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오크 =========================================================================
군주란 말의 진실여부를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판단해야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영지민을 죽음으로, 또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기에.
한마디로 눈치백단이란 소리였기에 아틱 커맨더는 한숨을 쉬었다.
“노총각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허허허, 본인은 사정이 있어 이렇게 됐지만, 자네는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 내가 알아서 한다.”
“그 전에 자네가 먼저 늙어죽을 걸세. 엘프의 수명을 대체 몇 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잠시 침묵. 요란법석한 가운데 그들만이 차분한 대화를 나누었다.
백작은 침묵하는 아틱 커맨더의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겠는가?”
“… 들어는 보지.”
감정표현을 거의 안 하는 아틱 커맨더가 관심을 보이자 백작이 꺼낸 말.
“일단 고백이나 먼저 해보게.”
“…… 괜히 들었군.”
그러면서 슬며시 어깨에서 팔을 치우는 아틱 커맨더.
“엘프는 인간들의 연애관을 잘 모르네.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자네를 인식한다, 이 말이지.”
“그러다 거절당하면?”
“자넨 나무꾼이 나무를 한번만 찍는 줄 아는가? 넘어갈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네.”
“… 가벼운 여자라 생각한다고 보지 않을까?”
그의 고민에 백작의 충고 한마디.
“본인이 장담하건대 종족의 벽을 허물려면 소심한 방법으론 안 될 것이네.”
“노력은 해보도록 하지.”
“전쟁이 끝나면 아이와 함께 본인의 영지로 초대하고 싶군.”
“하나는 순정파고, 하나는 목석과 같았으니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루어졌을지는 모르는 일.”
아려한 얼굴로 과거를 추억하던 백작, 불릿 폰 바포는 천천히 뒤를 돌며 물음을 건넸다.
“그렇지 않은가, 몬스터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몬스터를 논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몬스터 1순위, 오크가 등장했다.
* * *
“취이, 취이!”
“흐음. 주위에 다른 오크는 안 보이는군. 떠돌이 오크인가?”
오크는 군집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몬스터의 표본. 딸랑 혼자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보니 무리에서 쫓겨난 놈인 것 같았다.
“취이익!”
“그렇다곤 해도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마물, 살려둬선 안 되겠지.”
다짜고짜 죽일 생각부터 하는 불릿. 거듭된 전쟁으로 그의 성격이 조금 과격해진 것 같았다.
오크도 말을 조금은 할 줄 알았기에 매우 분노했다.
“취이익! 너, 죽인다!”
“그래, 결국 몬스터란 말이지. 엘레노아, 소환!”
불릿은 팔짱을 낀 거만한 자세로 소리쳤다.
그가 갑자기 소리치자 오크는 경계의 기색을 띠면서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 엘레노아, 소환!”
“취익, 취익…?”
“소환! 엘레노아 소환! 물의 정령이여, 나올 지어다!”
그의 성격상 정령에게 아부 같은 것을 하지 못했다. 정령도 스스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기에 살갑게 대하면 좋아하는데, 불릿은 동료가 아니면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사용자가 위험한 상황인데 불응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스으으. 인간, 미쳤냐?”
“한낱 마물이 무얼 알까? 잠시 기다려 보거라.”
아직도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불릿을 오크가 점점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살금살금 좁혀오는 거리.
애써 평정을 유지해 표정만큼은 여유만만 그 자체. 그러나 오크의 후각은 인간에 비해 뛰어났다.
“킁킁, 취익. 인간, 쫄았다. 땀 갑자기 많이 흐른다. 취익!”
“큭. 잠시,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싫다, 취익!”
“엘레노아! 엘레노아!! 운디네여! 소환에 응할지어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중급 정령사인 그가 하급 정령인 운디네를 부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위는 오크의 숨소리만 가득했고 정령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물의 정령이여! 소환에 응답하라!”
“취이익!”
“으헉!”
붕-!
옆으로 잽싸게 구르자 파공성을 흘리며 몽둥이가 스쳐지나갔다.
“으득, 엘레노아! 지금은 장난 칠 때가 아니네!”
“죽어랏, 취익!”
부웅부웅!
“기다리라했지 않느냐, 이 천한 것!”
“취익! 넌 바보다! 기다리겠냐, 췩!”
“이래서 너희 종족이 미개하다는 것이다! 쯧쯧!”
