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36화 (136/305)

65, 귀협(鬼俠)은 머리가 좋아. (2)

남천휘는 잠시 퀘스트를 뒤로 했다.

그가 잠시 딴청을 피우는 사이 교대주가 일갈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으아아!”

레벨 127의 고수가 만들어낸 검기는 충분히 강렬했다. 하나 남천휘는 철투에서 상대했던 120레벨 대의 적수보다 손쉽게 받아넘겼다.

철투의 적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한 채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반면 교대주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간 상태가 아닌가.

남천휘는 뒷걸음질 치는 교대주를 따라 몸을 날렸다. 직선으로 쫓지 않고 허공으로 뛰어올랐으니 멀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궁신탄영!”

상식을 스킬로 뛰어넘었다.

남천휘는 비스듬히 내리꽂히며 쌍도를 고쳐 잡았다.

검지에 걸린 쌍도가 반 바퀴 회전하더니 역으로 잡혔다. 그리고 역수로 잡은 쌍도를 교대주의 가슴에 찍었다.

콰직!

남천휘는 두 발로 교대주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 반동으로 허공을 회전한 후 가볍게 내려섰다. 하나 교대주는 일장이나 튕겨나간 상태로 피를 토했다.

“쿠에엑!”

교대주의 눈빛이 흐릿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대로 끝날 성 싶더냐? 네가 지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아. 아, 이미 지친 건가?”

남천휘는 숨을 몰아쉬며 상태창의 능력 수치를 확인했다.

근력(筋力) : 92. 민첩(敏捷) : 67.

체력(體力) : 84. 지혜(知慧) : 308.

내공(內功) : 310.

교대주의 조롱처럼 지쳤다.

그래서 회복했다.

남천휘는 교대주를 보며 읊조렸다.

“적선단.”

교대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회광반조의 상태에서도 의아함이 가득했다.

“후아! 벽선단!”

체력과 내력이 2할씩 회복되는 순간 투기 자체가 달라졌다. 교대주 갑자기 달라진 남천휘의 기세에 눈을 부릅떴다.

“어.”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지만 남천휘는 설명해주는 대신 물약을 들이켰다.

“적선단, 벽선단, 적선단, 벽선단. 끝!”

모든 능력 수치가 9할 이상 회복한 후에야 중얼거림이 끝났다.

교대주는 눈을 끔뻑였다.

남천휘는 마치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활력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면 처음 노국장의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황급히 달려온 사람치고는 너무 평온했다.

“너, 이 새끼, 뭐야?”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인벤토리를 펼쳤다.

적선단x214. 벽선단x193.

중급 적선단x52. 중급 벽선단x47.

고급 적선단x3. 고급 벽선단x3.

회회회판을 돌리거나,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은 물약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올 때는 짜증났지만, 막상 모아놓으니 이처럼 든든한 것이 없다.

남천휘는 호기롭게 말했다.

“너 같은 놈들은 만 명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어, 야! 야!”

하나 교대주는 이미 목이 꺾인 채 절명한 후였다.

남천휘는 혈향이 자욱하고, 시신이 가득한 공터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이번 싸움으로 4레벨이 올랐고, 도법과 보법의 숙련도도 꽤 올렸다.

한데 퀘스트 완료 알림이 뜨지 않았다.

‘그렇다면 외할아버지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건데?’

그 때 천수련이 털썩 주저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고고.”

역시 하루 종일 싸울 수 있다는 말은 허장성세였나 보다. 그러고 보면 레벨이 낮을 때부터 주기적으로 주어지던 회복제 역시 값을 매길 수 없는 기적의 물품이 아니었나 싶다.

‘진짜 만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지도!’

남천휘는 잡생각을 지우고 천수련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닫혀있던 대전의 문을 열려 했다.

“아버님하고 어머님은 대전에 계세요. 모두 무사하시고요. 누구 덕분에!”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천수련은 남천휘의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웠다.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라니.

하나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었다.

“뭔데요?”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난장판을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평생 악몽을 꿀 걸.”

천수련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건 생각을 못했네요.”

남천휘는 그녀를 앞에 두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천수련은 눈을 끔뻑이며 돌아섰다.

한데 그 순간 등의 명문혈을 통해 후끈한 기운이 침습했다.

“뭐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남천휘의 내력은 거칠게 휘몰아쳤다.

천수련은 당혹한 표정을 지은 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아아, 안 되는데.’

검후의 심법은 불가에서 비롯됐다.

