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26화 (226/305)

101, 달마시안(達磨始眼).

101, 달마시안(達磨始眼).

“그런데 왜 현월회지?”

남천휘의 물음에 사마의는 꿈 많은 소녀처럼 눈을 빛냈다.

“아! 끝이 뾰족하고, 완벽한 기울기로 휘어진 강기는 정녕 아름다웠지요. 초승달, 즉 현월이 주군의 손에서 피어난 듯하여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멋있어서였던 거냐?

사마의는 남천휘의 의심 섞인 눈초리에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덧붙였다.

“이 또한 심상 작업의 하나입니다.”

“갑자기 지어낸 변명은 아니지?”

“하하하! 그럴 리가요. 자! 생각해보십시오. 곡부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십니까?”

“공부.”

“그렇지요. 공자의 고향인 공부. 공부는 곧 유학의 성지. 그러니 곡부라고 하면 모두 예의와 법도를 떠올립니다. 지금껏 신공부가 공자의 대변자라는 상징성으로 얼마나 많은 덕을 봤을까요?”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남천휘는 표정을 굳힌 채 무릎을 쳤다.

“일리가 있어!”

사마의는 힘을 얻은 듯 힘차게 말을 이었다.

“주군도 상징을 만드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봉황곡주와 황보세가주를 일격에 쓰러트린 현월강기는 아주 제격이지요. 무엇보다 당금 강호에 주군과 같은 무공을 사용하는 이가 없지 않습니까!”

네 멋대로 이름 좀 붙이지 말라고!

그런데 좀 멋있는 듯.

남천휘가 현월강기(弦月罡氣)를 입안에서 굴려봤다.

띠링-

◎ 새로운 스킬 생성에 성공했습니다.

어라! 이렇게도 되는 거냐?

《현월강기》

- 조건부 강기공(罡氣功).

1 일기당천을 사용할 내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2 용린쌍도를 모두 장착해야 합니다.

- 초승달 모양의 강기를 전방으로 발출합니다.

※ 첫 스킬 조합으로 인해 현월강기 사용 시 파괴력과 절삭력이 1% 상승합니다. 반복 사용 시 파괴력과 절삭력이 최대 10%까지 상승합니다.(1/10)

※ 스킬 시전 시간이 삭제됩니다.

옳거니. 되는 놈은 뭘 해도 되는구나.

파괴력과 절삭력이 올랐고, 심지어 1초의 시전 시간마저 사라졌다. 이제는 질풍난무나 궁신탄영을 사용하듯 현월강기가 즉시 발동되는 셈이다.

‘어! 그런데 저건 뭐야?’

한데 마지막 줄을 보는 순간 절로 미간을 좁혔다.

‘한 번 쓸 때마다 내공 소모가 삼십 년이잖아?’

본래 일기당천은 5의 내공을 소모했다.

한데 1%의 파괴력과 절삭력을 올리기 위해 여섯 배의 내공을 소모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안 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 그럼 안 쓰시면 됩니다.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간단한 해결법이 있을 줄이야.

‘빌어먹을 시스템!’

현재 남천휘의 내력은 이갑자다.

총 120년의 내공을 지녔고, 하루에 두 번 강기를 상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삼십 년으로 현월강기를······.’

남천휘가 현월강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궁리하는 사이에도 사마의는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한데 듣자하니 봉황곡주를 상대할 때에는 가솔들만 있었고, 황보세가주는 아예 적진이었지요. 때를 봐서 만인 앞에 현월강기를 드러내신다면 알아서 소문이 퍼질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적을 상대할 때마다 마지막에는 현월강기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어떠신가요?”

그렇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닌데.

네 주군은 그렇게 강하지 않단다.

하나 사실을 얘기하자니 사마의가 실망할 것이 눈에 보였다.

“그, 그럴까?”

사마의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주군께서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최적의 장소에서 선보이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이 놈아, 손짓이라도 하고 끼어 들어라.

남천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자신은 제동 장치가 고장 난 팔백근 마차처럼 돌진하지 않았던가. 한데 사마의는 그 동안 억눌렸던 재능을 펼치는데 머뭇거림이 없다.

“일단 현월회부터 제대로 해. 창립을 선언했는데 무시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으니까.”

사마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명단을 작성 중입니다. 며칠 전 주군께 말씀드렸다시피 봉황곡이 멸문하던 시점에서 맹이 움직였습니다. 한데 산동을 일통하셨으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겁니다. 분명 장로급을 보내서 피아식별을 하려 하겠지요.”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맹을 향해 꼬리를 흔들 생각은 없어.”

