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용봉쟁투(龍鳳爭鬪). (5)
‘헉! 저 놈이 왜 여기 있어.’
왕대만은 급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순간 지난날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얻어맞고, 주저앉고, 눈물을 흘리고, 그것도 흘렸던 치욕적인 그 날의 기억을 말이다.
본능적으로 주춤거렸지만, 호흡을 가다듬을수록 머리가 맑아졌다.
‘아니지, 아니야! 그 때는 내가 적진의 한복판이었어. 그래, 그래서 내가 그 망신을 당한 거지. 밥에 뭐라도 넣은 것이 분명해!’
이곳은 자신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놈의 꼴을 보면 용봉쟁투에 참가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떨어트린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떨어트린다!’
그것을 첫 번째 복수로 삼으련다.
그리고 두고두고 복수를 해서 놈을 파멸시키기로 결심했다.
“크크큭.”
종필은 왕대만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더니 이제는 사마외도나 보일 법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음.’
막창 또한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왕대만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연방 허리춤을 들썩였기 때문이다.
‘오줌을 싸고 싶으면 뒷간이라도 갈 것이지. 체통 없이 저게 뭐하는 거야?’
막창은 시큰둥한 어조로 외쳤다.
“일각 후 시험을 시작하겠다!”
참가자들은 정자에 앉아서 신공부가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하나 그 사이 시험관들과 모종의 거래를 한 참가자들은 주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한데 왕대만이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마치 저승사자를 본 듯한 모습에 막창과 종필은 서로를 바라봤다.
‘저 인간이 왜 저러는 건가?’
‘그러게 술이든, 여자든 한 가지만 하지.’
*
남천휘는 안개 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듯했다.
초청장을 받자마자 참석을 했음에도 용봉쟁투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소설에서 보면 이럴 때 꼭 한 놈씩 나타나던데.’
괜스레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와서는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조연이 있지 않던가.
주인공은 근엄한 표정을 짓은 채 조연이 떠들어대는 정보만 습득하면 되는 게다.
한데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되도 않는 것들끼리 똘똘 뭉쳐서 정보를 통제했다. 산동 강호의 후기지수들을 모아서 축제를 벌인다더니 하는 짓은 조잡하기 그지없다.
하여 이 놈의 통관 절차라는 게 언제 끝날지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니 눈앞의 연무장을 보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딱 봐도 세 가지 시험을 하기 위한 시험장이다. 한데 도전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단다.
이게 뭐하자는 수작이란 말인가?
축제를 한답시고 불러들이더니 이리저리 간을 보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 시장에서 등급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러던 중 왕대만을 만난 게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난 건 아니고, 만날 예정이다.
‘동생, 나 왔어.’ 라고 입을 뻥긋거리는 순간 왕대만에게만 해당하는 특기가 발동했다.
바로 ‘억압’이다.
억압(抑壓)에 등록된 대상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였을까?
남천휘에게는 왕대만이 아랫도리를 움켜쥔 채 들썩거리는 모양새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후훗, 나도 이제 떠버리 조연이 생긴 건가?’
왕대만의 의사와 상관없이 역할이 정해졌다.
안하겠다면?
하게 만들어줘야지.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
◎ 대상자의 흉중에서 악의가 넘실거립니다.
특기 ‘악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악의를 발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는 별의별 것이 특기의 후보로 등장했다.
만약 남천휘가 1차 전직에서 ‘협자’나 ‘유생’이 되었다면 ‘악의’는 부정적인 특기가 된다. 그러니 악의라는 특기가 생기는 순간 협자나 유생으로서의 본분을 어긴 것이 되기에 페널티가 부과될 터였다.
하나 무적자(無籍者)이기에 직업과 특기가 충돌하지 않았다.
‘악의든 뭐든 생기기만 해라. 영 못 써먹을 정도라면 그냥 조합해버리면 되니까.’
그러던 중 일각의 휴식 시간이 생겼다.
남천휘는 혜소를 뒤로 하고 왕대만에게 다가갔다.
한데 그보다 빠른 자들이 있었다.
서너 명의 참가자들이 어슬렁거리며 시험관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백부, 숙부하며 친한 척을 한다.
돈만 주고받지 않을 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아! 청탁할 때 돈을 줬겠네.’
