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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225화 (225/305)

100, 패왕별희

100, 패왕별희

중원은 광활하고, 강호는 크기 자체를 가늠할 수 없다. 제아무리 경신법의 고수라고 해도 성과 성 사이를 오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해도 소식이 퍼지는 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소식을 접하는 이들이 있었다.

무림맹과 오가를 비롯해 천산에 은거한 마교, 그리고 이제는 사분오열됐다는 천사련에도 산동강호의 정세가 전해졌다.

마교나 천사련의 반응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황보세가가 망했다고? 알았네.’

‘산동성의 주인이 바뀌었어? 그렇군.’

그도 그럴 것이 마교의 위치는 청해성의 천산산맥이 아니던가. 산동과는 극과 극의 거리였다. 천사련도 마찬가지로 남해의 끝이나 다름없는 광서성과 광동성을 터전으로 삼았다.

옆 동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세상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곡부와 천산, 그리고 남해를 선으로 이으면 강호에서 가장 거대한 삼각형이 될 터였다.

반면 무림맹이나 오가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구파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일만 아니라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가는 황보세가의 몰락으로 인한 손익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무림맹은 혼란에 빠졌다.

“황보세가는 무림맹의 주축 중 하나입니다. 황보세가가 무너졌다는 건 곧 무림맹에 대한 도전입니다!”

매파의 반응은 격렬했다.

기득권에 속한 그들로서는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비둘기파는 명분을 무기로 대응했다.

“황보세가가 먼저 일을 벌였답니다. 게다가 살상자도 많지 않았어요. 그저 황보세가의 가주와 수뇌부가 전패했을 뿐입니다. 사실상 무림맹이 나서기에도 애매한 사건이지요.”

무림맹의 총군사인 광목진인이 자신의 탁자에 놓였던 목패를 던졌다.

딱-

회의장 중앙에는 십여 개의 목패가 쌓여 있었다.

내원과 외원의 중진들이 발언할 때마다 던졌기 때문이다. 한데 광목진인이 던진 목패가 둔탁한 소리를 내는 순간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천안당주.”

무림맹의 정보를 관장하는 천안당의 당주가 손을 모았다.

“말씀하시지요.”

“명분은 남천휘에게 있었는가?”

“그것이 참으로 공교롭습니다. 황보세가의 말단 학사였던 자가 있는데 그가······.”

그는 말끝을 흐렸다.

대전의 가장 상석에 앉은 노인이 하품을 했기 때문이다. 맹의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하나 무례함을 탓하는 이가 없다.

그가 맹의 주인인 칠절신군이기 때문이다.

“맹주, 피곤하십니까?”

군사의 말에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제 밤을 새워서 연공을 했더니 뼈마디가 쑤시는구려.”

“그래도 맹의 중요한 일이니 집중하시지요.”

맹주는 침음을 내뱉었다.

“정마대전도 아니고, 황실이 강호를 탄압하는 것도 아니며, 외적이 장성을 넘은 것도 아니잖소. 이게 정녕 중요한 일이던가?”

장로 중 한 명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구파오가는 무림의 중심으로······.”

하나 그는 맹주의 시선을 받자자마 말끝을 흐렸다.

“누가 그래? 무림맹은 강호의 안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야. 비록 구파오가가 구심점을 이뤘다지만, 대의는 강호의 안녕일세. 구파오가의 문제는 저들끼리 해결해야지. 그걸 왜 맹으로 끌고 와? 이보시게. 군사.”

“말씀하시지요.”

“무당이 능력이 없어서 쇠락하면 맹이 나서야 하는가?”

장내의 중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당파는 광목진인의 사문이 아닌가.

심지어 무당의 장문인은 광목진인의 사제였다.

한데 당사자인 광목진인은 빙긋 웃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의 섭리입니다. 무당의 섭리가 그러하다면 따라야지요.”

맹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화북가도 마찬가지일세. 아! 혹시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설화북가는 내 집이야. 자! 천안당주. 군사의 말에 다시 답해보겠는가?”

천안당주는 자세를 바로 한 후 대꾸했다.

“명분은 남천휘에게 있었습니다.”

“하면 황보세가와 다투는 와중에 강호의 지탄을 받을만한 일을 했는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 투덜거리듯 한 마디를 흘렸다.

