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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01화 (101/241)

00101  사랑과 전쟁!  =========================================================================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회장, 근 두 달 만에 다시 열린 회장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원탁에 모인 가신들도 어째서 이러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잡담을 나누는 이 하나 없었고, 불릿이 입실할 때까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대영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2급 행정관 이우우스의 말이 적막을 가르고 좌중의 사이로 파고들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신들은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스르륵-.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신들, 그들이 그러는 사이 불릿도 말없이 자신의 자리, 원탁에서도 눈에 띄는 상석에 앉았다.

스르르륵-.

불릿이 착석하자 그들도 자리에 앉게 되며 비로소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난 두 달간 모두 열심히 해주어서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망해가던 영지를 갖은 노력 하에 겨우 일정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흔들림을 잡았으니 이젠 내실을 다질 차례, 그러나 그것을 방해하는 무리가 생겼다.

“가장 시급했던 군비에 관련해선 군단에서 일부 중대를 차출하여 교체체제를 이용, 마수의 숲에서 훈련을 겸한 사냥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군대는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런 만큼 중앙영지에서 자금부족에 시달리던 이유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던 곳이 바로 군이었는데, 그런 군대가 자체적으로 돈을 충당하면서도 새롭게 거듭난 군단의 훈련을 겸할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선 안전상의 이유라던가 그랩 자작의 위험내포가 화제로 떠올랐으나 당장 군대가 와해될 수도 있는 마당이었기에 불릿은 일부 가신들에게만 알린 후 강행하여 성과를 내고서야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귀환한지 얼마 안 된 대영주가 독단적인 행동을 했기에 불만이 있기야 했으나 바로 이전에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음을 상기하면 불편한 얘기를 꺼낼 간이 튀어나온 이는 몇 없었다.

“기사와 군을 통합해 군단을 창설하는 과정에서 치안유지를 위해 힘쓴 자네들의 노력, 본인도 알고 있네. 모두 잘해주어 고맙군.”

언제나 엄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당근이라는 명목의 칭찬도 해주어야 반발심이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가증스런 반역자 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세금도 제때 납부하기 시작했더군. 더 이상 반역자가 없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이.”

“…크흠.”

“흠흠.”

불릿의 말에 세금을 미루다가 영지순회를 통해 납부하기 시작했던 일부 가신들이 불편한 기침을 뱉었다.

저런 인물들이 있기에 불릿이 영지순회를 안 할 수가 없던 것이다.

좋게 대해주면 꼭 기어오르려는 본능, 그것이 인간 아닐까?

“그러나 군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하여 나머지 부분에서 부족한 자금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지. 그에 대한 문제는 베니스 남작, 자네가 알려주도록.”

“옛, 각하.”

드륵-

그의 부름에 베니스 남작은 대꾸를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대영주님의 발안에 의해 새로운 자금을 마련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특산물이라는, 어찌 보면 상행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었지요.”

상행의 기본은 지역특산물을 다른 지역으로 판매하며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나는 물건을 싸게 구매해 다른 지역에 비싸게 판다, 세세한 점을 제외하면 이것만큼 이해하기 쉬우며 간단한 상행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저희 변경백의 경우, 그동안 딱히 내세울 만한 특산물이 없었습니다. 이전에 백작각하께서 물의 정령을 다루실 적엔 풍부한 물의 수급으로 농사를 망친 적은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둘 만한 농작물을 기를 수 없었지요.”

바포 변경백은 기본적으로 척박한 땅이다. 수많은 전투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바로 옆에 불모의 황무지라는 땅이 있어 황사도 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물의 정령사인 불릿의 힘으로 가뭄이 든 적은 없었으나, 그것이 토질을 비옥하게 하거나 특정조건을 필요로 하는 농작물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한 가신이 손을 들자 불릿을 대신해 이우우스 행정관이 그를 가리키며 발언권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에, 베니스 영주.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을 겸하는 것은 좋으나 그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우리끼리 하는 것으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소?”

발언권을 획득한 사람은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헤니발 브라투질라 3급 고문관이었다.

그는 성격이 급하면서도 때때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생각하는 시간과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그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군요. 각하도 계신데 제가 너무 시간을 끌은 것 같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베니스 남작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헤니발은 손수건으로 살짝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착석했다.