그렇기에 축기(畜氣)는 여타의 심법에 비해 느릴지언정 정순함만은 천하에서 손꼽힐 정도였다.

남천휘의 내력이 제아무리 순후해도 반발력이 너무 심했다. 자칫 잘못하면 용화수주공이 남천휘의 내력을 강제로 흡수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검후의 심법은 바다와 같기에.

허락받지 않은 내공을 용납할 리가 없다.

천수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명문혈을 통해 노도와 같은 내력이 스며든 후였다. 억지로 몸을 비틀거나, 움직였다가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자신이 아닌 남천휘가.

‘안 돼. 어쩌지?’

천수련은 남천휘가 쏟아 붓는 내공의 양에 놀랄 정신도 없을 만큼 당황했다.

한데 그 순간 척추의 임맥과 독맥을 타고 남천휘의 내력이 사지백해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청명한 기운과 찌릿한 감각이 퍼졌다.

‘앗!’

하마터면 입을 벌려 소리를 낼 뻔했다.

‘이, 이건!’

남천휘의 내력은 흡수되지 않았다.

오히려 용화수주공이 남천휘의 내력을 반기며 뒤쫓는 것이 아닌가. 스승이 자신의 축기를 도왔을 때보다 더욱 정명하고, 웅혼한 내력이었다.

천수련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채 진저리를 쳤다.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력의 흐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대자연의 기운이 사람을 거치지 않고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운용됐다.

[잡 생각하지 마.]

남천휘의 진중한 전음에 천수련은 마음을 다잡았다.

상대방은 자신의 내력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잡념을 버리지 못한 채 내력을 소모시키는 것만 부끄러운 일이 없을 터였다.

집중하자. 지금은 이 순간에 집중하자!

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천을 뛰어다닌 것처럼 들뜬 감정이 쉬이 사그라질 리 없다.

‘아아, 그래도 이런 기운은 처음이야.’

당연했다.

남천휘는 지금 천수련의 명문혈에 손을 댄 채 적선단과 벽선단을 쏟아 붓는 중이다.

‘놈들이 더 올 거야.’

노국장주의 안전이 곧 퀘스트 완료였다.

그렇다면 이제 나타날 놈들은 전보다 많거나, 강할 것이다.

혹은 둘 다 일수도 있고.

그는 대전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고, 천수련은 유일한 존재였다. 다만 그가 회복제를 타인에게 사용했던 건 연하연이 유일했다.

당시 그녀는 중독의 여파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남천휘의 내력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작은 내력만으로도 무위를 드러낼 수 있었다.

하나 천수련은 달랐다.

그녀의 정신도 멀쩡했고, 적은 당시 봉황곡의 하수인인 매혹대보다 강했다. 그렇기에 벌써 세 개의 적선단과 벽선단을 사용한 상태였다.

‘넘치면 손해야. 그러니까 최대치에 근접할 정도만…….’

한데 어느 순간 천수련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부러질 것처럼 뻣뻣하게 세우더니 이내 길게 숨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일견하기에도 탁기(濁氣)였다.

천수련의 혈맥에 남아 있는 노폐물이 소량이나마 배출된 것이다.

작은 기연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남천휘는 그 광경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아, 너무 많이 넣었어.’

천수련이라면 써도 아까울 리 만무했다.

노국장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준 여인이 아니던가. 다만 필요 이상으로 회복제를 사용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말도 있잖아. 과유불급이라고…….’

재이의 조롱 섞인 알림과 함께 지혜 수치가 다섯 개나 떨어졌다.

물론 조롱은 남천휘만의 느낌이었다.

‘그래, 내가 쓰레기다.’

남천휘는 인상을 쓴 채 손을 뗐다.

《미연시 2호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그냥 개똥이라고 해!

아니, 너까지 개똥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이름으로 해.’

미연시 2호의 명칭이 수정됐다는 말과 함께 호감도가 정상적으로 상승했다는 알림이 뒤이었다.

‘아니, 그런데 호감도가 지금 왜 올라?’

전쟁 속에 싹트는 사랑이라도 되는 거냐.

그 때 천수련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에 젖어 혈녀를 방불케 하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녀가 완번히 달라졌다.

숙면을 취한 후 기분 좋게 깨어난 것처럼 뽀송뽀송한 피부에 맑은 눈빛만 보면 여기가 화원인 줄 착각하겠다.

“남 소협은 정말 보면 볼수록 첫 인상과 다르네요.”

첫 인상이 어땠기에 그래?

‘아! 애들 안도와준다고 징징거렸지.’

남천휘는 한 숨과 함께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회복제의 수량을 확인했다.