“크흠, 그거야 모르는 거지 않소.”

천안당주는 정보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장로의 한 마디에 미간을 좁힌 채 대꾸했다.

“청하오검이 있었답니다.”

맹주가 무릎을 쳤다.

“아! 청하문. 좋은 곳이지. 그런데 청하문은 황보세가와 연수하지 않던가?”

군사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본래 팔은 안으로 굽어야 하는데. 흐음, 밖으로 펼쳐진 것을 보아하니 암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런 것 같군. 그래서?”

맹주의 마지막 물음은 천안당주를 향했다.

두 사람이 만담을 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 장내의 중진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군사가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맹주, 한데 이것만은 고해야겠습니다.”

중진들이 눈을 빛냈다.

구파오가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군사가 맹주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해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군사는 맹주의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회의에서 발언하시려면 제아무리 맹주라고 해도 목패를 던지셔야지요.”

맹주는 탄성을 흘렸다.

그는 맹주라는 신분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 미안하네. 내가 법도를 어겼어.”

그리고는 탁자에 놓인 목패를 모두 던졌다.

“자! 내 이야기는 이제 끝일세. 군사.”

군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발언권 없이 발언을 한 자는 회의에서 빠져야 합니다.”

맹주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엉덩이를 털고 대전을 떠났다. 그리고 회의의 결과는 맹주와 군사가 의도한 것과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진행됐다.

“맹의 장로가 곡부남가로 파견됐다지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모른 채 당황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그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 상황을 전하도록 하지요.”

군사인 광목진인의 시선이 백결공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백결공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하다가 슬쩍 손을 들었다.

“이번 일의 오판에는 제 책임도 상당합니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 간 일어났던 일 중 가장 커다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니 제가 직접 가서 남천휘를 만나겠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면 적아를 구분할 수 있겠지요.”

광목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아주 좋아. 문상이라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됐다.

광목진인은 대전을 떠나 누각에 올랐다.

그곳에는 싸구려 화주를 병 째 들이키고 있는 맹주가 자리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두 사람은 사적으로 친분이 깊다.

그렇기에 광목진인은 칠절신군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자네가 취객처럼 그러고 나갔는데 잘못될 리가 있나. 뜻대로 되었네. 그러고 보니 취객이 되었군.”

칠절신군은 흰 수염에 묻은 술을 털어낸 후 병을 내밀었다.

“자네도?”

“맹에 있어도 도인은 도인이야.”

“까다롭기는.”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누각 아래를 향했다.

대전에서 빠져나간 중진들이 삼삼오오 모인 채 흩어지고 있었다.

하나 두 사람은 가장 뒤늦게 대전을 나서는 사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일원이라지?”

“점조직처럼 강호 곳곳에서 암약하는 모양이야.”

“남천휘도 일원일까?”

“일원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는가.”

“모르지. 저 자처럼 공을 세우게 해서 우리 쪽에 심으려는 건지도.”

칠절신군은 술병을 기울이며 혀를 찼다.

“의심 많은 말코 같으니라고. 어쨌든 백결공을 맹 밖으로 내보내게 되었어. 이제 어찌할 텐가?”

광목진인은 침음을 흘렸다.

“적아를 구분해야지. 일원이든, 사마외도의 간자든 이 기회에 모조리 일소할 생각이야.”

맹주인 칠절신군은 박장대소를 하며 술병을 건넸다.

“좋군! 그런 의미에서 한 잔!”

“안 마셔.”

백결공은 자신의 뒤통수를 향한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신경은 온통 남천휘에게 쏠렸다. 마치 파리가 하루 종일 눈앞을 맴도는 것처럼 짜증이 치밀었다.

[산동으로 보낸 십이망자는 아직 소식이 없느냐?]

봉황곡을 움직일 때 함께 보냈던 십이망자 중 두 명은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한데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할 호위는 대답이 없다.

그가 죽지 않은 한 이유는 하나였다.

백결공은 표정을 굳힌 채 처소에 들어섰다.

그리고 등을 보인 불청객을 확인했다.

‘역시.’

불청객이 돌아섰다.

백결공은 팔 척 거한을 올려다보는 순간 스스로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대는 일원좌사의 첫 제자이자, 백결공의 사형이다.