헤니발이 앉고 나자 베니스 남작은 좌중을 둘러본 후 말을 이어갔다.

“주변 영지 중에서도 물류의 흐름이 가장 활발한 본 영주의 영지에서 특산물로 향신료를 재배키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로는 각하께서 대지의 축복을 걸어주시면 질도 뛰어나며 생장속도도 빠르고, 그로 인해 다른 곳에서 굳이 재배할 필요가 없어 유통비용도 절약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다른 지역의 패자들과 맞닿았기 때문이라는 지리적 이점, 베니스 남작이 상인으로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는 점, 재무대신이라는 점 등을 들먹이며 어떤 연유로 불릿이 자신에게 일을 맡긴 것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나열하였다.

여기서 발생하는 막대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기에 본인의 영지가 아니란 점에서 아쉬워하거나 분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어쩌겠는가?

경험도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불릿이 시켜서 하겠다는데.

지금 상황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입을 나불거린다면 반역자라며 숙청당할지도 몰랐다.

베니스 남작이 발표한 후에도 모두가 조용하자 베니스 남작은 불릿에게 인사를 올린 뒤 그의 허락을 맡고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아마 여름쯤 되면 본격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급속적인 생장은 식물에게 부담도 되고, 무엇보다 맛이 없어진다.

대지의 축복이라면 그런 부작용을 덜 수 있으나 맛에 대한 문제는 불릿도 어찌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상인들에게 유통경로를 베니스 남작령으로 옮기게 하려면 대대적인 홍보도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한 기간을 고려하면 여름이라는 계절까지는 상당히 짧을 지도 몰랐다.

“여름까지는 거의 반년의 시간이 남았지. 그래, 반년. 헌데 간악한 게슐린 그랩 자작은 그조차 기다리기 싫은 모양이더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버린 불릿의 어조에선 한기가 스며든 듯, 원탁을 둘러싼 가신들의 몸이 떨릴 만큼 차가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베니스 남작이 말하진 않았지만, 그의 상단인 데 리치가 습격 받았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자네들도 잘 아리라 생각한다.”

상단이 습격 받았다. 산적이나 도적들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베니스 남작의 데 리치 상단은 부유한 만큼 강하기도 하거니와 그를 건드릴 만큼 간이 큰 도적들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바포 변경백은 예로부터 루드밀라 왕국을 란푸스 왕국으로부터 지켜내던 정예병들이 득실거렸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군단이라는 새로운 체계에도 금세 적응하며 원정까지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채비를 끝마쳤던 것이다.

“본인이 직접 그 현장을 찾아가 확인했지. 자네들도 알다시피 본인의 속성력이 물에서 땅으로 바뀌었기에 땅의 정령인 흙덩이를 통해 대지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낸 정보들을 가신들에게 알려주는 불릿.

일반적인 도적이 아닌 점, 데 리치 상단만을 노린 점, 군진(軍陣)을 펼친 점, 무엇보다 확정적인 점.

“그 쥐새끼 같은, 게슐린의 문양을 발견했단 말이다!”

쾅!

불릿이 격노하며 원탁을 내려치자 단단한 목제로 이루어졌음에도 금이 쩍 가버렸다.

뚝, 뚜둑.

미약하긴 하지만 정령력도 신체를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단단한 물체와 격돌하면 상처를 입는데, 그의 주먹에서 흐르는 피를 수행원이 급히 손수건을 꺼내 감싸주었다.

응급처치가 끝나자 불릿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씹어뱉듯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전쟁이다.”

불릿의 발언에 싸늘하게 식었던 회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각하,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부디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계절에 전쟁을 벌였다간 백성들이 고통받습니다!”

회장에서 오직 불릿의 말을 대변하기에 중립을 지키는 수행원을 제외하면 가신들 모두가 입에 침을 튀기며 회장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토록 침착하던 베니스 남작이 놀란 눈으로 갈피를 못 잡을 정도였으니, 불릿의 발언이 얼마나 큰 파급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만했다.

“네놈들은 반역자인가!!”

“…….”

“으음….”

불릿이 목청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자 찬물을 끼얹은 듯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회장.

