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4 오크 =========================================================================
“꾸엑!!”
“질긴 목숨, 본인이 손수 끊어주마!”
살이 찢겨지는 고통에 오크가 몸부림을 치며 몽둥이로 내려치자 불릿 또한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단검을 놓고 물러서자 오크가 피를 흘리며 거친 호흡을 토해낸다.
“취익, 스으읍, 취익! 죽인다, 죽인다!”
“이런, 광폭화인 것인가?”
일부 몬스터는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몸 안의 마기를 터뜨려 기세를 끌어올린다.
고통을 못 느끼고, 오직 살의만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데 이와 같은 증상을 광폭화라 부른다.
광폭화가 걸리면 잡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기에 되도록 단번에 죽이려고 애쓴다.
“난감하군, 무기도 없거늘….”
방금 전의 공격으로 그의 단검은 오크의 배에 꽂혀있었다. 오크는 고통도 못 느끼는지 그걸 덜렁 매달고서 달려든다.
쿵, 쿵!
“취아악!”
“으헉, 씨부럴!”
부우웅-, 쾅!
광폭화는 몸의 리미트를 풀어버리기에 평소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담은 고스란히 축적되니, 시간을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붕!
부웅!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 젠장!”
그러나 한층 빨라진 오크의 공격을 제대로 검을 다뤄본 적도 없는 불릿이 피하기엔 역부족.
결국 한 대를 쳐맞고 나뒹군다.
“끄악!”
“취익! 맞았다! 죽는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불릿의 눈은 오크를 향했다. 다년간의 전투를 통해 단련된 몸, 위기 속에서도 활로를 찾는 것은 여전했다.
불릿은 재빨리 바닥을 기어 공격을 피했다. 그 후 오크의 몸에 꽂힌 단검을 잡고 매달렸다.
찌지직-
“취익! 취익취익! 크아악!!”
대롱대롱 체중을 싣고 매달리니 배에 꽂힌 단검은 천천히 아래로 향하였다.
“제길, 이제 죽을 때가 되지 않느냐! 모진 목숨, 그만 끝내거라!”
“취이익! 나 죽어, 취익! 나 죽어! 취이익!”
그러면서 연신 불릿을 떼내려고 밀었으나 이미 힘은 빠질 대로 빠진 상황.
더 이상 오크가 힘의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촤아악!
“크취익!!”
“으헉.”
그곳에 매달려 있던 불릿은 단검이 오크의 성기까지 베고 내려가자 땅에 떨어지며 자빠졌다.
오크의 상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고.
“으으…, 맛이 좀 어떠냐?”
헤이스트 마법의 부작용에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피범벅인 단검을 들고 비웃는다.
이젠 불릿이 악당같이 보이는 상황.
“취익, 취이익….”
하체까지 베어나간 단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오크는 극심한 출혈에 정신이 혼미했다.
“취…, 내가 고…자라니….”
쿵-
결국 과다출혈에 의해 뒤로 넘어가는 떠돌이오크.
그제야 불릿은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헉, 허억. 이래서 말 안 듣는 놈들은 거세를 해야 한단 말이야. 개나 고양이처럼 말이지.”
같은 남성을 가진 이들에게 오싹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 한낱 미물 주제에 본인을 농락하는군….”
한낱 미물이란 것이 오크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
“급격히 피로해지는군.”
생사를 다투는 싸움, 그것도 이런 개싸움은 생전 처음이었다.
비록 그가 결사대의 용사라지만, 백작위에 정령사지 않은가?
육체노동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으으…, 잠들면 안 되는데…….”
극심한 피로에 그의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이윽고 숨소리가 일정하게 변하자 주위는 오크의 시체와 코를 골며 잠든 불릿만이 남게 되었다.
* * *
챙-! 챙-!
사위를 울리는 금속음. 격렬한 타격과 불똥이 튀는 반격은 살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 우워어…
“젠장, 젠장!”
얼핏 보면 기사와 기사의 싸움으로 보였으나 거무튀튀한 갑옷을 입은 이의 얼굴이 남달랐다.
“빈딕스! 이런 제기랄!”
- 워우어-!
썩어가는 피부, 눈을 대신한 붉은 안광. 거기에 인간이 보일 수 없는 기괴한 각도의 공격.
인간기사는 데스나이트와 싸우고 있었다.
