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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181화 (181/305)

81, 마이동풍(馬耳東風).

81, 마이동풍(馬耳東風).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재이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가 뇌리를 스쳤다.

아마 사용지침단계, 즉 튜토리얼을 수행하던 당시 재이나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

‘그 때 내가 재이라 불렀지.’

재이(災異)는 재앙이 되는 괴이한 일을 뜻한다.

남천휘가 재이나를 마주했을 때의 심경이 딱 그러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재이를 재이나라 부른 기억이 없다.

‘재이나. 그게 내 질문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 재이나는 제 성능과 기인하여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인님의 의문을 상당부분 해소하게 만들 것입니다.

재이의 설명은 명확하지 않았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빙빙 도는 듯했다.

남천휘는 눈앞에 재이가 있는 것처럼 시선을 집중한 채 말을 건넸다.

“나는 정확한 의미를 원해.”

◎ J.A.I.N.A

그게 뭐냐고?

◎ Jealousy Artificial Intelligence Nano-plast Armor. 질투심 많은 인공지능 초소형 생체 갑옷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천휘가 눈을 끔뻑이는 사이 재이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가볍게 말을 건넸다.

◎ 질투심이 많다는 건 납득할 수 없지만요.

마치 남천홍이 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억지로 먹는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게 뭔데?’

인공지능 초소형 생체 갑옷이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결국 신이 보낸 건 아니로구나.’

그랬다면 이처럼 말을 빙빙 돌리지는 않았을 게다.

이렇게 된 이상 궁금했던 것을 죄다 물어봤다.

‘뭐가 됐든 너를 의심하지는 않겠어. 어찌됐든 나를 성장시킨 건 사실이니까. 다시 묻겠다. 왜 나에게 들어온 거지?’

◎ 명령에 따라 수행했을 뿐입니다.

명령을 내린 자를 물었더니 시스템 상의 결정이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그렇다면 S급 특기인 ’불굴‘도 시스템이 준 건가?’

남천휘는 특기 목록을 개방했을 때 다섯 개를 얻었다. 모든 것이 소중했지만, S급 특기 불굴의 효율성은 엄청났다.

살인이 무감각할 정도였으니.

아! 무희 빼고.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정해진 과정을 통해 진행됩니다. S급 ‘불굴’은 희소성만으로 손에 꼽힐 만큼 대단한 특기입니다. 만약 불굴이 생성됐다면 생성될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었단다.

남천휘는 허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가 얻어낸 것은 많지 않았다.

특급강호인승급체계라는 기연이 운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아무래도 제2막 중원행은 운 외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네가 갑옷이라니 의외네. 전설에 나오는 마검이나 기물처럼 영기가 깃든 건가?’

◎ 무엇의 갑옷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현재 초소형 생체 갑옷은 현재 파편화한 상태로 퍼져 있습니다. 주인님의 퀘스트를 비롯해 레벨업 시스템의 진행 과정은 나노플래스트가 수집한 정보에서 기인합니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하나 나노플래스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 생체파편의 숫자는 현재도 증식중이며, 크기는 안력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다만 시스템 상의 효과가 발동할 때라면 몇몇 존재는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뇌리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

지난 날 객잔에서 백타선자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의 말을 엿듣기 위해 오감증폭제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 때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기막을 건드렸다며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는군. 그런데 백타선자의 레벨에서 위화감을 느낄 정도면 이미 들켰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무인의 자질과 특정 무공에 따라 기감이 능력이 이상으로 발달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 놀랐다.

나노플래스트가 산동 전역에 퍼져 있다면 개개인의 신상과 무공의 변천사, 그리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퀘스트를 발동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그러니 그 말인즉슨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입맞춤도 마음대로 못하겠군.’

◎ 수집된 정보는 공개 레벨에 따라 제공됩니다.

오직 주인님에게만 제공되는 정보이기에 유출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놈이 보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불현 듯 야릇한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남녀 간의 정분이나 그 이상도 기록됐다는 뜻이 아닌가.

◎ 역시 무적자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입니다.

- VIP 10000 포인트로 원하시는 장소의 인물에 대한 상세 정보가 제공됩니다.

