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59화 (259/305)

113, 신의 한수. (3)

남천휘의 일갈에 호응하듯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띠링-

◎ 'xxx'의 명칭이 거론되었습니다.

◎ 산혼자의 정체를 사령신으로 추정합니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더냐?

부르면 안 되는 이름도 아니고 말이야.

하나 그것과 별개로 시스템 알림창에 사령신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지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우! 씨, 글씨로 써놔도 그지 같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사령신이 와서 잡아간다는 협박만큼 주효한 것이 어디 있으랴.

남천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형들과 함께 사고를 쳤을 때마다 안자영은 사령신과 괴겁천마를 거론하곤 했다. 이야기만으로도 두려웠기에 형들의 침소로 기어들어갔던 횟수만 해도 수십 번이다.

‘추정이라면 확실한 건 아니지?’

솔직한 속내로는 진짜 사령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껏 백두를 대머리라고 놀린 것을 소심하게나마 반성해 본다.

설마 하산하자마자 대머리라고 놀린 놈을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는 건 아니겠지.

하나 재이는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띠링-

《3-3 사령신을 막아라.》

- 이번 퀘스트로 인해 천하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 사령신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하산 중입니다.

- 천주봉 전체에 펼쳐진 신무대진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야! 사령신이라고 말로만 추정할 뿐 진짜처럼 대하고 있잖아.

재이는 남천휘의 타박에 SS급 주특기를 발휘했다.

◎ 신무대진 파괴까지 남은 시간은 01:13:33입니다.

남천휘는 재이의 말돌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제한시간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누가 담대하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랴.

‘그나마 신무대진이 대단해서 다행이네.’

살아생전 제갈세가를 향해 고마움을 표시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나 남천휘의 심경과 별개로 신무대진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절진이다. 남천휘에게 효과가 없을 뿐 사령신마저 반 시진 이상 가둬두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어쩌면 괴겁천마가 사령신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진법이 아닐까 싶다.

‘왜? 뭐? 산혼자가 사령신이면 산신자는 괴겁천마잖아. 내가 바보냐?’

◎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이 녀석이 사람을 바보로 아는 구나.

그럼 산신자(散身者)가 소림 방장이나, 무림맹주일 수도 있다고 우겨보렴.

됐고, 보상이나 내놔 봐라.

◎ 사령신의 도주로 퀘스트 성패가 결정됩니다.

- 성공 시 호북성에 대한 지배력을 얻습니다.

- 실패 시 사망합니다.

※ 퀘스트의 난이도 보정으로 인해 조력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깔끔한 보상도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그나저나 적진의 한복판에서 쓸 만한 조력자를 어떻게 얻어야 할까.

남천휘는 굉음이 연거푸 울리는 천주봉과 일정한 속도로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일단 제갈표의 정체부터 까발려야겠군.’

*

충격.

남천휘의 일갈은 단순히 제갈표의 말문만 막히게 만든 것이 아니다.

충격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령신(邪靈神).

그것은 존재하되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악귀였다.

강호를 피바다로 만들었음에도 누구 한 명 탓하지 못했다. 그저 천재지변처럼 하루 빨리 지나가기를 기원했을 뿐이다.

무인들은 괴겁천마와 사령신의 사라졌음에도 흔적을 좇지 않았다. 누구 한 명 그들의 실종에 의문을 품지 못했다. 존재하되 사라진 것만으로 만족할 만큼 괴겁천마와 사령신을 금기시했다. 오죽 했으면 마관광살기가 등장했음에도 사령신을 거론하는 자가 한 명도 없었겠는가. 그야말로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저주에 걸릴 것처럼 두려운 존재였다.

한데 남천휘가 사령신이라는 세 글자를 입에 담았다. 당사자인 제갈표는 물론이고, 내원의 연무장에 모인 수백 명의 군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갈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본래 논쟁이란 일정한 법칙을 지녀야 마땅했다.

달을 논할 때에는 달에 대한 주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는 달에 대한 반론을 준비한다. 그렇게 같은 주제를 두고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논쟁이 이뤄진다.

한데 남천휘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남천휘는 일원과 제갈표를 연관 지어 몰아붙였다. 제갈표로서는 일원이 아님을 반박하기 위해 몇 가지 주장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반론으로 남천휘를 궁지에 몰아넣을 요량이었다.

‘저, 저 미친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괴겁천마도 아니고 뜬금없이 사령신을 가져다 붙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남천휘의 말대로라면 제갈표는 일원수를 얻기 위해 사령신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것이 된다. 심지어 사령신을 감춰주기 위한 장막으로 신무대진을 펼쳐놓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 제갈표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제아무리 어리석은 자라고 해도 사령신과 거래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거꾸로 생각해보니 그런 논리라면 괴겁천마와도 연결되지 말아야 했다.

