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사랑과 전쟁! =========================================================================
첨벙-
욕탕 깊숙한 곳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끓어오르더니 이내 위로 치솟았다.
촤악!
“푸하!”
기다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튀기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장시간 욕탕에 있었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로 연신 팔과 다리 등을 닦고 있었다.
“……침소로 오라니, 그것도 바, 밤에….”
아직도 불릿의 말만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창피함에 얼굴을 반쯤 물에 잠그는 올리비아.
그녀의 곁에 선 하녀가 걷어붙인 팔로 올리비아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불편하지 않도록 위로 틀어 올려주었다.
“아가씨, 드디어 기회가 온 거예욧!”
언제부턴가 올리비아의 전속시녀가 된 루나가 파이팅자세를 취하자 올리비아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런 게 아니야!”
“아가씨, 가슴하고 거기가 보이세요.”
“어멋!”
첨벙!
소중한 부위들이 노출됐단 사실에 물속으로 쏙 잠기는 올리비아.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루나와 말을 주고받았다.
“불릿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시간대에 그런 장소로 날 부른 걸 거야.”
역정이 오고가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어진 회의가 별게 아닐 리가 없었다.
불릿은 쓸데없이 말을 길게 하는 이가 아니었기에 그런 비효율적인 릴레이식 회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앞을 서성이며 얼핏 들려오던 내용은 심각해보였고, 올리비아도 그것을 토대로 대략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전쟁이라도 하시려는 걸까요?”
“그러게…, 그건 싫은데 말이지.”
“저도 전쟁은 싫어요, 아가씨.”
조물조물.
루나는 올리비아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대화를 이어갔는데, 올리비아나 루나나, 전쟁이 싫었는지 인상이 밝진 않았다.
“그래도 전쟁이 끝난 다음엔 아기님을 출산하시겠네요, 아가씨?”
“푸웃!”
“꺅, 더러워라. 아가씨, 대영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조금은 조신하게 구셔야….”
“너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올리비아가 몸을 돌리며 소리치자 루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모르니까 후계자는 생산하시고 가시지 않겠어요? 그게 전통인데.”
전쟁통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기사들은 항상 자신의 씨앗을 뿌리고 난 뒤에야 안심하고 전장으로 향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은 기사일수록 자식의 수가 많았다.
“불릿은 달라! 아무렇게 막 그, 그러지 않는다고!”
“아가씨, 이제 진도 좀 빼셔야지요. 하다못해 뽀뽀라도 좀 하세요, 네?”
“으, 으으…….”
부그르르르…
거품을 내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올리비아. 그녀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선 고민이 많은 모습이었다.
“부그르르…, 쿨럭. 나보고 어떡하란 말야, 그런 쪽으론 하나도 모르는데….”
첫 키스도 불릿의 갑작스런 기습적인 행동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 아직도 비몽사몽이었다.
좋았던 것 같긴 한데, 제대로 느끼기엔 한번으론 잘 모르겠는 듯 입술을 매만지며 입술을 삐죽인다.
이에 루나는 허리에 손을 척하니 얹고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엣헴, 이제 저도 올리비아 아가씨를 모시게 된 몸, 그에 대한 해결방법은 집사장님과 하녀장님으로부터 톡톡히 교육받았답니다.”
“……뭔데? 그 방법이.”
아닌 척하면서도 궁금했는지 올리비아가 소곤거리며 묻자 루나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변경했다.
또 다시 척, 손가락을 내밀며 당당하게 하는 말.
“첫째, 덮쳐요. 둘째, 해요. 셋째, 짜잔-, 아기씨가 태어났네요? 빠밤.”
“그게 뭐야!”
“뭐긴 뭐겠어요? 대영주님은 이런 면에선 소극적인 분이신지라 아가씨가 리드를 하셔야 한다구요.”
결국 그짓(?)을 하라는 뜻이었기에 올리비아가 버럭 소리치자 루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대영주님도 후계자를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어머니도 저를 이만큼이나 기르셨는데, 대영주님은 아직도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하셨잖아요?”
그러면서 흘깃, 팔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올리비아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나마 최근엔 아가씨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뽀뽀도 쪽! 하셨다면서요? 대영주님은 엄청, 무지무지 신중한 분이신지라 그런 쪽으론 관심도 내비치지 않으셨는데, 얼마나 아가씨가 좋으셨으면 대영주님이 먼저 쪽쪽 하셨겠어요?”
