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74화 (74/305)

44, 용봉쟁투(龍鳳爭鬪). (4)

◎ 혜소가 강호에 발을 들였습니다.

- 지금부터 혜소에 관한 정보가 표시됩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도 되는 거냐?’

그러고 보면 재이의 존재 자체가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결국 레벨이 1인 보통 사람도 어떤 계기에 의해 강호인이 된다면 시스템에서 정보를 수집한다는 뜻이리라. 혜소는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강호인이 됐을 터였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좋아! 그렇다고 치자. 한데 레벨은 뭔데?’

자신도 그랬으니 누구라도 레벨 1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인간의 삶은 배움의 연속입니다.

하여 강호인이 아니더라도 스텟은 누적됩니다.

그것이 강호인으로 각성 시 일괄 표기됩니다.

남천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예를 들어 산속에서 평생 수련을 한 무인이 있다고 치자. 당연히 그의 레벨은 1일 터, 하나 강호인이 되었을 때 어찌될 지는 까봐야 안다는 뜻이리라.

남천휘는 조금 전 혜소를 얕봤던 자신을 떠올리며 침음을 흘렸다.

‘1레벨이라고 얕봐서는 안 되겠네.’

그래서 축복받은 확인서를 사용했다.

좀 더 혜소에 관해 알고 싶었다.

남자로서가 아니라 무인으로서였다.

‘쓸데없는 생각 말라구!’

이름 : 혜소(Lv:37)

소속 : 홍선사.

총합 : 945(극단적 내공 위주 성장.)

얼씨구, 이것 봐라.

왕대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조상은 너무 높았다.

반면 혜소는 37레벨 치고 총합이 너무 낮았다.

게다가 총합에 대한 부가 설명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가.

‘강호에는 온갖 기인이사가 즐비하다더니.’

한데 혜소를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일까.

그가 남천휘를 보고 빙긋 웃더니 다가왔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미소로 맞이했다.

“예상했던 대로 무위가 상당하시군요.”

이런 건 낯짝이 두꺼우면 승자다.

혜소는 패자였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저도 어찌된 일인지······. 아마 부처께서 도우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하네요.”

야, 너 승적에도 안 올랐다며.

“어쨌든 스승의 뜻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듯하여 기분이 좋습니다.”

또 대화가 통하기 시작한다.

남천휘는 헛기침과 함께 말을 건넸다.

“한데 승려가 되시려는 이유가 뭔가요? 솔직히 말하면 선사는 딱히 불가와 연이 없어 보입니다만.”

혜소는 쓴웃음을 흘렸다.

“저는 고아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평초처럼 떠돌다보니 재주도 없이 나이만 먹더군요. 배를 곪다가 풀뿌리를 캐먹는 날이 부지기수였지요. 그러다 며칠씩 앓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스승께서 죽어가는 저를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삼생의 인연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그 때를 떠올리는지 빙긋 웃었다.

“그래서 승적에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먹고 살기 위해 중이 되려 했다니.

스승이라는 사람으로서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었으리라.

‘얘기를 듣자하니 영약 같은 걸 주워 먹은 건가?’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자신은 태산과 몽산의 절경 중 일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약은 고사하고 삼조차 발견한 적이 없다.

보물의 주인은 따로 있다. 뭐 그런 건가?

“참! 예전에 정말 이상한 걸 먹은 적이 있어요. 크기는 손바닥만했지요. 한데 생긴 게 사람처럼 생겼더라고요. 팔다리가 툭 튀어나왔고, 머리에 꽃이 달린 삼 같았어요. 조금 징그러웠지만, 살기 위해 먹었지요. 휴우,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거겠지요.”

이 새끼야! 그거 인형설삼이잖아.

남천휘는 솟구치는 짜증을 억지로 참았다.

“만약 그 기이한 삼에 이름을 붙인다면 인형설삼이 어떨까 싶어요. 눈이 잔뜩 내린 날이었거든요.”

진짜 독심술이라도 익힌 건가?

남천휘는 슬그머니 앞섬을 여몄다.

‘그나저나 강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군.’

그 때 시험관인 조호가 합격한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첫 관문의 통과를 축하하네. 자! 다음 관문에서도 힘을 내주게.”

이쯤 되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관문이 몇 개나 되는 겁니까?

“앞으로 네 개 남았다. 하나 다음 관문만 통과하면 된다. 나머지 세 곳은 수준을 보기 위한 관문이니까. 따라오게.”