결국 반박하기도 뭐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주변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설마 저 놈의 되도 않는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제갈표는 미간을 좁혔다.

수십 년 간 제갈세가의 가주로서 영예를 누리지 않았던가. 생각지도 못한 놈에게 질질 끌려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놈! 듣자듣자하니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네 놈과 사부가 천주봉에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령신으로 보이는 괴인이 등장했으니 네 놈의 수작이 있었다고 봐야 앞뒤가 맞지 않더냐.”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내가 어찌 알아!”

“일원수를 먹여서?”

제갈표는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일원수에 대한 의문을 반박하는 순간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일원수가 어떻게 생성됐고, 일원수의 능력은 머리만 좋아지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계속 말꼬리만 잡고 늘어지는구나.”

제갈표는 남천휘가 그러했듯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말을 끊었다.

하나 남천휘에게 시간은 VIP 포인트와 같았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오늘의 일은 비경회의 철저한 계획 하에 이뤄진 일이외다.”

제갈표가 눈을 빛냈다.

드디어 놈이 꼬투리를 남겼다.

“크하하하! 말 끝마다 비경회를 들먹이는구나. 도대체 비경회의 존재 유무를 누가 증명한단 말이냐? 네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청대사라도 불러와보려무나.”

한데 남천휘는 당황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한 숨을 내쉬었다.

“하아, 처음에 말했듯 천하를 좀먹는 벌레들이 너무 많소. 그렇기에 비경회는 언제나 부족한 인력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오.”

이거 거짓말은 아니잖아?

남천휘는 어깨를 펴고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적은 암중에 있거늘 비경회가 어찌 마음 편하게 모습을 드러내겠소. 다만 이곳에 모인 재자들 또한 같은 의문을 품었을 겁니다. 그 의문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재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까 비경회에는 제갈세가주와 더불어 일원수를 음용한 자들의 연판장이 있다고 했소.”

제갈표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서?”

“그들이 이 자리에 있을 거요. 모두 불러주시오.”

“내가 왜?”

“꺼릴낄 것이 없다면 제갈세가의 가솔이 세가 내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소. 그리고 그들에게 몇 마디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요. 그래도 안 되겠소?”

제갈표는 남천휘의 꿍꿍이를 알아내려고 미간을 좁혔다. 하나 남천휘는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롭기만 했다.

‘어차피 일원수를 마셨다고 해서 마기가 생성되는 건 아니니······.’

대부분의 문제는 세가 내부의 사정으로 치부하면 될 터였다.

제갈표가 손짓을 하자 몇 명의 중년인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나섰다.

“여러분! 저들의 얼굴을 잘 보십시오.”

“크흑! 네 놈이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라!”

외원주 초계황이 살기를 드러냈다.

하나 남천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갈길은 팔 년 전 늦여름 즈음 일원수를 복용했소. 초계황은 구 년 전 중양절, 제갈상서는 육 년 전 초봄, 제갈우와 제갈숙은 십일 년 전 원단, 안재모는 작년 장마가 한창일 무렵 제갈표를 따라 신무대진을 통과했지. 그리고 그 즈음 일원수를 마셨을 거요. 내 말이 틀린가?”

정확했다.

제갈표조차 한순간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자신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을 어찌 남천휘가 알고 있단 말인가.

그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은 더했다.

특히 초계황은 천생이 무골인지라 감정을 숨기는 재주가 부족했고, 안재모는 이제야 서른 줄을 넘긴 백면서생이 아닌가. 특히 안재모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획을 짜는데 능할 뿐 이처럼 많은 사람 앞에 나선 적도 없었을 터였다.

“내 말이 틀렸냐고 물었다. 비경회의 정보에 의하면 너희들은 일원수라는 큰 기연을 통해 장족의 발전을 이뤘어. 다시 한 번 묻겠다. 내 말이 틀리더냐?”

남천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VIP 2000점이나 값을 치르고 확인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건 제갈석이라는 자다.

제갈세가는 유구한 세월 동안 오대세가에 꼽힐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런 곳의 가주가 쉽게 정해졌을 리 없지 않은가.

서열이 낮았던 제갈표는 일원수를 매개채로 하여 수많은 모략과 귀계를 펼쳐왔다. 그 말은 곧 모략과 귀계에 당한 반대파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반대파는 스스로를 가리켜 천문회(天文會)라 칭했다.

