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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53화 (153/241)

00153  불모의 황무지  =========================================================================

“대지의 축복.”

“불릿은 앉아서 쉬어. 흙덩이가 알아서 할게.”

“어, 으응…, 알았다.”

“헤헷.”

모처럼 정령사의 기분을 내려던 불릿에게 흙덩이는 자신이 판단하며 행동하겠다는 말로 일축하고선 그에게서 상을 받고선 훌쩍 앞으로 뛰어갔다.

쓰담쓰담.

“다녀올게!”

머리를 쓰다듬어준 불릿은 한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불모의 황무지에서 춤을 추듯 정령술을 부리는 흙덩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다니는데도 살이 타질 않다니, 신기하군.”

주변에 경계를 서는 병사들도 그늘이랄 게 없는 불모의 황무지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중이었는데, 원피스 차림의 흙덩이는 거의 맨살이나 다름없었기에 화상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흙덩이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으니 불릿은 그녀가 신기하기만 했다.

“뭐, 정령력의 영향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올리비아.”

양산을 쓰고서 나타난 올리비아에게 불릿은 그녀의 뒤편으로 옆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루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루나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그냥 들어가서 쉬고 있질 그래?”

이곳에서 올리비아가 할 만한 일은 딱히 없었기에 굳이 열을 잔뜩 흡수한 모래밭까지 나온 그녀가 이해가 가질 않는 불릿.

그러나 무장한 채로 불릿의 곁을 지키던 유실리아가 입을 열었다.

“불릿님, 작은아씨도 계시고 저도 있는데 마님께서 홀로 쉬시면 마음이 불편하시니 그런 게 아닐까요?”

말을 하면서도 땀이 흐르는 유실리아의 청초한 외모는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불릿은 저도 모르게 촉촉이 젖은 그녀의 머리칼에 손길이 갔다.

스윽-.

움찔.

“부, 불릿님?”

“더운데 고생이 많군. 그래도 이 지역만 개간해놓고 나면 막사를 지을 것이니 한결 나을 거다.”

“저야 불릿님만 믿는 걸요….”

그리고 둘의 다정한 모습에 올리비아와 루나가 서로 쑥덕거린다.

“와 치사하게, 이건 뭐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유실리아 치사한 기집애, 저는 아직도 남자손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 대영주님의 마음을 훔쳐버리고, 못된 아이에요.”

험담까지는 아니고, 그저 장난스러운 대화였기에 불릿은 더위에 지쳐가는 와중에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우우웅…

이러한 와중에 흙덩이가 본격적으로 정령술을 발휘했는지 대지의 축복을 받은 토지에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었다.

츠츠츠츠-

“어라? 왠지 조금 시원해진 기분이 드는데….”

“저도요, 마님.”

속닥거리던 올리비아와 루나는 수분기 하나 없던 땅이 점점 촉촉이 젖어들며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자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흠, 미약하긴 하지만 마기도 섞여있었나 보군. 불모의 황무지가 단순히 사막화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야.”

“불릿님, 작은아씨가 힘드시진 않을까요?”

“으음….”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흙덩이에게로 생각이 미치자 유실리아는 걱정어린 말을 건네주었고, 불릿은 얕은 침음성을 흘렸다.

‘힘들긴커녕 팔팔할 테지만.’

흙덩이는 불릿에게서 정령력을 받아들여 기술을 구현한다.

기술에 사용하는 것 외에도 정령력으로 신체기능을 향상시킨다거나 건강증진 등의 효과도 누리고 있었는데, 정령력의 근원인 불릿보다도 오히려 더욱 높은 효율을 보이고 있어 과연 정령출신 미소녀(?)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흙덩이는 정령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외부의 나쁜 기운에는 해악을 받지 않았다.

“내 정령력이 마르지 않는 한 흙덩이가 지칠 일은 없을 거다.”

“예? …아, 그렇군요.”

“그래, 그렇지.”

유실리아도 불릿의 말을 알아챘는지 말을 하다말고 줄여버렸다.

바포 변경백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흙덩이가 정령에서 인간이 됐음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상기시켜줄 필요가 없었기에.

