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143화
“진짜네요!”
확인을 마친 강지혜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하준의 첫 정규 앨범인 ‘위로’는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의 1위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하준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준 씨. 국내 차트 뿐만 아니라 미국 차트까지 점령하셨네요. 호호.”
강지혜가 하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리창을 통해 라디오 부스 밖에서 김유택이 환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 제 노래를 사랑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채팅창에 수많은 축하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네요. 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하셨으니까, 해외 팬들에게도 영어로 인사 한 번 해주세요.”
“네, Thank you for your support. I will always work hard to make good music for you.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좋습니다! 혹시 영어 말고 다른 언어도 할 줄 아는 게 있으시면 다른 언어로도 인사해주세요. 전세계에 팬들이 있으시잖아요. 그쵸?”
하준은 <신비종> 덕분에 전세계에 팬들이 있었다.
아마 이번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전세계적인 인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네, 그럼 짧고 빠르게 인사드릴게요.”
하준은 이태리어, 불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로 인사했고, 강지혜는 박수를 치며 놀라워했다.
“와, 한두 개만 더 하실 줄 알았는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역시 월드 스타십니다!”
“과찬이세요. 그냥 조금씩만 할 줄 아는 거예요.”
하준은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발음도 다 엄청 유창하신데요! 발음만 딱 들어도 조금만 할 줄 아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호호. 아무튼, 이왕 이렇게 얘기가 나온 김에 하준 씨 노래 듣고 갈까요? 어떤 곡부터 들려주시겠어요?”
“먼저 타이틀곡 ‘Come back to me’ 들려드릴게요.”
“네, 그럼 하준 씨의 ‘Come back to me’ 듣고 계속 대화 이어가죠.”
강지혜의 멘트가 끝나자 ‘Come back to me’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마이크가 준비된 곳으로 향했다.
하준은 헤드폰을 낀 채 가볍게 춤을 췄고, 곧 스탠드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헤드폰 줄도 있고, 마이크도 스탠드 마이크라서 하준은 원래 안무대로 격렬하게 춤을 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준은 스탠드 마이크에 맞게 살짝 변형한 춤을 선보였다.
무대를 마치고 나자, 강지혜가 환호하며 말했다.
“와, 스탠드 마이크는 스탠드 마이크대로 매력 있는데요? 뭔가 다른 느낌으로 섹시해요.”
“다행입니다. 스탠드 마이크에 맞게 안무를 조금 바꿔봤어요.”
“어머, 그쵸? 조금 다른 거죠? 어쩐지, 뭔가 느낌이 다르다 싶었어요. 스탠드 마이크에 맞춰서 안무도 수정해 오시다니, 하준 씨는 참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아, 팬분들이 스탠드 마이크도 멋있다고 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준은 <강지혜의 파워쇼>에서 ‘Come back to me’ 외에 ‘돌아간다’와 이번 정규 앨범 1집의 수록곡 중 한 곡을 더 불렀다.
라디오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강지혜는 하준에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물었다.
“이제 며칠 뒤면 연말 시상식 때문에 바쁘시겠어요. 가요대축제에도 나오시고, 연기대상에도 나오셔야 하잖아요. 아, 거기다 SBC 연기대상에서 축하무대도 보여주신다는 기사 났던데. 맞죠?”
“네, 맞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배우 활동이랑 가수 활동이 겹친 적은 없었는데, 올해는 제가 욕심을 좀 부렸어요.”
“군백기를 기다려준 팬분들을 위해서 그러신 거죠?”
“네, 그런 것도 있고, 저 스스로도 군백기 때 못한 활동을 빨리, 더 많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덕분에 팬분들이 신나실 겁니다. 아, 내년 1월 말에는 콘서트 소식도 있던데, 어디서 하시죠?”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요. 1월 24일, 25일, 26일 이렇게 3일간 합니다.”
“아직 티켓 오픈 안 했죠?”
