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18화 (218/305)

97, 당일치기.

97, 당일치기.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마치 짜고 치는 연극처럼 이뤄지는 상황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빨라도 너무 빠른데요.”

사마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지름길이란 빠른 법입니다. 그리고 한 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는 걸 보니 이 지름길이 맞기는 맞는가봅니다.”

남천휘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 사마의라는 의미였다.

이후의 과정이야 듣지 않아도 알 법했다.

지혜수치가 얼마였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보소천의 분위기만 봐도 선불 맞은 멧돼지와 다를 바가 없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처럼 씩씩 거렸다. 한데 사마의는 이미 자신에게 의탁한 상태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 황보소천이 사마의를 해하려 한다면 명분이라는 칼자루는 자신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정파인 황보세가가 먼저 시빗거리를 제공했으니 이후의 일은 흐르는 물을 헤엄치듯 순응하면 될 터였다.

놀란 것과 별개로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황보세가를 떠날 때부터 이 모든 일을 계획했다면 신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아닌 말로 퀘스트라도 받지 않는 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주군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주군의 모든 것을 조사해놓은 상태였지요. 그리고 주군께 가장 필요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첫 만남 이후 여기저기 손을 써놨지요.”

퀘스트를 받은 게 아니라 머리가 좋은 거였군.

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마의는 남천휘를 만나고 곧장 투서를 썼단다.

황보소천의 평소 행실과 악행이 적힌 장문의 편지를 세가로 보낸 게다. 그리고 황보소천이 분기탱천하여 자신을 잡으러 올 시기를 조율했다.

그 시기가 지금이다.

‘좋은 사람을 얻었어.’

냉철한 판단에 이어 과감한 결단까지.

사마의가 이틀 동안 벌인 일은 향후 산동의 정세를 완전히 바꿀 만큼 대단했다.

더욱 칭찬하고 싶은 점은 따로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일을 처리하다니.’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수완까지 좋다.

“도대체 그 좋은 머리로 어쩌다가 쫓겨난 겁니까?”

사마의는 다소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질문에 입꼬리를 올렸다.

“황보세가가 살아남으려면 지금 당장 주군께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했지요.”

“명문정파에게 그것은 큰 치욕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럼에도 악수를 자처한 이유는?”

남천휘의 물음에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욕심쟁이 영감의 일화를 들으셨잖습니까.”

그 순간 안계가 넓어지는 듯했다.

“아.”

좀생이처럼 보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랐다.

세상일이란 언제든 의도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내어놓지 않던가.

“악수로 보였지만,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황보세가는 자력으로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지요.”

“강호의 방파가 받아들이기는 너무 과격한 방식이네요. 무사히 쫓겨난 것이 용할 지경이네요.”

사마의는 슬쩍 남천휘의 눈치를 봤다.

“그럴까요?”

남천휘는 히죽 웃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듭니다. 우리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고 했다.

지금 사마의의 표정만 봐도 대신 칼을 맞을 것처럼 감격에 겨워있지 않은가.

“주군!”

남천휘는 사마의의 능력 수치를 떠올렸다.

- 지식 8, 야망 7, 충성 9, 신산 8.

충성 수치가 9에 이르렀다.

이것은 주인을 정하는 순간 고정되는 수치일 터였다. 새삼 이런 인재를 내쫓아준 황보세가를 향해 하루에 세 번씩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남천휘는 선심을 쓰듯 물었다.

“군사의 소망은 무엇인가?”

야망이 7에 이르니 강호일통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원 제일의 군사로 추앙받고 싶지 않을까 싶다.

한데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마 씨를 넘어서고 싶습니다.”

어라! 자기네 가문을 왜 뛰어넘어?

삼국지만 봐도 사마 씨라면 응당 제갈 씨보다 유명해지고 싶어 해야 맞는 거잖아.

남천휘가 눈을 끔뻑이자, 사마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의에 빠졌다.

“주군께서도 모르셨군요. 저는 사 가입니다. 삼문협에 본을 둔 사 가의 마의라고 합니다.

아! 사마 씨가 아니라 사 씨였냐!

“엇! 네 놈이 사마 씨가 아니었어? 젠장! 사마의의 후손인 줄 알고 등용했더니.”

저 새끼도 몰랐네.

사마의는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돌림자가 마였기에 제 형제들은 모두 사마 씨의 후손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다짐하듯 읊조렸다.

