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산동성의 주인이 정해졌다. (4)
◎ 남위기로 검색한 후 비교하시겠습니까?
저 자식은 자나 깨나 포인트 뽑아 먹을 생각밖에 안하는구나.
그 때 상황을 깨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하, 저 새끼. 말을 왜 저렇게 잘해.”
황보장천은 투덜대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하나 이미 들을 사람은 죄다 들은 상태였다.
황보관이 그 사이 원기를 회복했는지 일갈을 내질렀다.
“놈! 방자함을 넘어 음흉하기 짝이 없구나.”
그렇지.
물 타기가 안 되면 인신공격이지.
남천휘는 사술과 물 타기에 이어진 삼단 공격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돌아볼 줄 아는 자가 군자라 했습니다. 아직도 황보세가는 미몽에서 깨지 못한 겁니까?”
준엄한 일갈에 선악이 극명하게 구분됐다.
따지고 보면 황보세가의 잘못이라는 건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방파들이 하는 협잡과 탐욕일 터였다.
하나 어느 순간 황보세가는 강호를 뒤집으려다 발각된 악적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모양새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콰직!
결국 참다 못한 황보관이 팔선탁을 내리쳤다.
팔뚝만한 두께의 탁자가 반으로 쪼개지는 광경으로 겁박이라도 하려나 보다.
‘역시 무인은 힘이지. 안 그래?’
◎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비꼬는 것 같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남천휘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황보관의 퇴로를 막았다.
“결국 끝을 보려는 게요?”
이제 끝을 보지 않으면 겁먹은 개 취급 받게 생겼다. 그리고 황보관은 강호의 무인답게 몸으로 심정을 표현했다.
“죽여 버리겠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듯한 외침.
하나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최적의 수가 분명했다.
어차피 명분에서 밀린 이상 살인멸구 외에는 해결법이 없을 터였다. 남천휘를 죽이고, 청하오검을 회유한 후 적당히 소문을 퍼트리면 강호에서 흔히 일어나는 혈사가 되지 않겠는가.
흔한 일로 만들려는 자와 경천동지한 일로 만들려는 자가 격돌했다.
쩡-
남천휘는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생각보다 충격이 강하다.
확실히 오대세가의 가주 정도 되면 초절정의 고수가 되는 듯했다.
조금은 진지하게, 그리고 멋있게.
맞아줬다.
인상을 쓰고, 때때로 신음도 흘렸다.
남천휘는 용린쌍도를 빠르게 휘돌리며 물러섰다.
텅! 텅! 텅!
황보관이 공격할 때마다 남천휘는 쭉쭉 밀려났다.
“크하하! 입심만 좋은 쭉정이 같은 놈이로구나.”
아저씨가 뭐를 잘 모르네.
‘주인공은 원래 위기와 극복을 잘 저울질해야 된다고! 무턱대고 주먹만 휘두르는 조연하고는 다르단 말이지.’
남천휘는 황보세가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 황보관의 무위에 대해서 파악한 후였다. 사마의는 이전 직장의 중요한 정보를 토설하는데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다.
그만큼 악덕 상관이었다는 뜻이겠지.
‘호오! 이게 벽력십팔신수인가?’
황보관은 손끝으로 찌르고, 손날로 내리쳤으며, 손등으로 튕겨냈다. 마치 고명한 금나수처럼 남천휘의 상반신 전체를 찍어 눌렀다.
“크흑!”
남천휘는 침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아직은 아니야.’
황보세가의 가주는 벽력삼위(霹靂三威)를 익힌다.
벽력신장과 벽력신수, 그리고 벽력신권.
본래 권장법으로 유명했던 황보세가였다.
그 중 으뜸이 벽력신권이다.
뇌전진천도와 달리 수백 년 간 강호의 절기로 인정받았던 권법이다. 그리고 남천휘가 노리는 상황이기도 했다.
‘당신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걸로 쓰러트려주지.’
그렇게만 된다면 당분간 황보세가는 자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으리라. 이 모든 것은 황보관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진행이 가능했다.
‘가정이 아니라 확신이야!’
남천휘는 자신의 생각을 제 것처럼 중얼거리는 재이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그 와중에도 벽력신장과 벽력신수가 현란하게 공간을 점하고, 위력적으로 공간을 짓누른다.
하나 그뿐이다.
두 사람의 상황을 보면 우열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남천휘는 당장이라도 일권을 허용하여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황보관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펼치는 초식을 모조리 흘려보내는 중이다.
파파파팟!
다행히 이곳에는 그것을 확인할 정도의 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이검 정도는 되어야 의구심이라도 가지리라.