별로 위협도 되지 않는 가녀린 인간이 계속해서 도발을 해왔다. 흥분한 상태인 오크는 말 자체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그의 말투가 문제였다.
종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어투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오크를 도발하여 한층 더 깊은 위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허, 무례하다!”
“취이익!”
부우웅-! 부우웅-
한 대라도 맞으면 머리가 으깨질 듯한 파공성. 불릿은 그런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온갖 단어를 마구 발산했다.
“엘레노아! 운디네, 나오거라! 윽! 이 못난 것들! 나중에 돌아가면 계약은 파기다!”
“취익! 인간, 죽어라!”
“하아, 이런 제길.”
정령과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호통을 치며 분노를 발산하는 불릿. 마지막 결전에서도 이렇듯 격노하진 않았다.
그래도 용케 오크의 공격을 피해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취익, 스으읍. 취익….”
“허억, 헉.”
“인간, 왜 안 맞냐, 취익?”
거듭된 공격에 오크도 지쳤는지 흐르는 침을 삼키며 물었고, 불릿도 가파진 호흡을 고르며 대꾸했다.
“네놈이 못났기에 그러한 것을 어찌 내게 묻느냐? 이래서 눈치가 없는 것들은. 쯧쯧.”
“취익…, 뭔 말이냐?”
“내가 말을 말아야지…….”
대화도 안 통하는 오크를 상대로 욕을 해봤자 소용없다. 지금은 대화보단 상황타개를 해야 하는 상황.
정신없는 와중에도 불릿은 생각을 이어갔다.
“어허, 이런 고약한 것들. 본인이 이런 굴욕을 당하는데도 나오질 않아?”
그토록 애타게 불렀던 정령들이 끝끝내 나오질 않자 아예 대놓고 욕을 하는 불릿.
그러면서 오크의 공격에 반응하고 피해지는 몸이 신기했다.
이전엔 경험이 있어 경로를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못했는데, 지금은 몸이 먼저 움직였다.
부웅!
“어이쿠.”
슬쩍 허리를 숙여 몽둥이를 피하면서 그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됐다.
공격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령술이 막히면서 죽일 방법이 없었다.
육체파가 아니었던 불릿은 공격을 피해가며 상념에 빠지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으윽, 앗!”
“기회, 취이익!”
“잠, 잠시! 으헉.”
푸확!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하자 튀어 오르는 흙더미. 무리에서 쫓겨난 놈이라 하더라도 그 힘이 장난 아니었다.
데굴데굴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하던 불릿은 가슴을 짓누르는 물체를 느끼고 그것을 꺼냈다.
스릉-
“후우, 본인이 어지간히도 당황했었구나. 이걸 잊고 있었으니.”
육체파가 아니기에 까맣게 잊고 있던 단검. 현 상황을 타개하기에 딱 알맞은 물품이었다.
그가 단검을 뽑아들자 잠시 주춤하는 떠돌이오크.
“취, 취익…. 인간, 속였다. 나쁜!”
“웃기는 족속이로군. 본인을 습격한 것은 네놈이 아니더냐?”
“췩. 먹는 거, 원래 그런. 취익!”
“알지, 참으로 잘 알고말고. 내 네놈의 못된 성미를 이걸로 고쳐줄 것이야.”
그가 단검을 던졌다 받으며 여유만만하게 웃자 오크가 한발 뒤로 물러섰다.
스각.
“웃, 이런!”
그러다 실수를 했는지 잘못 받아든 단검에 손을 베이는 불릿.
그가 무기를 다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알아챘는지 오크가 다시 한발 앞으로 내딛는다.
“취익…, 인간, 혹시 바보?”
“어허! 이런 천하의 둘도 없을 고얀 놈을 보았나!”
오크에게 바보소리를 듣자 열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불릿.
그러나 상대는 오크였다.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오크의 근력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를 수련한 육체파라면 모를까.
“무리에서도 버림받은 잡것이 말이 많구나.”
“뭐! 취익! 취이익!”
오크에게 심리전이 잘 통하진 않지만 간단한 도발이라면 어느 정도 먹혔다.
특히 떠돌이오크의 특징을 꼬집는 것이라면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었다.
“너, 너도. 취익! 혼자잖아! 스으읍.”
저 떠돌이오크는 불릿 또한 무리에서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크 또한 명예가 존재했고, 그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우월함을 과시한다.
