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91화 (291/305)

130, 아낌없이 주는 백두. (2)

*

각종 물약으로 생명력과 내력을 회복한다.

남천휘는 이것만으로도 자신보다 두어 수 윗줄인 고수를 여러 번 상대했다. 하나 제아무리 천상의 약수와 같은 물약이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았다.

바로 활력(活力)이다.

육신은 지치지 않을지언정 정신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다. S급 특기 불굴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남천휘를 지켜줄 뿐이다.

숙면(熟眠)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본능이 아니던가. 제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고 해도 인내할 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하나 사령신이 있는 이상 잠은 곧 죽음이다.

그러니 사령신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지 않는 한 마음 편히 잠을 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천휘는 사령신과 싸우던 중 인벤토리를 떠올렸다.

인벤토리에서 자력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최소한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지 않겠는가.

‘나오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남천휘는 사령신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입맛을 다셨다.

‘아쉽다. 아무 놈이나 막 집어넣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날 신공부의 군사였던 광목재사는 남천휘의 부모가 머물고 있는 노국장을 습격했다. 그 때 남천휘는 수하에게 기습을 당한 광목재사를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하나 광목재사는 스스로 자해를 하여 절명한 채로 소환됐다. 어찌됐든 적을 인벤토리에 넣어서 무력화시킨다는 가설은 충분히 구미가 당겼다.

그렇기에 악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언제나 죽어도 좋은 건 악인이 아니던가.

하나 넣을 수 없었다.

아니 들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광목재사를 인벤토리에 안에 넣은 것도 퀘스트 아이템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한데 당시 악인은 퀘스트 도중 사로잡았지만,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사람을 넣어보려 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 때 깨달았다.

인벤토리에 안에 사람을 넣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1, 퀘스트 대상이어야 한다.

2, 생사지경에 빠졌어야 한다.

결국 곧 죽을 놈이 아니라면 넣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나 그냥 둬도 죽을 놈을 일부러 인벤토리에 넣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지금껏 기억에서 지운 채 살아왔다.

‘메인 퀘스트 신마행 자체가 괴겁천마와 사령신에 대한 것이잖아. 그래서 들어갈 줄 알았지.’

재이가 슬쩍 허공에 나타나 양 엄지를 추켜세웠다.

‘주인님의 추리력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하나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야! 갑자기 나타나지 말라고. 밤이니까 더 귀신같잖아.”

재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허공에서 흩어진 채 자취를 감췄다. 사라지는 모습도 귀신같은 것이 마치 꿈에 나올 기세였다.

“으으.”

남천휘는 재이와 사령신을 기억에서 지운 채 잠을 청했다.

*

물이 가득 든 물통.

깨끗한 천과 방금 다림질을 끝낸 듯한 무복.

“세안 끝.”

여덟 명이 둘러앉아도 남을 만한 탁자.

그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갓 지은 음식 같다.

남천휘는 젓가락을 놀리며 눈앞에 떠 있는 정보창을 확인했다. 각지의 성소로부터 유입된 포인트를 확인하고, 점감을 통해 성소의 효율성을 따져봤다. 또한 당금 강호의 정세에 관하여 새롭게 등록된 정보를 일일이 살폈다.

‘호오, 남궁세가가 형산파와 교룡세가의 지지를 끌어냈구나.’

장강 이남에서 눈여겨볼 정파의 명문거파는 두 곳이다. 호남성의 형산파와 강서성의 교룡세가였다. 남궁세가가 두 곳의 지지를 받는다는 건 무림맹의 행보에 힘을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호재네. 화산파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소림사의 고승으로 보이는 자들이 무림맹을 오갔다고? 좋아. 좋아. 고인 물이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네.’

지난 백 년 간 강호는 정파의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명문거파는 명문거파로 남았고, 신진세력의 약진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절강, 강소, 산동처럼 구파오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아니라면 신진세력은 웅지를 펴기 힘들었다.

그러니 강호이면서도 검과 검을 맞대는 대신 모략과 암투가 판을 쳤다.

한데 그랬던 썩은 강호가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준다.

‘세상 일 참.’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으며 정보창을 지웠다.

그리고 이제는 흰빛이 대부분 사라져 녹빛을 띄고 있는 대두동의 전경을 감상했다. 갓 우려낸 차를 마시며 탄성을 흘리니 이곳이 지상낙원이다.

