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89화 (289/305)

129, 오늘도 내가 천하제일. (3)

이것은 선전포고(宣戰布告)였다.

그리고 천목십이회의 문주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반격이기도 했다. 지금쯤이면 수하들이 검흥주가로 난입했을 시간이 아닌가. 그러니 넋을 놓고 쳐다보는 상황이 이어졌어도 놀랄 일은 아닐 터였다.

‘스스로 범의 아가리 속에 들어온 건가?’

하나 이들은 명문의 테두리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저마다 제 실력만 믿고 도산검림을 딛고 일어서서 문파를 일궜다. 지금이야 호의호식하지만, 예전에는 칼 한 자루만 들고 날뛰던 실전의 달인들이다.

그렇기에 놀람은 잠시였다.

말 대신 행동이 더 빨랐다.

남천휘의 좌우에 앉아 있던 천목십이회의 문주들이 반응했다.

순창명가와 수정방의 주인이다.

순창명가(巡昌明家)의 검술은 일합에 태양을 벤다는 말이 있을 만큼 빠르다. 가주인 섬랑검호(閃狼劍豪) 여운철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떼고, 상체를 비틀었다. 그것만으로도 남천휘와의 거리가 절반 이상 좁혀졌고, 검로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검호라는 별호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다.

철컥!

수정방주(水晶幇主)는 철투를 꼈다.

섬랑검호 여운창보다는 느렸지만, 파괴력은 두어 수 윗줄이다. 금강철인(金剛鐵人)이라 불리는 그가 주먹을 말아 쥐는 순간 태산처럼 육중한 체구에서 강렬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섬랑검호의 일격을 막는 순간 나는 뒤가 아닌 옆을 친다!’

당연히 배후를 공격하리라는 예상을 한 번 더 비틀 묘책이라고 여겼다.

금강철인은 찰나간 이와 같은 계산을 끝냈다.

한데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남천휘가 대수롭지 않게 내뻗은 발이 섬랑검호의 검 끝에 닿았다. 검은 제대로 뽑기 전 다시 검집으로 사라졌다.

철컥!

섬랑검호는 타의에 의해 납검을 한 후 눈을 부릅떴다. 검 끝에서 전해진 반탄력이 손끝을 타고 퍼져나갔다. 한순간 몸의 절반이 마비된 듯했다. 찰나간 검을 놓고 싶은 욕구가 스쳐갔을 정도였다.

이제 믿을 건 금강철인의 기습이다.

하지만 남천휘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섬랑검호의 검 끝을 살짝 밟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속도로 튕겨나가는 것이 아닌가.

"히익!“

금강철인은 지척에 이른 남천휘에게 철투를 꽂아 넣었다. 하나 그 순간 철투가 움푹 파이며 노도와 같은 내력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남천휘의 주먹이 면전에 쇄도했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두 번의 권격을 날린 듯하지 않은가.

콰직!

금강철인은 제대로 된 공세조차 펼치지 못한 채 자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면이 움푹 주저앉았고, 코와 입으로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끄으으.”

남천휘의 움직임은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에 이뤄졌다. 금강철인에게 일격을 먹인 후 그대로 돌아서서 섬랑검호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남천휘는 팔꿈치로 정수리를 내리쳤다.

빠각!

섬랑검호마저 주저앉았다.

천목십이회의 한 축을 맡은 자들이 연이어 혼절한 상태였다.

금의를 입은 천무호림의 림주는 문주들이 멈칫하는 것을 보고 일갈을 내질렀다.

“죽여!”

문주들은 뭐에 홀린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남천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이 막사 전체를 짓눌렀다.

성소 포인트를 사용하는 순간 이곳은 남천휘의 앞마당이 됐다. 저들에게 호언장담한 것처럼 오늘 하루 이곳의 남천휘는 천하제일이다.

파팟!

팔황지존보를 극성으로 운용하는 순간 잔영이 사방팔방에 남았다. 한데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흩뿌려진 채 미동조차 하지 않던 잔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시간을 빠르게 돌린 듯한 광경이다.

