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아낌없이 주는 백두.
130, 아낌없이 주는 백두.
천목십이회의 굴복.
한 성의 패주가 무릎을 꿇었지만, 여파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천휘였다.
이제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수긍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지 않았던가.
- 사령신을 물리친 존재.
- 정파의 마지막 수호신.
사마의와 무림맹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소문은 발, 아니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천하에 회자됐다.
남천휘는 천목십이회의 전서응을 통해 보타암에 있을 검후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천 명이나 모인 김에 대규모 회식을 열었다.
밥은 먹고 다니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누구 돈으로?
무림맹주의 명패를 내미는 순간 천목십이회의 문주들을 저들끼리 각출하여 비용을 충당했다.
그리고 절강 정벌대는 짧은 이별을 예고하며 흩어졌다.
천수련은 천응검후를 기다리기 위해 남았다.
연하연이 홀로 남을 천수련을 위해 함께 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나 마이와 성시가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엇보다 언제 다시 무극중사가 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하나 남천휘는 보내줬다.
그들은 사형제가 당한 것이 분명한 이상 천마신의의 유지를 이은 자들을 모으겠다고 했다. 혈검살의의 이름을 내걸지 못했을 뿐 수련하는 이들은 절강 남부와 복건성 일대에 퍼져 있을 정도였다.
남천휘로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마이와 성시가 세력을 일군다면 차후 대규모 혈겁이 일어났을 때 의술 쪽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다행히 무극중사는 신적인 능력을 보였을 뿐 신은 아니었다. 그가 시스템을 장악했다면 애초에 중지봉 혈사를 일으킬 필요 없이 마이를 납치할 수 있었으리라. 게다가 천마신의의 생사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마이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천마신의의 비처가 될 터였다.
결국 남천휘는 홀로 검흥주가를 뒤로 했다.
이미 검흥주가의 성소를 얻었기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데 산동성과 절강성의 중간에 위치한 강서성에 도착하는 순간 희소식이 들려왔다.
산동성에 삼정이 있고, 절강성에 천목십이회가 있듯 강소성에는 칠계가 있다. 그들 역시 신마대전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방파로 결집력이 상당했다.
그렇기에 꼬투리만 잡힌다면 언제고 정리를 할 요량이었다.
한데 사마의가 꼬투리를 잡아냈다.
칠계 중 한 곳이 염왕채를 과하게 돌렸고, 패가망신한 유민들이 산동성에 유입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현월사대를 파견했다.
남천휘가 절강성으로 떠나자마자 일을 진행했기에 벌써 칠계 중 두 곳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그는 칠계 중 다른 곳을 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 와중에 퀘스트가 떴다.
마교의 잔당을 제거하라는 퀘스트였다.
남천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가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교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역은 청해와 신강 지역이기 때문이다. 강소성과 수만 리 떨어진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들이 등장했다니 호기심이 동했다.
기꺼이 퀘스트를 수락했고, 포인트와 경험치나 벌 요량으로 마졸을 쫓았다.
그러던 중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수만 리 밖에 있어야 할 마졸들이 중원에서 암약하는 이유였다.
사령신(邪靈神).
“제갈세가에서 도망쳤을 때부터 쫓겼다며?”
남천휘의 느긋한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사령신의 가슴에 꽂혔다.
“흥! 쫓기기는. 적당히 상대하다가 떠났을 뿐이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사령신은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았다.
하나 남천휘는 느긋했다.
“너, 홍련살을 맞았다며?”
괴겁천마의 무공 중 일격필살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홍련살(紅蓮煞)이다.
백 년 전 사마천세 시절 화산에는 고강한 무공을 자랑하던 자하검신이 머물렀다. 그는 화산제일검이자, 자하심결을 대성했으며 매화검법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으로 유명했다.
그는 동위 마천종이 이끄는 마교를 막아섰다.
홀로 오백 명 이상의 마졸을 척살했다.
그런 그가 홍련살 한 방에 피를 토하며 절명하지 않았던가. 홍련살은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으며, 소리조차 없는 최강의 한 수였다.
사령신의 옆구리에는 손 모양의 불꽃이 새겨져 있었다.
홍련살의 상징이다.
“무극중사가 괴겁천마의 힘을 빌려 홍련살을 날렸다지?”
사령신은 발악을 하듯 외쳤다.
“닥쳐라! 동황제군 따위는 한 손으로 처리할 수 있어. 놈이 괴겁천마의 무공을 사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새끼는 몸뚱이가 날아가고 더 자유로워진 듯해. 나만 이게 뭐야? 쓸데없는 몸뚱이만 남긴 탓에 동황제군 따위에게 쫓겨야 하고 말이야.”
