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우리 흙덩이가 바뀌었어요! =========================================================================
“우씨! 아일렌! 뭐하고 있어! 빨리, 빨리 떼내라고!”
너무도 다정한 모습에 올리비아가 성을 내자 아일렌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불릿이 스스로 흙덩이가 인간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정황상 흙덩이는 그녀가 보기에도 생명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 전에 불릿에게서 떼어내면서 느꼈던 살결의 감촉, 온도, 혈맥의 박동, 그리고 숨결까지.
게다가 어쩐지 몸에서 좋은 냄새도 나고 있었다. 향료에 의해서가 아닌, 뭐랄까.
살결을 맞대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냄새라고 해야 할까? 응큼한 것 같았으나 흙덩이에게선 그러한 체취가 풍기고 있었다.
“마님…, 저도 더 이상 작은아씨의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겠습니다.”
“뭐라고?”
“각하께오서 가만히 계시는데 제가 어찌….”
그녀의 말대로 불릿은 여전히 흙덩이의 둔덕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러자 올리비아가 허리를 굽힌 자세로 일어서선 불릿의 무릎에 앉았다.
털썩!
“윽, 무슨 짓인가?”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돼?!”
“그런 말이 아니잖은가.”
“그럼 일단 얼굴부터 빼시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이 늑대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불릿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닫고선 황급히 고개를 빼냈다.
“미, 미안하다.”
“으응, 아니야. 난 불릿이 좋은걸?”
불릿의 사과에 흙덩이는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몸을 비비 꼬는 것이 예전의 올리비아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불릿은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올리비아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그녀를 안고선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앗!”
“가만히 있어, 원하는 대로 해줄 터이니.”
“여, 여기서?!”
올리비아가 비명과 흡사한 탄성을 지르자 불릿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대로 반대편으로 이동해 자리에 착석했다.
그 후 올리비아를 눕히고 머리맡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렸는데,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내려주니 올리비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게 아닌데….”
“음? 이걸 부러워했던 것이 아닌가?”
흙덩이에게 무릎베개를 하던 불릿의 모습에 성을 내기 시작하던 올리비아였기에 불릿은 그대로 따라해준 것인데, 미묘한 올리비아의 반응에 의문을 드러냈다.
“아, 아냐. 이것도 좋지 뭐.”
부끄러웠는지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올리비아에게서 시선을 돌린 불릿은 연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흙덩이가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데엔 이러한 면들이 있다. 신체적인 반응 외에도 정령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생겼는데, 흙덩아? 주먹 쾅.”
불릿의 요구에 흙덩이는 대뜸 주먹을 들어선 불릿에게 겨누었는데, 이에 아일렌과 유실리아가 기겁했다.
“안 됩니다!”
“각하아!”
아일렌은 흙덩이의 팔을 내리려 했고, 유실리아는 몸을 던져 그것을 막으려 했으나 흙덩이의 말이 더 빨랐다.
“주먹 쾅!”
그러나 흙덩이의 말과는 달리 아무 일도 없었고, 몸을 던진 유실리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당탕!
내부가 시끄러워지자 바깥에서 호위를 책임지던 세스터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각하! 진입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닐세! 그저 장난 좀 치고 있던 것뿐이다!”
“각하께서 장난이라니! 진입하겠….”
“애정행각 좀 했다고! 하지 마!”
“아, 예. 그렇습니까….”
덜컹, 열리기 직전이었던 문을 가까스로 막아낸 불릿은 몸을 추스르며 어색하게 자리로 돌아간 유실리아에게 말을 건넸다.
“……몸은 괜찮은가, 유실리아?”
“……예, 각하.”
“이게 뭐야….”
아일렌이 낮게 중얼거리자 흙덩이는 팔을 쭉쭉 뻗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주먹 쾅! 쌍주먹 쾅! 쾅쾅! 송곳이 되어라! 변해라, 얍!”
미미하게 움직이는 정령력과 함께 흙덩이가 연신 기술명을 외쳤으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릿은 그런 흙덩이에게로 시선을 돌린 후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이렇듯, 흙덩이는 더 이상 육체의 일부를 발사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정령으로서의 능력을 일부 상실한 모습이다.”
그 말을 끝으로 얘기는 종료가 되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마차 내부를 감돌았으나, 불릿의 무릎베개를 베고 있던 올리비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큰일 난거 아냐? 더 이상 정령사가 아니라는 소리잖아.”
올리비아의 말대로 불릿의 능력은 정령술이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당장 땅의 정령의 힘을 빌리지 못한다면 대지의 축복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가뜩이나 토질이 나쁜 바포 변경백은 식량부족으로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게다가 특산물사업에도 흙덩이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으니 정령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근시일 내에 파멸하리라.
그러나 올리비아의 말에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도 외부로 힘을 방출하는 것에 대해선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문제가…, 으음.”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또 다시 멈추는 불릿에게 눈을 감고 있던 올리비아가 눈꺼풀을 열고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뭔데 그래? 중요한 일이니까 숨기지 말라고?”
올리비아의 추궁에도 불릿은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에 대한 답을 주었다.
“힘을 쓰면 안 차. 근데 불릿이랑 몸을 비비니까 막 차오른다? 어때, 신기하지?”
흙덩이의 발언에 불릿이 신음을 터뜨렸다.
“으으음…, 그렇게 됐다.”
이 어이없는 발언에 올리비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얏? 그럼 흙덩이랑 그, 그짓을 하겠단 거야?!”
“신체접촉이 격렬할수록 정령력의 증대가 많고, 소모된 양도 빠르게 차오르…, 윽, 왜 꼬집는 건가!”