남천휘는 막야방주의 턱을 올려치는 동시에 천장문주의 아랫배를 십여 회나 연타했다.

퍼퍼퍼퍼퍼퍼퍽!

사방에서 고깃덩이를 두드리는 타격음이 울렸다.

촤라라라락-

남천휘가 팔을 뻗는 순가, 인벤토리에서 소환된 용린쌍도가 월아창으로 변하여 전방을 휘저었다.

푹푹푹푹푹!

멀리 있었다는 이유를 창에 찔린 자가 비명과 함께 허물어졌다. 한 번의 호흡으로 천목십이회의 문주들 중 절반 이상이 주저앉았다.

“흐어헉!”

입구 근처에 있던 자가 등을 보였다.

핑!

활시위를 튕기는 순간 화살이 공간을 꿰뚫었다.

“크헉!”

남천휘는 막사 입구를 막아선 채 화살에 맞은 자를 걷어찼다. 그리고 빠르게 활시위를 튕기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철시가 십여 개나 전방으로 쇄도했다.

핑핑핑핑핑!

문주들은 검과 도를 휘둘러 철시를 튕겨냈다.

생각보다 철시에 담긴 힘이 크기 않았다.

‘지친 건가?’

하나 간절히 원했던 결과는 찾아올 리가 없다.

남천휘가 재차 바닥을 박차는 순간 양 손에 백룡도와 흑린도가 잡혔다.

쩡!

검을 쳐내는 대신 단칼에 두 동강 냈다.

남천휘는 헛바람을 들이키는 문주의 허벅지를 쌍도로 긁었다. 하반신이 피로 물든 문주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실천하는 여우처럼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은 건 두 명이다.

천목십이회의 대회주인 천무호림주와 장천문의 문주인 경천객이다.

천무호림주는 양 손으로 호조를 취한 채 달려왔다.

소매를 휘저으며 공간을 좁히더니 갑작스레 손을 길게 뻗었다. 그 순간 팔이 다섯 촌은 길어진 것처럼 남천휘의 목을 노렸다.

남천휘는 찰나간 입꼬리를 올리더니 자세를 슬쩍 낮췄다. 그리고 귀 옆을 스쳐가는 천무호림주의 손목을 흑린도로 후려쳤다.

빠각!

칼등으로 쳤기에 잘리지는 않았다.

남천휘는 자세를 낮추는 순간 발끝을 돌렸다.

발끝에서 시작된 회전이 상체에 이르는 순간 어깨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백룡도의 끝은 천무호림주의 아랫배에 꽂혀들었다.

“끄으으.”

천무호림주는 단전을 직격당했음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원념 가득한 눈빛으로 남천휘를 노려봤다. 눈빛으로 사람을 해할 수 있다면 남천휘의 전신은 이미 갈가리 찢겼으리라.

하나 남천휘는 천무호림주의 눈빛을 가볍게 흘리며 칼을 뻗었다.

툭.

천무호림주는 칼끝이 피부를 파고드는 순간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남천휘의 칼끝이 경천객을 향했다.

경천객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그는 남천휘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절강성의 패주이자, 보타암의 검후조차 백안시했던 자들이 침과 피를 흘린 채 주저앉아 있었다.

저들은 불과 일각 전까지만 해도 천하제일에 가장 근접했다는 남천휘를 무릎 꿇릴 생각에 들떠 있지 않았던가.

그는 슬쩍 손바닥을 보였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문주! 무슨 일이십니까?”

“방주, 막사에서 화살이 튀어나왔습니다.”

한순간 백 명 넘게 무인들이 모였다.

남천휘는 피식 웃더니 다시 천무호림주를 응시했다.

칼끝이 천목호림주의 목젖에 닿았다.

천무호림주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진저리를 쳤다.

하나 입술을 비집고 힘겹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진중했다.

“별 일 아니다. 물러가라.”

그래도 웅성거림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경천객이 발악을 하듯 외쳤다.

“중요한 회의 중이다.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제요 소요가 사라졌다.

천무호림주는 이를 갈며 말했다.