“네, 내일 저녁 8시에 오픈됩니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티켓팅이 되겠네요.”
“자리가 많아서 피 튀기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많이들 와 주세요!”
하준은 콘서트까지 알차게 홍보하며 라디오를 마쳤다.
***
며칠 뒤, 하준은 연말에 항상 하는 가요대축제에도 참여했고, 12월 31일에는 SBC 연기대상에 축하무대를 꾸밀 가수 겸 시상 후보로 참석했다.
“SBC 연기대상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실 가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요즘 음원 차트를 휩쓸고 계신 분이자, 오늘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도 오른 분이죠.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계신 하준 씨의 무대입니다!”
하준은 축하무대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사실 배우들은 팬들과는 달라서 가수들의 무대에 크게 호응을 안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걱정이 되었다.
배우들 뒤로 일반인 관객들이 있긴 했지만, 하준의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유명한 배우들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준이 멋진 무대를 선보이자, 예상 외로 배우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나이가 좀 있는 배우들은 하준의 아역 시절을 알기에 하준을 귀엽게 봐주었고, 젊은 여배우들은 <암행연인>에서 보여준 멋진 모습 때문에 하준에게 호감이 많았다.
젊은 남배우들은 월드 스타인 하준을 동경하기도 했고, 하준이 아역으로 데뷔해서 그들에게는 대선배였기 때문에 열심히 호응을 해주었다.
하준은 의외의 호응에 즐겁게 노래를 불렀고, 무대를 마친 뒤 다시 하얀 턱시도로 옷을 갈아입고 <암행연인> 팀의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SBC 연기대상 2부의 막이 올랐다.
“아까 1부 마지막 무대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준 씨, 지금은 하얀 턱시도로 갈아입으셨네요! 무대에서는 터프한 남자 같았는데, 지금은 백마 탄 왕자님이 되셨어요. <암행연인>도 세자와 의적을 넘나드는데, 오늘 의상도 일부러 이렇게 상반된 느낌으로 의도하신 건가요?”
MC는 1부 마지막 무대의 이야기를 꺼내며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은 테이블에 있던 마이크를 들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까 무대에서의 블랙 슈트도 그렇고, 이 하얀 턱시도도 저희 스타일리스트가 입으라고 해서 입었습니다. 하하.”
“아하. 그럼 스타일리스트가 의도했나 보네요. 근데 하얀 턱시도가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그렇죠, 여러분?”
MC가 관객들에게 물었고, 관객들은 우렁차게 ‘네’라고 답했다.
“역시 하준 씨 인기가 대단하네요. 과연 인기상과 베스트 커플상을 거머 쥔 스타답습니다. 하준 씨, 먼저 인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는 하준 씨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암행연인>이 신드롬을 일으켰는데요, 최우수 연기상도 받을 것 같으신가요?”
“음, 후보에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 많으셔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역시 전형적인 답변이네요. 그럼 솔직히, 최우수 연기상 받고 싶으시죠?”
“받으면 당연히 좋겠죠. 상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못 받아도 서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 말씀을 잘하시네요. 좋습니다. 그래도 다다익선이라고 상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거니까, 오늘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MC는 하준에 이어 다른 연기상 후보들에게도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잠시 후 시상이 이어졌다.
남녀 조연상, 남녀 우수 연기상 등의 시상 후 드디어 하준이 후보로 오른 미니 로맨스 드라마 최우수 연기상 시상이 시작되었다.
“미니 로맨스 드라마 남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 먼저 보시겠습니다.”
후보는 하준까지 포함해서 총 4명이었고, 당연히 이들 중 하준이 가장 나이가 어렸다.
후보들이 출연한 드라마의 짧은 클립이 보여진 후, 시상자는 손에 든 카드를 열며 수상자를 발표했다.
“미니 로맨스 드라마 남자 최우수 연기상 수상자는······.”
