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신의 한수.
113, 신의 한수.
희열(喜悅).
북경의 유명한 악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본연의 감정인 기쁨과 즐거움을 뜻한다.
희열을 느끼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한없이 넓은 강물에 얇은 줄 하나를 던져 넣고, 물고기를 낚는 행위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또는 눈 덮인 산을 헤매며 산삼을 찾는 행위로도 희열을 느낄 터였다.
하지만 이처럼 시간을 들여야 하고, 고초를 겪어야 하는 상황을 즐거워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결국 빠르고, 쉽게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이 도박이다.
평정심을 잃는 순간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되어버리는 악마의 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적은 가능성에 자신을 걸 수 있는 과감함을 지녔다면 성공의 지름길이 되어 주리라.
탁탁탁탁!
‘왔다!’
까맣게 물든 세상에 활과 화살을 든 인형이 나타났다. 머리와 몸통의 비율이 똑같은 녀석이 방긋 웃으며 화살을 흔들었다.
그러자 두 개의 선택지가 등장했다.
《11회 연속 1500》《1회 150》
입춘대길 특별행사의 영향으로 자수종의 소모가 절반으로 줄었다.
하나 일희일비하지 말자.
얼마를 투자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몇 배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돌림판이 나타났다.
수백 개로 나뉜 구역 중에서 금빛으로 번뜩이는 위치가 존재했다. 손가락의 주름만큼이나 좁은 구역이었지만, 걸리기만 한다면 신화급 보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
‘아무리 넓어도 걸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아직은 일희일비 할 때가 아니다.
- 천휘 친구! 회! 회! 회! 판! 큰 소리로 외쳐주세요.
인형이 돌림판을 돌리기 위해 구호를 종용했다.
하나 남천휘는 특별 행사의 남은 시간을 확인한 후 말을 건넸다.
‘11회 짜리, 속도 두 배로!’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남천휘가 회회회판을 읊조리는 순간 돌림판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그리고 인형이 활시위에 걸었던 활을 쐈다
텅-
그것은 중간 지점에 이르러 열한 개로 분화됐다.
남천휘는 그 순간 불굴과 통찰을 발동했다.
◎ 시스템 관련 항목에 관해서는 특기 발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래, 익히 알고 있다.
공정함을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더라.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그저 남천휘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변명이리라.
그렇기에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다.
‘돌림판 말고, 나한테 쓸 거야.’
재이는 별 말이 없다.
그리고 특기가 발동했다.
‘이제 회회회판의 결과가 어찌됐든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불굴과 통찰을 발동하고, 자신의 혈인도를 띄웠다.
매순간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생리적 작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감이 아닌 육감으로!’
그 순간 인형이 안타까운 듯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 숫돌, 적선단, 주문서, 확인서, 보도······.
딱히 눈여겨볼만한 보상은 없다.
한 마디로 꽝이다.
- 천휘 친구. 회회회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형은 장차 변사라도 되고 싶은 건지 계속 말을 걸어왔다. 가볍게 무시하며 냉담한 한 마디를 건넸다.
‘11회 연속. 지금부터 내가 멈출 때까지 자동으로 돌려줘.’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
하나 남천휘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동물마저 발길을 끊은 설산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기다릴 것이다.
‘버틴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때가 온다!’
꽝! 꽝! 꽝! 꽝! 꽝!
갈아버릴 것 천지로구나.
하나 남천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인형의 시간이다. 곧 자신의 시간이 오리라.
텅!
재차 화살이 발출됐다.
꽝! 꽝! 꽝! 꽝! 꽝!
흔들리지 않는다.
이 때를 위한 불굴이 아니던가.
20,000 개의 자수정을 소모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직 440,000개에 달하는 자수정이 대기 중이다.
그야 말로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의 제 2막을 통과하는 내내 아껴뒀던 비장의 무기였다.
그렇게 20,000개를 더 소비했다.
그 순간 등허리가 서늘해지고, 손끝이 떨려왔다.
이건 조급함이 아니다.
그 증거로 혈인도의 머리 쪽에서 혈류의 흐름이 급박해졌다.
지금이다. 이 느낌이야.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고 진저리를 치는 느낌이었다.