천수련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격체전공 때문에 많이 힘든가 보네.’

하나 자신을 위해주는 모습이 미울 리 없다.

어쩌면 겉으로는 툴툴 대면서 속으로 챙겨주는 성격이 아닐까 싶다.

개똥이라고 부르는 것도 호감의 표시가 아닐까?

천수련이 헛기침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한데 남천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온다.”

“네?”

“적이다. 이번에는 많아.”

천수련의 눈빛은 봄바람에서 북풍의 한설처럼 서늘하게 변했다.

“신공부주는 어디까지 타락한 것일까요? 이게 현실이라니 토할 것 같아.”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술 마시고 토하면 냄새가 어떨 것 같아?”

천수련은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입을 막았다.

“참을 게요.”

그 때 부서진 정문으로 복면인이 나타났다.

마치 제 집에 들어서는 것처럼 편안한 걸음이다.

그는 공터에 가득한 시신을 보고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구석에 섰다. 그를 따라 복면인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너무 자연스럽게 등장한 탓에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복면은 써줬네.’

헷갈리지 않게 배려도 해주고.

그렇게 등장한 복면인이 서른 명이다.

그들은 좌우 벽에 늘어서더니 등 뒤로 양손을 숨겼다. 양 손이 다시 등장했을 때에는 일척 오촌 길이의 협봉검이 들려 있었다. 질서정연한 모습만 봐도 보통 수련을 거친 자들이 아닐 터였다.

쿵-

복면인 외에도 적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아예 복면조차 쓰지 않은 장년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군부에서나 쓸 법한 패도를 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서른 명이다.

그들이 대전을 바라보며 정면에 섰다.

천수련은 남천휘의 여유로움을 닮고 싶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아까보다는 적네요.”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쉬운 상대가 아니야.”

천수련은 남천휘가 정색을 하자 버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남천휘는 천수련을 달래주는 대신 그녀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이제는 그녀의 레벨이 명확하게 보였다.

어린 나이에 서산노옹이 부럽지 않을 만큼 푸른빛으로 128이라 적혀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적을 응시했다.

단창을 든 자들의 레벨은 90레벨 전후였다.

패도를 쥔 자들은 단창을 든 복면인보도 더 강했다.

서른 명 중 십여 명이 100레벨 전후였다.

하나 남천휘의 시선은 일견하기에도 수장으로 보이는 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작고 왜소한 체구의 사내는 재주를 부리듯 단창을 휘둘렸다. 레벨은 132였고, 패도를 든 덩치가 산만한 자는 138이다.

‘레벨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왜인지 모르게 저들 또한 평범한 수련만으로 성장한 것은 아닌 듯했다.

자신에게 죽은 두 명의 대주들은 저들의 레벨과 20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기운은 훨씬 강렬했다.

“후우.”

남천휘가 호흡을 조절하는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호표기(虎豹起)》

- 적대적인 무력집단과 조우했습니다.

- 호대와 표대의 대주를 척살하세요.

- 성공 시, ‘중간보스’의 실마리가 제공됩니다.

- 실패 시, ‘중간보스’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돌발 퀘스트였다.

하나 이 또한 강호행의 마지막 퀘스트인 중간보스와 연계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해야지.’

모든 것이 간단해졌다.

노국장을 허락 없이 난입한 적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되는 게다.

남천휘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자 적들이 움직였다.

저들은 여전히 느긋했다.

단창을 쥔 자들은 남천휘를 우회하여 대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패검을 쥔 자들은 열을 맞춰 정면으로 다가왔다.

하나 남천휘는 호대주와 표대주를 응시했다.

‘저 새끼들이 합공한다는 것에 내 숫돌 전부를 걸 수도 있어.’

그리고 남천휘는 내기에서 승리했다.

하나 재이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에 보상은 지급되지 않았다.

“에라이!”

남천휘가 허리를 비틀며 쌍도를 좌우로 내리그었다.

촤아아악!

시퍼런 불꽃처럼 직도를 감싼 도기가 공간을 찢어발겼다. 하나 표대주는 반발력을 이용해 튕겨나갔고, 호대주는 뒷발만 슬쩍 뺀 채 도기를 상쇄했다.

예상대로였다.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말했다.

“숫돌, 숫돌, 숫돌, 적선단, 벽선단, 오감증폭제는 시각과 청각으로. 그리고 육포 한 입만 다오.”

남천휘는 육포 조각을 우물거리며 읊조렸다.

“역시 육포는 천품육포야. 안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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