“훗, 쫓긴 것 맞네.”
남천휘의 말에 사령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사령신은 예전의 기억을 대부분 되찾았음에도 입이 가볍다.
여전히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와 다르지 않았다.
“생각을 해봤지. 궁지에 몰린 네 놈이 어디로 도망갔을지 말이야. 어쨌든 괴겁천마가 두려워서 꼬리를 말았으니 안전한 곳을 찾았겠지. 그렇다면 괴겁천마도 난적이라 칭했던 남추의 은신처가 딱이야. 안 그런가?”
“크흑! 남추나 네 놈이나 다를 것이 없어.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는 악적이지.”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칭찬 같아서 좋구나. 어쨌든 너는 이대로 죽는 건가? 홍련살에 맞아서 살아남은 자가 없다며?”
사령신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홍련살을 지독해. 예전의 나였다면 지금처럼 살아 있지 못할 수도 있어.”
“예전의 너?”
남천휘의 물음에 사령신은 어금니를 드러냈다.
“크큭! 너는 내가 지금 우스워 보이지? 홍련살을 맞고 죽어간다고 생각할 게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여유를 부리는 거지. 안 그런가?”
뭔가 있는 듯하니 맞장구를 쳐주자.
어찌됐든 백 년 전 비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놈이 아닌가. 이렇게 된 이상 놈의 입으로 남추의 비사를 온전하게 들을 수 있다면 뭐가 됐든 남는 장사였다.
사령신은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고통으로 인해 인상을 쓰고 있지만, 강맹한 기세만은 여전했다. 꼴을 보아하니 기회를 엿보다가 천사강림을 활성화하려는 듯했다.
어디 한 번 해보려무나.
“설마 죽지 않는 건가?”
남천휘의 물음에 사령신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이 몸은 불멸에 이르지 못했으나, 지난 백 년의 힘으로 불사를 완성했다.”
사령신의 두 눈에 광기가 붉은 빛으로 형상화되어 맴돌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네가 어떤 무공을 펼치든, 어떤 사술을 부리든 상관없다! 남추라 해도 나를 죽이지 못했어! 한데 너 같은 애송이가 할 수 있을 성 싶더냐!”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사령신은 그 모습에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듯 재빨리 양 손을 떨쳤다. 그 순간 양 손에서 뻗어 나온 혈강기가 바닥에 맺혔고, 이내 대지를 물들인 후 벽처럼 치솟았다. 하늘까지 가려버린 반투명한 구체는 사령신의 십대무학 중 천사강림을 의미했다.
“이 승부의 끝은 어떻게 될까?”
그는 짧은 순간 숨을 돌렸는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죽지 않는 나? 지치지 않는 너?”
남천휘는 눈을 끔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령신은 조롱하듯 외쳤다.
“클클, 이 와중에도 나는 홍련살을 제거하고 있다. 결국 나는 완전해질 것이고, 죽지 않는 나는 너를 반드시 갈가리 찢어서 개 먹이로 줄 것이다!”
남천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
“팔이 잘리면 다시 튀어나오나?”
“······.”
“목이 잘려도 안 죽는 거야?”
사령신은 남천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이 새끼가 또 나를 놀려? 내가 네 머리통을 뽑아버려도 웃을 수 있는지 보자!”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안 될 거야.”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애초에 뽑을 머리카락이 없는 네가 뽑기는 뭘 뽑아?”
사령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평생 절대자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그였다. 그리고 그를 만나는 자 중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든 건 괴겁천마와 남추 뿐이다.
그러니 남천휘의 조롱은 참기 힘든 수치였다.
“크흑! 죽여버리겠다.”
남천휘는 양 손에 용린쌍도를 소환한 후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다.”
“죽일 수 없을 거다!”
사령신의 발악에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네가 마음에 들어.”
스릉-
용린쌍도에서 백색 강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남천휘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나는 진무성흔에서 보았던 일곱 가지 난제를 풀겠다. 죽지 않는 너를 끝까지 두들기다 보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사령신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사마천세의 상징이자, 정파의 무인들에게는 염라대왕보다 공포를 자아내게 만든 절대자가 아닌가. 그런 자신을 대상으로 무공을 수련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남천휘는 잠시 눈을 끔뻑이더니 허공에 대고 물었다.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 천상계의 단어 중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쓰는 말이 있냐?”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너! 내 샌드백이 되어라.”
*
사령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절대지경에 오른 두 명이 부딪쳤으니 대두동은 폐허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나 천사강림으로 만들어진 붉은 벽은 모든 공세를 흡수했다.
