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58화 (258/305)

113, 신의 한수. (2)

제갈표는 코웃음을 쳤다.

이처럼 수준 낮은 대응도 참으로 오랜 만이다.

천주봉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존재는 ‘그’로 추정됐다. 비현실적인 예상이지만, 마관광살기를 펼칠 수 있는 건 중원을 통틀어 그가 유일하지 않던가.

혹여 그의 비전을 익힌 제자일수도 있다.

어찌됐든 엄청난 적이 나타난 게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혐의를 남천휘에게 뒤집어씌워야 마땅했다. 둘이 올라가서 한 명만 내려왔고, 천주봉은 난리가 났다.

사부란 자의 패악질이 분명했다.

심지어 ‘그’와 이름도 비슷하지 않던가.

예를 들면 사(邪)라든가.

제갈표는 당장이라도 남천휘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백 가지 방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네 놈이 올라간 후부터 이 사달이 일어났다. 한데 내가 이유를 묻는 겐가? 여물지 못한 자가 힘을 얻었으니 방약무도하기가 끝이 없구나!”

그래, 일단 책임의 소재를 가려야겠지.

남천휘는 제갈표를 노려봤다.

“정녕 내 입으로 이 더러운 수작을 밝혀야겠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일갈에 좌중은 이목을 집중했다. 사람들은 남천휘의 강렬한 눈빛에 잠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다. 비장의 한 수를 지니지 않았다면 보일 수 없는 자신감이 아닌가. 산동성의 패주라 불리는 자가 아무 증거도 없이 제갈표를 비난하지는 않을 터였다.

‘일단 제갈표와 천주봉에 관한 자료를 모조리 띄워봐. 더! 더! 더!’

남천휘의 강렬한 눈빛은 제갈표를 향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수없이 겹쳐져 있는 제갈세가의 정보를 훑어보고 있을 뿐이다.

“흥! 네가 벌인 짓을 덤터기라도 씌울 요량이더냐? 하나 제갈세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니 네 놈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갈표의 협박은 가볍게 귓등으로 흘렸다.

시간은 남천휘의 편이다.

그리고 이내 결과가 나왔다.

‘놈도 아는 바가 없어.’

제갈세가의 정보를 확인하던 중 제갈상서라는 놈의 일지가 발견됐다. 남에게 보이지 않고 혼자만 간직한 기록일 터였다. 하나 중원 곳곳에 퍼져 있는 나노 플레이트의 이목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만변만해휘발액을 일원수라 불렀고, 가까운 놈들끼리 돌아가면서 복용했군. 그리고 제갈표를 가주로 만들어준 기반도 일원수를 통해 만들어졌어.’

서로 아는 것이 없다면 꿀릴 것이 없다.

이 쪽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을 알 게 되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제갈세가의 존망? 상황이 이럼에도 자신의 야욕을 숨기지 못하는군.”

제갈표가 미간을 좁히는 사이 남천휘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은 궁금할 겁니다. 애초에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 특기 ‘논파’가 활성화됩니다.

◎ 특기 ‘귀계’가 활성화됩니다.

◎ 특기 ‘선동’이 활성화됩니다.

포문을 여는 순간 특기가 발동했다.

450,000개의 자수정을 모조리 소모한 끝에 무수한 보상을 받았다. 남천휘의 예상만큼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쓸 만한 것만 추려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 중에는 새로운 특기는 물론이고, 특기 승급권도 다수 존재했다.

논파는 지금껏 쏠쏠하게 써먹었던 B급 ‘변설’을 최고 레벨까지 올린 후 승급한 것이다.

그 결과 A급 논파(論破)가 등록됐다.

귀계 또한 논파와 같은 A등급이다.

C급 지모에 수십 개의 특기를 먹인 끝에 A급 귀계(鬼計)를 얻었다.

반면 선동(煽動)은 아예 새롭게 얻은 A급 특기였다.

호소력과 전달력이 대폭 상승했다.

'특기를 죄다 5레벨까지 올리느라고 소모한 승급권이 도대체 몇 장이냐.‘

남천휘가 한 숨을 내쉬는 순간 문사 중 한 명이 물었다.

“회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애초에 천문나진법에 도전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저 자 또한 남천휘에게 논파당한 대상 중 한 명이다. 수십 명의 빈객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켰기에 남천휘는 뒤가 든든했다.

반면 제갈표는 갑작스런 화제의 전환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네 놈의 의도를 내가 모를까! 신무대전에 숨겨진 기물을 훔치기 위해서 무림공적인 사부와 함께 온 것이 아니더냐! 한데 네 놈만 내려왔으니 천주봉에서 패악을 부리는 건 분명 사부라는 개종자일 것이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신마대전이 끝나고 백 년. 겉으로 보이는 강호는 평화롭지만, 도탄에 빠졌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이 없구나. 마치 오리가 수면 아래서 허우적거리듯 정파라는 탈을 쓰고 욕념을 숨기지 못했구나! 오호! 통재라.”

