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1 우리 흙덩이가 바뀌었어요! =========================================================================
이번 토벌을 통해서 불릿은 자신과 흙덩이의 정령술이 한층 강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빌로안에서의 토벌에서는 한방이 부족해 정확한 타격을 구사할 수 있는 올리비아에게 기댄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약점에서 약간 빗나가더라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의 파괴력이 나와줘서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수월하게 전투를 끝냈다.
불릿은 집무실로 돌아와 이전의 전투를 토벌대의 책임자였던 세스터스와 함께 토의하는 중이었다.
“각하, 작은아씨는 괜찮습니까?”
토의를 할 줄 알았는데 대뜸 한다는 말이 흙덩이에 대한 물음이었기에 근엄함을 유지하려던 불릿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또 흙덩이더냐.”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야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각하.”
“어떤 면이?”
“그야, 성장하시는 장면이라던가….”
“거기까지 하도록 하지.”
“옛, 각하!”
세스터스의 발언에 장난 아니게 진행된 발육으로 터져나간 브라의 후크와 살을 파고들었던 팬티를 떠올리니 머리가 괜히 민망해지는 불릿이었다.
세스터스도 근심이 서려있는 불릿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의도였지, 작은아씨라 부르는 흙덩이를 욕보일 생각은 아니었기에 바로 관두었다.
“흙덩이에 대한 건은 본인도 혼란스러우니 나중에 얘기하지. 일단 조사하고 있으니 진정 인간화가 된 것인지는 얼마 안 있어 밝혀질 것이다.”
“…괜찮습니까, 각하?”
“왜 그러는가, 세스터스?”
불릿은 어서 이 주제로의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으나 세스터스가 거듭 물어보자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했다.
그러자 세스터스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올리비아 마님이 역정을 내실 것 같습니다.”
“……어어, 뭐…,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흙덩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저희로선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그야 당연히 후계문제 아니겠습니까? 마님이 아드님을, 작은아씨가 따님을 낳으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끄응, 자네는 본인에게 못하는 말이 없군.”
백작인 불릿에게 일개 백인장인 세스터스가 조언하는 게 우습기도 했으나, 평민출신으로 하녀장까지 오른 안나에 비해선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하녀장이 각하의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약과라 여겨집니다.”
결국 가신들의 모든 행동은 지난 세월동안 불릿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 생겨난 것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불릿은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헛기침을 하며 억지로 화제를 전환했다.
“커험! 그래서, 흙덩이가 인간이 됐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정령술을 사용함에 있어 이상은 없으니 과념치 말도록.”
“저보다는 다른 분들과 상의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세스터스는 이제 겨우 백인장이라 기사들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들은 청년이었다.
그래도 경험이 풍부해 백인장의 자리에 오를 순 있었으나, 그 경험이란 것이 나이대에 비해 풍부한 것인지라 천인장이 되려면 오랜 세월이 지나야할 것이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닌지라 불릿도 잠시 고민하는가 싶었으나, 이내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그곳에 있던 자들 중에서 최고선임은 자네지. 웬만하면 흙덩이에 대한 일은 비밀로 치부하고 싶군.”
현재 대륙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마법사와 정령사들의 전체수준이 한 단계 하락한 상태였다.
마법사의 탑 영역에서도 텔레포트를 위해 방문했을 시에 얼마나 시달렸었는가?
불릿은 흙덩이가 정령이건, 아니건 그에 개의치 않고 소중히 다뤄줄 생각이었다.
다른 자들의 손에 흙덩이의 몸이 훑어지는 것은 더 이상 싫었으니까 말이다.
“병사들과 십인장들의 입을 단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세스터스의 말대로 통제를 하다간 언제고 밝혀질 일이었다.
다행히 라고 해야 할지, 그곳에서 흙덩이의 각성순간을 목격한 이들은 마탑의 지부장을 제외하면 모두가 불릿의 측근들이었다.
200여명 전원이 마수의 숲에서 단련된 정예중의 정예들이었으며, 호위로 참여한 아일렌과 유실리아 또한 불릿을 지지하고 있었다.
‘유실리아는 지지라기보다는 본인을 사랑하는 것 같았는데….’
사랑 또한 지지라는 측면으로 볼 수 있으니 맞기야 할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불행하게 만들고자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부장도 거슬리는군.’
마탑의 지부장이 불릿에게 호의를 보였으나 그 또한 엄연한 마법사, 호기심이 왕성한 인물이었기에 비밀이 보장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게 세스터스와 한참을 고민하던 불릿은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세스터스.”
“옛, 각하.”
척.
세스터스는 불릿의 부름에 자세를 바로하며 다리를 모았는데, 딱딱해 보이는 것이 누가 봐도 군인이라 여길 만했다.
이에 불릿은 결정했다는 듯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대에 참여했던 200여명의 병사와 기사들로 ‘신(新) 라체나’로 만들어볼 생각은 없는가?”
“…라체나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무래도 비밀이 지켜지면서도 그들을 휘어잡을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네.”
단순히 윽박지르는 것만으론 비밀을 지킬 이는 없다. 기사들은 모르겠으나, 병사들은 일정한 보수인 월급을 받으며 생업에 종사하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들이 정예병이라고 할지라도 평민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생각의 틀이 귀족출신과는 확연히 차이 났다.
그리고 평민들은 명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 아마 많은 돈을 지불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이실직고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님을 알고 있으나 병사들에 대해서는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말해보도록.”
“감사합니다, 확실히 마수의 숲을 다녀오면서 토벌대의 병사들은 정예병으로 새로이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투력만의 문제이므로, 군율로 엄히 다스린다 할지라도 병사들이 평민이라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평민은 명예를 모른다, 이 말은 줏대가 없이 흔들리기 쉽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야 윗사람이 누군들 자신들의 배만 곯지 않게 해주면 최고였으니 말이다.