황보관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남천휘가 의도했던 대로 승리를 자신했다.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화려하고, 멋있는 일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오오-
황보관은 현란하던 동작을 간결하게 바꿨다.
한 번을 움직여도 강맹한 기세가 흘러넘쳤다.
팡!
그의 주먹이 스쳐가는 곳마다 공간이 일렁이는 듯했다. 벽력삼십육결신권(霹靂三十六決神拳)의 시작이다.
벼락이 치듯 강렬한 주먹!
‘이건 혹시 장병기 마스터 중 강에 해당하지 않을까?’
아니란다.
황보세가의 허접스러운 권법에 위로를 전한다.
‘쯧, 그럼 더 볼 필요가 없잖아?’
남천휘는 어깨를 슬쩍 젖히는 것으로 매섭게 꽂혀드는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용린쌍도를 마구 휘저으며 황보관의 가슴을 노렸다.
“흥!”
황보관은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한 듯 벽력신권을 벽력신장으로 바꿨다. 그리고 튀어나오려는 것을 누르듯 손바닥을 내리쳤다.
텅!
도기에 휘감긴 백룡도의 끝은 허무하게 땅을 향했고, 반격은 무위로 돌아간 듯했다.
한데 황보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큭! 이 반탄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쇳덩이를 나무로 내리친 것처럼 손바닥이 얼얼했고, 장심을 타고 스며든 기운으로 인해 한순간 호흡이 끊길 정도였다.
남천휘는 그 사이 자세를 바로 한 후 이마에 가득 맺힌 땀을 훔쳐냈다. 그리고 궁지에 몰렸지만, 의기를 잃지 않는 소년 협객으로 변신했다.
“황보세가의 대답이 이것이라면 백도천하의 초석이 되고자하는 정파의 무인으로서 좌시할 수 없소!”
고오오오오-
용린쌍도를 중심으로 대기가 와류를 그렸다.
마치 커다란 고리가 쌍도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휘도는 듯하지 않은가.
“남 소협! 무리하지 말게!”
모용청의 안타까운 외침이다.
그로 인해 무인들은 남천휘가 궁리에 몰렸음에도 최후의 절초를 준비한다고 여겼다.
남천휘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 상황이 아닌가. 모용청의 언행은 마치 입안의 혀처럼 매끄러웠다. 따지고 보면 사마의가 해야 할 일은 그가 하고 있는 셈이다.
‘저 놈은 경극이라도 보나?’
사마의는 사마 씨를 넘어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잊은 듯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진짜 고수와 고수의 대결을 처음 보는 듯했다. 저래서야 사마 씨는 고사하고, 삼 씨나 넘어설 수 있을까 모르겠다.
“황보 가주! 그만 하시오. 정녕 정파의 끈을 놓으려는 게요?”
황보관으로서는 땅을 치고 울분을 토할 만큼 억울한 상황이다. 남천휘의 갑작스런 반격으로 인해 내기를 다스리는 중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섣불리 입을 열어 반박하지 못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노인장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자리 챙겨드리지요!’
일기당천 준비 완료.
용린쌍도가 예(乂)자 형태로 교차됐다.
남천휘는 두 자루의 도로 공간을 긁는 다는 심경으로 잡아끌었다.
촤아아아악!
비천무상도의 두 번째 스킬인 ‘일기당천’이 발동했다.
용린쌍도(龍麟雙刀)는 신화 급 무기였다.
그로 인해 부수는 ‘분쇄’와 자르는 ‘참격’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거기에 공격력의 추가와 내공 전달력의 상승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하루에 강기 2회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니 오늘의 첫 번째 강기였다.
쩌저저저저정-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눈에 보일만큼 부풀어 오른 강기(罡氣)가 초승달의 형태로 전방을 찢어발겼기 때문이다. 일기당천에 강기를 더한 이상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
“헉!”
모용청을 비롯한 청하오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쾌활십이장을 비롯한 세가의 중진들은 도강의 위세에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렸다.
그리고 두 개의 도강이 교차하듯 폭발했다.
“끄으으으.”
황보관의 악에 바친 침음이 흘러나왔다.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손등에는 시퍼런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것이 강기와 격돌했다.
쩡-
손가락 마디만큼 두터운 청석은 가루가 되어 움푹 주저앉았고, 흙먼지는 돌풍에 휘말린 것처럼 황보관의 등 뒤로 흩날렸다. 일진광풍이 가라앉은 후에야 황보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를 여전히 유지했다.
하나 피부가 벗겨진 주먹은 피가 낭자했고, 오른 팔 전체의 옷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스르륵-
황보관은 힘없이 오른팔을 떨궜다.