울분과 회환이 가득 담긴 외침.

‘자! 나와주시고.’

띠링-

◎ B급 특기 매료(魅了)가 발동했습니다.

- 일정 수준 이상의 호감도를 지녔던 대상에 한하여 신뢰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한 마디로 매혹됐다는 의미였다.

남천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연거푸 한 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신마대전 이후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자취를 감췄소. 하나 그들이 사라졌을 뿐 추종세력은 여전히 암중에서 강호 전복을 노리고 있다오. 그들을 가리켜 일원이라고 합니다.”

제갈표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일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림맹은 백결공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일원의 존재를 구파오가에 알렸다. 그렇기에 이곳에 모인 자들 또한 일원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과 접점이 없었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을 뿐이다.

“흥! 일원을 여기에 가져다 붙이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걸 제갈세가주에게 묻고자 하오.”

남천휘는 제갈표는 응시했다.

“뭐라?”

“오래 전부터 정파의 고명한 고인들께서 일원을 징치하기 위해 비경회를 발족했소.”

일원은 알아도 비경회는 모르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남천휘는 품에 손을 넣었다.

철패를 읊조리는 순간 인벤토리에 있던 비경회의 증표가 손에 잡혔다.

그는 일청대사에게서 받은 철패를 높이 들었다.

“소림의 일청대사께서 주신 명패요. 이름 없이 활동하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이 명패를 주고받았소.”

다시 품에 손을 넣어 또 다른 철패를 꺼냈다.

이건 무림맹주가 현월회를 입맹시키기 위해 선물로 준 것이다.

‘일단 줬으면 어떻게 사용하든 내 마음이잖아?’

남천휘는 두 개의 명패를 내밀며 외쳤다.

무림맹에서 문상으로 있던 백결공은 일원이 주구였음이 밝혀졌소. 그리하여 무림맹주와 총군사께서 일원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내게 이 명패를 맡겼소.“

중인이 웅성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남천휘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나타난 이유는 제갈세가에서 암약하는 일원을 일망타진하기 위함이 된다.

쾅!

제갈표가 발을 굴렀다.

청석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놈! 감히 수백 년 간 정파의 한 축이었던 제갈세가를 모함하려는 게냐?”

하나 남천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주변을 살피지 않아도 쉼 없이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의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뜻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원을 징치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소. 현월회 또한 일원을 없애기 위한 한시적인 조직일 뿐이외다. 처음 신공부 내에 일원이 스며들었고, 그 뿌리가 청도문에 있음을 알았지. 또한 만병보고의 일을 통해 일원의 세력이 산동성 전체에 퍼져 있음을 알게 됐소!”

선후 관계를 논하자면 뒤섞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것을 반박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이검인 남궁재야와 천응검후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외다.”

두 사람은 황보세가에서도 그렇고, 활용도가 상당한 존재였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호북성의 명물이라도 몇 개 사다가 선물해야겠다.

“크하하하! 이 자리에 없는 자를 뒷배로 세우려는가? 그렇다면 나는 소림의 방장을 뒷배로 삼겠다. 그가 내 말을 증명할 것이다.”

남천휘는 혀를 찼다.

“황보세가에서 현월회의 창립을 선포한 후 나는 일청대사와 함께 중요한 서류를 살폈소. 그리고 제갈세가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 그 증거는 조만간 일청대사께서 가지고 오실 게요!”

제갈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산동성 내에서 일원이 암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 그들은 좌사의 계파가 아니던가.

우사의 오행좌 중 목좌(木座)를 맡은 제갈표와는 일면식도 없는 자들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스스로 일원임을 자랑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허허, 개소리군. 어떻게 해서든 본가를 옭아매서 혈사를 일으키려는 겐가? 네 놈이야 말로 일원이 아님을 어찌 증명할 텐가!”

그 때 송청풍은 침음을 흘렸다.

마교의 사대마종 중 암흑군중은 필법으로 유명했지만, 본래 지자의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순간 제갈표의 대꾸 중 의아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그저 부정하면 될 텐데. 제갈세가주는 반문을 하는군. 진정 억울한 사람은 일관되게 자신의 결백함을 밝히려 할 뿐외다. 한데 가주는 어째서 결백함을 증명하는 대신 현월회주와 함께 진창을 구르려 하십니까.”

제갈표는 송청풍의 일침에 한순간 표정을 굳혔다.

그는 진법과 기관은 물론이고, 천하에서 가장 해박한 지자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일원수마저 주기적으로 복용한 탓에 천뇌라 불리워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나 가주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가 이런 종류의 말싸움을 경험한 적은 전무했다.

“송 대인! 말을 갈아탔다고 해서 예의조차 잃은 게요? 제갈세가의 녹을 먹었으면서 감히 누구를 의심하는 게요?”

