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5 불모의 황무지 =========================================================================
몬스터의 침공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이 지역에서 사는 놈들도 아니었고, 그렇게 질서정연한 방진을 짤 정도로 지능이 높은 놈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벙스 카텐은 불릿에게 식사를 대접하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식사들 하면서 얘기하도록 하지.”
“옛, 각하.”
“알겠습니다, 대영주님.”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는 동시에 대답했고, 고민에 빠져있던 벙스는 한 박자 느리게 말을 내뱉었다.
서걱, 서거억-
“작은아씨, 고기는 그렇게 써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잘 안 잘리는 걸?”
“이렇게, 검지를 칼등에 대고 힘을 주면서 밀어내듯 칼질을 하셔야 해요.”
“힝, 어려워.”
“제가 도와드릴게요, 작은아씨.”
이 자리에는 그들만이 아니라 불릿의 부인들도 참석해 있었는데, 인간의 예의범절에 익숙하지 않은 흙덩이가 나이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자 그녀의 곁에서 하녀인 루나가 조곤조곤한 어투로 도와주고 있었다.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아시겠죠?”
“밀당? 음식에도 밀당을 하는 거야?”
“네?”
흙덩이는 뭔지 말을 내뱉다가 불릿에게 소리쳤다.
“불릿! 밀당이래, 밀당!”
“으음, 흙덩아. 식사자리에선 크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란다.”
“안나가 불릿한테 밀당하라고 하던데, 이상해! 그럼 불릿한테도 칼질해야해??”
“푸웁!”
“푸우웁!”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불릿이 뿜자 연달아 올리비아도 뿜어냈고, 유실리아는 말없이 불릿의 입가를 냅킨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자기야, 나는 그런 말 안 들었어! 할 생각도 없고!”
올리비아는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건만, 갑자기 극구 부정을 하며 손사레를 쳤는데, 오히려 이 모습이 더욱 이상해 보였다.
불릿은 유실리아의 도움을 받아 뿜어낸 음식물을 수습한 후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안나가 조금 지나치게 개입하는군. 루나?”
“예, 대영주님.”
“흙덩이에게 이상한 것 좀 가르치지 말라고 전하거라. 애 성격 버리겠어, 쯧.”
“그리 당부하겠습니다, 대영주님.”
근엄한 대영주의 부름에 루나는 공손히 대꾸하는 와중에 흙덩이가 고기를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흙덩이는 애가 아닌데, 냠.”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불릿은 다시 원래의 주제로 입을 열었다.
“어흠. 그래서, 낮에 있었던 몬스터의 습격에 대한 보고부터 들어보도록 하지.”
그의 발언에 누구를 지목한 것도 아니거늘, 마치 자신을 향해 말한 것이라고 알아들은 양 자연스럽게 입을 떼는 크레파토스.
“몬스터의 종족은 자이언트 스콜피온, 주 서식지는 사막이지만 불모의 황무지의 모래는 무겁고 단단한 편이기에 땅을 파고들며 숨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길 수가 없으니 피식자인 먹이층은 생존할 수가 없고, 애초에 물이 없는 지역이기에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곳이지요.”
불모의 황무지는 사막이라기보다는 그저 메마른 땅이다.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인 물이 없을 뿐이지만, 그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이 머물 수가 없기에 생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이언트 스콜피온은 덩치도 크고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하는 놈들이었으니, 이런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나타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자로 정렬해서 진격해오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누가 봐도 조종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몬스터를 사육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몬스터의 포악성과 더불어 툭하면 터지는 광폭화는 도저히 다스릴 만한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흑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사이한 방법으로 정신을 홀리거나 유혹하는 마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마법만이 아니라 금지된 마약도 거리낌 없이 사용했기에 문제시되어왔다.
단순히 마법만 사용했다면 그들은 대륙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했으리라.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바로 코앞에 숨어있었군.”
“각하, 이는 매우 심각한 사건입니다. 당장 왕실을 비롯한 연합체소속의 국가에 알리는 것이….”
“누굴? 그 멍청하고 어리석은 자들? 본인이 어떤 이유로 결사대로 향하게 된 것인지, 라체나의 기사들이 어떻게 죽어갔던 것인지를 벌써 잊었는가!”
불릿의 분노어린 고함에 크레파토스는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들과는 한발 떨어져 식사를 이어가던 여인들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저희들만으로 수색과 토벌을 동시에 행할 수는 없습니다.”
“벙스 카텐, 영주직에서 내려앉고 싶은가?”
불릿의 스산한 눈초리에도 벙스 카텐 준남작은 물러서지 않고 그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대영주님, 일단 침착하셔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고, 그저 심증만이 있는 상태입니다.”
“크으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불릿. 일단 숨부터 골라봐. 자, 이렇게. 후우, 하, 후우, 하아-.”
그나마 이 자리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올리비아가 나서서 불릿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호흡법을 알려주자 불릿은 억지로 그녀의 말에 따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우…….”
“이제 괜찮아졌어?”
조물조물.
올리비아의 보드라운 손길에 불릿은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우리 사이에 뭘…, 앗. 조금 부끄럽네? 헤헤.”
불릿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올리비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두 눈을 끔뻑끔뻑 뜨고 있는 흙덩이의 볼살도 두드려주었다.
“올리비아, 불릿 무서워.”
“괜찮아. 우리 자기는 잠깐 나쁜 놈들에게 화가 난 것뿐이야. 너한테 화가 난 건 아니니까 어서 밥 먹자.”
