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03화 (103/241)

00103  사랑과 전쟁!  =========================================================================

둘이 어색함을 이어갈 때, 참다못한 흙덩이가 난입했다.

- 불릿, 전쟁은 안 돼! 위험하잖아!

와락!

이불을 젖히며 그의 등에 뛰어든 흙덩이가 두 팔로 감싸 안자 깜짝 놀라는 불릿과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불릿 또한 조금이지만 발갛게 변했다.

“흐, 흙덩이?”

- 다른 인간들에게 시켜! 불릿 부하잖아?

꾸욱, 꾸욱-.

흙덩이가 자꾸 뒤에서 압박하자 안나가 입힌 속옷이 등을 통해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흙덩이는 정령, 흙덩이는 정령, 흙덩이는 정령….’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이상한 감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막은 불릿이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그, 그들도 물론 출전할 것이다. 허나 본인이 나서야지만 정당성이 부여되기에….”

- 그럼 흙덩이가 지켜줄게! 바보 올리비아보다 훨씬, 훠얼씬 더 불릿을 잘 지켜줄 수 있어!

그러자 불릿도 흙덩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흙덩이는 지금 올리비아에게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불릿도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스윽스윽-

“그래그래, 자네는 언제나 본인을 지켜주었지. 내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음이야. 하하.”

- ……

불릿의 말에도 흙덩이는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행동에 올리비아가 화들짝 놀랐다.

쪽.

“야, 너 뭐하는 거야!”

흙덩이가 불릿의 볼에 뽀뽀를 하자 다시금 시작된 혼란스런 상황!

- 메롱, 바보 올리비아도 하는데 내가 왜?

“어, 으, 어?”

불릿이 어버버 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자 이번엔 불릿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품에 안기는 흙덩이.

포옥.

- 불릿은 내꺼야. 올리비아는 뒤에나 서라고 해.

“이게 정말?!”

와락!

지지 않겠다는 듯 덩달아 올리비아도 불릿을 껴안았는데, 어쩐지 다른 감촉이 느껴져 불릿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헉….”

불릿의 눈앞에는 올리비아의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나 있었는데, 언제 벗어재꼈는지 나풀거리는 옷이 침대 아래에 던져져 있었고, 속옷만 입은 올리비아가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드러냈던 것이다.

“올리비아! 언제 그런 차림을…, 이, 일단 옷 좀 입고, 흐, 흙덩이여, 그러지 마시게!”

불릿이 중재를 하려하자 올리비아와 흙덩이가 동시에 소리쳤다.

“싫어! 나야, 쟤야?!”

- 싫어! 나야, 쟤야?!

이 순간만큼은 한 마음 한 뜻이었는지 같은 말을 내뱉는 올리비아와 흙덩이.

불릿은 그들의 육탄공격을 받으며 대략 정신이 멍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미친…….’

그야말로 미친 상황이었다.

* * *

퀘엥-.

불릿의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올라와 있자 크레파토스가 걱정 어린 말을 건네었다.

“각하, 옥체가 상하시온 듯한데 준비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사옵니까?”

그러자 불릿이 손을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본인은 괜찮네, 밤새 검토할 일이 있어 잠시 피로할 뿐이야. 금방 회복될 것이니 그대는 할 일을 하라.”

“…알겠사옵니다, 각하.”

크레파토스가 물러나자 불릿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불릿은 밤새도록 흙덩이와 올리비아에게 시달렸다. 나야 쟤야? 이것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만큼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아니, 이걸 왜 선택하라고 한단 말인가? 흙덩이는 불릿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고, 올리비아는….

‘무슨 생각으로 옷을 벗어재낀 것인지 모르겠군.’

아니, 사실은 안다. 여성이 한밤중에 남성의 방을 방문해 속옷만 입은 채로 몸을 부비대면 뭘 하자는 것이겠는가?

아마 불릿도 크게 흔들렸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흙덩이가 있는데, 흙덩이 앞에서 키스 이상의 일을 할 리가 있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자식 같은 흙덩이에게 그런 장면을 연출할 리가 없었다.

‘자식을 갖지나 않으면 다행….’