“이곳은 반사신경을 확인하는 곳이다. 자신 있는 사람은 도전하도록.”

조후의 말에 왜소한 체구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양 손에 여덟 개의 비수를 끼운 채 자신을 소개했다.

“신공부의 장이라고 하오. 비도술을 익혔소. 내가 던지는 걸 막거나, 피하면 성공이오. 대신 발밑에 그려진 원을 벗어나면 탈락이외다.”

“내가 하겠습니다!”

첫 관문에서 관심을 빼앗겼다고 여겼는지 누군가 먼저 나섰다.

그는 검을 늘어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장이의 어깨가 출렁였다.

‘두 개.’

쉬쉭!

허리를 비틀며 주저앉는다.

‘세 개.’

쉬쉬식!

그리고 다시 튕기듯 몸을 일으키며 양 손을 흩뿌리자, 남은 세 개의 비수가 공간을 파고들었다.

쉬쉬쉭!

청년은 검법을 펼치며 두 개와, 세 개를 튕겨냈다. 하나 마지막에 파고드는 세 개의 비수가 상중하를 노리자, 비명과 함께 물러섰다.

장이의 시큰둥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원 밖으로 나가셨소. 탈락.”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호오, 비도술이 대단한 걸?’

장이의 레벨은 55다.

축복받은 확인서를 쓰지 않아도 그의 능력 수치의 대부분이 민첩에 치중됐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애초에 피하라는 말 자체가 함정이네. ‘

신체를 변형하는 것이 가능한 유가기공이라도 익히지 않았다면 작은 원 안에서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소한 이곳에 모인 자들에게는 너무 높은 난이도였다.

‘나 빼고.’

남천휘는 혜소를 바라봤다.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시험장을 응시했다.

‘혜소는 여기까지군.’

혜소의 내공이라면 비수를 쳐내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 하나 문제는 비수 자체를 쳐낼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무공 자체를 익힌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남 소협, 그대가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조호는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자, 남천휘에게 제안을 했다.

“좋습니다.”

장이는 남천휘가 두 자루의 직도를 늘어트리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쌍도?”

“반칙인가요?”

“훗, 방패를 사용해도 상관없다네. 다만 신공부 내에도 쌍도를 쓰는 자들이 있거든. 혹시 그들과 관련이 있을까 하여 쳐다본 것이야. 그럼 가네.”

장이가 양 팔을 늘어트렸다.

어느새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비수가 잔뜩 들려 있었다.

“잠깐만요. 여덟 개만 던지는 게 아니었던가요?”

“그러는 자네도 칼이 두 개잖아. 그리고 나는 쌍도가 싫어.”

그 순간 비수가 벼락처럼 꽂혀들었다.

쉬쉬쉬쉬쉬쉬쉭!

넷, 넷, 셋.

남천휘는 제자리에서 오행군림보를 펼쳤다.

따다다다당!

다섯 개의 비수가 튕겨나갔고, 여섯 개의 비수가 뒤로 흘러갔다

장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 나를 아는가?”

“모르는데요.”

“마치 내 초식을 아는 것처럼 진짜와 미끼를 구분했군.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남천휘가 자신을 소개하자, 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알았네. 기억해두지.”

멀뚱히 있던 청년들이 하나둘씩 나섰다.

남천휘가 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왜? 내가 그렇게 허접해보이나?’

하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다른 법이다.

퍼퍼퍽!

“아흑.”

“비수에 날이 없어. 멍은 들겠지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자네는 탈락이네.”

결국 이번에도 혜소만 남았다.

“그럼, 남 소협. 다녀오겠습니다.”

혜소는 느긋한 표정으로 원 안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통과라는 답과 함께 돌아왔다.

“휴, 운이 좋았네요.”

남천휘는 장이와 혜소를 번갈아 응시했다.

장이의 비수는 운으로 피해낼 만큼 하찮지 않았다.

설마 모종의 거래라도 있었던 걸까?

그 때 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의 도법은 쓰레기 수준이지만, 감이 아주 좋군. 놀라울 정도로 좋아.”

“천산에서 홀로 오십일 넘게 버텼습니다. 먹을 복은 몰라도, 위기를 감지하는 운은 타고 났지요.”

아니야! 넌 먹을 복도 타고났어.

남천휘는 혜소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천부적인 감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용봉쟁투가 끝나면 홍선사로 돌아갈 겁니까?”

혜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야지요. 달리 갈 곳도 없으니.”