그리고 이어지는 불릿의 호통.

“영토가, 우리의 보금자리가 이등분이 되었다! 경제는 무너지고, 기사단은 유명무실해졌다! 직스 자작령에서 본인은 그가 어떤 개수작을 부렸는지도 확인했지!”

그러면서 불릿이 꺼낸 것은 마(魔)의 꽃방울이었다.

“이것은 마의 꽃방울! 게슐린 그랩 자작에 직스 자작에게 거금을 받아내 팔아넘긴 아티펙트다!”

어느새 일어서서 외치는 불릿의 말에 가신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마의 꽃방울? 저것을 어떻게…?”

“직스 자작에게 그럴 자금이 있었나?”

모두가 의문을 가지는 가운데, 불릿의 연설은 이어지고 있었다.

“자, 자네들도 보이겠지? 기이한 기운을 흘리는 이 마의 꽃방울이!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으나 직스 자작이 제정신이라면 영지가 그 꼴이 되가는데도 이것을 구매할 생각도, 소지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가 이것을 직스 자작에게 넘긴 해가 10년 전이었으니 그의 계략은 오래 전부터 계획됐다는 뜻이지!”

그러면서 상자를 닫아 마기의 노출을 막는 불릿.

“직스 자작령의 파멸은 그대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한 영지를 집어삼키려는 이러한 계략, 같은 식구인 베니스 남작을 덮치는 더러운 살인행위! 아직까지도 본인에게 소식조차 전해오지 않는 간악한 행동! 그가 진정 본인의 수하가 맞기는 한 것이더냐!!”

회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불릿의 말에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는 가신이 아니옵니다!”

“반역자에게 형벌을!”

모두가 벌벌 떨며 외치는 순간, 불릿이 나지막이 읊조리기 시작했다.

“전쟁이다. 놈이 시작한 일, 과인의 부덕이라면 그것을 끝내줘야겠지. 지키고 싶으면 싸워라! 놈이 너희들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줄 것 같은가? 그래서 그토록 부유하던 직스 자작령이 폐허가 됐던 것인가? 싸우라! 그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일지니!”

“불릿 폰 백작각하, 만세!”

“백작각하 만만세!”

“바포 변경백이여, 영원하라!”

“정령의 가호가 있기를!”

* * *

그 후 불릿은 한층 열기가 과열된 회장을 진정시키고 가신들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토론했다.

기사는 군을 지휘하고, 행정관은 물류의 수송과 주변 여론을 조성한다.

집사인 밴에게서 정보까지 입수한다면 모든 전쟁준비는 완료되는 것이다.

새롭게 정비된 군단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모두가 불안해하면서도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폭력이란 본인이 당하면 두려우나 휘두를 땐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그렇게 날이 저물도록 조율과 조정을 통해 전쟁방법을 합의한 불릿이 회장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듯,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던 올리비아가 눈에 보였다.

“올리비아? 여긴 어인 일로….”

“엇, 드디어 끝났, 꺅! 손에서 피나잖아!”

“헉, 대, 대영주님! 이를 어째?!”

아직도 아물지 않은 손에선 피가 조금씩 새어나왔고, 빨갛게 물든 손수건에서 핏방울이 떨어지자 올리비아가 호들갑을 떨며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런 올리비아를 바라보던 불릿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이우우스 수행원, 나머지는 자네가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조용히 뒤에 나열해있던 이우우스 2급 행정관이 회장으로 다시 들어가자 불릿은 올리비아에게 말을 건넸다.

“올리비아, 오늘 밤 본인의 침소에 들르시오. 할 말이 있소.”

“뭐, 뭣?!”

갑작스런 폭탄발언에 올리비아는 불릿의 손에서 피가 난다는 것도 잊고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상태가 되었는데, 안절부절 못하던 루나도 ‘꺅, 꺅!’ 이러면서 좋아라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연재 한 달이 지나서 간신히 신규 베스트 20위순에 들었습니다.

왔다갔다, 정신이 없고 금방 내려갈 수도 있지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군요!

일단 100화 기념으로 1편 올리고, 12시 10분에 예정대로 올라올 것입니다.

선작도 500을 넘겼기에 그것은 다음날 아침 7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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