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82화 (182/305)

81, 마이동풍(馬耳東風). (2)

우주류검술이라는 명칭을 두고 엄지를 추켜세우는 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남천휘도 그러했다.

일단 웃기잖아?

성시는 청도문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고, 마이는 동풍을 운운하는 기벽을 지녔다.

아!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

마이동풍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성어란다.

어찌됐든 저들에게서 고수의 풍모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다.

오히려 곡부남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을 서산노옹이나 백주검이 노강호의 풍모를 지녔다.

한데 마이의 검술이 이어질수록 선입견은 햇살을 맞이한 눈사람처럼 녹기 시작했다.

쾌검과 환검의 조화.

우주류검술은 기본에 충실했다.

한데 단순히 빠르고, 변칙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 빠르고, 너무 현란했다.

차라라라라라락-

이쯤 되면 검법이 아니라 기예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혈검살의의 맏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였나?’

성시나 다른 혈검살의와 달랐다.

마이는 진짜 강했다.

비무의 횟수나 실전의 경험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마치 레벨도 높고, 퀘스트도 많이 한 상대와 싸우는 듯했다.

‘약 빨고 싸워야겠네.’

생명력은 상처를 입는다고 깎이는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했지만, 생명력이 6이나 깎인 상태였다.

‘적선단.’

약을 빨았으니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야 했는데.

◎ 대자연의 기운을 일부 흡수합니다.

- 생명력이 +1 회복됐습니다.

저기요. 제가 잘 못 들은 거겠지요?

적선단의 회복 효과는 2할, 고정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체력이 하락할수록 빛을 보는 등급 이상의 위엄을 지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벽선단도 사용했다.

◎ 대자연의 기운을 일부 흡수합니다.

- 내공력이 +1년 회복했습니다.

체력 일 푼을 회복하고, 내공 일 년을 회복한다는 건 엄청난 기연이다. 하나 줬다가 뺏는 것만큼 열 뻗히는 일이 어디 있던가.

남천휘가 인상을 썼다.

‘쳇! 어쩐지 제비를 치료할 때 물약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했어.’

마이는 남천휘를 보고 수염을 매만졌다.

“소년, 지쳤는가?”

그러는 당신이야 말로 목욕을 한 것처럼 푹 젖어 있잖아. 지금이라도 운기조식을 하지 않으면 머리로 쏠린 피가 백회혈을 통해 활화산처럼 분출할지도 몰라.

“몇 살 차이라고 소년이래?”

마이는 묘한 눈초리로 말을 건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네.”

그 말이야 말로 남천휘를 상징하지 않을까 싶다.

남천휘의 안에 재이가 있음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훗, 적당히 숨을 돌렸으면 다시 시작할까요?”

마이는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크흠! 언제든지!”

남천휘는 마이가 손을 떠는 것을 보며 나직이 한 숨을 흘렸다. 더 이상 비무를 계속했다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기세가 아닌가.

어차피 소기의 성과는 거둔 후였다.

‘기분이 더럽기는 하지만, 생명력과 물약의 관계를 알았으니······.’

더 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마이와 계속 어울리다가는 자신조차 소우주인지, 대우주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만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의원을 동경하며 유생으로 변장했던 살수, 소우주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황 노대의 객잔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다.

‘살행을 나섰다고 했으니 지금쯤 떠났겠군.’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쩌면 마이를 제외하고 가장 이상했던 인연이 아닐까 싶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이르자, 투기는 봄바람의 꽃잎처럼 사그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졌다고 칩시다.”

“그럴까?”

마이는 대뜸 호응했다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연발했다.

“크흠, 화기가 상하지 않을 정도의 비무였어. 이 정도면 우리의 대화도 충분했던 것 같군.”

남천휘는 일관되게 허세를 부리는 마이를 보며 쌍도를 거뒀다.

아니, 거두려 했다.

재이의 알림이 없었다면 말이다.

◎ 패배를 인정할 경우 특기 ‘불패’가 삭제됩니다.

불패(不敗)는 특기를 처음 개방할 때 얻었던 것이 아닌가. 패배하지 않는 근성과 호승심이 증가하는 효과를 지녔다. 사실상 지금에 와서는 유명무실한 특기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나 거듭 말하지만, 줬다 뺏는 것만큼 기분이 더러운 것도 없다.

스릉-

남천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쌍도를 늘어트리자, 마이가 흠칫 놀라며 눈치를 봤다.

“왜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의 대화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아닌데?”

“맞는데.”

타탓!

남천휘가 재차 달려드는 순간 마이는 남몰래 한 숨을 흘렸다.

그리고 일각 정도 지났을 무렵 마이는 ‘그만 좀 해! 이 징글맞은 새끼야!’라는 어울리지 않게 세속적인 욕설과 함께 주저앉았다.

남천휘의 승리이자, 물약의 승리였다.

그리고 연승(連勝)은 깨지지 않았다.

*

남천휘는 청도문주가 숨겨둔 재화를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었다. 언뜻 은자와 전표만 헤아려도 사십만 냥은 족히 될 듯했다.

사십만 냥이라면 딱히 체감이 되지 않으리라.

예를 들어 곡부남가의 한 해 운영비는 은자 이만 냥 정도였다. 실제 문파 운영비는 오천 냥이면 족했다. 다만 외부에 베풀다보니 몇 배의 금액이 소모되는 것이다.

더 직관적인 예를 들어 보자.

황보세가의 한 해 운영비가 오만 냥이다.

그러니 중견 방파 십여 곳을 수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금액이 사십만 냥 정도 되지 않겠는가.

청도문주의 숨겨둔 재산만 이 정도였다.