“맨날 힘들어갖고 헥헥 대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올리비아의 핀잔에 불릿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를 했다.

“정령력과 정력이 같나?”

짧은 말이었으나 올리비아의 얼굴은 불릿의 발언에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덥다, 더워! 루, 루나? 부채질 좀 해주겠어?”

“마님, 이미 하고 있어요.”

“으우으으…….”

루나도 더위 때문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올리비아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생글생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올리비아는 입을 우물거리다 흙덩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쁘긴 진짜 예쁘다. 마치 요정 같아.”

우우웅…

인근의 토지 전역에 정령술을 시전하면서도 흙덩이는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는데, 반짝이는 가루가 흩날리면서 흙덩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역시 작은아씨께서는 따님을 낳으시는 게 좋겠어요.”

“응? 어째서?”

루나의 말에 올리비아는 의문을 가졌다.

“작은아씨를 닮은 따님이시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우시겠어요?”

“나, 나도 따, 딸…, 후웁. 딸 낳을 수 있어!?”

“…올리비아, 주변의 병사들이 쳐다보고 있다만.”

“헙!”

올리비아는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는데, 문제는 언성도 같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주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휴우, 나도 할…수 있다고? 근데 왜 흙덩이만 콕 집어서 말하는데?”

부끄럽긴 했어도 불릿의 아이를 낳고 싶긴 했기에 꿋꿋하게 말하는 올리비아에게 루나가 약간 장난기를 섞어서 답변을 주었다.

“그야 마님께선 장군감이시니까 아드님을 낳으시면 딱일 것 같아서요.”

“루나!”

“아휴, 이것 보세요. 정말 외모라도 아름답지 않으셨으면 어쩔 뻔 하셨어요? 마님은 각하께 감사하셔야 한다구요.”

루나는 장난과 함께 그녀의 괄괄한 성격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이는 오직 불릿만을 위한 조직은 비밀호위대의 일원으로서의 조언이기도 했다.

올리비아 또한 최근 불릿에게 함부로 대했던 것 같았기에 주눅든 모습을 보였다.

“미안해, 자기야. 내가 좀 심했어.”

활발한 생기가 보기 좋았던 올리비아가 양산도 내려놓고 우울해하자 불릿은 무더위에도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뒀다.

꼬오옥-

“앗!”

올리비아의 놀란 음성. 덥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기에 그녀는 불릿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이내 들려오는 말에 얌전해져버렸다.

“더, 더워, 불릿.”

“흙덩이에게만 딸이 어울린다는 말에 감정이라도 상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아들 하나, 딸 하나씩 낳아볼까?”

퍼어엉-! 그 말은 성별 하나씩을 낳을 때까지 사랑을 속삭이자는 의미였기에 무더위와는 별개로 그녀의 얼굴은 홍당무가 된 상태.

“흐, 흐으읏?!”

“그러고 보니 최근엔 말해주지 않아서 불안했던 모양이군.”

불릿은 병사들이 보건말건, 십인장과 백인장인 세스터스가 힐긋 바라보고 있어도 올리비아의 도톰한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덮어버렸다.

“응읏!”

“츄웁, 츄웁, 츄웁….”

마치 공기와 함께 빨아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촉촉하면서 질척이는 소리를 내었고, 그녀의 입술을 훔친 후 그가 떨어져갔을 땐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결정타!

“미치도록 사랑해.”

“흐이잇…….”

올리비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서 헤롱헤롱 했고, 그런 그녀를 불릿은 어느새 다가온 크레파토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를 저택으로 데려다주게. 아무래도 드레스를 입어서 조금 힘겨워하는 것 같군.”

“허허허, 알겠습니다, 각하.”

지금 올리비아의 복장은 여름전용의 드레스였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불모의 황무지는 다른 곳보다 온도가 더욱 높은 곳이었기에 적절한 복장은 아니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올리비아를 넘겨주고서 불릿은 루나에게도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도착하면 일단 옷부터 벗겨놓도록. 본인의 체면을 생각해주는 건 좋지만 건강을 먼저 챙겨야지 않겠나?”