“크흠.”

아닌 것 같지만 자식 같은 존재라 되내이며 자기최면을 걸었다.

갈수록 육체에 휘둘리며 욕망이 들끓던 불릿은 한숨을 내쉰 후 업무로 돌아갔다.

펄럭.

“흐음….”

어젯밤 열띤 토론을 거친 회장에서의 결과물이 서류의 형태로 불릿의 앞에 놓여있었는데, 그것을 둘러보며 불릿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진행하면 되겠군.”

보고서는 불릿이 정한 방향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세세한 목록을 정리한 것이었다.

불릿은 자신의 영토를 가지고 전쟁을 갖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국지전은 꽤 여러 번 겪어보았고, 본인 스스로는 결사대에 참여해 흑마법사와 대륙스케일로 전쟁을 해보았다.

그러니 그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고, 게슐린 그랩 자작에게 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 * *

혹한의 계절인 겨울이 끝나갈 때쯤, 불릿이 전쟁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게슐린 그랩 자작도 전쟁준비에 한창인 상황이었다.

그것은 첩자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비단 그것만이 아닌, 바포 변경백 전역에 감도는 전쟁의 기운, 전운으로 인해 백성들이 불안에 떠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준비를 해나가던 그들은 3월의 꽃샘추위가 강하게 부는 어느 날, 전쟁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휘이잉-

“춥군.”

아직 바깥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차가운 바람이 들이닥쳤다.

이제 곧 봄이 오는 계절임에도 날씨는 한겨울의 한파 못지않았고, 마치 삭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살이 에일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엔 병사들이 얼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불릿은 막대한 군비를 들여 그들을 위한 방한용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깝긴 하군, 모자라긴 해도 중급의 마정석이었는데.”

불릿이 보유한 중급의 마정석은 결국 사용되지 않고 베니스 남작의 데 리치 상단을 통해 판매가 이루어졌다.

흑마법사와의 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가 부족해진 상황인지라 품질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중급 마정석인지라 사겠다는 인물이 한둘이 아니어서 많은 금액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물건에까지 손댈 수는 없지.’

올리비아가 갖고 있는 마정석은 오로지 그녀의 것이다. 그동안 용병일을 하며 벌어들였던 돈을 불릿이 멋대로 사용했음에도 아무 말도 안 해주었으니 그녀가 지금 누리는 특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불릿이었다.

‘…사랑인가?’

불릿은 자신의 생소한 감정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인지, 사랑인 것인지 혼동하고 있었다.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던 영지순회는 결국 중간에 중단되었기에 제대로 감정을 확인할 틈이 없었다.

저번 겨울밤 올리비아와의 두 번째 입맞춤과 고백이 한쪽으로 무게추를 기울게 했으나, 어째서인지 자꾸 흙덩이가 떠올라 머뭇거리게 된다.

“쯧, 한심하게.”

“대영주님,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우우스 수행원의 말에 불릿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섰다.

“영주님이시다!”

“올리비아님도 계셔!”

“작은 아가씨(?)도 계신다!”

“와아아아!!”

이 추운 날씨에도 든든하게 껴입은 방한장비 탓인지 수천 명의 병력은 그 열기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불릿이 등장함과 동시에 열화와 같은 성화를 보내주었다.

넓은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에 선 불릿이 손을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 관중과 군단.

불릿의 좌우로는 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갑옷을 입은 올리비아와 그냥 예쁜 원피스를 입은 흙덩이가 서있었다.

둘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걸 처음 본 탓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정령인 흙덩이도 그렇고, 이미 토벌대를 통해 대규모 관중을 겪어본 올리비아도 그렇고 왜 이리 긴장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우리는 반역자 게슐린 그랩 자작을 처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고요한 광장. 수근 대는 이는 있어도 떠드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불릿이 복권한 뒤로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기에 카리스마가 드러난 것이다.

“본인이 대륙을 위협하는 흑마법사들과 전쟁을 하러간 사이, 비어있는 자리를 노린 그랩 자작은 직스 자작령을 폐허로 만들었고, 그곳의 주민들은 굶어가고 있었다.”

