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9 우리 흙덩이가 바뀌었어요! =========================================================================
한편 불릿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난 그저 팔을 복구해주려 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은 상황에 불릿은 혼비백산인 상태였다. 정령과 정령사는 수평적인 관계, 그렇기에 정령사의 허락이 없으면 정령은 일정이상의 행동에 제한이 따랐고, 불릿은 대부분의 행동엔 제약을 두지 않았으나 마정석과 관련된 것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흙덩이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였기에 함부로 무언가를 할 리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최상급 마정석이 사용된 아티펙트를 흡수하니 분노보단 놀람과 당황이 공존하고 있었다.
“진정해, 자기야! 혹시 이것도 전에 그거랑 비슷한 현상이야?”
올리비아는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불릿의 머리를 잡고선 고개를 돌려 아이컨택트를 하게 만들었다.
“으, 으음. 모르겠다, 모르겠어! 흙덩이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녀의 노력에도 불릿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지금도 흙덩이는 요동치는 정령력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신체가 조금씩 바스라지고 있었는데, 부스스하게 흘러내리는 가루와 배꼽이나 명치가 아닌, 몸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알 수 없는 상황.
분명 불릿의 지식과 더불어 이전에 경험했던 각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과는 다르다고! 아니, 전에 그것이 각성은 맞긴 한 건가? 대체 뭐냔 말이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서, 설마 또 다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그것만은 안 돼!”
“불릿!”
츄-우!
“흡!”
올리비아가 광분에 빠지려는 불릿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아버리자 불릿은 또 다른 돌발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으으응….”
츄릅, 츄르릅-
불릿을 진정시키려던 것이 목적이었던 키스는 어느새 변질되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고, 혀까지 섞어가며 타액을 교환하기에 이르렀다.
퐁!
“헉, 허억…, 오, 올리비아.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진한 키스는….”
너무도 대담한 행동에 불릿이 그녀의 입술에서 길게 늘어뜨려진 침을 닦아주며 묻자 올리비아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그럼 어쩌라고! 좀처럼 진정하지 않는걸? 그, 그러니까 불릿이 제일 좋아하는 걸로….”
“제일 좋아하는 건 그게 아니다만….”
“응?”
“…….”
“……….”
의도치는 않았으나 침묵하게 된 불릿, 그리고 덩달아 조용해진 올리비아.
우웅, 우우웅!
“헉, 맞다, 흙덩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불릿의 눈에 비친 것은 새하얀 섬광이었다.
“크읏, 올리비아!”
위험한 현상이라 생각한 불릿이 그녀를 감싸 안자 올리비아도 그의 등에 팔을 두르며 이름을 외쳤다.
“불릿!”
“올리비아!”
흙덩이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은 요란하게 요동치며 둘을 그 속에 가둬버렸다.
파아아아앗!
* * *
덜컹, 덜커덩-.
귀족의 권위를 상징할 수 있는 가장 대외적인 방법 중 하나인 이 마차는 불릿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재질은 나무였으나 그 강도는 강철 못지 않았다. 기름먹인 박달나무에 마법적인 가미가 더해져 마나에 대한 저항력도 갖추고 있었고, 은은히 풍겨오는 향은 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좌석은 쿠션을 깔아 푹신하면서도 숙면을 취할 정도로 넓었는데, 바퀴는 충격흡수를 위해 이중구조를 지녔으니 달리면서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렇게 편안한 마차이거늘, 이곳에 탑승한 자들은 여간 불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헤헤헤.”
싱그러우면서 앳된 소녀의 웃음소리는 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우게 만들었는데, 소리의 근원지에서 약간 아래에 위치한 불릿의 얼굴은 불편하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저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너무 좋다, 그치, 불릿?”
“…어어, 그, 그래,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찌릿-.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싫어? 흙덩이 싫어?”
“…그러면서도 좋은 것 같다는 결론이…….”
올리비아는 소녀와 대화를 주고받는 불릿을 노려보았는데, 누워서 소녀의 허벅지를 베고 있던 불릿은 대화를 선회하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이상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분명 소녀는 입으로 음성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간미를 줄줄이 흘리는 순도 백퍼센트 인간여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신을 지칭하며 ‘흙덩이’라고 하는 말에 우리는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아씨가…더 이상 작지 않게 되었군요….”
왼쪽 창가에 앉아있던 아일렌이 슬쩍 원피스 사이로 엿보이는 미소녀의 가슴을 보고선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흙덩이라 주장하는 이 소녀의 가슴은 속옷을 착용하지 않아 새하얀 원피스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는데, 얼핏 보일락 말락하는 것이 앳되면서도 색기를 풍겼다.
비단 남자가 아닌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돌아볼 만큼 크면서 아름다운(?) 가슴이었는데, 이에 반대편에 위치해 있던 유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각하?”
모두가 궁금해 하던 사항이었기에 불릿을 흘겨보던 올리비아도 자세를 고쳐 앉고선 몸에 꽉 끼는 원피스를 입은 흙덩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으음, 그것은…, 흐, 흙덩아? 일단 좀 일어나도록 할게.”
“무릎베개는 싫어?”
“…그게 아니라, 대화를 할 때엔 정중한 자세로 대하는 것이 원칙이니까….”
“후훗, 알았어! 불릿의 부탁이니까!”
“……고맙다.”
“고맙긴, 우리사이에.”
물컹.
흙덩이는 누워있던 자세에서 일어나려던 불릿의 팔을 껴안았는데,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가슴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졌다.
‘미치겠군….’
불릿은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골이 다 아파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던 노릇이기에 이게 무슨 일인지를 질문을 한 유실리아를 비롯, 아일렌과 올리비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
“그…, 흙덩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그러니까….”