“이 수모! 반드시 갚고 싶습니다. 제가 천하에서 손꼽히는 문사가 된다면 세인은 사 씨가 사마 씨의 위에 있다고 인정하겠지요.”

그는 황보세가에서 쫓겨날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분노를 마음껏 표출했다. 하나 거창하면서도 소박해 보이는 소망에 어색함만 감돌았다.

“아! 죄송합니다. 주군을 앞에 두고 사적인 소망을 논하다니······.”

그런 이유가 아니야.

머리가 좋다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니구나.

어쩌면 공부만 하느라 머리가 어떻게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개구리에게 말해서 보약 좀 지어주라고 해야겠어.’

그 즈음 여기저기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남천휘는 주루의 내부를 살핀 후 헛웃음을 지었다.

‘위아래를 다 막았네.’

두 사람은 지금껏 일층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에서 술을 마셨다. 한데 황보세가의 무복을 입은 가솔들이 일층과 삼층에 가득했다.

황보소천은 무인의 숫자만큼 자존감이 올라간 듯 거드름을 피웠다.

“흥! 드디어 네 놈이 내 손 안에 들어왔구나.”

남천휘와 사마의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하나 사마의는 의뭉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공자, 이게 무슨 일이오?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은 그대지 않소!”

쾅!

황보소천이 입구 근처의 의자를 걷어찼다.

“놈! 네가 나를 모함하는 서찰을 보내지 않았더냐? 중간에 내가 낚아채지 않았다면 한 번 더 망신을 당했을 게야. 지금껏 네 놈을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준 결과가 이것이란 말이냐?”

사마의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개나 돼지처럼 대하던 것이 당신이다! 그 버릇을 고치지는 못할망정 여기까지 쫓아와서 사람을 핍박하는 것인가!”

황보소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하들은 객잔의 내외를 포위했다.

하나 객잔 내에 있던 자들까지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대화가 길어진다면 진위 여부를 떠나 좋지 않은 소문이 돌 터였다.

“흥! 은혜도 모르는 개종자와 말을 섞을 필요는 없지! 여봐라. 당장 저 놈을 내 앞에 꿇려라.”

사마의가 한 발을 뺐다.

‘내 차례인가?’

남천휘는 뒷짐을 진 채 슬쩍 사마의의 앞을 막았다.

복장이 호화로운 공자의 등장에도 황보세가의 가솔들은 거침이 없다. 황보세가의 영역에서는 그들이 왕이었다.

“멈춰라. 사마의는 나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장 꺼져라. 이 생기다 만 호박 같은 새끼야!”

황보소천의 안색은 원래부터 누렇다.

한데 호박을 거론하는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황보소천의 얼굴이 겹쳐졌다.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의념 깊은 곳으로 파고든 게다.

“크흑! 저 새끼도 같이 꿇려라.”

남천휘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황보소천이 자칫 자신의 정체라도 물었다면 판이 깨질 수도 있는 형국이다. 한데 놈을 도발하는데 성공했으니 모든 것은 사마의의 뜻대로였다.

그는 사마의를 힐끔 쳐다봤다.

사마의 역시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이놈들! 내 사람임을 알렸음에도 시비를 걸다니 무도하구나! 누런 개처럼 생겨서 양심도 없는 겐가?”

황보소천의 얼굴은 연이은 황색 공격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리 하나쯤은 잘라도 좋다!”

그 명령이 신호였다.

여섯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셋은 남천휘를, 셋은 사마의를 노렸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뭐가 이렇게 느려?’

황보소천의 바닥을 보려면 적당히 어울려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마치 만병보고나 봉황곡의 적도가 절대지경의 고수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쯧.”

남천휘는 혀를 차며 가볍게 소매를 털었다.

퍼퍽!

소매라고 해도 경력이 실렸다.

얼굴을 휘감긴 자는 턱이 으스러졌고, 가슴을 얻어맞은 놈은 근육이 터져나갔다.

“크헉!”

다행히 달려오던 기세까지 더해진 상태로 튕겨나갔기에 시선을 끌지 못했다.

‘조심! 조심!’

남천휘는 적당히 어울려준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내뻗었다.

“흥!”

이번에는 제법 무예를 익힌 자였다.

손등으로 주먹을 밀어내려 했다.

하나 계란으로 바위를 밀어내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콰직!