남천휘는 왕대만과 두 명의 참가자가 대화하는 걸 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동생이 돈을 많이 벌면 가족도 풍족해지는 법이 아니던가.
“크흠.”
죄 지은 놈이 도망치는 건 만고불면의 진리였다.
참가자들은 남천휘가 다가오자마자 경쟁자를 보듯 눈을 흘기며 자리를 떴다.
경쟁자는 맞지.
‘너희들은 돈 주고, 나는 돈 받고.’
왕대만은 남천휘가 다가오자 미간을 좁혔다.
속내와 달리 막상 마주하니 지난 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게다. 하나 종필과 막창,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믿었나 보다.
설마 이 자리에서 또 때리랴 싶었던 거지.
“뭐야?”
남천휘는 혀를 찼다.
‘강한 척을 하려면 땀이나 닦고 하던가.’
하나 왕대만을 일회용을 쓸 것이 아니라면 공식적으로는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잠시 여쭐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연무장 구석을 가리켰다.
하나 왕대만으로서는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고 싶을 리 만무했다.
“이곳에서 하게.”
그 순간 입만 뻥끗거리며 소리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대만아. 오줌 싸고, 똥 지리더니 많이 용감해졌네.’
‘미친 소리! 똥은 아니었어. 그보다 증거도 없는데 나한테 이래도 돼?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네 제자 이름이 무천이던가? 그 놈이 하도 애걸복걸을 해서 표국에 자리를 줬지. 그래도 제자니까 언제든 만나고 싶으면 말만 해.’
왕대만은 질린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하나 여전히 증거 측면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흥! 누가 너 같은 놈의 말을 믿겠느냐? 감히 나를 협박해?’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나는 지난 일을 거론하고 싶지 않아.’
왕대만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약점이나 다름없는 과거를 잊겠다는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지금부터 네게 시비를 걸 거야. 네 체면에 그냥 있지 못할 걸? 어쩔 수 없이 나와 또 싸워야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증인이 수십 명이네. 내가 오늘 숙변 제거 좀 확실하게 해줄까?’
왕대만은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십 명의 무인들 앞에서 똥을 싸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가, 가지. 중요한 얘기인 듯하니.”
“야, 그 날 도망가서 행복했냐?”
왕대만은 남천휘의 시큰둥한 한 마디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남천휘의 목을 베어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한데 남천휘만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주눅이 들었다. 그를 마주할 때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개 패듯이 잡았던 사부가 떠올랐다.
“크흠, 그래도 내가 연장자인데 예를 갖춰주시오.”
“동생한테 존대하는 형도 있던가? 야반도주를 한 주제에 어디서 대접을 받으려 해.”
“끄응.”
왕대만은 앓는 소리를 냈다.
“왜 부른 거요?”
“용봉쟁투에 관해서 말해 봐.”
남천휘의 말에 왕대만은 조소를 흘렸다.
‘곡부남가는 정보를 받아볼 급이 아니군. 공문십철 중 노국장은 뒷방으로 밀려났다더니.’
하나 그는 표정을 굳힌 채 부르르 떨었다.
빈손이었던 남천휘가 어느새 비수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그 비수의 끝은 왕대만의 턱살을 조금씩 밀고 들어왔다.
보지 못했다.
비수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동생 표정이 마음에 안 드네.”
칼이 조금 더 파고든다.
“여기서 싸우고 싶어? 피나게 해줘?”
“아, 아닙니다.”
“가족끼리 의 상할 생각은 하지 말자.”
의 상할 일도 아니고 생각마저 하지 말라니.
‘이게 무슨 가족이야! 젠장할.’
하나 왕대만은 사람들을 등지고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네, 네. 알았소, 습니다.”
이상한 말투를 이상하게 여길 정신도 없었다.
그저 가족끼리 최악의 망신만은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용봉쟁투에 관한 정보를 모조리 전했다. 그제야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왕대만의 가슴을 툭 치더니 나중에 보자는 악담을 남겼다.
왕대만은 돌아서자마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젠장! 왜 저 놈만 보면 오금이 저리는 걸까?’
시험이 재개됐다.
도전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상황이 아닌가.