그 덕에 남천휘는 철투를 할 때처럼 무너지지 않는 공간에서 모든 심득을 풀어낼 수 있었다.
진무성흔에서 본 일곱 가지 난제.
그것은 중양칠도를 닮았다.
그러니 비천무상도의 완성형이 되어 줄 터였다.
띠링-
◎ 특정 심득으로 인하여 새로운 무공의 구결이 등록됩니다. 현재 활용 가능한 구결로 인하여 신화 등급의 ‘백룡도’와 ‘흑린도’는 부가기능을 활성화합니다.
※ 활성 가능한 부가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특정 심법 사용 시 공격력 50% 상승.
- 특정 무공 사용 시 공격력 50% 상승.
지금껏 용린쌍도의 부가 기능 중 가장 사기적인 효능을 사용하지 못했다.
한데 드디어 길이 열렸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진무성흔의 난제는 단순한 심법이나 무공이 아니라 심법과 무공을 포함하는 총화일 가능성이 크다!’
◎ 무공총람에 등록될 무공명을 작성해주세요.
남천휘는 현월강기를 흩뿌려 사령신을 물러나게 만든 후 입꼬리를 올렸다. 만약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드시 쓰고 싶은 명칭이 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자,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백파신공이 무공총람에 등록됩니다.
남천휘는 용린쌍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똑똑히 기억해라! 지금부터 네 몸을 수천 번이나 갈라버릴 무공은 백파신공이다!”
사령신은 백파신공(百破神功)이라는 말에 이를 갈았다.
“또 남추냐!”
백파도 남추는 일평생 백 자루의 무기를 부쉈다고 해서 백파도라 불렸단다. 하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가 부순 것은 한낱 무기가 아니라 삿된 모든 것일 터였다.
“그래, 또 남추다! 이 지옥에서도 거부할 쓰레기 새끼야!‘
터터터터터터텅!
남천휘는 중양칠도를 기반으로 하여 일곱 가지 난제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촤악!
사령신은 이미 장시간의 혈투로 인해 기력이 쇠했고, 홍련살로 인해 생사지간에 빠져 있지 않던가. 비록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지만, 평소의 무위를 발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몸에는 상흔이 늘기 시작했다.
하나 남천휘는 적선단과 벽선단은 물론이고, 지금껏 인벤토리에 모아놓은 모든 의약품을 활용하여 버텼다. 결국 사령신은 죽지 않을 뿐 초주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사령신이 발광을 하듯 괴성을 질렀고, 이내 십대무공이 두서없이 펼쳐졌다. 온 세상을 짓뭉갤 듯한 엄청난 공세가 연이었다.
하나 남천휘는 하나씩 천천히 풀어냈다.
수련하는 쪽과 살기 위한 쪽의 대결은 시작부터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남천휘는 사령신과 싸우는 도중에 틈틈이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 남위기를 통해 자신이 체득한 묘리를 검색했고, 쓸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한낮에 시작된 대결은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결국 사령신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었고, 헐떡이면서 남천휘를 응시했다.
“크흐흐.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남추도 너와 같았지.”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좀 쉬어. 그러다 죽겠다. 아! 죽지는 않던가?”
사령신은 남천휘의 조롱 섞인 말투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은 호흡을 가다듬고, 내력을 끌어내는 행위에 집중할 뿐이다.
반면 남천휘는 최적의 상태에서 백파신공을 정리했다. 그리고 진무성흔의 일곱 난제를 중양칠도에 빗대어 일곱 개로 나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일곱 초식이다.
- 파(破) : 부순다.
- 절(絶) : 자르고, 끊다.
- 천(穿) : 뚫는다.
- 추(墜) : 떨어진다. 누른다.
- 부(浮) : 뜬다. 떠오른다.
- 접(接) : 붙는다. 접촉한다.
- 소(消) : 사라진다. 지운다.
남추가 VR에서 설명했던 묘리와 남천휘가 눈으로 봤던 행위를 중양칠도에 더했다.
필멸과 필살을 장담했던 일곱 개의 난제.
그것이 백파신공의 일곱 초식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재이의 알림과 함께 정식으로 백파신공의 숙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후우. 긴 하루였어.”
사령신은 남천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클클, 결국 네 놈도 기력이 쇠하기는 하는구나. 너 또한 사람인 이상 잠을 자야겠지? 하나 나는 잠을 자지 않아도 거뜬하다. 네 눈을 감는 그 순간 나는 네 목을 찢어발길 것이다!”
남천휘는 사령신의 악다구니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맞아.”
“크하하! 결국 너는 나한테······. 뭐하는 거냐?”
사령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천휘가 손을 뻗은 채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너, 인벤토리에 잠깐 들어가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