“아! 좋다.”

자! 이제 역순으로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을 집어넣었다.

그런 남천휘의 눈에 인벤토리에 등록된 목각인형이보였다. 역팔자로 치솟은 눈매와 반질반질한 정수리만 봐도 사령신임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너는 어떨까?”

사령신은 당장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존재였다.

백 년 전 그의 손에 죽어간 무인의 숫자만 해도 기천에 이르렀다. 이것은 억울하게 죽은 양민의 숫자를 제외하고 헤아린 것이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여도 천당에 자리를 예약할 수 있을만한 대악종인 게다.

게다가 이미 사령신과의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생사투를 통해 백파신공의 기본적인 틀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살아도 좋고, 죽어도 나쁠 것은 없다.

‘소환’

그 순간 사령신이 공간을 비집고 튕겨 나왔다.

일자로 누운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죽었나?’

남천휘가 슬쩍 다가가 사령신의 코에 손을 대려던 순간이었다.

사령신이 눈을 번쩍 뜨더니 대뜸 살수를 펼쳤다.

“죽어!”원한이 가득 담긴 메마른 목소리가 대두동에 퍼져나갔다. 하나 남천휘는 힘없이 뻗어 나온 손길에 당할 사람이 아니다.

남천휘는 슬쩍 상체를 뒤로 눕히며 오른발로 사령신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빡!

사령신은 비명과 함께 십여 바퀴나 나뒹굴었다.

“으으으.”

남천휘는 사령신의 다음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손을 폈다. 여차하면 용린쌍도를 소환하여 이회전에 돌입할 요량이었다.

한데 사령신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욕지기를 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한참동안 남천휘를 노려봤다.

“크허허허헝. 이 새끼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얼마나 나를 가둬뒀던 것이야?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남천휘는 사령신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반나절 지났는데?”

사령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반나절?”

“응.”

“말도 안 돼.”

“됐고! 회복은 맞으면서 해라.”

남천휘가 인벤토리의 비밀을 어느 정도 풀어낸 이상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용린쌍도를 소환했고, 첫 수부터 강기를 흩뿌렸다.

백파신공의 일곱 초식은 저마다 경천동지할 위력을 보인다. 부수고, 자르고, 뚫고, 띄우고, 붙고, 지우는 모든 행위가 물 흐르듯 연계됐다.

촤악!

사령신은 칼침을 열 방이나 맞은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크흑! 그래, 이 감각이야. 네 놈을 찢어발기고 싶은 기 느낌! 이것이 나를 살게 했다!”

“지랄 하네. 원래 안 죽는다며?”

남천휘의 백룡도가 횡으로 공간을 갈랐다.

단순하게 보이는 일수에 파(破)의 묘리가 담겼다.

“흥!”

사령신이 월아혈천수를 펼치는 순간 혈강기가 호선을 그리며 백룡도를 막았다.

쩡!

백룡도는 너무도 쉽게 혈강기를 분쇄한 후 사령신의 오른팔 상박에 틀어박혔다.

촤아!

피륙이 잘리고, 뼈가 드러날 정도의 도격이다.

사령신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잠시 진저리를 치더니 손바닥을 보이며 외쳤다.

“잠깐! 잠깐! 할 때 하더라도 회복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더냐!”

“우리 사이에 그런 예절이 필요하던가?”

“이 새끼야! 네 할아버지인 남추도 나한테 이러지는 않았어.”

남천휘는 코웃음을 치며 달려들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나라도 이렇게 하련다.”

푹푹푹푹푹!

엄지 손톱만한 구멍이 다섯 개나 뚫렸다.

사령신은 아랫배를 막은 채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크허허! 비겁한 새끼. 소도 일을 시키기 전에는 밥을 먹인다고 했다. 인정머리 없는 더러운 놈! 내가 이러다 죽기라도 한다면 네 놈의 수련은 어찌 하려고?”

아! 사령신도 살려면 어쩔 수 없구나.

절대지경의 고수가 스스로 샌드백임을 인정하다니.

하긴 생각해보면 놈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놈을 몇 번이나 쑤셔봤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애초에 수련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최소한 사령신의 무위를 오 할 이상 회복시켜야 했다.

남천휘는 헐떡이는 사령신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 밥은 먹고 싸우자.”

그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허공에서 토끼 고기로 만든 수육이 비처럼 쏟아졌다.