인간 또한 혼자서 숲속을 헤매는 경우를 저 오크는 보질 못했으니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쯔쯔. 인간과 오크를 비교하다니, 이래서 천한 것은….”
“취익?”
“비교를 해도 꼭…, 그러니까 무리에서 버림받지 않느냐?”
“취익! 크아아! 죽.인.다!”
“그래그래, 해볼 테면 해보거라.”
오크를 도발해 대화를 나누며 다쳤던 손을 찢어낸 상의로 둘둘 묶는다.
저 바보 같은 놈은 그것도 모르는지 연신 ‘취익, 취익’. 웃기기 그지없었다.
“자, 그럼 다시 해볼까?”
“취이익. 스읍.”
입에 고인 침을 오크가 삼키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도주를 막을 심산으로 그런 모양인데, 어차피 불릿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크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뭣 하느냐? 본인이 먼저 가야하는가?”
그가 계속해서 도발을 하는 이유는 오크의 발걸음이 인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오크의 둔중한 육체를 보고 느릴 것이라 생각하는 것. 그러나 만약 오크가 느리다면 오크에게 죽는 이가 왜 많겠는가?
몬스터 중에서 가장 많은 해를 끼치는 몬스터가 오크다. 느리지도, 약하지도 않은 것이다.
“취이익.”
오크는 손에 쥔 몽둥이를 휘두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불릿이 흘리는 식은땀은 구레나룻을 따라 흘렀는데, 어찌나 많이 흘리는지 상의가 축축해졌다.
정령사인 그가 1:1 상황을 겪어봤자 얼마나 겪었겠는가?
대부분은 정령을 앞장세워 싸우거나 동료와 함께 싸우니 이런 경험은 거의 없었다.
부웅!
“으압!”
파창!
지나치게 긴장했었는지 미처 반응속도가 따라오질 못해 단검으로 막아냈다.
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뒤로 몇 발자국을 물러서니 오크가 달려든다.
“취아악!”
“죽거라, 마물!”
그리고 시작된 진흙탕싸움.
오크가 힘으로는 우세했으나 기교 없이 정직했고, 불릿은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어설프게나마 검술을 따라했다.
그러나 육체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이 모자랐기에 바싹 달라붙어 오크가 힘을 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애들이 아옹다옹하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으득, 으득.”
“취이익! 인간! 물지 마라!”
“뿌드득, 퉤. 까드득!”
“취이익!”
오크는 연신 단검으로 찌르며 깨무는 공격에 고통스러워했다. 반대로 불릿은 두꺼운 가죽에 막혀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자 안달이 나는 상황.
휘두르는 것을 제외하면 공격이란 것을 모르는 오크이기에 이런 개싸움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크아악!”
발버둥 치던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나무를 향해 달려간다.
두두두-, 쾅!
“크헉!”
“크취익!”
등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불릿이 나가떨어지고, 오크 또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케헥, 으으….”
“부르르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불릿과는 반대로 오크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상황.
불릿이 고통 때문에 몸을 움츠리자 그의 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으으, 조, 종이?”
지금이라도 단숨에 오크가 달려들 것 같은 긴박한 이때! 그는 품에서 소리의 근원지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악스레 꺼내들었다.
“취익, 인간, 또 뭐 한다. 취익!”
자신의 먹잇감이라 생각했던 인간이 예상치 못한 반격을 시도하자 당황했던 오크.
이번에도 그가 품에서 또 무언가를 꺼내자 오크는 달려들 생각도 않고 그걸 쳐다본다.
달려들면 맛있게 한 끼 식사를 차려먹었을 텐데. 경계한다는 것이 그 기회를 놓쳤다.
“쿨럭, 크흐흐. 승부를 낼 때가 되었구나, 이놈아.”
그가 기침을 토해내며 품에서 꺼낸 것은 헤이스트 스크롤!
찢어지는 순간 그의 몸에 마력이 스며들었다.
“크학! 켁, 으으으!”
주체하지 못할 힘에 경련하듯 떨면서도 나무를 붙잡고 일어섰다.
지속시간은 단 10초. 강력한 부작용을 동반하지만 지금 이 순간 회심의 반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슥-!
정령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마치 기사들의 움직임과도 비견되는 그의 몸짓은 오크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오크는 허둥지둥. 그러는 사이 불릿의 단검이 예기를 발하며 오크의 배를 꿰뚫는다.
가속도의 정점!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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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