“또박또박 좀 말해! 쟤가 흙덩이가 맞기는 한 거야? 설마 숨겨둔 애인 같은 건 아니겠지?”
“미친…, 험험. 아닐세, 아니야. 나를 뭘로 보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올리비아의 의심 섞인 시선에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나왔으나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본인으로서도 이번 사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기존 정령들의 육체는 각각의 원소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그나마 인간이 만질 수 있던 원소가 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그의 말에 모두는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정령은 기본적으로 인간세상의 존재가 아닌 바, 계약자의 명에 따라 세상으로 나오려면 자신의 원소에 따라 육체를 구성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가 없기에.
물이야 유명한 속담인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듯, 만질 수 있을 만한 성질이 아니었다.
바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불이야 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땅은 흙과 돌로 이루어지기에 사원소 중에서 유일하게 만질 수 있었는데, 그래서 흙덩이가 인간처럼 생겼어도 모두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와아, 불릿의 몸이 제대로 느껴져! 이게 바로 감촉이라는 건가?”
겉모습만 따라 해봤자 내부가 복잡한 인간의 세세한 면모를 표현할 순 없다.
그래서 발성기관이 없던 흙덩이는 여태까지 음성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흙덩이는 불릿의 팔을 자신의 가슴에 들이밀며 신기하다는 듯 한쪽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물컹, 물컹.
“커허험…, 흙덩아? 이제 좀 놓는 것이 어떻겠나?”
“이거 봐, 불릿! 엄청 신기해!”
불릿의 말은 듣지도 않고 흙덩이는 흥분한 채 얼굴을 바싹 들이댔는데, 연신 자신의 가슴을 조물조물 만지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불릿의 팔을 비비니까 막, 막 몸이 뜨거워져! 와, 이것도 정령력이야?”
“으헉.”
“자, 작은아씨! 이, 이리로 오세요!”
“빨리 흙덩이 떼내! 어서!”
불릿이 몸을 움찔하자 아일렌은 기겁하며 흙덩이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고, 올리비아는 눈에 불을 켜고선 소리를 질렀다.
유실리아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잠시 얘기가 중단되었다.
“어? 얼굴이 왜 이렇게 뜨겁지? 저기, 인간여자야. 왜 이러는 줄 알아?”
흙덩이는 인간의 신체구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기에 불릿의 팔에 가슴을 비비면서 생긴 생리현상을 아일렌에게 물었고, 아일렌은 발갛게 홍조가 오른 흙덩이의 얼굴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그것은, 그게, 애, 애무….”
“크흠! 크흠, 크흠! 크흠…, 콜록콜록!”
무슨 노래를 하는 것처럼 헛기침을 뱉던 불릿은 급기야 사레가 들렸고, 오른편에 있던 유실리아가 재빨리 등을 두드려주었다.
토닥토닥-.
“괜찮습니까, 주군?!”
“콜록…, 크흠. 괜찮다…, 후우, 그냥 편하게 말하도록 하지. ……괜찮겠지, 올리비아?”
어째서인지 올리비아에게 허락을 구하는 불릿이었으나 올리비아도 이유를 알아서인지 뾰루퉁한 상태이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일렌은 모르겠으나, 유실리아는 누가 봐도 불릿에게 감정이 있었으므로 불릿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귀족출신이기에 잘 알고 있던 올리비아는 그것을 감내한 것이다.
굳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었으나 그러한 과정을 거친 불릿은 한숨을 쉬며 다소 딱딱했던 어투를 바꾸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하나, 그러니까 흙덩이가 최상급 마정석, 마의 꽃방울을 흡수하고 난 직후의 일이다.”
“내 얘기다! 내 얘기!”
“…쉿.”
“쉿?”
두 팔을 번쩍 들며 들뜬 모습을 보이던 흙덩이에게 불릿이 손가락으로 세로로 세워 입술에 갖다 대자 흙덩이도 그를 따라하며 방글방글 웃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흙덩이는 인간이 된 것 같다.”
“무슨 소리야! 꼬맹이는 정령이잖아?!”
올리비아가 버럭 소리를 치자 불릿이 아니라 흙덩이가 대꾸하였다.
“나 꼬맹이 아닌데? 올리비아보다 가슴도 크고. 자, 봐봐.”
흔들-.
출렁이며 존재감을 뽐내는 커다란 두 개의 융기에 올리비아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알아!”
그녀가 화를 내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자 흙덩이는 불릿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포옥.
“윽,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자, 느껴봐, 불릿.”
“느끼긴 뭘 느껴!”
흙덩이의 행동에 올리비아가 다시금 소리쳤으나 흙덩이는 들은 체도 안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느껴져? 흙덩이의 심장이.”
“으음….”
그 말에 불릿은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였다. 절대 가슴을 느끼려는 것은 아니다.(?)
손끝에 감각을 집중하자 불릿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두근-, 두근-, 두근-
세차고 빠르게 뛰는 박동, 그리고 얇은 원피스 너머로 느껴지는 혈류의 흐름.
그리고 흙덩이가 불릿의 머리를 감싸 안고서 자신의 둔덕에 묻어버리자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알겠지? 불릿이 나는 안 된다고 했지만….”
불릿은 흙덩이의 몸에서 나는 체취가 무척 향기롭다 생각하며 하체에 힘이 가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필사적으로 내리눌렀다.
불릿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흙덩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다운 면모, 생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밝게 웃었다.
“이젠 나도 돼.”
불릿은 둔덕에 파묻힌 얼굴을 위로 올렸다가 확 하고 붉어져버렸다.
저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 작품 후기 ============================
부왘
갑자기 신규투뎃 14위라니..!
연재하면서 처음이라 가슴이 떨립니다!!
게다가 선작수도 700을 달성했으니..
선작수 700기념화는 내일 점심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6시와 밤 12시 10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