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귀협(鬼俠)은 머리가 좋아. (3)
하나 호대주와 표대주는 남천휘가 버름할 만큼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표대주가 귀엽다는 듯 키득거렸을 뿐이다.
그 때 천수련이 다가왔다.
함께 하기 위함일 터였다.
그런 그녀가 적을 도발하려는 듯 새치름한 한 마디를 건넸다.
“천품육포의 대단함을 모르는 당신들이 안쓰러운 걸?”
개똥아, 그건 아니야.
‘그런데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한데 표대주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남천휘와 나란히 선 천수련을 보며 히죽 웃었다.
“육포는 모르겠지만, 탐이 나기는 하는구나.”
천수련은 표대주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제아무리 남녀 관계에 어두운 그녀라고 해도 표대주의 말뜻을 모를 리 없다.
그 때 남천휘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앞을 막았다.
“위험해. 그러니까 물러서.”
사실은 방해가 됐다.
쌍도를 휘두르고, 활까지 쏴야 하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남천휘가 S급 특기인 ‘통찰’을 깨우쳤어도 난전에서 언제까지 천수련을 확인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언제까지나 인벤토리의 위력을 선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신뢰를 넘어선 의심은 치명적이다.
그리고 땅꼬마 같은 놈이 천수련을 보며 키득거리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천수련은 입술을 삐죽였다.
‘칫!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야?’
하나 누군가에게 보살펴지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남천휘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대전을 지켜줘. 너한테까지 가지 않게 할 테니까.”
‘아!’
천수련은 시선을 슬쩍 돌린 채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남천휘의 머릿속에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천수련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너 왜 그러니?
남천휘가 당황스러워하는 틈을 노려 표대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죽여!”
그래, 호감도는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것에 집중할 때가 아니던가.
남천휘는 양 손을 떨쳤다.
그 순간 천하도와 제일도가 나타났다.
마치 비조가 활개를 치듯 두 팔을 벌린 채 몸을 날렸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알림이 들려왔다.
《천수련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천수련에 대한 미연시가 활성화됩니다.》
《미연시 3회 활성화로 인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남천휘는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다.
‘분위기 깨지 마!’
한데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알림이 이어졌다.
◎ 세안과 교골, 청혈이 지급됩니다.
- 대상자의 미모 순위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 현재 대상자의 외모 서열은 상위 11%입니다.
엇! 올랐네.
조만간 강호의 모든 사내 중에서 일 할에 포함되는 미공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없는 문제도 존재했다.
‘빌어먹을! 이거 뭐야?’
미연시가 발동하는 순간 시야가 위아래로 나뉘었다. 상단은 눈으로 보는 그대로였지만, 하단은 말과 속내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거 뭐야?」
한창 생사를 결정해야 할 혈전 중에 미연시라니.
그 순간 헛웃음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뒤는 내가 반드시 막아낼 게요. 당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기치 못한 천수련의 속내에 얼굴이 화끈했다.
개똥이도, 재이도 미친 게 분명해.
그 순간 시야 아래쪽에서 협봉검이 솟구쳤다.
표대의 무인이 기다시피하면서 달려든 것이다.
“궁신탄영!”
그 순간 남천휘의 신형이 일장이나 뒤로 밀렸다.
다른 생각을 하던 와중인지라 자칫 잘못했으면 상위 11% 얼굴에 흠집이 날 뻔했다.
“이거 치워!”
시야 하단에 남천휘의 일갈이 적히는 순간 재이가 되물었다.
◎ 미연시 모드를 해제하시겠습니까?
물어 볼 것을 물어봐라.
“당장 꺼버려!”
◎ 미연시 모드의 강제 종료로 인하여 천수련의 호감도가 -20 하락합니다. 대상자의 호감도와 별개로 시스템 상의 제약으로…….
남천휘는 재이의 알림을 귓등으로 흘렸다.
미연시가 해제됨으로서 시계는 두 배나 확장됐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어쨌든 남천휘는 자신을 미친 사람 보듯 하는 적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당장 꺼져버려!”
일부러 일갈을 내질렀다.
조금 전의 외침도 이랬던 것처럼 느껴지기를.
다행히 표대와 호대의 무인들은 남천휘의 말대로 행동할 생각이 전무했다.
그들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좌우로 흩어졌다.
저들의 행태는 지금까지의 적과 달랐다.
다짜고짜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무위를 가늠하려는 듯했다.
‘실전 경험이 그만큼 많다는 건데.’
그렇다면 예기치 못한 공격으로 파장을 일으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한 놈씩 제대로 쓰러트려야 할 터였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아.’
회복제가 있는 한 장기전은 자신의 주 무대나 다름없었다.
텅!
남천휘는 협봉검을 쳐낸 후 평범한 일격으로 상대의 목을 벴다. 쓰러지는 놈을 걷어차니 두세 명이 뒤엉킨 채 튕겨나갔다.