“왜, 왜왜왜!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 그어어……
“랄프! 조심해, 그건 더 이상 빈딕스가 아니야!”
“닥쳐, 개새끼들아! 으아아!!”
그를 생각한 동료가 경고의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랄프라 불린 기사는 이를 듣지 않고 데스나이트와 어울렸다.
채채챙, 차앙!
“흑마법사 씨발놈들! 모조리 갈아 마셔 주겠어!”
- 그으으…
“비, 빈딕스? 날 알아보겠어?!
“랄프! 늦었다니까!”
“좀 닥치라고, 너부터 모가지를 따주리?!”
이미 죽은 자에게 집착하는 그의 모습에서 광기가 엿보였다. 동료는 차마 그를 말리지 못하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어떡해? 랄프 저러다 큰일 나겠어.”
“제길, 우리라고 마음이 안 아픈 줄 아나?”
원정을 떠났던 결사대. 보급품이 떨어지고 동료들이 하나둘 낙오되는 과정에서 랄프의 절친이 죽었다.
흑마법사는 죽기 직전 빈딕스라는 인물로 데스나이트를 소환했다. 랄프는 그가 되살아난 줄 알고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저기저기, 대장. 랄프 어떡해? 저러다 진짜 큰일 나겠어.”
땅의 중급 정령을 다루는 그녀의 이름은 나타 레인. 랄프를 은연중 사모하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잉켈스가 침중한 눈으로 랄프를 바라보며,
“…… 랄프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 몇 시간정도면 답이 나오겠지.”
“대장, 제발 대장이 나서줘. 빈딕스는 이미 죽었잖아? 응?”
나타의 거듭된 부탁에도 잉켈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에게 답답함을 느낀 나타는 6영웅 모두를 돌아가며 물었으나 그들은 잉켈스의 선택을 존중했다.
“다들 뭐야! 랄프가 다쳐도 좋다는 거야?!”
차마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는지 다친다는 말로 돌려 말하는 나타.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외면하자 감정이 복받친 그녀의 눈에 방울이 졌다.
투둑, 뚝.
“정말 너무해. 아닐 땐 아니라고 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게 동료 아니야?”
“나타, 말이 심하다. 우린 랄프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것인….”
“그러다 다치면?! 빈딕스랑 똑같이 되면 어떡하냐구!”
“그…….”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나타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는데, 그때 뒤에서 관망하던 이가 나섰다.
덥썩.
“지금 랄프를 억지로 말려봤자 반발심만 생길 뿐이네.”
“… 불릿 백작님.”
불릿이 다가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달래기 시작했다.
으레 이러한 분란은 무리의 대장인 잉켈스가 아닌 불릿이 나서서 해결했으니….
“저것 좀 보게. 저 광기를 대체 뭘로 말려 세울 것인가? 자넨 랄프가 동료에게 칼을 휘두르면 좋겠는가?”
“랄프는 그런 이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랄프 스스로 매듭을 짓게 내버려두게. 그것 외엔 랄프를 버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흐흐흑….”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나타.
뒤에서 조용히 나타난 잉켈스가 잘했다는 듯 불릿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나 나타를 달래준 것과는 별개로 불릿 또한 불만이 있는 듯, 표정이 사나웠다.
그때,
- 그아아아!
“헉, 망자의 폭발이다!”
“피해, 랄프!”
데스나이트가 영혼을 폭발시켜 자폭하려했으나 랄프는 차마 물러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빈딕스에 대한 집착이 그의 발을 사로잡은 것.
이윽고 그것은 최악의 파국을 낳게 되었다.
퍼어엉!!
“안돼에에에에!!!”
나타가 목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절규한다.
“헉!”
두 눈을 번쩍 뜬 불릿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허억! 허억! … 젠장!”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매우 초췌해 보였다.
문득 주위를 살피니 날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상태.
피냄새를 맡고 무언가가 몰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대로 잠들었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불릿은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후우우…. 꿈이란 것이 자기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 그때 그 장면을….”
그의 곁에 단 한 명의 동료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거의 기억은 끔찍했다.
차마 추억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그런 기억.
“후우, 후우…, 음?”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히던 불릿은 희미하게 빛이 뿜어지는 물체를 향해 다가갔다.
“…… 이건….”
오크의 사체, 그것에서도 반쯤 열려있는 눈알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온다.