“부탁이니까 쪽쪽이라고 하지 좀 말아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수면위로 떠올랐던 올리비아호가 다시금 침몰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비아호를 침몰시킨 루나호는 확인사살을 멈추지 않았다.
“오오, 올리비아! 내 사랑을 받아주오! 쪽쪽쪽!”
빙글 턴을 돈 루나. 이번엔 올리비아역이다.
“어머, 바포 백작님? 아아앙, 거, 거긴! 쪽쪽쪽!”
얼굴이 시뻘게지는 올리비아였으나 그녀 또한 반격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루, 루나도 연애 해본 적 없지?! 여, 연기가 엉성한 걸?!”
멈칫.
올리비아의 말에 루나가 1인 2역을 멈추고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호, 호호호! 무,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 저도 기사, 사 분들에게 인기만점이랍니다?”
“아냐, 거짓말일 거야! 항상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안나 아줌마에게 들었어요, 밴님이 시켰어요, 다 어디서 들었다는 말뿐이잖아!”
“으윽!”
그녀의 말에 치명타를 입었는지 루나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비틀 뒤로 걸음을 옮기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바닥의 물기에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루나는 기운이 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요, 저는 연애경험이 전무한 빵점짜리 하녀예요….”
시무룩해 보이는 루나의 모습에 올리비아가 욕조에서 빠져나와 그녀의 앞에 조심히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상처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가씨,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올리비아의 위로에 루나의 말이 이어진다.
“제 친구들은 기사님들하고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벌써 결혼해서 애도 숨풍숨풍 낳은 기집애도 있는데, 저는 아직도 손도 못 잡아보고…, 흑.”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자 이젠 올리비아가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놀림 받던 자가 반대 입장이 되자 적응하지 못한 것.
이에 올리비아가 어색하나마 가슴을 가린 왼팔을 대신 오른팔로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스윽, 스윽.
“괜찮아, 괜찮아. 루나는 예쁜 걸? 너는 아직 어려서 남자들이 손을 못 대는 것뿐일 거야. 기운 내.”
“하지만 대영주님은 흙덩이님이랑 합체(?)도 하시고, 엄청 어울려 다니시잖아요?”
움찔.
흙덩이의 얘기가 나오자 올리비아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흙덩이는 정령이잖아?”
“에이, 그건 아니죠. 그 모습 어디를 봐서 정령이에요? 밥도 먹고, 대영주님 침소에서 잠도 주무시고. 하녀장님께 듣기로는 대영주님 수비범위 안이라고 하시던데요?”
“글쎄, 정령이라니까, 꼬맹이는!”
그러면서 또박또박 다시금 강조한다.
“정.령.이.라.고! 땅의 정.령!”
“왜, 왜 그러세요, 아가씨. 그냥 귀여워서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에요.”
올리비아가 화를 내자 루나가 찔끔해서 고개를 움츠렸는데, 그런 와중에도 손가락으로 살며시 올리비아를 가리키며 입을 뗀다.
“아가씨는 역시 가슴이 크시네요. 몸을 단련하셔서 그런가?”
“꺄악!”
다다다-
풍덩!
올리비아호, 2차 침몰의 순간이었다.
그 시각, 불릿은 흙덩이에게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우웅…
조금씩 아물어가는 상처와는 반대로 흙덩이의 표정은 슬퍼보였다.
- 불릿이 다치면 흙덩이도 아파.
“…미안하네, 본인이 성급했어.”
- 불릿은 항상 다치기나 하고,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겠어.
“……어, 응. 그런 것 같소.”
- 자, 다 됐다.
순식간에 끝난 치료. 확실히 예전보다 능력이 상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중급의 벽은 두터운 것 같았다.
“중급 마정석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
파르탄 영지에서 받은 하급 마정석은 벌써 옜날에 사용했다.
뭔가 아주 조금, 약간의 계기만 있으면 흙덩이나 불릿이 중급에 올라설 것 같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중급 마정석을 사용하자니, 마정석만 소모하고 중급에 올라서지 못하면 흡수하지 못한 마기가 허공으로 흩어져 헛되이 날리게 된다.
이는 위장과도 비유할 수 있는데,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 중급 마정석이란 음식을 먹어봤자 도로 토해낼 뿐이다.