“무적자! 현월회의 이념이잖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이 돼. 그것도 아주 심하게 돼.

‘언제 이념까지 정한 거냐?’

설마 현월회의 거처나 깃발, 또는 무복까지 만든 건 아니겠지. 그러던 중 사마의의 옷깃에서 생소한 문양이 보였다.

‘끝이 뾰족하고, 완벽한 기울기로 봐서는······.’

했네. 했어.

남천휘는 한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의 옷깃을 살폈다. 혹시나 했던 마음과 달리 자신의 옷깃에도 문양을 수놓았다.

‘젠장! 개구리도 한패였군.’

이러다 현월회의 구호까지 만드는 건 아닐가 싶다.

사마의는 남천휘가 경청하는 듯하자, 즐겁게 말을 이었다.

“하오문과 개방이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현월회의 창립이 마무리되면 중원 전체에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현월회주 용린협 남천휘입니다. 크하, 좋지 않습니까? 좋으니까 주군의 존함을 거론한 건 양해주십시오.”

자문자답까지.

살아 있는 마봉파가 여기 있었구나.

‘살아 있는 봉인된 항아리를 개봉한 기분이야.’

남천휘는 불현 듯 피로감을 느꼈다.

하나 생명력이 100인 것으로 보아 심리적 압박감이 분명했다.

‘지친다. 사마의.’

남천휘는 손을 내저어 사마의의 말을 끊었다.

“삼정만 신경 써. 껍질만 남았어도 삼정은 삼정이야. 네 말처럼 오랫동안 산동강호의 상징은 삼정이었으니까. 그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공부는 협조적입니다. 곡부남가를 일가로 여기고 있으니 어지간한 일이라면 함께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부는 청도문을 대신할만한 유서 깊은 문파들을 선별해놓았습니다. 엄청난 이권이 달려 있으니 주군의 종복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황보세가인데요.”

남천휘는 혀를 찼다.

“순순히 따를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황보세가는 입안의 가시처럼 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기회가 됐을 때 아예 뿌리를 뽑는 것이 좋지요. 정녕 황보세가를 병탄하지 않으실 겁니까?”

사마의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했다.

“귀찮아.”

남천휘의 무위는 이미 후기지수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황보세가주와 봉황곡주를 쓰러트렸고, 무림맹 외원의 정무단주를 이겼다. 구파오가의 주인이나, 장로가 아니라면 힘에서 밀릴 것이 없다.

하나 뛰어난 무위와 달리 혈혈단신이나 다름없는 세력이 발목을 잡았다.

곡부남가는 신교대를 필두로 하여 몇 배의 성장을 이루는 중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세력을 확장하는 건 쉽지 않았고, 명성을 쌓기란 더더욱 불가능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황보세가의 처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제아무리 명분을 지녔어도 오가 중 한 곳을 해체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병탄한다고 해도 관리할 인력 자체가 부족했다. 그러니 상하관계만 인정하게 만든 후 자유를 주는 것이 상책이었다.

“······.라는 걸 주군께서 이해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사실 병탄이나 해체할 방법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득보다 실이 많을 뿐이지요. 주군과 황보세가의 원한이 크지 않아도 참으로 다행입니다.”

남천휘는 웃었다.

‘진짜 귀찮아서 내버려두는 건데.’

하나 주인의 배포에 감탄하고 있는 수하의 기를 꺾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화제를 돌리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황보세가를 내 밑으로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오늘 만남의 주제였다.

남천휘가 현월회를 만든다고 해서 황보세가가 방해할 능력은 없다. 다만 와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한다면 뒷말이 나올 것은 뻔했다.

“밖에 황보장천이 와 있습니다.”

사마의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별원에는 황보세가의 원로들이 대기 중이지요.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훗, 거래를 하려고 하겠군. 자네의 의견은?”

“어느 쪽이 황보세가를 대표하든 상관은 없습니다. 주군께서 마음에 드시는 쪽의 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결정했어. 궁금해?”

사마의는 슬쩍 비켜섰다.

“전혀요. 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사마의를 지나쳤다.

“그런 악당 같은 대사는 하지 말라고.”

*

황보장천은 똥 씹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자신이 곡부남가에서 이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젠장! 인심이 좋다고 하더니 기껏 주는 게 찻물인가?”

한참을 투덜거리던 중 문이 열렸다.

황보장천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주먹은 무릎 위에 올렸다.

정면보다 살짝 위를 바라보는 순간 남천휘가 들어섰다.

“오래 기다렸냐?”