“유실리아도 먹어!”
“…네, 작은아씨.”
달그락-.
불릿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녀들은 대화에서 빠져 따로 식사를 이어가자 비로소 진정된 그는 재차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대로 언제까지고 외면할 순 없겠지. 하지만 도움을 받으려 해도 확연한 증거가 없으니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참에 움직이려는 자가 있을까?”
전쟁의 전후복구는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흑마법사와의 전쟁은 격렬했고, 그만큼 피해도 컸기에 죽은 자의 자리를 대신할 인재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긴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일단 원래 계획대로 개간을 진행하면서 놈들에 대한 수색도 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벙스 카텐은 그러면서 한가지 생각을 첨부했다.
“영입하려고 하셨던 마탑지부장에게 도움을 받는 건 어떻습니까?”
흙덩이가 인간이 된 사실을 비밀로 하던 시기에 마탑지부장을 영입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마법사의 탑, 일명 마탑의 규율에 문제라도 있는지 아쉬워하면서도 거절하는 모습에 불릿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그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럼 그에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으로 하지. 그리고 다른 자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일단 보류해두게.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마땅한 법이니까.”
‘패배한 쥐새끼들이니 규모가 그리 크진 않을 것이다.’
불릿이 예상하기론 아마 살아남은 흑마법사의 잔당이 벌인 수작 같은데, 어째서 대놓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렇다고 해도 시간을 끌 일도 아니었기에 그는 대담하게 나서기로 결심했다.
“알겠습니다.”
“옛, 각하.”
불릿의 말에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는 조금 안심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크레파토스는 직스 자작령, 지금은 카텐령인 이곳이 게슐린 그랩 자작이라는 다른 영지의 영주가 뒷배경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세스터스는 라체나가 누군가의 수작에 의해 몰살당했던 것을 떠올리며 외부에서 도움을 받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영토에서도 배신을 겪었던 이들인데 외부인사와 손을 맞잡는 것을 꺼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네들은 이 사실을 당분간 함구하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말일세.”
확실하지 않다면 비밀로 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또 다시 연합체와 주변의 군주들로부터 휘둘릴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불릿은 식사도중인 부인들(….)에게도 말을 건넸다.
“부인들도 남에게 알리지 마시오.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
“누구한테 말해?”
“예쁜아, 그건 말이지, 친구라거나 친척이라거나, 가까운 사이라도 비밀을 지키란 뜻이야.”
올리비아의 말에 흙덩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나 친구 없는데? 올리비아는 있어?”
“어…, 아, 아니? 없, 없는데?”
“그럼 가족은?”
“…….”
“?”
매우 민감한 문제를 연속해서 꺼내는 흙덩이에게 불릿이 자제시키려는 순간, 올리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 가족은, 너, 너희도 있고, 우리 자, 자기가 늘려줄…거야. 응, 아들 하나, 딸 하나….”
화아악…
고개를 숙인 올리비아는 힐끔힐끔 불릿의 얼굴을 훔쳐보다 시선이 마주치자 포크로 음식을 콕콕 찌르며 고개를 돌렸다.
“우으으….”
“불릿이 가족 만들어줄 거야?”
유실리아를 제외하곤 올리비아나 흙덩이나, 부모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흙덩이는 불릿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물었다.
이에 불릿은 난처해 하면서도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크흠, 뭐어…. 원한다면.”
“그럼 난 딸! 딸로 할래!”
손을 번쩍 들며 외치는 흙덩이의 말에 불릿은 의문을 가지다 흠칫했다.
“설마, 그것도 안나가…?”
“어라? 어떻게 알았어? 안나가 말이지, 나는 딸을 낳아야 한데. 올리비아는 아들, 나는 딸. 그리고 유실리아는 그냥 많이?”
“자, 작은아씨….”
“근데 아기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
“…?”
“뭐?”
“흠?”
흙덩이의 발언에 모두가 의문을 가지는 순간. 불릿은 설마하면서 조심스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기, 흙덩아? 우리가, 흠흠.…그게 뭘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모르는 거야?”
“불릿이랑 기분 좋아지려고 하는 거잖아? 아냐?”
“아니, 맞긴 한데, 좀 더 원초적인 이유가 있거든….”
“? 박고 박히는 거?”
“커헉! 그만, 거기까지! 더 이상 말하지 마! 유실리아, 흙덩이 입 막아!”
“작은아씨, 쉿, 쉿!”
“읍읍?”
유실리아에 의해 입이 봉쇄된 흙덩이가 머리위에 물음표를 백만 개쯤 띄우고선 고개를 갸웃하는데, 불릿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난감해 했다.
“커허험! 그, 뭐랄까, 그러니까….”
“…….”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흠흠.”
크레파토스는 침묵, 세스터스는 못들은 척, 벙스 카텐은 헛기침.
이들 셋이 그를 배려해주는 모습에 오히려 불릿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셰실리코프는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것이야!”
괜히 역정을 내며 이 자리에 없는 셰실리코프를 찾는 불릿에게 침묵을 지키던 크레파토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각하의 명으로 병사들과 함께 몬스터의 해체작업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크흠, 크흠!”
“…….”
“……….”
즐거워야 할 저녁식사가 흙덩이로 인해 초토화되었으나 아직도 흙덩이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질 못했는지 고개만 갸웃했다.
“으븝?”
이보다 더 어색할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 12시 10분에 2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