사령신은 허기에 이성을 잃었는지 기사에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땅에 떨어진 토끼 고기를 주워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으어어어, 맛있어! 으음! 최고야.”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안쓰러워 보이기는커녕 배알이 꼴릴 지경이다.

지옥에 떨어져도 아까울 것이 없는 놈에게 고기는 사치였다.

‘아까워.’

점심부터는 풀만 줘야겠다고 남몰래 다짐을 했다.

퍽!

남천휘가 뒤통수를 후려치자, 사령신은 고기를 잔뜩 넣은 채 웅얼거렸다.

“왜 때려?”

“그냥.”

*

천장의 좁은 구멍을 통해 빛이 스며든다.

장대처럼 꽂혀든 빛은 묵빛 수면이 일렁일 때마다 묘하게 번뜩였다.

하나 연못가에 무릎을 꿇은 세 명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무극중사와 일원의 좌우사였다.

잠시 후 검은 안개가 사람의 얼굴처럼 뭉쳐들었다.

눈과 입이 있어야 할 자리만 뻥 뚫려 있으니 악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괴겁천마다.

일원의 좌우사가 괴겁천마에게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으려던 순간이다.

솨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묵빛 안개가 들이쳤고, 그것은 먹잇감을 탐하는 아귀처럼 좌우사의 몸을 파고들었다.

“크어어어어어.”

눈동자마저 검게 물드는 순간 유부의 귀곡성과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쓰임이 다하면 정리하는 것. 이것이 천하의 섭리다. 너희들은 쓰임이 다하였느냐?』

좌사인 흑천괴뢰와 우사인 마천종은 넙죽 엎드린 채 외쳤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소서! 반드시 사령신을 잡아오겠습니다.”

잠시 묵빛 안개가 움직임을 멈췄다.

좌우사에게 이 시간은 영겁과 같았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잠시 후 괴겁천마를 형상화한 안개가 일렁이며 기음을 토해냈다.

『끝이 멀지 않았다.』

이것은 용서의 한 마디일 터였다.

흑천괴뢰가 눈을 빛냈다.

“불멸과 불사를!”

마천종의 산같은 체구가 꿈틀거렸다.

“속하들에게 나누소서!”

투기가 들끓고, 욕념이 넘실거리는 기이한 광경이다.

하나 무극중사는 한쪽에 서서 괴겁천마와 좌우사를 바라봤다. 마치 경극의 한 장면, 도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태연자약했다.

괴겁천마의 시선이 한순간 무극중사에 닿았다.

입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슬쩍 치솟는다.

무극중사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흐음.’

그는 현실을 외면하듯 눈을 감았다.

이내 괴겁천마의 일갈이 동혈을 가득 채웠다.

『꼭두각시와 광신도를 일깨워라!』

흑천괴뢰와 마천종은 전쟁의 허락을 받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따르겠나이다!”

『죽이고, 불태우고, 짓밟고, 경멸하라! 오직 영원불멸과 천세불사의 사자만이 살아서 광영을 누릴 것이다!』

“존명!”

흑천괴뢰와 마천종은 서로에게 뒤질세라 동혈을 빠져나갔다.

열기가 한 순간에 가라앉는다.

“사령신의 위치는?”

감정이 배제된 무덤덤한 목소리.

무극중사는 자신의 차례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너와 내가 볼 수 없다면 남추의 손길이 닿은 건가?”

“그 또한 알 수 없습니다. 하나! 최선이 안 된다면 차선도 있지 않습니까.”

“장담할 수 있는가?”

괴겁천마의 물음에 무극중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중지봉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차고 넘쳤나이다.”

“네게 마지막 역할을 주마.”

무극중사는 기꺼이 호응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명하소서.”

“정마대전이 일어나면 너는 다른 것은 생각지 말고 놈을 데려와라.”

그그그그그그긍-

동혈 전체가 괴겁천마에 호응하듯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졌다. 하나 땅과 연못에 떨어지는 건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마침내 흙벽 너머의 벽이 모습을 보였다.

은빛으로 빛나는 철편이 겹겹이 쌓인 공간에는 온갖 기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로 괴겁천마의 염원의 담긴 한 마디가 섞여들었다.

『남추의 후예라면 천마신의가 없어도 이곳의 힘으로 능히 영원불멸과 천세불사의 대업을 이룰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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