놈의 손등은 으스러졌고, 손을 뻗은 것보다 빠르게 튕겨나갔다. 게다가 제어를 하지 못한 손이 자신의 가슴을 후려쳤다.

“으어어!”

학사 한 명을 잡겠다고 말단 무인들만 데려온 것이 실책이었다.

“저, 저!”

황보소천이 뒤늦게 탄식했다.

하나 아직도 머릿수를 믿는 듯 더욱 힘차게 외쳤다.

“죽여! 죽여버려!”

남천휘에게 황보소천의 악다구니는 천상의 화음과 같았다. 놈이 흉악한 말을 내뱉을수록 그대로 돌려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것이 바로 명분의 힘이다.

‘네가 먼저 끝을 보려 했으니······.’

사마의가 눈짓을 했다.

황보소천에게 얻어낼 것은 모두 얻었다는 뜻이다.

“그럼 내가 끝을 내줘야지!”

남천휘가 의자를 밀었다.

이미 내력의 운용과 발출에 대해서는 초절정 고수보다 뛰어난 상태가 아닌가.

황보세가의 무인은 의자를 걷어차려다 발이 부러졌고, 여전히 힘이 실린 의자는 벽을 부숴버렸다.

콰쾅!

“엇!”

황보소천도 이쯤 되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게다.

“저 새끼, 뭐야?”

아니다.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남천휘는 욕을 먹을수록 힘을 내는 변태처럼 더욱 거세가 손발을 놀렸다.

퍼퍼퍼퍼퍼퍽!

일권에 한 놈만 쓰러트리는 건 손해다.

그렇기에 얻어맞은 놈은 뼈가 부러졌고, 그 놈과 부딪친 자는 함께 튕겨나갔다.

“공자를 지켜라!”

스릉-

이번에는 제법 검초가 매섭다.

세 놈의 검이 상중하를 노렸다.

하나 황보세가의 진짜 무공은 권법과 쌍도술이다.

어설픈 검법은 날파리가 앵앵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쌍도술은 백파도 남추의 어깨 너머로 훔쳐 배운 것이 아닌가.

이것들은 도둑의 후예였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도둑놈을 징치하겠다.

하나 그것을 알 리 없는 무인들은 갑작스런 일갈에 귀를 막았다. 목소리에 내력이 담겼기에 성취가 낮은 자는 귓가에서 징을 치는 것처럼 들렸을 게다.

빠각!

사마의의 계획에 약간의 사심을 더했다.

그 결과 주먹에 실린 힘이 달라졌고, 놈들의 비명은 주루가 떠나갈 것처럼 울렸다.

짚단처럼 호위가 쓰러진다.

그 너머로 황망한 눈빛을 하고 있는 황보소천이 보였다. 동시에 귓가로 사마의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팔, 팔.”

부러트리라는 얘기였다.

적당히 때리면 황보세가에서 중재를 요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중상을 입혀야 했다.

콰직!

황보소천이 뒤늦게 도를 뽑아서 내리쳤으나, 남천휘의 손끝이 손목을 스쳐간 것이다.

흐음, 이 정도로는 조금 약한데?

황보소천은 자신의 다리를 자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천휘는 상대가 손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으려 하는 순간 무릎 뒤를 후려쳤다.

꽈드득!

부러지는 소리와 으스러지는 소리는 달랐다.

황보소천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썰매를 타듯 앞으로 미끄러졌다.

“으아.”

남천휘는 그런 황보소천의 뒷목을 후려치며, 아혈을 짚었다. 용도가 다한 녀석의 비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주군,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마의는 피와 비명이 낭자하는 공간을 제집처럼 편안히 여겼다.

“고생은 뭘. 그럼 이제 뭘 하면 되겠소?”

“제가 일임해주신다면...”

그는 이미 생각한 바가 있는 듯 새끼 손가락에 술을 묻힌 후 탁자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적대세력의 구조를 그렸고, 입으로는 향후 황보세가를 상대하기 위한 계획이 흘러나왔다.

“엇.”

사마의는 남천휘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남천휘가 사마의의 술잔을 한 입에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군사. 내게 두 가지 길이 있는데 들어보겠소?”

“네?”

남천휘는 황보소천의 뒷목을 잡은 채 질질 끌며 말했다.

“하나는 지름길이고, 또 하나는 더 빠른 지름길이오.”

사마의는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을 보였다.

남천휘는 황보세가가 있는 방향을 응시한 채 히죽 웃었다.

“돌아가는 길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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