배고픔, 그것보다 평민들에게 뼈저리게 고통스런 단어는 없을 것이다.

“반역자들이 일어나 바포 변경백의 곳곳은 혼란이 극에 달했고, 서로 이익을 추구하고자 같은 가신끼리 적대시했다. 그로 인해 고통 받은 것은 누구인가? 반역자들? 본인을 따르는 가신들?”

여기서 불릿은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

“아니다, 고통 받는 것은 우리, 바로 백성 여러분이란 말이다!!”

“와아아!”

“만세! 만세!”

“그리고!”

환호도 잠시, 이어지는 불릿의 말에 인파는 다시금 조용해졌다.

“더 이상 본인의 영토에서 신분을 가지고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 있는 이우우스 2급 행정관은 지체 높은 가문 출신임에도 여러분을 위해 하루 4시간만 자며 부족한 관리들을 대신해 일하고 있다.”

“대영주님…? 그것을 어이하여….”

자신이 하루 4시간만 자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놀란 음성을 보이는 이우우스였으나 불릿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아래, 단상에 올라서 있는 군단장은 뎁슨 레너드 남작이라는 남쪽 영지의 영주이다. 항시 구울 백작을 경계하며 우리 바포 변경백을 지켜주면서도 군단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받아들여 자신을 경험을 토대로 휘하 병력들에게 교육시켜주고 있지.”

불릿의 말에 아래의 단상에 위치해 있던 뎁슨 레너드 남작이 심장에 주먹을 가져가며 충성을 맹세하자 불릿도 군인으로서,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예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본인의 옆에, 이 아리따운 여기사는…, 크흠. 알 만한 자들은 알 테지만 뭐, 그런 거다.”

“와하하하!!”

“대영주님, 이제 장가 가시는 건가요?!”

“우리 영지도 이제 후계자가 생긴다아!”

“와아아아!!”

“조용, 조용! 올리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지잖느냐!”

너무 무거운 분위기도 안 좋기에 잠시 분위기를 상쇄하려고 했더니 영지민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인지, 말이 끊이질 않아 불릿이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말에도 영지민들은 물론 병사들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유는 곁에 선 올리비아의 얼굴이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흙덩이가 불만을 드러낸 것을 목격한 이들은 올리비아 대신 흙덩이를 보고 있던 고상한 취향의 분들.(?)

“크흠, 뭐어…, 본인이 백작이고, 대영주라 하여 백성들에게까지 예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이는 예전에도 그랬고, 다들 보면서 알겠지만 본인의 몸이 젊어졌기에 나이대에 맞게 살아볼 방침이다. 크흠흠!”

다시 빠져드는 웃음바다에 불릿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이 홍당무가 된 처자의 반대편을 보면, 겉으로 보기엔 미소녀처럼 보이지만 실은 본인의 새로운 정령인 땅의 정령, 흙덩이를 볼 수 있도다.”

- 불릿, 추워?

살짝 코끝이 빨개진 불릿을 발견한 흙덩이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자 대중의 반응은 화끈했다.

“우와아아아!!”

“물의 정령 필요 없다! 흙덩이! 흙덩이!”

“정령이여, 영원 하라!”

“로리! 로리!”

“…저 새끼 잡아들여.”

“옛!”

“어, 어? 이거 안 놔?!”

무언가를 외치던 관중중 하나가 기사의 지시에 의해 끌려가는 것 같았지만,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선 별로 상관없는 듯했다.

“본인은 이렇게 즐겁고 화목한 영토를 꾸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괘씸한 반역도, 게슐린 그랩 자작에 의해 소중한 보금자리가 파괴되다니, 용서할 수가 없도다!”

“와아아아!”

“첩보에 의하면 게슐린 그랩 자작은 우리를 습격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백성들이여! 자네들은 또 다시 그 간악한 반역무리에게 우리의 즐겁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빼앗길 것인가?!”

“아닙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5천에 이르는 병력은 물론, 주변 각지에서 조금씩 차출된 지원병들과 구경하는 관중들이 한 마음이 되어 외치자 불릿이 마무리를 했다.

“전군, 출정!!”

============================ 작품 후기 ============================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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