지금껏 잠잠하던 녀석이 포문을 열 듯 조롱하기 시작했다. 남천휘는 얼굴을 붉힌 채 변명을 하듯 빠르게 읊조렸다.

‘그 놈의 포인트는 안 들어가는 곳이 없냐? 포인트를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들렸냐? 아까 뭐라고 했어? 사용자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변화는 익숙함의 탈피에서 시작한다면서 왜 이렇게 유가의 법도를 강조해? 이제라도 유생으로 전직할까?’

◎ 그래서 안보실건가요?

‘안 봐. 그러니까 너도 보지 마!’

남천휘는 툴툴 대면서 재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녀석의 정체를 캐낼 수는 없었지만, 향후 진행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 시스템은 일시와 장소, 그리고 난이도를 고려하여 퀘스트를 제공합니다. 주인님이 수락하지 않는다면 다른 조건의 퀘스트가 생성될 때까지 제공되지 않습니다.

제 1막의 마지막 퀘스트를 너무 빨리 달성한 까닭에 칠십 일이 비었다. 동부를 여행했지만, 여전히 50일 가까이 남았을 터였다.

‘뭔가 더 복잡해졌군.’

일단 능력 수치의 변화부터 파악했다.

- 생명력 : 100/100

- 내공력 : 75 년

- 공격력 : 720(장착 : 없음)

- 방어력 : 380(장착 : 마린보의)

능력 수치가 사라지기 전만 해도 체력 수치와 근력 수치는 800 정도였다. 한데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생명력 100만 남았다.

‘설마 이거 비율이냐?’

◎ 생명력은 백분위로 조정됐습니다.

- 적의 타격으로 인한 피해량 역시 비율로 적용되어 생명력이 소모됩니다. 생명력이 바닥나면 주인님은 사망합니다.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결국 표현 방식만 달라졌다는 뜻이다.

하나 수백이었던 수치가 100으로 줄었으니 직관적일지언정 보기 좋지 않았다. 반면 내공이 드디어 강호에서 통용되는 수치로 표현됐다. 자신의 단전에 담긴 내력이지만,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힘들었다. 한데 이제는 일 갑자 반의 내공을 지녔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내공만 해도 2000이 넘었는데 아직도 초절정이 되지 못한 이유를 알겠네.’

보통 무공이나 성취를 떠나서 이 갑자의 내공을 지니면 초절정이라 칭했다.

공격력과 방어력 또한 직관적이다.

스텟으로만 판단해야 했던 자신의 강함을 수치로 환산해놓은 듯했다.

남천휘는 질풍뇌격궁과 천하제일도를 꺼내어 공격력의 변화를 살폈다.

‘확실히 스텟 증가가 공격력 증가로 바뀌니까 이게 어느 정도 무기인지 알 수 있네.’

◎ 주인님의 원활한 성장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지요.

이제는 하다하다 아부까지 하는 거냐?

눈물 나게 고맙기는 하다.

불현 듯 생명력에 대한 의문이 뒤이었다.

피해량이 백분위로 떨어진다면 도대체 얼마나 다쳐야 생명력 1이 깎이는 걸까.

‘아무나 붙잡고, 한 대 때려달랄 수도 없고.’

그 때 혈검살의가 후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 소협.”

성시를 비롯해 혈검살의는 모두 남천휘와 비슷한 또래였다. 그는 잘 가꾼 수염을 배배 꼬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뭡니까?”

“소협은 소우주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도가나 의술의 교리에 의하면 자연은 곧 하늘이고, 사람은 자연을 닮았다고 했다. 그러니 몸속에 작은 우주를 품고 음양의 조화를 이뤄 정기신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게다.

‘소우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한데 남천휘는 유생을 사칭한 살수, 소우주를 통해 혈검살의의 절초임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바쁘니까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 순간 사내는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역시 남 소협은 장부답게 호탕하군.”

어디가?

그는 일인경극을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좋소! 우리 호쾌하게 한 번 붙어봅시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지 않아도 누군가 자신을 때려줬으면 하던 찰나가 아니던가. 혈검살의가 겉모습에 치중한다고 하지만, 검법과 의술은 진짜였다.