그 순간 오른팔 전체가 덜렁거렸다.
손목과 팔목, 어깨의 관절이 모두 어긋난 것이다.
‘황보세가주가 졌어!’
‘일합에 당하다니.’
세인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황보관은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쿠헉!”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황보관은 남천휘를 노려보다가 서서히 허물어졌고, 장내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지난 수십 년 간 구파오가는 하나로 묶인 채 철옹성처럼 권력을 자랑했다. 한데 오가 중 한 곳인 황보세가가 이름도 없던 곡부남가의 막내아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황보세가의 탐욕은 가주로 인함인가? 그게 아니면 세가 전체의 뜻인가?”
남천휘는 멀쩡한 신색을 유지한 채 외쳤다.
어느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했고, 대꾸하지 못했다. 황보황은 여전히 충격과 치욕 사이에서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고, 다른 이들은 자격이 없었다.
남천휘는 황보장천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황보장천! 답하라!”
무림맹의 협객이 마교의 마두를 심문하는 듯한 준엄한 일갈에 황보장천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답하라!”
황보장천은 어깨를 움츠림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계단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에 황보세가의 가솔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젠장,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황보세가의 위명도 여기까지로군.’
‘만약 오대원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황보세가가 산동 북부를 지배한 세월만 백 년이 넘는다. 그러니 제남을 비롯해 하부성과 연결되는 요처를 모두 차지했다. 그리고 황보세가의 원로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외곽의 지부를 책임졌다.
세가의 어른이 모두 모여 있었다면 오늘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하나 가솔들이 속마음일지언정 끝을 맺지 못한 것처럼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황보세가의 최고수는 가주가 아니던가.
“답하라!”
남천휘의 일갈에 황보장천은 네발로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알았다. 알았어. 네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그만 해!”
한때 용봉쟁투의 용이 되려던 자의 밑천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순간이었다.
남천휘는 용도를 다 한 황보장천을 뒤로 했다.
그리고 쓰러진 황보관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무리 욕심이 지나쳤다고는 하나 일문의 수장이었다. 의원을 부르고, 내원으로 데리고 가라!”
오대의 무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황보장천은 그 모습에 짜증 섞인 일갈을 내질렀다.
“뭐하는 거야? 아버지를 당장 처소로 모셔라!”
그렇게 황보세가의 전의가 꺾였다.
사마의가 황급히 다가와 축하했다.
“주군, 감축드립니다. 드디어 산동성의 으뜸이 되셨군요.”
그로서는 황보세가에서 겪었던 굴욕이 잊히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남천휘는 희희낙락한 사마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건넸다.
“뭘 그렇게 좋아해? 지금 놀러 왔어?”
사마의는 표정을 굳혔다.
그로서는 황보세가에서 겪었던 굴욕을 잊지 못했다.
그렇기에 황보세가의 몰락을 지켜보며 희열감을 느꼈다. 한데 주군으로 삼은 남천휘는 정파의 무인답게 마지막 예를 잃지 않은 듯했다.
‘아, 군사로서 내가 주군의 심기를 눈치채지 못했구나. 이렇게 무능한 꼴을 보여서야 무슨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가 남몰래 탄식하는 사이 남천휘는 턱짓으로 황보세가의 내원을 가리켰다.
“뒤처리 안해?”
화장실을 다녀 온 것도 아니면서 뒤처리라니.
남천휘는 답답하다는 듯 사마의 등을 떠밀었다.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전리품을 챙겨야지.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서 보물을 챙기면 뭐가 되겠어?”
사마의는 잠시 눈을 끔뻑였다.
이제야 남천휘가 했던 말에 공감했다.
‘우리가 잘 어울릴 것이라 하더니······.’
그는 아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보세가의 심처로 걸음을 내딛었다. 감히 남천휘를 적대하지 못한 자들이 꿩 대신 닭이라고 여긴 듯 사마의를 노려봤다.
한데 그런 사마의의 귓가에 남천휘의 호탕한 웃음이 들렸다.
“선배님들.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여러 선배님들께 석 잔의 술을 올려 예를 표하고 싶습니다.”
마치 자신의 집처럼 청하오검을 청하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사마의는 어깨를 펴지 못했다.
제아무리 강단이 있고, 머릿속에 천하를 담았어도 무인들의 눈빛은 위협적이었다.
그 때 남천휘의 전음이 들려왔다.
[군사.]
사마의는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역시 자신을 생각해주는 건 남천휘가 전부였다.
[중요한 건 실속이야. 도자기나 족자 같은 거 말고, 돈 되는 걸로! 알았지? 중요한 건 실속이야.]
마치 도둑질을 하러 들어가는 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