“멈춰!”
돌림판이 멈췄다.
‘단발로.’
인형은 별다른 기색 없이 한 발을 쐈다.
녀석의 표정은 전과 다름이 없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을 터였다.
화살이 적중했다.
점차 돌림판의 회전 속도가 느릿해진다.
그리고 화살은 금빛 과녁을 꿰뚫은 채 파르르 꼬리를 떨었다.
됐다. 진짜 됐네?
남천휘는 빠르게 호흡을 조절했다.
‘흥분하지 말자.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
- 아! 천휘 친구. 신화급 무작위 상자가 나왔네요. 축하해요. 회회회판을 통해······.
너랑 말 섞을 시간 없다.
‘속도 더 빠르게.’
한 번 떴으니 당분간은 안 뜨겠지.
속도를 최대로 하여 열 배의 속도로 진행했다.
남천휘는 귀로 당첨 물품의 종류를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져 있는 신화급 무작위 상자를 바라봤다.
그 사이에도 돌림판은 계속 돈다.
안달이 난 재이가 알림을 울렸다.
◎ 입춘대길 특별행사의 잔여시간이 00:02:14입니다.
남천휘는 등허리가 찌릿해지는 순간 다시 한 번 검지를 들었다.
‘단발로.’
이 시간이 끝났을 때 특기 도황(賭皇)이 생성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제갈세가의 가주를 비롯해 가솔들이 모두 모였다.
하나 오와 열을 맞추기는커녕 저마다 뭉쳐서 웅성거리가 바빴다.
“하늘이 노하신 건가?”
진리를 궁구하는 문사와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하나 누구도 그런 문사를 탓하거나, 비웃지 못했다.
쿠쿠쿠쿵!
그도 그럴 것이 천주봉 전체가 요동을 쳤다.
쿠쿠쿠쿵!
그럴 때마다 제갈세가에게 신기묘산(神技妙算)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던 신무대진이 춤을 췄다.
쿠쿠쿠쿵!
당장 천주봉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가주.”
내원의 군사 중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제갈숙과 외원주 초계황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제갈표를 따라 동위의 마천종에 귀의한지 오래였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초계황의 말에 제갈숙이 말을 받았다.
“설마 일원수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제갈표는 침묵했다.
천주봉 정상은 우사인 마천종이 하늘의 가르침을 펼쳐놓은 비처였다. 특히 제갈세가의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일원수(一元水)는 강대한 진법에 숨겨져 있었다.
허락받지 않은 자는 초옥이 존재하는 것도 알 수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두 사람은 정상을 헤매다가 내려왔어야 했다.
‘현월회주와 사부는 일원이 아니니 초옥을 볼 수 없어. 그러니 일원수가 있는 것도 모르겠지. 결국 신무대진에 갇히거나, 돌아 나오는 길에 파진악을 만나야 했어.’
그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천주봉 전체를 뒤흔드는 기운은 일견하기에도 신무대진으로 인함이 아니었다. 또한 파진악과 그 수하들은 저런 재주를 부릴 능력이 없지 않던가.
‘만에 하나 일원수를 건드렸다면······.’
일원수의 정체는 그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하늘이 허락한 기물이었다.
마시는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개안하는 듯했다.
그로 인해 막혔던 논리와 무리를 해석했고, 제갈세가의 가주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제갈표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만 천주봉에 올려보냈다. 그들에게 일원수를 허락한 후 수족으로 삼은 게다. 그렇기에 일원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결책을 알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천주봉은 융중산 전체의 영기가 뭉쳐드는 곳이야. 설마 일원수로 인해 산 전체에 문제가 생긴 걸까?’
이럴 때에는 머리가 너무 좋아도 문제였다.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없이 많은 가설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에 파고들수록 결과는 암담하기만 했다.
제갈표는 남천휘를 흘겨봤다.
놈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크흑, 저런 놈 때문에······.’
제갈세가는 고래로부터 모든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강호에는 간간히 제갈세가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했다.
그들을 가리켜 불가해(不可解)라 일컬었다.
아군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없는 셈 쳤다.
한데 이번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남천휘가 아니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복잡한 문제일수록 쉽게 풀린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평소였다면 머리 나쁜 자들의 변명이라고 치부했을 터였다.