파진악(巴眞岳).

백결공의 호위 또한 파진악이 길러냈다.

십이망자와 각 성의 수석 또한 파진악의 손을 거쳤다. 그러니 그가 나타난 이상 호위가 침묵한 것은 당연했다.

“네가 산동에 가게 되었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결공이 미간을 좁혔다.

파진악이 무림맹의 내원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야 놀라울 일이 아니다. 무림맹 곳곳에는 일원의 조직원들이 암약하지 않던가. 하나 방금 전에 정해진 대회의의 결과를 알고 있다는 건 놀라웠다.

“그렇습니다.”

“잘 되었다. 망자 중 두 명을 더 붙여주마. 산동에 대기하고 있는 녀석들까지 하면 넷이다.”

백결공은 인상을 썼다.

소식이 끊긴 줄 알았던 망자가 파진악과는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아끼시던 망자를 넷이나 내어주시는 이유가 뭔지요?”

파진악은 손바닥을 뒤집듯 가볍게 말했다.

“남천휘를 죽여라.”

“제 신분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죽이라고 했다.”

백결공의 입매가 비틀렸다.

하나 파진악은 곧 일원좌사의 입이 아니던가.

어설프게 반발했다가는 그 끝이 좋지 않을 터였다.

“두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사형제 간이다. 얼마든지.”

“산동은 강호의 변경입니다. 풍부한 물산을 제외하면 도드라지지 않지요. 한데 그런 놈이 산동을 먹는다고 해서 대세에 지장이 있을까요?”

백결공의 날 선 물음에 대한 대꾸는 담담했다.

“대세에 지장은 없다. 다만 놈을 죽여야 우사 쪽에 면이 선다. 잊지 마라. 우리가 진짜로 경쟁해야 할 쪽은 무림맹이나 정파가 아니야. 하늘이 도래하는 순간 강호가 평정되는 건 불변의 진리다. 그 때 공과를 나눠 일원의 좌우는 서열을 정할 것이야. 남천휘를 죽여 좌가 건재함을 증명해라.”

“옳습니다. 두 번 째입니다. 어째서 제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부류의 일은 망월량이 전적으로 담당하지 않았던가요.”

그 순간 기류가 바뀌었다.

꽈드득-

파진악이 이를 갈며 노기를 드러냈다.

“막내가 죽었다.”

이번 만은 백결공도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파진악의 눈동자에 맺힌 분노는 진짜였다.

“망자 셋을 붙였는데.”

“모두 죽었다.”

백결공은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사부입니까?”

남천휘가 눈앞의 파리였다면 강남에서 제멋대로 날뛴다는 사부는 곳간의 쥐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쥐가 개로 격상됐다.

그것도 사람을 물 수 있는 미친개였다.

백결공은 불현 듯 얼마 전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강소성에서 사부가 초절정의 고수를 일수에 때려죽었다는 소문이 있지 않았던가.

‘그게 진짜였나? 설마 망자를 일격에?’

하나 그의 불안함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는 내가 죽인다.”

파진악이 직접 나선다면 사부라는 자가 아무리 강해도 배겨내지 못하리라. 파진악은 칠절신군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고수가 아닌가.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백결공이 고개를 들었을 때 처소에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거기 있느냐?”

자취를 감췄던 호위가 기척을 전했다.

[명하시지요.]

“지금 당장 곡부남가로 간다.”

*

사마의의 능력은 마치 실타래와 같다.

물꼬를 트는 순간 수많은 계획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듣고만 있어도 어느 순간 산동성의 절대적인 존재가 된 것처럼 우쭐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뭔가?”

사마의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더 듣고 싶으시면 계약서부터 쓰시지요. 제가 아무리 주군에게 감복했다고 해도 무보수로 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아.’

안팎으로 죄다 돈이나 포인트를 밝히는 것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마치 한군에게 사방으로 포위를 당했던 항우가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사면초가로 인해 항우는 탄식하며 시를 읊었다지.

“밖에 누구 있는가?”

항우의 시에 우미인이 화답했듯.

남천휘의 외침에 총관 막대통이 대꾸했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요?”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 후 사마의를 에워쌌다.

“왜, 왜 이러십니까?”

막 대통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도장 챙겨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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