“물갈이를 했으니 새로 채워야하지 않겠나?”
“진정 귀족과 평민이 화합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세스터스는 거듭 문제를 강조하며 불릿에게 간청을 했는데, 워낙 사안이 컸던지라 연이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귀족출신 기사와 평민출신 기사의 대립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출신성분이 손에 꼽혔다.
이것은 그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오랜 세월을 통해 서서히 신분의 장벽을 허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던 것이다.
불릿은 그런 세스터스에게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고 영지의 최대 무력부대인 기사단을 비워둘 순 없지. 마수의 숲에서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그들을 믿어보도록.”
“기사와 병사는 다릅니다, 각하.”
“단, 기존 귀족출신 기사들은 조장을 맡도록 하고 병사들은 일반단원으로 영입한다.”
이 정도 혜택도 주지 않는다면 기사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기사를 관두는 자들도 나올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여전히 파격적인 선택임엔 변함이 없었고, 문제 또한 산재한 상태였다.
“군단의 다른 병사들은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몇 명에게만 파격적인 혜택을 준다면 다른 자들이 반발할 것은 예상되는 바이고, 같은 동기인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면 군단 자체가 제 2의 반역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이 역시 생각한 바가 있었는지 불릿은 쉬지도 않고 바로 대답하였다.
“신생 라체나의 기사들은 마수의 숲에서 목숨을 걸고 마정석을 수집했다. 그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군단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에 불만을 가진다면 본인의 분노를 받을 수밖에.”
‘각하의 감정 폭이 넓어지셨다.’
이전에는 그저 고요한 호수 같았다면 지금의 불릿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도 같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불길.
그러다 한번 움직인다 싶으면 삽시간에 주변을 덮어버리는, 그런 불 말이다.
이런 불릿을 보며 세스터스는 살짝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좋은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생기셨구나.’
좋은 면이란, 그동안 불안불안 했던 후계생산이라든가 가정을 꾸리는 일, 그리고 열정적인 영토 재건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쁜 면으로는 때때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폭주하는 장면도 연출했던 것이다.
이전의 불릿이라면 부끄러워하거나 화를 내는 등, 그런 모든 감정을 속으로 몇 번씩 되새인 후 겉으로 표출하기에 실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불릿은 쉽게 얼굴을 붉히고 쉽게 흥분하며 반역이란 이름에 연루된 자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각하, 소신이 미력하나마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세스터스는 군인으로서가 아닌, 가신으로서의 신분으로서 불릿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었고, 이에 따라 말투도 변경되었다.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 지는 불릿도 몰랐으나 어차피 이번 일은 세스터스가 깊게 관련된 일이었기에 흔쾌히 허락하였다.
“발언을 허한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동안 각하께오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 백성들은 일부 귀족들의 횡포에 짙은 시름을 앓고 있었나이다. 그것은 반역자 게슐린 그랩에 의해 큰 피해를 보았던 카텐령으로 확인할 수 있었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름이란 죽음을 뜻했다. 세스터스 역시 귀족인지라 일반 백성들의 죽음을 수치로 계산하였기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다.
“군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병사들은 평민들에게서 차출하는지라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들의 가족이 불안해할 것이고, 불안에 빠진 가족들을 보며 병사들도 동요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이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개편된 군단이 쓸 만하긴 하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기사를 양성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가서 문제시될 것을.”
기사는 강력한 무력임과 동시에 고등군사교육을 받은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다.
지휘관의 역할을 해줄 기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기껏 군단을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써먹기가 여간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은 단순히 군단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지라 불릿은 자신의 직속 기사단이었던 라체나를 부활시키려던 생각이었다.
“소신의 말은, 처음부터 그들을 기사로 승격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더욱 노력하게 만들자는 의미였나이다.”
“…그들을 종기사로 만들자는 소리였군.”
“바로 그렇습니다, 각하!”
확실히 기본소양도 없는 병사들이 기사가 된다고 기사로서 써먹을 수는 없었다.
동시에 기존 기사들에게서도 불만이 튀어나올 것이니,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종기사가 될 수 있게 해준다면 불만을 잠재움과 동시에 선택받지 못한 군단의 병사들도 노력하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리라.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마수의 숲으로 원정을 나가는 인원에 한정해서만 종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면 좋을 것 같나이다.”
“흠, 그렇게 되면 불균형이 이루어질 텐데?”
기사만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병사와 기사, 이 둘의 조합이 적절하게 구성되어야 군대는 비로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불릿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세스터스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번 토벌대의 인원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들은 마수의 숲에서 첫 원정을 나선 인원들이며, 동시에 마물 토벌이라는 재앙에도 맞서 싸운 용사들입니다.”
불릿과 흙덩이의 활약으로 쉽게 잡았으나 마물이 어째서 등급을 나누지 않고 모조리 재앙이라 불리는지는 대륙 전역의 피해규모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125화의 7권 4챕터가 미기재되고, 대신 5챕터가 2번 중복되어 들어갔던 126,127화의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
124화에서 125화로 넘어갔을 당시 이상함을 느끼셨던 분들은 125화로 돌아가셔서 다시 읽어보시면 빠졌던 내용을 읽어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말정말 죄송하며, 이건 제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제보해주신 '제르디엘'님 감사합니다.
쪽지를 아침에 보내주셨는데 제가 밤새 글을 쓰다가 자는 시간과 맞물려 몰랐네요.
이것도 변명이 되겠군요,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성실연재를 약속드리며 오늘 밤 9시에는 1500 추천기념으로 한 편 더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
밤 12시 10분에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