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19화 (219/305)

97, 당일치기. (2)

*

황보세가(皇甫世家).

무림맹 오대세가에 속했고, 오랜 세월 산동 북부에서 군림했다.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 터를 잡은 것만으로도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황보세가는 관과도 사이가 좋았다.

관부와 주기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였으니 산동 북부에서는 거칠 것이 없다.

삼정(三鼎)이라 불렸지만, 내심 스스로 으뜸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공부는 공자의 이름을 빌렸고, 청도문은 태산 너머의 벽촌이 아니던가.

한데 황보세가가 거드름을 피우는 사이 산공강호의 정세는 천지개벽을 했다.

신공부의 봉문과 청도문의 멸문.

황보세가가 바라마지 않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다만 그 와중에 황보세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산동을 일통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크흠!”

그것은 저자에서 이야기를 팔아 연명하는 매담자(賣談者)들도 다르지 않았다.

“산동성의 패주가 누구냐고?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어허! 답답하네. 여기가 황보세가 앞에 있는 다루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패주가 누구인지 내가 똑바로 얘기해주지.”

동전이 쌓인다.

매담자는 헛기침과 함께 돈벌이를 시작했다.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관은 벽력삼위를 대성했단 말이야. 벽력삼위가 뭐냐고?”

취객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자 매담자는 헛기침과 함께 동전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는 싸구려 화주를 입안에 털어넣더니 말을 이었다.

“벽력신장! 벽력신수! 벽력신권!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들어는 봤겠지?”

취객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벽력삼위(霹靂三威)는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할 때마다 입에 달고 살았던 황보세가의 독문무공이 아니던가.

벽력구문신장(霹靂九門神掌).

벽력십팔신수(霹靂十八神水).

그리고 벽력삼십육결신권(霹靂三十六決神拳)이 벽력삼위의 으뜸이다.

“신장을 내뻗는 순간 아홉 개의 문이 팔방과 하늘을 막고, 신수가 번뜩이면 열여덟 자루의 칼이 난도질을 하며, 신권이 발출되면 삼십육방이 모조리 폭발한다는 전설의 벽력삼위란 말일세!”

매담자가 호흡을 조절하며 내뱉은 일갈에 취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오오!”

“벽력삼위는 최강의 무공인거요?”

그는 취객들의 질문에 탄식했다.

“허어, 내가 만약 황보세가에서 뒷돈을 받았다면 그렇다고 했겠지. 하나 그것은 아니야. 강호의 고수는 강가의 자갈처럼 많고, 청산의 소나무처럼 빼곡하지 않던가. 황보세가의 무공은 일절이지만, 최강이라고 할 수 없지. 다만!”

그는 한 번 더 이목을 사로잡았다.

“또 화대요? 적당히 좀 드시구려.”

취객은 불평했지만, 기꺼이 허리춤의 동전을 꺼냈다.

매담자는 화대(話代)를 쓸어담으며 키득거렸다.

“자! 이제 자네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황보세가에는 가주만 무서운 것이 아니야. 가주 밑에는 팔대부가 있고, 쾌활십이장이 있단 말이지. 장로와 단주의 직위를 맡았으나, 각기 중소방파를 거느려도 될 만큼 뛰어난 무공을 지녔어.”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황보세가의 정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 이처럼 고강한 무예를 자랑하는 황보세가를 상대하려면 어찌해야겠는가?”

그 때 뭔가를 질질 끌고 가는 사내가 보였다.

사내가 향하는 곳이 황보세가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혔다면 귀빈에게만 허락되는 정문을 두드리지는 않으리라.

때마침 취객이 한참을 궁리한 끝에 대꾸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지.”

매담자는 생각한 시간이 아까울 법한 대꾸에도 과장되게 무릎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철귀유협이 최근에 용린협이라 불린다지만, 후기지수의 한계가 있는 것이야. 신공부야 집안싸움이었고, 청도문은 소금이나 몰래 팔아먹는 악질 장사치가 아니던가? 명문 중의 명문인 황보세가와는 다르지. 어디 감히 황보세가를 대적하려 해? 그 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황보세가의 문이나 두드릴 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쾅!

조금 전 눈앞을 지나친 자가 황보세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 않은가.

마치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처럼 당당했다.

쾅!

“가주 나와라!”

매담자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친놈인가?”