남천휘가 청도문 인근의 중소방파와 양민들에게 나눠준 재화에 고리대금에 관한 증명서까지 포함하면 이백만 냥에 가까울 터였다. 그러니 청도문주가 얼마나 심하게 헤쳐 먹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껍데기만 남은 곳에서 오래 버텨봤자 좋을 것이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연하연이 깨어나는 즉시 청도문을 뜨려 했다. 스스로 운기조식만 할 수 있게 된다면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치유가 된 상태였다.

한데 남천휘는 떠나지 못했다.

청도문의 멸문이 산동성 동부에 퍼진 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동부의 철과 소금을 다루는 상인들이었다.

“철귀유협의 명성이 산동성 내에 자자합니다.”

“산동성에서 가장 고명한 무인을 손꼽는다면 당연 남 대협께서 으뜸이시지요.”

상인들은 상행의 유불리를 따져 움직일 뿐이다.

누가 군림하든 개의치 않았다.

다음으로 움직인 건 직접적으로 통행의 영향을 받는 표국과 중소방파였다. 철귀유협 남천휘가 신공부에 이어 청도문까지 장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접견을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남천휘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방파의 방주가 건넨 선물에 함박웃음을 보였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죽은 공자와 맹자가 아니라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남천휘가 싱긋 웃는 순간 혈검살의가 선물을 챙겼다. 저들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무인과 의원의 경계에 서지 않았다. 무공과 의술은 스스로를 돋보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산동성 동부에서 콧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찾아와 고개를 숙이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형님, 이 청옥과 수실을 좀 보시오. 내 검에 걸면 휘황찬란하지 않겠소?”

가장 즐거워하는 이는 마이와 함께 나타났던 홍칠이다. 홍 씨 집안의 일곱 째라서 홍칠이 되었단다. 겉모습에 신경 쓰는 것보다 이름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성시와 마이는 들뜬 마음을 애써 숨겼다.

성시는 여전히 연하연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지 못했고, 마이는 왜인지 모르게 남천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아마 비무 결과를 동생들에게 알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듯했다.

“그래, 잘 어울리네. 이건! 우리 하연이에게 줘야겠다. 원기 회복에는 역시 보약이 최고지.”

“크흠, 그럼 나는 이걸 챙겨 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것을 챙기는 재주는 잃지 않았더라.

“오늘은 슬슬 마감을 합시다!”

홍칠은 서역의 대상처럼 온 몸에 비단을 휘감은 채 몸을 일으켰다. 어쩌다보니 본업인 혈검살의보다 이쪽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반면 성시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하연이가 아직 힘들어하고 있어. 황보세가가 야음을 틈 타 난입이라도 하면 큰일이 아닐까 싶네.”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괜찮아요. 그들은 오지 않을 겁니다.”

성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나 남천휘는 유유자적하다.

혈검살의가 제아무리 남의 시선을 신경 쓴다고 해도 황보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청도문 근방의 중소방파가 몰려온 이상 저들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습을 하지 못할 터였다.

결국 황보황의 생각처럼 무림맹을 움직여 청도문의 세력을 갈라먹는 것이 전부이리라.

“그래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겠지요.”

남천휘는 유운관에 온 목적을 잊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외형상이나마 철신의 화신 같은 소용녀가 수리를 끝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가겠네.”

성시가 먼저 따라붙었다.

연하연이 완치되는 모습을 본 후에야 다시 강호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마이와 홍칠 또한 흔쾌히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어찌됐든 멸문한 방파의 터전에서 오래 있는 것이 즐거울 리 만무했다.

“술이나 진탕 마셔보자고!”

홍칠이 전표 뭉치를 흔들며 깔깔 거렸다.

아무리 봐도 부호들에게 아양을 떨며 치료를 전담하는 의원처럼 보일 뿐이다.

“안주는 내가!”

마이가 홍칠의 외침에 동조했다가 슬그머니 남천휘의 눈치를 봤다. 말 꼬리를 흐리더니 아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지.”

“말 나온 김에 당장 출발합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시간 대였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철귀유협에 혈검살의 세 명이라면 어지간한 방파는 고개도 들지 못하리라. 잠시 후 청도문주가 사용했을 법한 화려한 마차가 청도문을 떠났다.

“함께 움직이는군.”

청도문을 지켜보고 있던 복면인의 눈빛이 달빛을 받아 일렁였다. 그는 봉도곡 입구에서 백타선자와 만났던 강소수석의 전령이었다.

“남천휘만으로도 산동수석이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혈검살의 세 명이 더해진다면 큰 화가 될 수도 있겠군요.”

복면인의 입부분이 꿈틀거렸다.

수하의 말을 비웃고 있는 게다.

“어차피 일원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 남천휘가 지금껏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 수 있었던 건 모두 일원의 의지일 뿐이다."

수하는 복면인이 일원을 거론하는 순간 넙죽 엎드렸다.

“속하는 일원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일원의 행보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싶어서······.”

복면인은 수하를 다독이며 말했다.

“됐다. 사소한 일로는 공과를 묻지 않아. 너는 지금 당장 강소성으로 가라. 지금쯤 분노한 백타선자가 산동수석과 마주하고 있을 것이야. 나는 두 사람을 구경하러 가야겠구나.”

“존명.”

수하는 떠나기 전에 한 마디를 남겼다.

“우리는 하나이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복면인은 일원의 구호를 읊조리며 수하를 배웅했다.

홀로 남은 그는 휘엉청 밝은 닭을 올려다보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산동성 전체를 흙탕물로 만들었어. 그렇다면 다른 성의 미꾸라지는 어떨까?’

그의 눈매가 달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그걸 지켜보는 것도 꽤 즐겁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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