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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101화 (101/305)

51, 고난 전일(苦難 全日).

51, 고난 전일(苦難 全日).

이제야 사람들이 섣불리 다가서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피해자는 당대 산동성을 지배하는 삼정 중 청도문의 후계자였다. 반면 피의자는 전대 산동성의 패주였던 제연평의 후원을 등에 업은 천수련이다.

그러니 범인(凡人)들은 멀뚱히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일단 비켜봐.”

남천휘가 앞으로 나서려 할 때 누군가가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서산노옹(瑞傘老翁)이다.

남천휘는 걸음을 멈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산노옹은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천휘는 초류혁의 수족인 모인적을 쳐낼 때 서산노옹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그는 모인적이 사용하던 녹린탄을 혐오했기에 기꺼이 사건을 파헤쳤다. 한데 그 과정이 공명정대하여 용봉쟁투의 진행자로 임명되기까지 했다.

“노옹께서 맡으신 겁니까?”

서산노옹 역시 남천휘를 눈여겨보던 상태였다.

그렇기에 잠시나마 표정을 누그러트린 채 말했다.

“축제처럼 시작한 용봉쟁투에 흉사가 끊이지 않는구나. 지난 일의 경험 때문인지 신공부에서 내게 이번 일을 맡겼다.”

“어르신, 천 소저는 아닙니다.”

서산노옹은 사건 현장을 돌아봤다.

이미 명숙들이 천수련을 포위한 상태였다.

다행히 그녀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점혈을 당했다.

“그랬으면 좋겠네. 하나 현장이 너무 명확하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군. 조사는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래, 서산노옹이라면 믿을 수 있다.

그처럼 식견과 경험이 대단한 자라면 분명 진짜 흉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남천휘는 손을 모았다.

잘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순간이다.

띠링-

《진실은 언제나 하나!》

- 두뇌는 작아도, 특기는 그대로!

- 미궁 없는 명포쾌.

- 천수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아! 그래. 이제는 안 뜨면 서운할 지경이다.

이제는 돌발 퀘스트라고 하지 말고, 일반 퀘스트라고 하는 게 어때? 뭐만 했다하면 죄다 퀘스트로 뜨는데 이게 무슨 돌발 상황이야.

남천휘의 투덜거림은 길지 않았다.

어쨌든 퀘스트 내용은 천수련이 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두뇌가 작다는 둥, 뜬금없이 포쾌 흉내를 내라는 것이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그랬어야 했는데.

남천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천수련에 대한 호감이나, 의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상, 보상을 보라!

‘진짜 퀘스트 완료하면 통찰을 주는 거야?’

◎ 사건 해결 시 S급 '통찰‘ 특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어맛! 이건 해야 해.

남천휘는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천수련을 보며 결의를 드러냈다.

‘개똥아, 오라버니가 구해주마!’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무인들이 현장 근처에 출입을 통제하는 줄을 쳤다.

“모두 돌아가시오!”

“허락 없이 접근하는 자는 용납하지 않겠다.”

후기지수들은 빠르게 물러섰다.

청도문의 소문주가 죽은 자리였다.

삼정 중에서 흉흉한 소문이 가장 많은 곳에 바로 청도문이다. 자칫 잘못 엮이면 자신뿐 아니라 가문까지 위험해지지 않겠는가.

반면 홀로 다가서는 자가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

남천휘가 손을 흔들자, 다행히 서산노옹이 반응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와중에도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잘 보여야 한다니까!’

물론 자기 자신에게 감격한 상태였다.

“자네, 아직 안 갔는가.”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서산노옹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주변을 의식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수뇌부는 난리가 났어. 청도문의 실무자는 집기를 때려 부수면서 흉수를 내놓으라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네. 신공부가 이처럼 빠르게 우리를 모아서 조사를 명한 이유가 있는 게야. 자칫 잘못하면 청도문이 발호할 수도 있거든. 게다가 황보세가는 현재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으나, 언제 돌아서서 칼을 겨눌지 모를 일이라네.”

그도 그렇다.

삼정이 합의하여 용봉쟁투를 진행했다고 해도 주최는 신공부가 아닌가. 아닌 말로 신공부의 영역에서 청도문의 소문주가 죽었으니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어! 어제 그 흉터 많은 노인도 그렇고······.’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다.

“평범한 살인이 아닙니다.”

특기 ‘변설’과 ‘집중’이 동시에 발동하니 목소리의 진중함은 배가됐다.

서산노옹 역시 귀를 기울였다.

“자네 뭔가 아는 게 있는가?”

“잠깐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시간 별로 사건을 정리하여 정보를 규합할 필요가 있다.

남천휘가 한 걸음 물러섰다.

한데 서산노옹은 남천휘의 소매를 잡은 채 읊조렸다.

“강호사에 이와 비슷한 일이 많았어. 하나 이권과 명분이 얽혔으니 제대로 밝혀졌을 리가 없지. 그 때마다 어떻게 묻혔는지 아는가?”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곡부남가에만 있었다면 모를 일이다.

하나 용봉쟁투 기간 동안 그가 겪은 사건을 떠올리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제물인가요.”

“그래, 대충 만만한 제물을 던져주고, 이면에서 따로 합의를 하는 거지. 그래서 자네가 더 위험한 게야. 자네는 모인적을 쫓아냄으로서 초류혁과 척을 졌네. 게다가 천수련은 자네와 같은 조원이 아니던가. 일련의 과정으로 보았을 때 자네에게 뒤집어씌울 가능성도 없다고 볼 수 없어.”

서산노옹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자네 같은 협자가 돕겠다면 나야 고맙지. 하나 자네는 지금 자중하여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해. 만약 그들이 걸고넘어진다면 몇 사람의 의견쯤은 그대로 묵살될 것이야.”