주위는 달빛도 스며들지 못해 어두컴컴한 상황.
불릿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검으로 오크의 두개골을 쪼개보았다.
주물럭주물럭-
“크으.”
뇌를 주무르는 혐오스런 감각. 그 와중에 그의 손에 딱딱한 물체 하나가 잡혔다.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쥐고서 끌어올렸는데, 어두운 가운데서도 빛을 발하는 물체.
피로 범벅이 되어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이내 불릿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었다.
“어찌하여 한낱 떠돌이오크한테 이런 것이…….”
자신의 손으로 채취하고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영롱히 빛나는 그것을 만지작거린다.
은은히 빛을 발하는 그것은 돌이라기엔 특별했고, 보석이라기엔 약간 격이 떨어졌다.
돌과 보석의 중간단계에 놓여있는 듯한 모양의 그것.
불릿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불렀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마정석인 것 같군.
가장 등급이 낮은 최하급의 물품, 마정석이었다.
“오오…,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그러면서 골이 빠개진 오크를 기특하다는 듯 두드린다. 불릿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마정석을 둘러보았다.
“이제 보니 이놈이 아주 보물덩이였구나! 처음으로 도움이 되는군!”
마정석.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부산물. 그 효능은 기사, 마법사, 정령사를 가리지 않고 경지를 올리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오죽하면 10년의 노력이 마정석 하나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올까?
물론, 이것이 그 정도의 효과를 지니진 않았다. 그래봤자 오크에게서 나오는 최하급의 품질이었으니까.
“흐흠. 나도 참 주책이로군. 이, 일단 자리부터 옮겨야겠다.”
그의 몸은 딱딱하게 굳은 피가 덩어리져 있었고, 언제 또 다른 몬스터가 몰려올지 몰랐다.
무슨 이유에선지 정령을 소환할 수 없는 지금, 그는 피냄새를 없애기 위해 풀을 짓이겨 몸에 발랐다.
“크으, 되도록 고약하거나 쓴 냄새가 좋겠지?”
인간의 체취를 지우기에는 풀즙이 제격이었다. 숲에 가장 흔하면서 바르기도 쉬운 것.
불릿은 이동하면서도 몸에 즙을 바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악, 하악.”
한밤중의 숲속을 헤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근처에서 오크를 만나는 지역에서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
“엘레노아 소환!”
이동하면서 간간히 정령을 불러냈으나 응답은 없었다.
“운디네 소환!”
“물의 정령 소환!”
“정령이여, 왜 안 나오는 것인가!”
“한번만 도와주시게….”
“이놈들! 본인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더냐!”
날이 밝을 때까지 걸으며 소환을 시도했으나 단 요만큼도 정령력이 움직이는 낌새가 없었다.
“빌어먹을…, 아예 사라진 것인가.”
보통 정령사가 정령을 불러내지 못하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째, 정령력을 모두 소진했을 때.
둘째, 죽음에 직면했을 때.
셋째, 정령이 소환을 거부했을 때.
그러나 정령은 웬만하면 세상에 나오고 싶어 했기에 셋째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연히 첫째, 둘째가 남는데….
딱히 죽음의 위기도 아니니 정령력이 소진되었다는 뜻이다.
“근데 왜 차오르질 않느냐, 이 말이다.”
소모한 만큼 다시 차오른다. 시간에 차이는 있어도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사항이다.
한번 쓰고 소환하지 못한다면 누가 정령술을 익히겠는가? 차라리 마법사로 전직하고 말지.
“이유가 뭐지? 마지막 전투에서 폐인이 된 것인가? 근데 신체는 더없이 건강하거늘….”
건강뿐이겠는가? 아예 시간을 역행해 젊어져버린 육체를 폐인이라 부를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현재 상태는 그다지 좋진 않았다. 밤을 새우며 숲을 걸었으니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친 상황.
짹, 짹짹-
“허허, 새소리를 듣고 군침이 돌다니, 어이가 없군.”
꼬르륵-.
때마침 들려오는 배꼽시계. 벌써 몇 끼를 굶었는지 모른다.
그는 예의 그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게 밀봉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내가 이걸 먹게 될 줄이야…….”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고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정체를 드러낸 그것은…….
============================ 작품 후기 ============================
내일은 낮 12시, 3시, 6시, 9시, 밤 12시 5연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