취객들은 매담자의 죽은 이야기보다 눈앞의 생생한 현실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러네. 미쳤어. 미친놈이 아닌 이상에야 황보세가의 문을 두드릴······. 어라?”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매우 낯익었다.

취객들은 매담자를 바라봤고, 매담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에이! 그 눈 뭐야? 지금 이상한 생각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매담자 생활만 이십 년일세. 하지만 그처럼 얼토당토않은······.

그 때 사내의 일갈이 황보세가는 물론이고 주변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용린협이 빚을 받으러 왔다! 가주 나와라!”

매담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일이 있을 수도 있네.”

“이십년 세월도 별 것 아니구려.”

취객들은 매담자를 밀어내고 이내 창가를 점령했다.

“남천휘와 황보세가라.”

“저건 누가 봐도 한 판 뜨자는 거지?”

*

황보관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오만방자한 놈이로다! 감히 황보세가의 정문을 겁도 없이 두드리다니. 누가 저 어린놈을 끌고 와 내 앞에서 무릎 꿇게 만들겠는가?”

팔대부(八大父)라 불리는 장로원의 원주들이 총출동했고, 쾌활십이장(快闊十二長)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오대의 대주들과 조장들이 시립했다.

황보세가의 전력이 집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보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주들이 앞 다투어 나섰다.

“제가 혼쭐을 내주겠습니다.”

“명문의 저력을 보여주겠습니다.”

하나 황보관은 마뜩찮은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도문과 봉황곡이 멸문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대주급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음을 직감했다.

쾌활십이장이 호기롭게 나섰다.

“가주. 저희들 선에서 처리를 하겠습니다.”

“오호! 자네들이라면 믿을 수 있지.”

황보관은 진열상에 장식해놓은 술병 중 가장 세 번 째로 비싼 것을 꺼냈다.

탁-

그가 선반을 건드리자, 열두 개의 잔이 허공을 날았다. 비슷한 간격을 두고 잔이 배열되는 순간 가솔들이 탄성이 연이었다.

“절묘한 한 수입니다.”

“역시 가주의 뇌혼신공은 강호의 일절입니다!”

황보관은 득의의 미소를 보인 채 술병을 기울였다.

“본가가 오랜만에 강호를 호령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니 와서 한 잔씩 받으라!”

“존명!”

쾌활십이장은 저마다 잔을 비운 후 바닥에 내리쳤다.

쨍그랑-

“어린 것의 대갈통을 이렇게 만들어놓겠습니다!”

황보관은 만족한 듯 정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다. 장천. 네가 그 놈을 발견했다지? 안면이 있을 테니 안내하여라.”

입구 쪽에 서 있던 황보장천은 눈을 끔뻑였다.

그는 우연히 입구 근처를 지나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엿봤다. 그러다 남천휘와 눈까지 마주치지 않았던가.

용봉쟁투 이후로 놈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하나 울화와 별개로 놈은 꺼림칙했다.

‘아, 쾌활십이장으로 안 될 것 같은데······.’

쾌활십이장 중 한 명이 황보장천의 표정을 보더니 가슴을 치며 외쳤다.

“소가주는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게요?”

“아, 아닙니다.”

황보장천은 팔대부 중 자신의 뒤를 봐주는 황보황을 쳐다봤다. 그는 용봉쟁투와 청도문 사태를 함께 겪지 않았던가.

황보황은 자신의 가슴을 슬쩍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쾌활십이장으로 부족하면 팔대부가 나서겠다는 신호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안심이지.’

황보장천은 양 소매를 걷어붙였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황보관은 당당한 아들의 모습에 크게 웃었다.

“크하하! 좋구나. 좋아. 모두 함께 용린협이라는 놈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자꾸나. 그리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올렸다.

“놈이 무너지는 순간 신공부와 곡부남가를 접수한다. 이대부, 삼대부. 준비를 해주시오.”

팔대부 중 두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잠시 후 황보장천을 필두로 한 수백 명의 무인이 정문으로 향했다. 후미에는 황보관이 자리했고, 그 주위를 여섯 명의 팔대부가 둘러쌌다.

잠시 후 황보장천의 일갈이 울렸다.

“문을 열어라!”

*

사마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사마 씨의 위명을 뛰어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매진했다.

하나 학문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책(奇策)에 매달렸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수양에 힘써도 두각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그러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이한 계책을 연구하고, 궁리했다.

하여 사람들의 언행을 유추하기 쉬웠다.