“죽은 자가 없군. 원하는 게 뭐냐?”

남천휘는 대답 대신 뜬금없는 화제를 꺼냈다.

“아! 내가 요즘 사령신이나 광혈오주 같은 자들과 싸우다보니까 조금 힘에 부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약해졌나 했지. 한데 너희들을 보니까 그건 아닌 듯하네. 내가 강한 걸까? 아니면 너희들이 약한 걸까?”

천무호림주는 입을 닫았다.

무슨 대답을 해도 천목십이회의 명성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짧고, 간결하게 얘기할게. 천목십이회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군림 해. 하나 너희들 위에 보타암을 둬야겠다. 예전에 많이 해봤잖아. 강호는 보타암에 큰 빚을 졌으니 어른으로 모시는 거야. 대답은?”

“거절한다면?”

남천휘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천목십이회는 전멸이다.”

해산이 아니라 전멸을 논했다.

천무호림주는 남천휘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빙굴에 갇힌 것처럼 오한이 일었다. 지하 백 장 아래에 파묻힌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저 놈은······.’

남천휘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사마의가 확신하듯 조언하지 않았던가.

- 사람들이 괴겁천마나 사령신을 왜 두려워한다고 여기십니까? 그들은 망설임이 없거든요. 마치 아이처럼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죽이고 싶으면 무림맹주라고 해도 망설이지 않지요. 공적?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주군은 정파의 군자보다 그쪽에 더 치우쳐 있잖습니까. 그리고 주군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아는 자라면 이런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어요. 주군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는 정사지간의 성향이니까요.

그 때 한 마디로 대답했다.

‘협박 따위는 하지 않아. 명령이지.’

그리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눈빛에 담겼다.

천무호림주는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허허, 어처구니가 없군. 반 백 년을 이어왔던 천목십이회의 위세가 일순간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답은?”

남천휘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경천객은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린 채 지켜봤다. 천무호림주는 찰나간 십 년은 늙은 것처럼 초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한다.”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무방비하게 등을 보였으나,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언제까지 잘 거야? 일어나. 일어나!”

남천휘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천목십이회의 문주들이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천무호림주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직감했다.

‘저마다 익힌 무공이 다르고, 저마다 다친 부위가 다르거늘······.’

남천휘가 해혈하는 방식만 봐도 천하에 손꼽힐 정도의 실력이 아닌가. 잠시 후 깨어난 문주들은 남천휘와 짧은 대면을 한 후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곁에 검후의 제자가 있는 건 모두 알 거야. 그 녀석이 한 번 다 한 숨을 쉬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게 아니라면 보호비를 받든, 염왕채를 굴리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우리 한 번 잘 살아 봅시다. 하하하!”

남천휘의 호언장담에도 문주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검후나 그녀의 제자가 보호비나 염왕채를 허락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나 누구도 속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촤락!

남천휘는 막사를 걷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재차 벌어졌다.

마치 남천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설마 인외지경에 올라 천지조화를 부리는 경지에 이른 것인가?’

천무십이회의 문주들은 삿된 생각조차 마음속에서 지웠다. 남천휘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독심술 또한 불가능하지 않을 듯했다.

“자! 싸움 끝.”

남천휘의 외침이 검흥주가 안까지 퍼져나갔다.

*

남천휘는 검흥주가를 뒤로 한 채 산동으로 향했다.

하나 곡부남가로 돌아가는 대신 슬쩍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대두동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진법에 가려져 있던 소로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안개는 장막처럼 좌우로 갈라졌고, 관목은 고개를 숙여 발목을 잡지 않았다.

잘 닦인 관도를 걷는 것처럼 느긋하게 대두동에 진입했다.

남천휘는 대두동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하는 대두상과 눈을 마주쳤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허공을 향했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대두동 중심부의 공터에 닿는 순간 기광을 번뜩였다.

“백두야, 너도 오랜만이다.”

남천휘의 싸늘한 한 마디에 사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나 무릎을 채 펴지도 못하고 다시 주저앉으며 신음을 흘렸다.

“크흑! 네 놈만은 오지 않기를 바랐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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