그리고 천문회의 회주가 전대 가주였던 제갈학이다.

제갈학의 계보는 대대로 가주 자리를 지켜왔다.

한데 백수십 년 만에 방계나 다름없는 제갈표가 가주 자리에 도전했다.

그렇기에 천문회는 제갈표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부터 모든 재화를 총동원하여 정보를 모았다.

제갈석은 천문회 내에서 정보를 관장하는 자였다.

그는 주기적으로 제갈학에게 제갈표와 일당에 대한 동향을 보고서로 남겼고, 천문회는 그것을 통해 대응책을 모색했다.

남천휘는 남위기의 심화 검색을 통해 그 보고서를 발견한 것이다. 당연히 제갈표를 비롯한 수족들이 천주봉을 오갔던 기록이 고스란히 존재했다.

- 천주봉에 숨겨둔 것이 제갈표의 진실 된 힘이다.

이것이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제갈표의 수족 중 안재모에 대한 정보도 존재했다.

- 방대한 지식을 통해 병적으로 치밀한 계략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외부 출입이 드물고, 타인을 대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지닌 듯하다.

한 마디로 새가슴이다.

남천휘는 슬쩍 손을 들었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재자들이 한순간 입을 닫았다.

남천휘의 말마따나 저들의 표정만 봐도 무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지휘자를 따르는 악사처럼 움직였다.

“상현당의 안재모!”

가장 끝에 서있던 안재모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그러시오?”

“왜 그래? 사령신을 깨워놓고도 왜 그러냐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안재모는 손사래를 쳤다.

“나는 모르는 일이외다.”

남천휘는 내력을 담아 발을 굴렀다.

콰쾅!

그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청석이 으스러졌다.

동시에 안재모를 향해 내력을 흘려보냈다.

‘되나?’

◎ 특정 대상 안재모에게 특기 ‘억압’이 발동합니다.

됐다.

새가슴이라기에 조금만 겁을 줘도 먹힐 것 같았다.

“상황이 이리 되었는데도 발뺌을 할 생각인가! 당장 사령신이 산을 내려오면 천하가 피로 뒤덮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 놈은 강호를 피바다로 만든 원흉이 되어 수천 년 간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 것이야!”

초계황은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몸을 날렸다.

그는 남천휘와 안재모 사이를 막아선 채 발을 굴렀다.

쿵!

“개소리! 어디서 되도 않는 누명을 씌우려 하느냐?”

하나 초계황의 난입보다 안재모의 새가슴이 더 큰 역할을 했다.

“나는 진짜 모르오. 그저 가주께서 자신을 따라오면 기연을 얻게 될 것이라 했을 뿐이외다. 그리고 나는 일원수도 조금만 마셨소. 현월회주의 말처럼 반 년 밖에 되지 않았소이다. 그러니 나는 관계가 없소. 그저 나는 가주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외다.”

제갈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재모는 사령신과의 관계를 부정하려 했을 터였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지금껏 받아들인 정보에 안재모의 변명을 더한다면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도출될 터였다. 바로 사령신을 깨운 건 그가 아니라 제갈표라는 결론이었다.

“맙소사!”

아니나다를까 누군가를 시작으로 경악으로 인한 탄식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제갈표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천휘의 말은 증거가 없으니 공허한 궤변이라 여겼다. 한데 어느 순간 이곳에 모인 자들은 미혼술에 당한 것처럼 남천휘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막아야 한다!’

제갈세가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라도 말이다.

그가 내력을 담아 일갈을 내지르려는 순간이었다.

텅!

누군가 지팡이로 청석을 내리쳤다.

청석은 깨지지 않았지만, 묘한 쇳소리가 음률처럼 퍼져나갔다.

“흐음, 본가가 사령신의 재림과 관련이 있다니······. 좌시할 수 없는 문제로구먼.”

허리가 낫처럼 구부러진 노문사를 필두로 수십 명의 문사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노문사의 곁에 있던 청년이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태상가주께서 오셨습니다.”

제갈세가의 가솔은 물론이고, 빈객과 무인들까지 예를 표했다.

하나 남천휘만 삐딱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저 멀리서 기회만 엿보고 있던 자들이 아니던가.

‘권력에서 밀려났던 천문회까지 나타났으니 이제 하나만 더 모이면 큰 그림 완성이다.’

남천휘는 슬쩍 서쪽을 바라봤다.

안개에 휘감긴 융중산으로 인해 시계가 어지럽다.

하나 그 너머에는 융중산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대단한 명산이 존재할 터였다.

‘무당까지 반 시진만 다녀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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