“좋아요.”

남천휘가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사내는 검을 늘어트린 채 먼 산을 바라봤다.

“내 이름은 마이요.”

말 귀라니 참으로 혈검살의다운 이름이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겨울바람을 느꼈다.

“후훗, 내가 검을 뽑을 때에는 늘 동쪽에서 바람이 분다오.”

지금은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만.

그 순간 마이가 남천휘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별을 박아 넣은 것처럼 맑은 눈동자가 번쩍였다.

“하여 강호동도들은 나를 일컬어 마이동풍이라 부르지!”

남천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 동도 여러분, 철귀협이라 불러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별호는 강호를 통틀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법하지 않은가.

하나 마이는 장원 급제라도 한 사람처럼 으스댔다.

“자! 어디 철귀유협의 도를 한 번 받아 봅시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삼 초를 양보하겠네!”

그럴 필요 없는데.

남천휘는 어색하게 웃었다.

레벨과 색을 볼 수 없지만, 기감은 더욱 예민해졌다. 그리고 혈검살의 2호, 마이는 명백하게 자신보다 약했다.

“그럼 먼저 가지.”

하나 몇 대 맞아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파팟!

오행군림보를 펼치는 순간 그의 신형이 바람의 결을 따라 잘게 쪼개졌다. 서넛으로 흩어지는 듯하더니 한순간 마이의 면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빡!

마이의 고개가 대차게 돌아갔다.

오히려 일격을 날린 남천휘가 눈을 휘둥그레 떴을 정도였다.

“후훗. 이것이 청춘의 맛이로구나.”

그는 혀로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뭐야? 재이야, 저 놈 이상해.

◎ 지금까지의 언행과 복색으로 유추했을 때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듯 보입니다. 근묵자흑이라 했습니다. 상대방의 이상 성향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격리를 추천합니다.

마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첫 초일세.”

퍽! 빡!

주먹으로 옆구리를 쳤고, 칼등으로 어깨를 내리쳤다.

삼 성의 공력을 담았다.

그러니 어지간한 무인은 어깨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제아무리 혈검신의라 해도 한동안 팔을 쓰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울 터였다.

하나 마이는 웃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억지웃음을 짓는 모습이 참으로 기괴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누가 저런 모습을 좋아하기라도 하나?’

그는 검신을 쓸어내렸다.

“천마신의를 알고 있는가?”

“모르는데.”

신마대전 당시 괴겁천마의 곁에서 싸웠다는 것만 알 뿐이다.

“천마신의는 고명한 의술을 지녔지. 반면 너무 허약했어. 그렇기에 괴겁천마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창안한 검법을 전수했네. 하나 천마신의는 검법을 익히기에는 너무 늙고, 약했지. 그렇기에 약물에 의지했어. 그러나 새로 익힌 검법을 통해 괴겁천마의 사성신위 중 한 명이 되었지. 우리는 모두 천마신의의 유진을 얻었네.”

괴겁천마의 곁을 지키던 사성신위(四聖神位)는 각자가 한 성의 패주를 자처할 만큼 강했다. 오직 사파의 절대자였던 사령신의 광혈오주(狂血五主)만이 대적할 수 있었다.

스릉-

마이의 손이 검신의 끝까지 쓸어내렸다.

그 순간 평범하던 검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주류검술.”

동시에 검 끝이 십여 개로 분화하며 번뜩였다.

남천휘는 검의 예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황급히 쌍도를 소환했다.

터터터터터터터터텅!

마이는 두 걸음이나 물러난 남천휘를 보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 내가 혈검살의의 맏이라네.”

단순히 기벽을 지닌 괴인이라 여겼다.

몇 대 맞아주고 생명력이 얼마나 깎이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체에 불과했다.

한데 그랬던 괴인이 태산처럼 크게 느껴졌다.

“한 대 맞고 끝날 일이 아니네.”

남천휘의 말에 마이가 멋들어지게 가꾼 수염을 쓰다듬었다.

“청춘의 맛은 세 대로 충분하다네.”

저런 대사는 어디서 배우는 거지?

돈 주고 배우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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