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64화 (64/305)

40, 허허, 무덤을 파네? (3)

남천휘의 하대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니 왕대만으로서는 자다가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일 게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거, 건방진 애송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너 같은 놈을 상대로는 좀 건방진 것도 괜찮아.

“자기소개 잘 들었고요.”

“뭐라고? 네 놈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구나!”

무덤을 원한 건 나지만, 판 건 그 쪽이잖아.

“누울 자리는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게 예의!”

남천휘가 조롱하는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이 순간에 등장할 퀘스트라면 뻔하지 않은가.

띠링-

《오만과 오만의 충돌》

- 진실은 승자에 의해 전해지는 법.

- 적의 오만함을 짓밟고, 승리를 쟁취하라.

※ 별호를 얻은 적입니다.

승패의 보상과 벌칙이 강화됩니다.

승리 시 - 자수정x300개. 무작위 주문서x3장.

패배 시 - 신체 2급 훼손 및 100일 병상행.

어쩐지 승리할 때 보상이 너무 좋다 했다.

패배하면 아예 강호를 떠나라는 말이 아닌가.

이런 비합리적인 보상과 벌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련다.

‘뭐 이기면 되지.’

남천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후 재차 달려들었다. 61레벨을 상대로 달려들고 있음에도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건 불굴의 힘이 아니었다.

이른바 합리적인 계산이다.

남천휘가 생각했을 때 4레벨 신안의 진짜 힘은 능력 총합이 아니라 부가 정보였다.

왕대만의 능력 총합은 1440으로 근력 쪽에 중점을 뒀다. 다섯 개의 능력이 근력 쪽에 치우쳤다면 다른 수치는 어떻겠는가.

아마 200도 채 되지 않으리라.

반면 남천휘는 내공을 제외한 수치의 평균이 300이다. 거기에 내공은 다른 수치의 두 배를 넘기는 750이 아니던가.

이미 모든 면에서 남천휘가 우수했다.

무엇보다 왕대만은 자신의 입으로 삼 초를 양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니 일구이언을 수치스러워할 터였다.

‘그러니 잘 활용해줘야지.’

남천휘는 허수아비를 상대하듯 전력을 다했다.

채채챙!

직도가 빠르게 공간을 점했다.

“큭!”

왕대만은 맞받아치는 대신 거리를 벌렸다.

그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밖에서 봤을 때 남천휘의 초식은 너무 엉성했다.

끝마무리가 어설펐고, 초식의 흐름은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하나 분명 대단한 무공이 분명했다.

그 역시 도법을 익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몇 번 더 살펴보고 꿀 좀 빨아보려 했거늘······.’

한데 놈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엇보다 자신은 산동 남부에서 제법 알아주는 명숙이다.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자신의 말에 따라 굽실거리기 바빴으리라.

‘정신 나간 놈한테 걸려서 이게 무슨 짜증나는 상황이란 말인가!’

왕대만은 이를 갈았다.

비천무상도는 밖에서 보았을 때와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천양지차였다.

‘초식과 초식 사이가 뭉뚱그려져 있어. 그리고 칼끝이 너무 지저분해.’

그 순간 남천휘가 직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왕대만의 눈동자가 찰나간 흔들렸다.

평소였다면 흘리거나, 피했을 것이다.

상대가 하수라면 오히려 빈틈을 노려 반격했으리라.

‘큭!’

하나 남천휘의 투로는 너무 빠르게 변했다.

초식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다른 초식을 펼치고, 어깨를 노리는 듯하던 칼이 목에 꽂혀들 정도였다.

‘저런 식으로 움직이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관절과 근육은 뒤틀려야 했고, 내공은 역류해야 마땅했다.

한데 남천휘는 너무도 편안해보였다.

그것이 왕대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선배의 배려로 삼 초식을 양보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 거다.

자신이 공격만 할 수 있다면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으리라.

‘어린놈이 새끼! 버릇없는 새끼! 거만한 새끼!’

왕대만은 왼팔이 아니라 오른팔을 자르겠다고 결의했다. 한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빌어먹을! 어차피 저 놈은 두 손을 쓰잖아.’

왕대만은 신경질적으로 직도를 튕겨냈다.

한데 남천휘가 반격하기는커녕 잠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삼 초식이 드디어 끝났나 보다.

“후우! 후우! 표정이 굳었구나. 이제 겁이 나는 겐가? 하나 늦었다. 쿨럭, 너는 이미 내 안의 살심을 깨워버렸어!”

남천휘는 왕대만의 일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 언제까지 그렇게 막기만 할 거지?”

“허허, 이 놈! 선배 된 입장에서 삼 초의······.”

왕대만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다가 말끝을 흐렸다.

한 겨울에 웬 땀?

겨우 삼 초식을 주고받은 것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헐떡거리는 거지?’

그러고 보니 삼 초식을 막아낸 것치고는 기억에 남은 공방이 너무 길다.

“삼초는 아까 전에 지났으니까 이제 공격 좀 해.

왕대만은 남천휘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야. 안 돼. 내가 그 정도로 넋이 나갔을 리가.’

그는 유일한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무천을 응시했다. 한데 평소였다면 응원을 했어야 할 놈이 똥 씹은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경외로 가득해야 할 표정에 점차 실의가 섞여드는 듯했다.

