뜩한 말을 흘리자 세스터스는 잠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스윽.

“아,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의 사체는 돈이 되는지라….”

불모의 황무지에 방문한 목적도 결국 금전을 마련하려는 것이었기에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서는 안 되는 입장이었다.

모처럼 큰 기술을 선보인 흙덩이는 자신이 나설 일이 끝나자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힝, 벌써 끝났어….”

그러나 이내 고개를 번쩍 들고선 불릿에게 안겨왔다.

도도도-

덥썩!

“부울릿! 나 잘했지? 세지? 최고지!”

“…어어, 엄청나네. 생각이상이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흙덩이가 칭찬을 바라는 듯하자 불릿은 예전과 비교를 하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흙덩이는 그게 아니라는 듯 도리질을 쳤다.

“이거 말구, 츄 해줘, 츄.”

“……여기서?”

“안 해줄 거야?”

흙덩이의 눈망울에 습기가 서리기 시작하자 불릿은 냉큼 그녀의 바람의 부응했다.

“츄릅-, 츄르릅-.”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입으로 혀를 빨아들이는 진공키스를 해준 불릿은 그녀의 복숭앗빛 혀에서 천천히 입을 떼었다.

뽕!

와인병이 열리는 소리를 내며 입맞춤이 끝나자 흙덩이는 기분이 좋아서 못 견디겠다는 듯 그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뭉클-.

작은 몸짓과는 다르게 커다란 가슴이 복부를 짓누르자 불릿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해 서둘러 명을 내렸다.

“수, 수습하고서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낸다. 이상!”

“이상!…각하, 가서 일 보시지요.”

불릿이 급해보이자 크레파토스는 세스터스에게 토벌대를 지휘케 하고 답변을 주었다.

“어흠! 거,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닐세.”

“유실리아, 각하와 작은아씨를 모시고 가 보거라. 여기는 내가 맡으마.”

그러나 크레파토스는 그의 말이 안 들린다는 듯 뒤에 서있던 유실리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유실리아는 놀라워하면서도 홍조가 어린, 미묘한 얼굴을 하고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럴게요, 아버님.”

“급격한 정령력의 소모가 이루어지셨을 것이니 많이 피곤하실 거다. 네가 잘 모셔야 한다.”

“네에…, 불릿님, 괜찮으세요? 많이 힘드신가요?”

유실리아가 걱정 어린 어조로 말을 걸며 부축하려들자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그래도 휴식은 취하는 편이 좋을 테니 본인과 흙덩이는 유실리아와 함께 먼저 가보겠네.”

“많은 힘을 소모하셨을 테니 무리하지 마시길.”

“글쎄, 그 짓(?)은 안 한다니까 그러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곤란했었습니다. 설마 내리지도 않으시고 일을 치르시다니.”

“커허허험! 어험, 가자, 흙덩아, 유실리아.”

“응! 빨리 가서 놀자(?)!”

“저녁에 뵈어요, 아버님.”

불릿은 헛기침만 뱉으며 그녀들을 대동한 채 이동했는데, 그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부러워 죽으려고 했다.

‘우리도 하고 싶다!’

어쩐지 많은 물음표를 말꼬리에 달아줘야 할 것 같은 대화들이었다.

* * *

복귀한 그들은 호위하던 병사들을 물린 후 복도를 거닐었다

“아, 시원하다!”

“…흠, 흙덩아. 너는 어차피 더위를 못 느끼지 않느냐?”

이곳까지 오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그녀였기에 불릿이 말했던 것인데, 흙덩이는 볼을 부풀리더니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아냐! 흙덩이도 덥단 말야. 불릿이 정령력 조금만 주면 힘들다구….”

그녀의 능력은 대부분 불릿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계약이라는 형태에 얽매여 있었기에 스스로 정령력을 자급자족하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불릿이 전해주는 정령력을 모두 소모하고 나서 예비용으로 남겨놓는 자신의 정령력을 제외하면, 그녀 또한 외관상으로 보이는 나이대의 소녀들처럼 가녀린 육체능력을 지녔다.

“그랬었구나. 미안하다.”

불릿의 사과에 흙덩이는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앞장섰다.

“시원하니 기분 좋다…, 그래도 땀은 흘리고 싶어.”

“음? 시원한 게 좋다고 하지 않았나?”

더운 건 싫다고 했으면서 반대로 땀은 흘리고 싶다니, 이게 당최 무슨 소린지 불릿도 이해를 못했다.

“왜냐하면, 있지이, 불릿이랑 땀을 흘리면 기분이 무척 좋아서, 그래서 아랫배가 막 뜨거워져. 그게 너무 좋아서 흙덩이는 행복한 기분이 들어!”

“……큿.”

“…….”

유실리아는 차마 말도 못하고서 고개만 푹 숙인 채 뒤만 졸졸 따라오고 있었고, 불릿은 이런 흙덩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뒤에서 그녀를 껴안아버렸다.

와락!

“헤헤, 불릿이 안아줬다! 여기서 할 거야?”

위험한 발언이었기에 불릿은 냉큼 대꾸하였다.

“절대 아니다! 그건 남들에게 보여주면서 하는 게 아니야.”

그가 뒤에서 껴안았기에 흙덩이는 이동하는 게 불편했으나 그저 좋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조잘거렸다.

“하지만 나랑 올리비아랑, 또 유실리아랑, 넷이서 같이 했잖아?”

“그건- 케헥, 콜록콜록!”

“어라? 왜 그래, 불릿? 어디 아파?”

“콜록콜록…, 크흡, 아, 아니야, 괜찮아.”

“불릿은 다 좋은데 가끔 이상해. 그런 불릿도 좋지만, 히힛.”

발랄하게 미소 지으며 팔을 흔드는 흙덩이. 그리고 그런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불릿의 표정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웬만하면 같이하는 거는 자제하자.”

“어째서? 같이 하면 신나잖아?”

불릿의 말에 흙덩이가 고개를 뒤로 꺾으며 불릿을 올려다보자 그는 난감해하다가 흙덩이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선 말을 내뱉었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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