친구에게 할 법한 말이지만, 친구가 아니다.

빈틈을 보였다가는 세가를 휘저었던 것처럼 무슨 짓을 당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황보장천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색한 존대에 헛기침을 했다.

‘이건 가문을 위한 일이야. 대의를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굴욕이 아니야.’

남천휘는 황보장천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가주가 깨어났다고 들었어. 괜찮아?”

“크, 크흠. 네. 요양 중이십니다.”

“나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건 아니고?”

황보장천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황보관은 깨어나는 순간 방안의 모든 것을 때려 부쉈다. 그러더니 피를 토한 후 이틀 동안 혼절하지 않았던가. 다시 깨어난 황보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이성을 되찾은 후였다.

그는 사마의의 예상대로 복수보다 생존을 택했다.

멀리 있는 남천휘보다 가까이 있는 적을 경계해야 할 때였다.

그렇기에 황보장천은 황보관의 밀명을 띄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셈이다.

‘대의! 대의!’

황보장천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비무였습니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한 수 더 배우고 싶다고 하셨지요.”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많이 배웠어. 하마터면 내가 질 뻔했지. 아마 황보가주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요양하고 있는 건 나였을 거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나 황보장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으로 보아 효과는 확실했다.

남천휘는 황보장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편하게 앉아. 우리가 그래도 용봉쟁투를 함께 겪은 동기잖아. 안 그래?”

“그, 그럴까.”

“그래. 편하게 얘기하자. 가주가 뭐래?”

황보장천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응?”

남천휘가 상체를 탁자에 기댄 채 황보장천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댔다.

“내 밑으로 들어오는 조건이 뭐냐고?”

황보장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현월회는 산동강호의 안녕을 위해 공존하는······.”

“개소리인거 알잖아.”

남천휘의 느긋한 한 마디에 황보장천의 인내심은 산산이 흩어졌다.

“크흑! 네 놈은 여전히 오만방자하구나.”

“거래를 할 때 하더라도 동기끼리 주먹다짐 정도는 괜찮잖아?”

꽈드득-

남천휘가 주먹을 쥐락펴락 할 때마다 황보장천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가주의 조건이나 전해.”

황보장천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오대원로가 곡부남가에 있다지. 그들의 기를 꺾고, 아버지를 여전히 가주로 대하겠다고 천명해줘.”

사마의의 예상대로다.

황보관은 잔뜩 기가 살은 오대원로가 자신만큼 만신창이가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된다면 황보세가의 힘은 전체적으로 약해지겠지만,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예전과 같을 터였다.

한데 그냥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조건이 있어.”

황보장천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그가 황보관에게서 받은 조건은 무공 비급 서너 개와 은자 십만 냥이다. 그리고 제남과 곡부 사이의 영업권 정도였다.

‘최대한 후려쳐야 해.’

남천휘가 말했다.

“황보세가에 만서각이라고 있지?”

황보장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만서각(萬書閣)은 세가의 내원에 위치한 서고였다.

하나 내원에 위치한 것을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곳이 없는 장소가 아닌가. 세가의 곳곳에서 쓸모없는 책을 모아놓은 곳이 바로 만서각이었다.

“있지.”

“거기에 좀 들어가자.”

“무슨 의미지?”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요즘 독서라는 좋은 취미가 생겼거든. 황보세가의 만서각에 책이 많다니 구경 좀 하려고. 삼십삼 일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책을 보게 해줄 수 있어?”

황보장천은 예기치 못한 조건에 눈을 끔뻑였다.

‘만서각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황보세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는 점을 제외하면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잠시 궁리하다가 대꾸했다.

“대신 만서각의 그 어떤 것도 가지고 나와서는 안 돼.”

남천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황보장천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만약 뭔가가 있다면 우리가 찾으면 되는 거야.’

그는 남천휘가 말을 뒤집을까 두려웠는지 황급히 포권을 했다.

“그럼 뒷일을 부탁해.”

“오대원로는 별원에 있다더군. 오늘 내로 처리해줄게. ”

황보장천은 들어올 때와 달리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멍청한 새끼! 은자와 영업권이 아닌 서고의 출입이라니. 드디어 네 놈의 뒤통수를 치게 되었구나.’

그는 남천휘가 삼십 일 후 서고에서 나왔을 때 원래의 조건을 얘기해줄 생각이다. 그 때 남천휘가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온몸이 짜릿했다.

남천휘는 멀어지는 황보장천의 널따란 등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유서 깊은 황보세가는 비밀 창고가 몇 개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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