하여 여기저기서 모인 참가자 서른 명은 멀뚱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청년 중 한 명이 나섰다.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해 도전했다.
그는 무사히 통과했고, 다른 몇몇도 한 명씩 나섰다.
모두 시험관들과 눈짓을 주고받은 자들이다.
남천휘는 왕대만을 통해 이번 시험에 숨겨진 비밀을 전해들은 후였다.
그는 혜소에게 눈짓을 했다.
혜소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섰다.
시험관인 종필은 예상외라는 표정을 보였으나, 이내 시험 종목을 알린 후 평가를 시작했다.
남천휘는 혜소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가 단순히 운이 좋은 건지, 숨겨둔 한 수가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세 가지 시험 중 혜소가 할 만한 건 하나였다.
“내 주먹을 받아내게!”
막창의 주먹이 정면으로 꽂혀들었다.
내력이 담긴 일격에 권풍(拳風)이 몰아쳤다.
혜소는 하얗게 질린 채 황급히 쌍장을 내질렀다.
터텅!
막창은 탄성을 흘렸다.
“호오! 초식의 형은 없으나, 내공이 상당하군. 정종의 심법을 익혔는가?”
혜소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사문을 숨기겠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네. 고생했어. 그만 자리로 돌아가게.”
남천휘는 혜소에 관해 깨우쳤다.
‘단 한 번도 무공을 익힌 적이 없네.’
다만 인형설삼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먹고 엄청난 내공만 지닌 게다.
‘더 늦기 전에 나도 해야겠네.’
남천휘가 나서는 순간 왕대만이 막창을 불러 귀엣말을 했다. 막창이 별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좋은 말을 했을 리 만무했다.
‘둘째 형한테 괴롭히는 방법이라도 배워둘 걸.’
섬서성 어딘가에서 자신을 위해 수련하고 있을 둘째 형을 떠올렸다.
물론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만.
‘얼씨구!’
왕대만의 귀엣말은 막창을 지나 종필에게도 전달됐다. 생긴 건 다르지만, 눈빛은 비슷한 세 명이서 참 재밌게 노는 것 같았다.
“아까 봤겠지만, 시험은 간단하네. 나는 방향을 외칠 거야. 그러면 자네가 익힌 보법에 따라 정방향을 밟으면 되네. 발밑에 표식이 보이지? 벗어나면 그걸로 시험은 종료야.”
“네.”
남천휘는 용봉쟁투의 비밀을 엿본 이상 어느 정도는 순순히 따라줄 생각이다. 게다가 방향에 따라 보법을 밟는 거라면 지금껏 밥 먹듯이 수련한 사항이 아니던가.
‘훗, 무무혁명의 덕을 이런 곳에서 보네.’
종필은 남천휘가 자세를 취하자, 연노가 화살을 연이어 발사하듯 외쳤다.
“중건, 좌감, 좌리, 우태, 우손, 중곤······.”
팔괘(八卦)에 좌중우(左中右)를 더하니 스물네 방향이다. 게다가 두 발로 겨우 설 정도의 공간을 밟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종필의 외침은 더욱 빨라졌고, 남천휘는 안정적으로 연무장 위를 휘저었다.
“빠르다!”
“어디서 저런 보법을······.”
“저 자는 누구지?”
시큰둥하던 참가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잘 봐라. 애송이들아.
이게 가치 400, 향후 800짜리가 될 보법이시다!
남천휘는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보법을 펼쳤다.
오행군림보를 펼치다보니 비천무상도를 더하고 싶어질 만큼 여유로웠다.
오히려 종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나 왕대만에게 받은 언질이 있기에 멈출 수 없을 뿐이다.
‘다리가 꼬여서 꼴사납게 나자빠지는 모습을 봐야 한다니······.’
그 전에 자신이 탈진하여 꼴사납게 나뒹굴 것만 같았다.
반면 왕대만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남천휘가 보법을 펼치는 내내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 밤 단 둘이 만나서 가족 간의 정을 나누자고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그, 그만! 그 정도면 됐네.”
종필은 기다렸다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헉!”
하나 남천휘는 가볍게 몸을 푼 사람처럼 기분 좋게 이마의 땀방울을 훔칠 뿐이다.