송청풍은 말을 아꼈다.

하나 주변의 문사들은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송청풍이 맥을 짚었음에도 제갈세가주는 여전히 감정적인 대응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머릿속에 ‘설마?’라는 두 글자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체로 본가를 음해하려는 건가? 모두 정신 차려라! 저 자의 말은 모두 뜬구름 잡기에 불과해. 명확한 사실 관계만 파악해라. 놈은 공적이나 다름없는 사부와 함께 나타나 본가의 신무대전을 노렸다. 본가는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저들에게 천문나진법을 펼쳐주었어. 그 결과 저들은 뜻대로 천주봉에 올랐고, 이 사달이 벌어졌다! 한데 누가 누구를 의심하는 겐가? 그러고도 너희들이 천의를 궁구하고, 천하를 경영하려는 재자라 할 수 있겠는가!”

짝짝짝짝!

남천휘가 박수를 쳤다.

“네, 감정에 호소하는 개소리 잘 들었고요.”

“이 버릇없는 놈!”

“내 버릇은 호불호가 명확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말을 끝내며 문사들을 돌아봤다.

문사들은 천문나진법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형편없이 패배했지만, 끝까지 예의를 갖춰준 남천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순간 잠시 고요했던 천주봉에서 연거푸 굉음이 터져나왔다. 이제는 정상에서 삼분지 일을 내려온 지점에서 폭발이 연이었다.

그 때 내원 쪽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방관하듯 지켜봤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왔군.’

배우가 모두 등장했으니 절정으로 치달을 차례였다.

남천휘는 천주봉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 백두, 아! 백두는 내가 사부라는 작자에게 붙인 별명이외다. 제갈세가주가 백두를 걸고 넘어지니까 설명을 해주리다. 백두의 죄악은 명백하오! 가주도 인성합니까?”

“당연하지! 놈은 시간만 주어졌다면 분명 무림공적이 됐을 것이다.”

제갈표의 일갈에 남천휘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내가 잡았잖소.”

“뭐, 뭐라고?”

남천휘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잡았소. 금제를 걸어놓고, 무림맹으로 압송하던 중이었지. 한데 일청대사의 급한 연락을 받고 제갈세가에 오게 된 것이외다.”

송청풍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남천휘의 말에 작은 어폐를 찾아냈다.

하나 현월회주에 대한 신뢰감이 생긴 상태였기에 잠자코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남천휘는 당당하게 외쳤다.

“놈이 이곳에 와서 패악을 부렸소이까?”

문사들은 말이 없다.

제갈세가의 가솔들 또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제갈표를 바라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부는 제갈세가에 도착한 이후 그림자가 된 것처럼 존재감을 상실했다. 외원의 팔대와 내원의 핵심들도 모두 남천휘에게 패배하지 않았던가.

“놈을 금제해놨지만, 이곳에 둘 수는 없었소.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끌고 올라갔지. 그리고 그는 ‘저 자’에게 죽었소.”

“개소리!”

남천휘는 당당히 외쳤다.

“지금부터 내 말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하시오. 천주봉 정상에는 신무대진 외에 또 다른 진법이 펼쳐져 있소. 그리고 그 안에 신무대전이라는 초옥이 존재했지. 그 안에 일원수가 있었을 게요.”

제갈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만에 하나 남천휘가 신무대전에 발을 들였다고 치자. 그래도 일원수라는 명칭을 알고 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은 ’하늘‘과 우사만이 알고 있는 이름인데······.’

남천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본래 가주가 될 수 없었어. 한데 머리를 맑게 해주는 마약의 일종인 일원수를 사용해서 지지 세력을 결집했지.”

“아니다.”

“신무대전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전해져왔는지 한 번 알아볼까? 분명 당신이 가주가 되기 위해 애쓰던 시점부터 퍼졌을 게야. 그리고 당신이 가주가 된 후부터 천주봉은 출입이 금지됐지. 설령 세가의 직계라고 해도 말이야.”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비경회가 단독으로 입수한 연판장이 있다!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원수를 얻어먹은 자들이지. 내원주 제갈길! 외원주 초계황! 그 밖에 제갈상서, 제갈우, 제갈숙, 제갈상신, 안재모등! 알려진 자들만 이 정도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남천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원수를 나눠 마시든, 혼자 마시든 상관없어. 하나만 묻겠다. 도대체 일원수는 누가 줬는가?”

제갈표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 자리에서 일원우사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 않은가.

남천휘가 팔을 들었다.

그의 손끝이 점차 천주봉을 가리켰다.

“일원수를 주고, 그 대가로 은신처를 얻은 자.”

웅성거림이 극에 달했다.

남천휘가 쐐기를 박듯 일갈을 내질렀다.

“사! 령! 신! 그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배덕자의 이름이야 말로 제갈표가 아니더냐!”

제갈표는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나는 그쪽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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