이미 내력은 절정의 수준을 초월하지 않았던가.
향후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지금쯤이면 천수련보다 내공의 양적인 면에서는 우위에 서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남천휘가 쌍도를 휘두르는 순간 호대와 표대의 무인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따당!
표대의 무인들은 두 자루의 협봉검을 사용했고, 일견하기에도 민첩 위주의 보신경을 익혔다. 하나 더 빠른 움직임과 더더욱 강렬한 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교대와 휘대의 무인들이 일합도 받아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호대와 표대의 조장 급쯤 되어야 다시 몸을 일으킬 따름이다. 그런 자들조차 재차 달려들지 못했다. 사지 중 어딘가가 부러졌거나, 내상을 입었으니 오히려 방해만 되지 않겠는가.
열 명 남짓한 적을 쓰러트렸을 때였다.
적들은 남천휘와 정면으로 싸우는 방식을 포기했다.
표대는 아예 남천휘를 뒤로 한 채 대전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호대의 무인들은 남천휘를 향해 접근했다.
하나 남천휘의 시선은 두 대주를 바라봤다.
표대주와 호대주가 서서히 거리를 좁혔기 때문이다.
한데 그들은 남천휘가 아니라 대전 쪽으로 향했다.
호대로 시선을 끄는 사이 주력은 노국장주를 노리려는 게다
치사하지만, 효과적이다.
느긋하던 호대주와 표대주가 움직였다.
남천휘가 눈치를 채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일갈을 내질렀다.
“막아라!”
“뚫어라!”
각기 호대와 표대에 내린 명령이다.
남천휘는 황급히 질풍뇌격궁을 소환한 후 철시를 걸었다.
지금은 정확도보다 시선을 끌기 위함이다.
핑핑핑핑핑-
다섯 발을 연달아 쐈다.
하나 내력이 담긴 철시라고 해도 적중하지 않으면 맹렬한 바람에 불과했다.
그 사이 호대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외공을 상당 기간 수련한 듯 팔다리의 드러난 부분에는 흙빛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엇!”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지근거리까지 위압적으로 달려든 후 산개하여 포위망이라도 구성하려는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질풍난무 맛을 못 봤구나!’
남천휘는 몸을 빼려다 디딤 발에 힘을 줬다.
잠깐의 공방으로 놈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면 물러설 이유가 없다.
땅!
가장 레벨이 높았던 덩치가 장군도를 휘둘러 철시를 튕겨냈다. 100레벨을 넘긴 고수답게 철시의 위력에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멧돼지의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콧김을 뿜어냈다. 속도를 더욱 올린 채 달려드는 모양새가 위협적이기는 했다.
남천휘는 십여 명의 호대 무인들을 향해 정면으로 들려들었다. 그리고 상체를 휘돌리며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는 한 마디를 읊조렸다.
“질풍난무!”
스킬이 발동됨과 동시에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잠시 후 스물네 번의 칼질에 이어 쌍도가 교차하며 공간을 긁었다.
내공이 늘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도기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비쳤다.
게다가 도신을 휘감은 채 일렁이는 모습이 어찌 보면 불꽃같았다.
터텅!
적은 갑작스런 절초에도 재빠르게 대응했다.
정면과 좌우에 있던 자까지 셋이 동시에 도기를 끌어냈다. 하나 질풍난무의 격렬한 반응에 세 명이 뒷걸음질 쳤다.
빈자리를 좌우의 무인들이 채웠다.
이미 지척에 이른 호대의 무인들이 산개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순간이었다.
남천휘가 일말의 예비 동작도 없이 쌍도를 흩뿌렸다. 질풍난무를 펼치는 순간 정면에 있던 호대의 무인 셋이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방향을 바꿔 재차 질풍난무를 펼쳤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궁신탄영까지 펼치며 적을 쫓았다.
“크악!”
그 동안 어렵게 키운 근육이 무색할 만큼 새된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제아무리 외문무공인 철포삼을 익혔어도 내공이 담긴 일격에는 무소용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마린보의가 있잖아.’
남천휘는 마린보의를 입고 있기에 특기 ‘철벽’이 상시 적용됐다. 그리고 철벽의 효능이 외문무공인 철포삼과 같았다. 하나 칼을 맞을 일이 없으니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쾅!
그 사이 굉음이 울렸다.
호대주가 대전의 석벽을 향해 패도를 내리친 것이다. 하나 두터운 석벽이 일도에 쪼개질 리 만무했다. 호대주도 예상한 듯 재차 도를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깨진다!’
한데 그 순간 남천휘의 일갈이 들려왔다.
“궁신탄영!”
호대주는 석벽을 향해 내리치는 대신 상체를 휘돌렸다. 그리고 어둠을 향해 패도를 내리그었다. 그러나 궁신탄영이 한 번 더 펼쳐지는 순간 호대주의 패도는 허공을 벴다.