그러나 적진에 홀로 앉아서 좌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죽일까?’
솨아아아-
제갈표의 좌수에 묵빛의 기운이 아른거렸다.
가솔들은 천주봉을 올려다보느라 여념이 없고, 남천휘는 운기조식에 한창이다. 뒤로 다가가서 가볍게 혈도만 찔러도 죽일 수 있으리라.
스윽-
그는 소리 없이 한 걸음을 뗐다.
한데 그 순간 지금껏 침묵하던 남천휘가 한 마디를 흘렸다.
“멈춰!”
제갈표는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다.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 강대한 결의가 담긴 한 마디는 마치 주술처럼 전신을 옥죄었다.
가솔들이 갑작스런 외침에 남천휘를 돌아봤다.
‘쯧.’
제갈표는 암습을 포기했다.
가솔들도 뒤늦게 이 상황의 설명은 남천휘만이 가능함을 깨달은 것이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냥 깨웁시다. 보기 편한 상황도 아니잖소.”
하나 여전히 장내에 남아 있던 빈객들이 만류했다.
이미 남천휘에게 마음 깊이 경외심을 품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 무도한 말을 어찌 한단 말이오.”
“이것은 단순한 천재지변과 다른 것 같소이다. 그러니 현월회주께서 깨어나시면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콰콰콰콰콰쾅!
그 순간 천주봉에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일견하기에도 굉천뢰 수백 개를 동시에 터트린 듯한 폭발이다.
제갈표는 미간을 좁혔다.
화륜마왕의 비전인 화륜대폭진(火輪大爆陣)이 발동했다. 파진악을 비롯한 좌사의 수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들어낸 무언가도 함께 증발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나 숨을 두어 번 고르기도 전에 재차 굉음이 울렸다.
쿠쿠쿠쿵!
‘화륜대폭진에도 죽지 않았어?’
이쯤 되면 제갈표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굉음에 이어 붉은 빛이 사선으로 솟구쳤다.
붉은 빛을 따라 수십 그루의 나무와 바위 조각이 흩날리는 광경은 소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때 빈객 중 한 명이었던 송청풍이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한 마디를 읊조렸다.
“마관광살기.”
빈객들은 뜻하지 않은 명칭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관광살기(魔貫狂薩氣)는 신마대전 당시 사령신이 괴겁천마를 죽이겠다고 자랑하던 무공이 아니던가.
‘저 자가 어떻게 마관광살기를 알아봤지?’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표라고 해도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가 송청풍을 경계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남천휘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허망한 눈빛으로 천주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솔들은 남천휘의 눈빛만으로도 작금의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누구도 섣불리 말을 걸 수 없을 정도였다.
“하아.”
남천휘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500,000개에 육박하던 자수정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눈을 감았다가 뜨면 산처럼 쌓여 있던 자수정이 보일 것처럼 아른거렸다.
‘공정하기는 개뿔.’
남천휘의 짜증 섞인 한 마디에 호응하듯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E급 특기 '망신(亡身)'이 활성화됐습니다.
- 도박을 했을 때 승률이 저하됩니다.
- 자제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 회회회판은 예외입니다.
예외면 무엇 하랴.
‘어차피 꽝인 걸.’
남천휘는 가슴 속의 울화를 토해내듯 장탄식을 했다. 몇날며칠을 하소연해도 흉중의 울화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제갈표의 일갈이 그를 현실로 불러왔다.
아! 잊고 있었다.
남천휘는 천주봉을 올려다보며 뒤늦게 백두를 떠올렸다.
◎ 신무대진의 파괴되고 있습니다.
- 손상률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 손상 비율은 25%입니다.
“이 놈! 죽고 싶으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장 고하거라!”
남천휘는 그제야 제갈표를 바라봤다.
일견하기에도 제갈세가의 가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적개심으로 보아 일원의 주구임도 확인했다.
황급히 남위기로 검색을 했다.
‘할 말이 없을 때 대응하는 방법.’
남천휘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제갈표를 바라봤다.
잠시 후 울분이 가득 담긴 싸늘한 한 마디가 꽂혀들었다.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군! 도대체 천주봉 정상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