한편, 집에서 SBC 연기대상 생방송을 보고 있던 윤기철, 최선희, 김복녀는 함께 서로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제발 우리 하준이······!”
“최우수 연기상!”
“제발······!”
또한 하준의 대학 친구들, <신비종>의 삼총사, 하준 덕에 유명 유튜버가 된 오세환, 월드 엔터의 최 대표까지, 모두 TV 앞에서 손을 모으고 하준의 이름이 발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 방송사를 통틀어 시상한 백산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하준이니, 그들은 모두들 SBC에서도 하준이 최우수 연기상을 받을 확률이 무척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상자는, <한량검사>의 주재헌 님! 축하드립니다.”
시상자의 발표를 들은 하준의 지인들은 허탈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꼭 하준이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여주인공인 심가은이 우수 연기상 받았는데, 하준이를 최우수 연기상을 안 준다고? 그럼 하준이 연기로는 무관이잖아? 말도 안 돼!”
“주재헌이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시청률로 따지면 <암행연인>에 비할 바가 아니잖아?”
“하준이도 주재헌 못지 않지! 나이는 어려도 하준이 연기 경력이 15년이 넘는데.”
“맞아, 연기도 안 밀리고, 화제성도 그렇고, 시청률도 <암행연인>이 <한량검사>보다 3배는 더 나왔는데······.”
“으음······.”
시상식장에서도 일반인 관객들의 아쉬움 섞인 탄식이 잠시 들렸지만, 그래도 곧 큰 박수로 주재헌을 축하해주었다.
하준 역시 서운하진 않았다.
백산예술대상에서 이미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하준은 젊으니, 앞으로 상을 받을 기회가 수없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주재헌을 축하해주었다.
주재헌은 생각지 못했다는 듯 눈물을 쏟으며 수상소감을 말했다.
“아······ 전 정말 이 상을 받을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수상소감을 준비 못했는데······ 음, 먼저 <한량검사>에서 함께 고생한······.”
주재헌의 수상소감 후, 여자 최우수 연기상 시상이 이어졌고, 이제 대망의 대상 발표만 남게 되었다.
“대상 후보는 최우수 연기상 후보들이 됩니다. 시상은 전년도 대상 수상자이신 이정희 님과 SBC 차국환 사장님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MC의 소개로 이정희와 차 사장이 무대에 나왔고, 두 사람은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정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SBC 사장 차국환입니다. 이정희 씨는 작년에 대상을 받으셨는데 올해는 TV에서 많이 못 뵌 것 같습니다.”
“네, 휴식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쉬었습니다.”
“몸이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죠?”
“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쉬고 싶었어요. 가족끼리 시간도 보내고요.”
“다행입니다. 아, 휴식기인데도 이렇게 시상자로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와야죠. 저도 사실 올해 대상이 누가 될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직접 이렇게 시상할 수 있는 것도 영광이었고요. 올해 SBC 드라마가 정말 대단했잖습니까?”
“네, 맞습니다. SBC 사장으로서 정말 행복한 한해였습니다. <나에게 오라>, <암행연인>, <네버엔딩 닥터>, <한량검사>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볼거리도 많았고, 시청자들 반응 역시 무척 좋은 작품들이 많았죠.”
“저도 쉬면서 SBC 드라마 많이 봤습니다. 오늘 그 드라마에 출연했던 많은 배우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기쁘네요. 자, 그럼 이제 대상을 발표해 볼까요? 전 떨려서 못하겠으니까 사장님이 발표해주세요.”
준비된 인사말을 마친 이정희는 차 사장에게 대상 수상자가 적힌 카드를 넘겼다.
차 사장은 곧바로 카드를 펼쳐 수상자를 호명했다.
“SBC 연기대상 대상! <암행연인>의 하준 님, 축하드립니다!”
발표와 동시에 무대 양쪽에서 꽃가루 폭죽이 펑하고 터졌고, 하준이 너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