몸이 성장해서 위장이 커져야 더 많은 음식을 먹으며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 잘못하다간 배탈만 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배탈은 중급 마정석을 잘못 받아들여 마기에 잠식되거나 정령력을 담는 그릇이 깨지는 등의 부작용을 뜻한다.
포옥.
-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불릿은 언제나 잘 해왔잖아?
침대에 앉아서 치료를 받던 불릿을 자신의 품으로 껴안으며 토닥이는 흙덩이.
얼떨결에 벌어진 상황에 불릿은 난감하면서도 포근한 땅의 정령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불릿을 일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이, 있어? 나, 나야. 올리비아….”
“헛, 흙덩이여, 잠시만.”
불릿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문으로 다가가자 흙덩이가 구시렁거렸다.
- 치이…, 바보 여자가….
흙덩이를 뒤로한 불릿이 직접 문을 열어주자 그곳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벗기 편한 복장의 옷을 입은 올리비아가 있었다.
“…? 잘 왔소, 올리비아. 어서 들어오시오.”
“그, 그럼 실례할게.”
종종걸음으로 실내로 들어선 올리비아는 흙덩이를 보고 굳었으나 억지로 얼굴을 풀며 불릿을 바라보았다.
“그래, 와, 왔어. 무슨 일인데?”
“흠,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좀 앉도록 하지.”
“으, 응….”
딱딱한 움직임으로 침대까지 다가간 올리비아가 살포시 앉자 불릿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아, 혹시 의자가 딱딱해서 싫은 것이오? 그렇다면 거기도 상관없소만….”
어째서 탁자의 의자가 아닌 불릿이 잠을 자는 침대에 걸터앉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상관없다는 듯 불릿도 그곳에 다가가 앉았다.
풀썩.
“…….”
“음, 그럼 본인이 먼저 말하겠소.”
올리비아가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말이 없자 불릿이 먼저 입을 떼었다.
“본인은 가신들과 함께 군단을 출전시켜 반역자 게슐린 그랩 자작을 처단할 생각이오.”
“……위험하잖아? 네가 굳이 나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걱정스런 올리비아의 말에 불릿이 몸을 살짝 더 돌린 채 말을 이었다.
“본인의 부재로 인해 벌어진 사단이오. 결자해지라고, 원인제공자가 해결할 일이지.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돌이킬 수 없소.”
“…….”
“…….”
잠시간의 침묵. 그러자 이번엔 올리비아가 먼저 입을 떼었다.
“그럼, 나도 갈래.”
“전장은 위험한 곳이오. 레이디가 갈 만한 곳은….”
“너와 난 파트너고, 동료야. 그리고….”
이어지는 올리비아의 키스. 불릿의 입술에 가져간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떼며 그녀가 말을 내뱉는다.
“나는 널 좋아해. 아니, 사랑해. 그러니 나도 갈 거고, 널 지키겠어.”
“…….”
올리비아의 키스에 불릿은 정신이 멍했다.
‘방금 뭐였지?’
무언가 부드럽고 따스한, 향기로우며 약간 달콤하고, 촉촉한….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감정이 휩쓸고 가자 불릿의 입술이 자동적으로 나불거렸다.
“위험한 곳은 안 된다. 안전한 곳에서만, 알겠지?”
“응, 그럴게!”
올리비아가 불릿의 팔에 매달리며 매우 밝게 웃자 아직도 얼떨떨한 불릿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뇌리를 뒤적거렸다.
‘뭐지? 키스? 올리비아가? 나에게?’
허락을 받자 기분이 상승한 올리비아와 팔에 매달린 올리비아의 가슴이 닿고 있음에도 전혀 느끼질 못하고 있는 불릿.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흙덩이.
- 나도 불릿이 걱정되는데, 내가 지킬 건데.
그래도 불릿을 방해하기 싫었기에 올리비아의 행동에 미간이 찌푸려지면서도 꿋꿋이 참는 흙덩이였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격동의 하루였습니다. 베스트 20위에 1시간 넘게 안착도 해보고, 추천이 하루만에 200도 넘겨보았고요.
지금 올리는 편은 35분쯤에 올려야 연재란에 등극이 되기에 독자분들께 더욱 많은 노출이 될 수 있지만, 이미 보시던 분들과의 약속이 있으니 10분에 올립니다.
내일도 만나뵙기를 고대하며 저는 이만 글을 쓰러 갑니다...
아참, 아침 7시에도 올라오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