그런 불릿의 말에 루나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어머, 아드님을 먼저 낳으실 건가요, 따님을 먼저 낳으실 건가요?”

아마 옷을 벗겨놓으라는 말을 오해한 듯해 불릿은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며 혼냈다.

“과년한 처자가 할 말이 아니다. 자네는 아직 홑몸이니 언행에 주의하도록.”

“우후훗, 알겠습니다아!”

땀을 흘리면서도 상큼발랄하게 대꾸한 루나는 크레파토스에게 안긴 올리비아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이동했고,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불릿은 유실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실리아는 걱정하지 말도록. 누가 먼저 생기더라도 상관없으니 말이야.”

“에, 예에…, 가, 감사드려요, 불릿님….”

“흠, 아직도 말이 딱딱하군.”

불릿은 이 무더운 날씨에 경갑옷을 입고서 자신을 호위하는 유실리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정실의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한 구석도 있었을 것이다.

일례로 다른 곳에선 첩은 언제나 정실보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야 했기에 낙태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부모의 입장에서 원치 않는 낙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었기에 불릿이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이다.

그래서 유실리아가 감사인사를 전했던 것인데, 사랑을 나눈 이후임에도 님자를 붙이며 부르자 그녀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유실리아는 요리를 잘하나?”

“…어머님에게 배워서 조금…, 할 줄 알아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으나 아마 조금은 아닐 것이다. 무려 백작성의 하녀에게 배운 것이니 그 솜씨는 일류수준임에 분명했다.

불릿만이 먹는 것도 아니고 성에 거주하는 모든 인원들에게 대접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곤 하나 어디까지나 주방장은 남자가 맡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불릿이 먹는 메인메뉴는 만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니 잘 하는 것이 아닌, ‘할 줄 안다’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불릿이 왜 이런 물음을 건넸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유실리아는 무조건 대꾸를 하였다.

“아내가 만든 정갈한 음식을 먹는 게 소원이라서 말이지. 아무래도 올리비아는 섬세한 구석이 부족해서.”

올리비아는 신부수업을 받다가 집안사정으로 중단한 상태다.

요리를 할 줄은 알지만, 그것은 용병생활을 겪으며 자연스레 몸에 체득한 것들이라 귀족의 입장에서 보면 수준이 떨어졌다.

흙덩이는 논외다. 그녀는 자신을 닮은 귀엽고 사랑스런 딸을 낳아주는 것만으로도 불릿에게 큰 선물을 해주는 것이기에.

“열심히, 열심히 준비해볼게요…!”

낮으면서도 힘이 들어간 어조에 불릿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땀을 닦아주며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올리비아에게만 말하면 섭섭하겠지?”

톡, 톡.

불릿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이곳저곳을 닦아주었는데, 오직 부부이기에 손댈 수 있는 은밀한 부위에도 손을 대주면서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사랑한다, 유실리아.”

그의 야릇한 손길에 달아오르고 있던 유실리아는 사랑고백까지 받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각하, 전방 300미터 부근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순간 불릿의 인상은 확 찌푸려졌으나 원래 개간작업을 하던 도중에 짬을 내서 노닥거리던 것이었기에 그는 주름을 펴고선 입을 열었다.

“규모와 종류는?”

“얼핏 전갈로 보이는 몬스터가 30여 마리입니다.”

“일전에 보고 받았던 몬스터와 일치하는가?”

불릿의 말에 셰실리코프가 고개를 젓자 그는 고민할 새도 없이 소리쳤다.

“모두 전투준비! 흙덩이는 내게로 데려오도록 하고, 유실리아?”

“넵!”

전투준비라는 말에 애틋한 분위기를 치워버리려던 유실리아는 곧이어 이어지는 불릿의 행동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쪽.”

불릿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이마에 키스를 하더니 자신의 콧대와 그녀의 콧대를 마주 댔다.

“이따 밤에 보자.”

여름의 햇살이 달궈놓은 것은 대지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뜨겁게 만들어 놓았다.

============================ 작품 후기 ============================

내일, 즉 화요일도 4연재가...

추천과 선작수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ㅜㅜ

2편씩 추가되는 연재분으로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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