“허허, 어린 친구의 보법이 상당하군. 아주 좋은 구경을 했네. 자네는 높이 올라갈 수 있겠어.”
왕대만은 자신이 반성하고 있음을 피력하듯 과하게 칭찬을 이어갔다.
하나 남천휘는 감사를 표하면서 입을 뻥긋거렸다.
‘오늘 밤에 보자.’
왕대만은 침울한 표정으로 참가자들을 바라봤다.
“더 도전할 사람?”
참가자들은 왕대만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목을 움츠렸다. 이제 와서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미움을 살 것이 분명했다.
한데 그 순간 왕대만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 시험에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자는 모두 탈락이다!”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도전은 자유라고 하셨잖아요. 모두 들었지?”
막창이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갈! 산동의 강호를 짊어져야 할 후기지수라면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할 터! 협객이 되려는 자가 어찌 이득과 손실을 따져 움직인단 말인가. 그런 너희들에게 용봉의 자격이 있을 듯싶더냐?”
“하지만······.”
종필이 나섰다.
아마 세 사람이 돌아가며 호통을 치기로 말이라도 맞춘 듯했다.
“닥쳐라! 이 시험은 오직 협객의 자질이 있는 자를 골라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질을 지닌 후기지수를 골라냈다. 그러니 너희들은 돌아가라! 억울함을 토로하려면 공식적으로 삼정에 항의하라!”
삼정(三鼎)을 거론하는 순간 참가자들은 말문이 막혔다. 그들의 사문이 산동성에 존재하는 한 삼정과 온갖 이권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연무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남 소협, 삼정의 계획은 참으로 대단하군요. 이런 식으로 올곧은 후기지수를 골라내려 할 줄이야. 역시 명문정파는 달라!”
하나 남천휘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어차피 붙일 놈들은 다 알고 있는 거짓 시험.’
이것이 용봉쟁투에 참가하기 위한 마지막 시험에 담긴 진짜 의미였다.
막창은 제가 뭐라도 되는 양 거드름을 피우며 외쳤다.
“자! 자네들은 새로 지은 용봉전으로 이동하게. 백여 명의 경쟁자가 자네들을 기다릴 것이야.”
*
용봉전(龍鳳殿)에는 이미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천휘는 그들의 머리 위를 살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녀의 레벨은 천차만별이었다. 한데 그 중에는 레벨이 확인되지 않는 자들이 즐비했다.
‘내가 80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세 자리 레벨도 보였다.
봉황곡의 소곡주였던 연하연에 버금가는 기재들이 이곳에 즐비했다.
남천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아, 산동 강호만 해도 이 정도란 말이지?’
하나 이들 중 시험 내용에 관해 언질 받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될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때 청수한 인상의 문사(文士)가 단상 위에 등장했다.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를 만큼 은밀한 신법을 익힌 자였다.
그 역시 세 자리 레벨이다.
“하하하! 산동의 후기지수를 이렇게 모아놓으니 마교가 준동한다 해도 두렵지 않겠어.”
후기지수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후기지수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곳까지 왔다는 건 용봉쟁투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 자네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우승 상품부터 보여주지!”
잠시 후 세 명의 무인이 단상 위에 올랐다.
제각기 엄청난 기도를 뽐내는 무인들이다.
그들 역시 레벨이 세 자리였다.
‘젠장, 내가 겨우 이 정도라는 거지?’
◎ 대상자의 현재 레벨은 51로 기간과 임무 대비 성장 예정치의...
‘닥쳐! 나 지금 기분 안 좋아.’
문사가 양 팔을 펼치며 외쳤다.
“이것이 바로 용봉쟁투의 우승자에게 수여될 상품이다!”
무인들이 각기 품고 있던 보자기를 푸는 순간 세 가지 무기가 금빛 상자에 담긴 채 모습을 드러냈다.
검(劍), 도(刀), 그리고 보의(寶衣)였다.
남천휘는 황금에 눈이 먼 사람처럼 상품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정중앙에 놓인 도, 그것도 쌍도에 꽂힌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도신(刀身).
똑같이 생긴 두 자루의 도가 예(乂)자 형태로 교차된 채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 칼이다.’
남천휘는 그 순간 용봉쟁투에서 우승해야 할 의미를 발견했다.
‘저건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