촤아악!
그 사이 남천휘가 좌측에서 튕겨 나왔다.
역수(逆手)로 쥔 천하도가 호대주의 허리춤을 노렸다. 하나 호대주의 곁에 있던 표대주가 어느새 사각에서 파고들었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매번 놓치기 일쑤였다.
‘작은 놈이 싫은 건 아니야.’
그저 표대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쉭쉭쉭쉭쉭!
질풍난무의 칼질을 대가리만 까딱거리면서 피하는 촐싹거리는 모습까지 얄미웠다.
“젊어서 그런 건가? 지치지도 않는구나.”
표대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사이 호대주는 다시 석벽 쪽으로 다가갔다.
놈들은 처음부터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노국장주를 죽이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그렇기에 표대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간만 끌었다. 이러는 사이에 호대주가 대전 안에 난입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쯧쯧, 쾌초는 될지언정 살초는 되지 못했구나. 그렇게 단순한 초식은 아무리 빨라도 안력이 좋은 자를 벨 수 없단다.”
남천휘는 표대주의 조롱에 미간을 좁혔다.
하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쳇!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표대주는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남천휘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하나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은 듯 거리를 유지했다.
남천휘는 표대주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호대주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다.
“궁신탄영.”
나직이 읊조리는 순간 표대주의 놀란 얼굴이 지척에 이르렀다.
“호오! 빨라.”
남천휘는 대꾸하는 대신 질풍난무를 읊조렸다.
스물네 번의 칼질이 공간을 갈랐다.
하나 표대주는 질풍나무의 투로가 눈에 익은 듯 가볍게 모든 칼질을 피했다.
“클클, 이대로는 안 된다니까.”
그래, 이대로는 안 된다.
표대주는 민첩 위주의 성장을 했을 테고, 보신경에 특화됐을 터였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안력(眼力)도 동수에 비해 뛰어날 것이다. 질풍난무를 계속 펼쳐봤자 투로만 드러내는 꼴이 될 터였다.
콰쾅!
그 사이 호대주의 일격이 석벽을 갈랐다.
사람이 드나들 정도는 아니지만, 내부를 확인할 정도는 됐다. 표대주는 다급해진 남천휘를 도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허허, 네 급한 마음이 눈에 훤히 보이는 구나. 침착해야해. 이럴 때 흥분하면 그냥 죽는 거란다.”
닥쳐! 이 오 척 단구 새끼야.
“질풍난무라는 초식은 너무 길어. 한 번 펼치면 멈출 수 없는 듯하구나. 네 성취가 부족한 건가? 나였다면 그런 초식은 애초에 익히지 않았을 거야. 빠르기만 할뿐 변화가 없잖아.”
남천휘는 눈을 부릅뜬 채 일갈을 내지르려 했다.
한데 불현 듯 표대주의 한 마디가 깊이 마음에 새겨졌다.
‘시전 시간이 길어?’
남천휘는 황급히 무공총람을 열었다.
어차피 질풍난무는 알아서 펼쳐지는 중이 아닌가. 그렇기에 입으로는 질풍난무와 벽선단을 번갈아 읊조렸고, 눈으로 무공총람의 내용을 확인했다.
《질풍난무》
- 도풍과 도기를 섞어 전방으로 발출합니다.
- 전방의 적을 2초 간 공격합니다.
- 1회 사용 시 내공 250을 소모합니다.(5/10)
질풍난무를 실행하면 2초 동안 자동으로 정해진 동색이 이어진다.
스물네 번의 칼질과 두 번의 도기(刀氣).
이것이 2초 간 쉼 없이 펼쳐질 터였다.
반면 궁신탄영은 즉시 발동기가 아니던가.
‘만약…….’
쾅!
다시 한 번 호대주의 일격이 석벽을 두드렸다.
이쯤 되면 성사 여부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으리라.
“질풍난무!”
남천휘가 재차 달려들자, 표대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것으로 여겼으리라.
한데 열 번의 칼질이 빠르게 펼쳐지는 순간 남천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궁신탄영!”
표대주는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남천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좌측에서 맹렬한 도풍이 일었다.
팔꿈치 쪽에서 비스듬히 치고 들어온 직도가 너무도 가볍게 표대주의 팔을 잘라버렸다.
촤아악!
“궁신탄영!”
표대주는 고통을 받아들일 여력도 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뭐야? 어디냐?”
하나 남천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남천휘의 쌍도가 교차하듯 공간을 찢어발겼다. 도신에 휘감겼던 도기가 실타래처럼 풀리며 표대주의 머리통을 감쌌다.
콰직!
남천휘는 석벽을 부수는 대신 자신을 노려보는 호대주를 보며 히죽 웃었다.
“이것이 질풍궁신탄영난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