“안 돼, 하지 마! 그냥 내가 힘낼게!”
올리비아가 불릿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말하자 흙덩이는 연신 방실거리며 웃었다.
“나도 올리비아가 했던 걸 할 수 있다니, 신기해! 너무 좋아!”
이에 마차 안의 모두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흙덩이는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재밌으면 좋겠다! 그치, 불릿?”
불릿은 아무 말도 없었고,
“올리비아도 살 비비는 거 재밌어?”
올리비아는 잠자는 척을 했으며,
“인간여자, 왜 말이 없어?”
아일렌도 괜히 닫혀있는 창문으로 시선을 고정시켰고,
“너는 불릿이랑 놀지 마. 이제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나랑만 놀 거야.”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유실리아의 또 다른 폭탄발언에 불릿은 괜히 얼굴을 붉혔다.
* * *
중앙영지로 돌아온 불릿은 자신의 침소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풀썩.
원래 불릿은 언제나 근엄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근래에 들어선 그런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경박하거나 가볍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예전에는 너무 삭막하게 살았다면 이젠 천천히 사람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흙덩이, 흙덩이…, 흙덩이.”
돌아오면 올리비아와 응응(?)을 할 약속을 했었으나 불릿은 피곤한 나머지 홀로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로지 흙덩이였는데,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마의 꽃방울…, 최상급 마정석이 그런 것도 가능하나?”
흙덩이는 잃어버린 신체를 복구하면서 마의 꽃방울을 흡수하게 되었다.
흙덩이가 바라던 물건도 아니었고, 불릿이 시도하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흡수가 되더니 엄청난 파동을 뿜어낸 후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니, 인간인지 의심스럽긴 했으나 자신이 흙덩이에게 말했던 인간이 아니라서, 심장이 뛰지 않고, 피가 흐르지 않는다하여 자신과는 안 된다고 말했던 그 말이 거짓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흙덩이가 각성을 마친 후 자신의 신체를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아무런 징조도 나타내지 않고 땅에서 지옥송곳을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손가락을 가져다대 찔렀는데,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새빨간 핏방울을 보며 굉장히 좋아했었다.
“피를 흘리다니, 정녕 인간이 맞단 말인가?”
불릿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중얼거렸으나 심각한 말투와는 달리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뛴다. 게다가 가슴도 커졌…, 흠흠.”
올리비아보다도 더 커진 가슴은 탄력적이었기에 불릿도 몰랐던 취향에 쏙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복장은 여전히 원피스를 고집했으니, 조금씩 자신의 눈에 들어맞아가던 이전의 모습도 남아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불릿은 흙덩이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안 된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불릿은 그 스스로가 흙덩이는 정령이라 안 된다, 인간과 정령은 맺어질 수 없다, 너는 심장도, 피도 없지 않느냐라며 상처를 주었던 것을 상기했다.
그러한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흙덩이는 언제나 불릿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그를 위해 열심히 애교도 부리고, 모습도 바꿔갔다.
그러다 이번엔 원인을 모르겠으나 인간으로 변해서는 자신과 맺어지려고 한다.
그토록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불릿도 더 이상 자제심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안나가 제대로 확인을 해줄는지 모르겠군.”
그래도 확실히 검사는 해봐야했기에 하녀장인 안나에게 흙덩이를 맡겼다.
평소에도 안나는 흙덩이를 많이 아끼며 보살펴주었는데, 간간히 속옷을 입히는 등 쓸데없는 짓을 해서 불릿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흙덩이는 정령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안나를 통해 그곳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진정 인간이 된 것인지를 확인하려던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임을 확인하기 가장 쉬우면서 확실한 방법은 그곳(?)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마탑의 마법사가 아닌, 여성인 안나에게 맡겼던 것이다.
“젠장, 이게 무슨 개판인 것인지….”
불릿도 흙덩이가 좋다. 올리비아보다도 더 일찍 만난 존재이며 생과 사를 함께 한 동료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령과 정령사, 이 둘의 관계는 평생을 같이하는 사이이기에 숨기는 것도 없었다.
그렇다곤 해도 불릿이 고민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으니.
“그 짓을 해야 정령력이 증진된다니, 신이 있다면 때려주고 싶구나!”
응응(?)만이 아니더라도 정령력의 증진과 회복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가장 좋은 방법은 남녀사이의 애정행각이었기에 불릿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이젠 마음 놓고 기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으며 틈만 나면 자신에게 정령력을 핑계로 달라붙는 흙덩이를 떼어놓기도 힘들어졌다.
그리고 진정 인간이라 판명되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인간이 살아가며 필요한 행동지침이라던가 정령이라면 상처입지 않을 위험한 것들, 각종 병이나 고통, 아픔, 그리고 기분 좋은 행위….
“크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성욕, 식욕, 수면욕, 배설욕 등등이 있는데, 흙덩이는 좀체 싸질 않으니(?) 아직까진 의심 반, 확신 반인 상태였다.
생명체인 이상 싸지 않는 존재는 없었기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흙덩이가 인간이건, 정령이건 불릿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었다.
불릿은 그저 흙덩이가 상처받지 않게, 당황하지 않도록 이끌어주며 보듬어주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계약자를 말이다.
내심 불릿은 불안감이 들었다. 안나가 대체 흙덩이에게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었기에.
‘……이번엔 반드시 속옷을 입혀야겠지.’
마차 안에서의 흙덩이의 가슴은 너무도 보드라웠었기에 불릿은 괜히 그곳에 닿았던 얼굴과 손을 쓸어 넘겼다.
불릿도 은근히 응큼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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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기념으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