남천휘는 빙긋 웃었다.

서산노옹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아마 용봉쟁투로 인한 최대의 수혜는 서산노옹을 만난 것이 아닐까 싶다.

‘꼭 우리 집에 모시고 싶다.’

술을 좋아하니 막 총관과도 잘 어울리지 않겠는가.

남천휘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겸사겸사’ 작전을 시작해야겠다.

천수련의 억울함을 풀고, 통찰을 얻는 것이 첫째요. 서산노옹을 감탄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식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제가 더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산노옹은 인상을 썼다.

남천휘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당랑거철의 고사처럼 덤벼드는 것이라 여겼나 보다.

“자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겐가?”

“어르신! 무릇 협자라면 약자의 고난을 막아주고, 억울함을 풀어주어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자! 이쯤 해서 써먹을 좋은 대사가 있지요.

남천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욕을 멀리하고, 치를 참으며, 자신은 고초를 겪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면 족하다 했습니다.”

몽산의 대두동에서 팔진과 일진의 문답을 고스란히 빌려왔다. 이제 일진은 전진교의 교조인 중양진인의 대제자, 단양자임을 안다.

서산노옹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헉! 자네가 어찌 전진교의 경구를 알고 있는가?”

호오, 예상보다 반응이 뜨겁다.

단순히 멋들어진 말로 생각했는데.

남천휘는 속내를 숨긴 채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 마디를 건넸다.

“삼교일치의 이념이야 말로 정사마의 대통합을 뜻하고, 나아가 만민의 안녕을 비는 경구가 아닙니까. 협자로서 응당 마음에 새겨야겠다는 마음에 매일 아침마다 열! 번씩 외우고 있습니다.”

서산노옹은 살인 사건을 잊은 사람처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술이라도 있었다면 병나발을 불며 탄성을 흘리지 않았을까 싶다.

“자네의 의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 한데 학식과 더불어 훌륭한 신념까지 지녔으니 후기지수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네. 참으로 대단하이.”

남천휘는 기회를 엿봤다.

“제가 돕겠습니다.”

“흐음, 하지만······.”

서산노옹은 한층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하나 여전히 남천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이는 듯했다.

자! 이제 쐐기를 박으러 갑니다.

남천휘는 품에서 대통을 꺼냈다.

“그게 뭔가?”

대답 대신 뚜껑을 열었다.

대통에는 장침과 여러 종류의 침구가 가득했다.

지난 밤 천성혈법의 수련을 위해 신공부에서 받아낸 물품이다.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의술에 조예가 아주 깊습니다. 본래 활인을 마음에 담고, 만민을 치료하는 의원이 되고 싶었거든요.”

서산노옹은 이제 탄성도 흘리지 않았다.

아주 품에 넣고 다니면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듯 인자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흐음.”

“어차피 현청에 연락하여 포쾌를 부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양민의 시신과 무인의 시신을 구분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저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서산노옹은 턱짓을 했다.

그러자 무인들이 줄을 들어 남천휘가 지나갈 수 있게 해줬다.

그는 남천휘가 들어서자 일부러 크게 외쳤다.

“자네에게 고명한 의술이 있다니 한 번 보지!”

사건의 관계자가 아니라 의원으로서 들여보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제 저들은 남천휘가 사건 현장을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아이 참, 생기신 것과 다르게 세심하셔.’

남천휘는 일단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천수련의 검법을 제대로 지켜본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초류혁의 시신에 남아 있는 검상을 확인하면 무언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여차 하면 그것도 있으니까.’

언제나 비장의 한 수가 존재했기에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섰다.

한데 초류혁의 시신 앞은 이미 선객이 존재했다.

무인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듯한 중년인이다.

그는 남천휘를 힐끔 보며 물었다.

“의원이야?”

“아닙니다.”

“그럼 꺼져라.”

남천휘는 중년인의 눈에 담긴 살기에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는 뒤늦게 중년인을 소개연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청도문의 실무자로군. 흑검이라고 했던가?’

살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흑검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둘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가 관리하던 곳에서 소문주가 죽었으니 문책을 피할 수 없으리라.

“비켜서세요. 누가 죽였는지 알아야 복수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천휘의 한 마디에 흑검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미 흉수가 발견됐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실망스럽네요.”

서산노옹의 말을 덧붙여 흑검을 설득하면 비켜서게 만드는 건 손바닥 뒤집기처럼 간단했다.

하나 입을 떼기 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지난 밤 천릉곡에서 발견된 악적들은 청도문의 음모와 관련이 있지 않던가. 얼굴에 흉터가 가득하던 노인은 청도문의 일원이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이 새끼도 한패일 수 있다는 거잖아.’

흑검은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뭐가 실망스럽다는 거지?”

남천휘는 속마음을 숨긴 채 능청스런 한 마디를 건넸다.

“천 소저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살인을 했을 리 없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사실 천 소저 정도의 여인이 초류혁과 어울린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요.”

◎ 특기 변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지! 구공(口功)에 아주 물이 올랐거든.

반면 흑검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흥! 개방귀만도 못한 소리를 하는군. 서산노옹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지 마라. 일이 잘못되면 너 또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야.”

그는 찬바람이 일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를 퍼트리며 사라졌다.

남천휘는 흑검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흑검은 남천휘가 죽은 초류혁을 모욕했음에도 뒤처리만 신경 썼다. 애초에 초류혁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지 않은가.

‘청도문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그건 말이 안 돼.’

즉, 저 자도 뭔가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남천휘는 멀어지는 흑검의 등을 검지로 겨누며 읊조렸다.

‘일단 너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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