애초에 먹고 살기 위해서 택한 승적이 아닌가.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갈 곳이 없으면 곡부남가로 와요. 다른 건 몰라도 근방에서 밥을 굶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순간 혜소가 눈을 빛내더니 남천휘의 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진짜 그런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겁니까?”

하나 이내 한 숨을 흘렸다.

“하지만 곡부남가에 오라는 건 의탁하라는 뜻이겠지요? 그건 안 되겠네요. 저는 어린 시절 헤어졌던 여동생을 찾아야하거든요.”

방금 전만 해도 승적에 오른다며?

혜소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 절이야 탁발을 핑계로 언제든 벗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대가 아닌가.

‘강호에는 별의별 놈이 다 있구나.’

“그래도 남 소협의 제안은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껏 제게 그런 호의를 베푼 사람이 없거든요. 만약 여동생을 찾게 된다면 꼭 곡부남가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러세요.”

“그 때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알았으니까 이제 손 좀 놔요.”

*

널따란 연무장에 세 명의 장년인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연무장을 세 구역으로 나눈 것으로 보아 한 명씩 구역을 책임지는 것이리라.

유달리 삐쩍 마른 장년인이 연무장을 둘러봤다.

“칠 시험장은 우리 셋이군요.”

“종 대협은 몇 명이나 올 걸로 예상하십니까?”

대나무를 연상케 하는 장년인은 창술로 유명한 죽창수사(竹槍秀士) 종필이다.

종필은 배꼽까지 기른 수염을 쓰다듬었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것으로 자신의 수염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듯했다.

“글쎄요. 칠 시험장이면 상부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삼정과 명가의 후기지수들은 오 시험장 안쪽에 배치됐잖습니까.”

삼정(三鼎)은 신공부와 황보세가, 그리고 청도문을 뜻했고, 명가란 삼정의 신임을 받는 중소방파일 터였다. 그 말인즉슨 후기지수 백 명 중 상당수가 이미 내정되었다는 뜻이리라.

“칠 시험장이니 다섯 명 정도 통과시키면 되지 않을까?”

종필의 말을 받은 건 가장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장년인이다. 그 역시 종필과 마찬가지로 신공부에서 초빙한 권공의 고수였다.

혈무권(血霧拳) 막창은 동의했다.

그는 솥뚜껑 같은 손을 쥐락펴락하며 상석에 앉은 장년인에게 물었다.

“일양도 왕 대협께서 주관을 하시겠습니까?”

왕 대협이라 불린 장년인은 찻 잔을 내려놓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는 환도를 무릎 위에 올린 채 말을 이었다.

“일양도는 동도들이 붙여준 허명에 불과하지요. 하나 종 대협과 막 대협의 부탁이라면 노부가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구려.”

그는 곡부남가에서 야반도주를 한 왕대만이다.

왕대만은 그 날의 기억을 뇌리에서 지운 듯 연방 거드름을 피웠다.

“크흠! 참가자들이 오면 노부가 주관을 하리다.”

그 때 종필이 목소리를 낮췄다.

“왕 대협, 송구하지만 참가자 중에 가까운 조카가 한 명 끼어 있는데······.”

막창이 뒤질세라 말을 건넸다.

“제 친우의 자식도 칠 시험장이라고 하더군요.”

왕 대협이라 불린 자가 손을 내저었다.

“우리끼리 그 정도 도움도 주지 못하겠소. 걱정 마시구랴.”

종필과 막창은 눈을 끔뻑였다.

‘이 자도······.’

‘부탁받은 자가 있구만.’

차라리 잘 됐다.

똥도 함께 싸야 냄새가 뒤섞이는 법이다.

한데 왕대만의 뒤이은 말에는 똥 씹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배분은 관례대로 합시다.”

종필과 막창은 청탁으로 뜯어낸 돈을 나눠야 할 생각에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그 때 시험관이 참가자들을 이끌고 칠 시험장에 들어섰다.

“허허, 슬슬 시작합시다.”

왕대만은 거드름을 피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참가자들을 내려다봤다. 하나 참가자의 면면을 확인하던 중 누군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왕 대협. 뭐하십니까?”

“갑자기 왜 땀을······.”

왕대만은 종필과 막창의 재촉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참가자 중 한 명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입만 뻐끔거리고 있음에도 마치 전음처럼 상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동생, 나 왔어.’

왕대만은 신음과 함께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요의(尿意)가 방광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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