남천휘를 조사하는 과정도 그렇게 진행됐고, 그를 만난 후에도 조사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황보세가의 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는 사람의 뒷모습은 너무도 눈이 부셨다.

감히 범인의 판단을 거부하듯이 말이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분이다.’

그와 같은 학자들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하나의 표현법을 사용했다.

불가해(不可解).

한 마디로 해석할 수 없는 존재였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보통 일대종사나 절대지경의 괴인을 칭할 때에나 사용하지 않던가.

하나 사마의는 감히 이렇게 이름 붙였다.

‘강호에서 가장 젊고, 뛰어난 불가해로다.’

사마의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전음을 펼칠 수 없으니 속삭이는 것으로 대처하려는 게다. 다행히 능력 있는 주인은 사마의의 말을 알아서 받아들였다.

“지금쯤 저들은 두 가지 방책으로 주군을 상대하려 할 것입니다. 전력으로 부딪치거나, 아직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이름값으로 싸우려 할 겝니다.”

“어차피 둘 중에 하나를 예상한 것 아닌가?”

남천휘는 황보소천을 질질 끌고 올 때부터 말을 편히 했다.

한데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사마의가 생각하던 주군과 신하의 멋들어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후훗, 제 예상은 후자입니다.”

남천휘는 문을 후려치며 히죽 웃었다.

“동감이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거든.”

그 때 황보장천의 일갈이 들려왔다.

남천휘는 사마의를 돌아본 채 입구를 가리켰다.

“어, 아는 사람이야.”

“소가주와 친분이 있으셨던가요?”

“아니, 때리고 싶은 아는 사람이야.”

잠시 후 문이 좌우로 열렸고, 세가의 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곡부남가의 외원 전체와 맞먹을 만큼 거대한 연무장이 보였다.

“네 놈에게 용기가 있다면 들어오라! 하나 살아서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내외원의 입구인 계단 위에는 황보관이 화려한 의자에 앉은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마치 왕이 신하들과 접견을 하듯 계단에 팔대부가 섰고, 좌우로 오대의 대주와 대원들이 시립했다.

그리고 연무장 끝에 열두 명의 무인이 찌를 듯한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다.

하나 남천휘는 사마의를 돌아보며 키득거렸다.

“우리 또 통한 거지?”

“예, 우리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사마의는 남천휘가 들어서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뒤따랐다. 그리고 입구 근처의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일단 선물부터 보여주마!”

남천휘는 황보소천을 들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심심할 때마다 한 대씩 때렸더니 누렇던 얼굴은 멍이 잔뜩 들어서 바다처럼 새파랗다.

“이 놈은 나를 앞에 두고 내 수하를 죽이려 했다! 증인은 수십 명이니까 알아서 찾아보도록 해. 자! 선물 받아라!”

남천휘는 황보소천을 공깃돌처럼 집어던졌다.

“이공자를 구해라!”

쾌활십이장 중 두 명이 뛰어올랐다.

한데 황보소천을 받아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큽, 이 내력은 뭐지?’

‘범상치 않다. 역시 후기지수 중 으뜸답군!’

남천휘는 저들의 기세가 투기에서 살기로 바뀐 것을 느끼며 코웃음을 쳤다.

“흥! 우리 사이에 굳이 통성명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닥쳐라! 이 놈!”

쾌활십이장 중 두 명이 좌우로 흩어지더니 빠르게 접근했다.

“하! 절반도 아니고, 고작 두 명?”

남천휘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왼쪽에서 접근하던 쾌활장은 남천휘가 자신을 선택하자,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쯧, 나를 우습게 봐?”

쾌활장의 도가 출렁거렸다.

연검과 달리 연도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신묘한 변화를 보였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연도를 후려쳤고, 주먹은 여세를 몰아 쾌활장의 왼쪽 뺨을 찍어 눌렀다.

빠각!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 주먹 탓에 쾌활장은 멀쩡한 오른 쪽 뺨으로 연무장에 내리꽂혔다.

“어으으.”

남천휘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비틀며 질풍뇌격궁을 소환했다. 그리고 사마의를 향해 접근하는 쾌활장을 향해 화살을 쐈다.

핑핑핑-

“흡!”

쾌활장이 철시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뒤집는 순간이었다. 그의 배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쾌활장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천휘의 무릎이 단전을 찍었다.

콰직!

“주군. 멋지십니다.”

남천휘는 초롱초롱한 사마의의 눈빛을 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황보관을 응시한 채 말했다.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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