‘빌어먹을! 진짜네.’

왕대만은 헛기침을 했다.

“허허, 네 놈의 도법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보려고 했을 뿐이다.”

변명을 하는 김에 호흡도 가다듬었다.

이제야 좀 살만했다.

하나 남천휘의 눈을 속이기에는 연기가 너무 어설프지 않은가.

“더 쉴래?”

“아니다! 이 악마야. 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아귀 같은 놈! 내가 가만 두지 않으리라!”

왕대만은 눈에 불을 켠 채 달려들었다.

그가 공세를 펼치자, 확실히 방어만 할 때와 달랐다.

도기가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아까보다 옅어.’

왕대만은 상체를 흔들며 빠르게 접근했다.

‘아까보다 느려.’

내력이 흩뿌리는 곡도와 내력이 담긴 직도는 섣불리 격돌하지 않았다.

쉭쉭쉭쉭쉭쉭!

도영이 난무하는 가운데 서로의 빈틈을 노렸다.

남천휘가 슬쩍 옆구리를 열어줬다.

왕대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곡도를 휘둘렀다.

‘됐다!’

하나 남천휘는 손잡이 끝에 위치한 고리를 활용하여 직도를 역으로 쥔 상태였다.

터텅!

역수로 직도를 휘둘렀음에도 곡도가 튕겨나갔다.

힘의 우열이 명백하게 정해지는 순간이다.

‘아까보다 약해.’

남천휘는 튕겨나가는 왕대만의 어깨에서 빈틈을 발견했다. 그곳을 찌른다면 간단하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하나 그러지 않았다.

단순히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놈이 넋을 놓고 있던 사이에 결착을 지었으리라.

‘진심을 담아 사과하게 만들겠어!’

십 년 간 소 닭 보듯 지냈던 형과 마음을 터놓게 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렇기에 형에 대한 애틋함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네깟 게 우리 형을!’

남천휘는 시야 한쪽에 상태창을 띄웠다.

실시간으로 체력을 비롯한 능력 수치가 하락하는 것을 확인하며 왕대만을 몰아붙였다.

채채채챙!

왕대만은 이제 욕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남천휘의 공세를 받아넘기기에도 힘에 부칠 터였다.

“동생, 겨울이라 그런가. 몸 상태가 별로네. 토끼 고기 좋아해?”

“크흑!”

“아! 벌써부터 동생이라고 해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원래 호칭은 계속 불러봐야 입에 붙잖아. 다 가족 같아서 그런 거야.”

왕대만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다.

톡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새빨갛다.

그만큼 놈의 자존심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리라.

아니나다를까 왕대만의 곡도에서 재차 도기가 뻗어 나왔다.

그래 봤자 꺼지기 일보직전의 촛불 같은 도기였다.

쇄애애애액!

그러나 제 딴에는 전력이 담긴 절초였으리라.

하나 왕대만의 도법과 보법으로 오행군림보를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놈의 능력 수치는 이미 바닥이 아닌가.

도기가 허공을 들쑤신 후 흩어졌다.

제아무리 도기가 엄청난 절삭력과 파괴력을 지녔다고 해도 적중하지 않으면 무소용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 진짜 머리 좋아졌네. 스치듯 봤던 경구를 이런 때에 써 먹고.’

남천휘는 도기가 흩어지는 순간 왕대만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왕대만으로서는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었을 게다. 거리가 너무 좁혀진 탓에 도를 휘두를 공간이 부족했다.

빠각!

왕대만의 어깨에 남천휘의 일권이 꽂혔다.

‘크흑, 뭐야? 칼은 어디 갔어?’

분명 도를 쥐고 있었거늘 어찌 주먹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남천휘는 어느새 다시 거리를 벌린 채 양 손에 쥔 직도를 휘돌리고 있었다. 왕대만으로서는 어깨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착각했다고 여겼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개종자가! 내 몸에 손을 대?”

“내가 개종자면 너도 개종자야. 가족끼리 그런 욕을 하면 되겠냐?”

남천휘는 숨을 몰아쉬는 왕대만을 앞에 두고 몸을 휘돌렸다. 이제 왕대만이 파놓은 무덤에 잘 누울 수 있도록 밀어줄 생각이다.

직도가 곡도를 스치는 순간 불똥이 튄다.

남천휘의 직도는 곡도를 타고 빠르게 쇄도했고, 이내 왕대만의 팔뚝을 스쳐갔다

퍽!

한데 예상처럼 피가 튀는 대신 둔탁한 피륙음이 들렸다.

남천휘는 왕대만이 팔뚝을 잡고 물러나는 사이 직도를 확인했다.

‘아! 날이 없네.’

왕대만에게 시연을 보이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가치 180의 직도가 아니라 곡부남가에서 굴러다니던 걸 꺼내오지 않았던가.

남천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차라리 잘됐다.

진짜 칼이었으면 팔이나 다리라도 잘랐어야 속이 풀렸으리라. 하나 기껏 초빙을 해놓고 팔다리를 잘라버리면 곡부남가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그냥 맞아라!’

남천휘의 직도가 서너 개로 분화되더니 왕대만의 상체를 향해 꽂혀들었다.

“어어!”

왕대만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황급히 도법을 펼쳤다. 하나 노쇠한 육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 아니던가.

그는 두어 개의 도영을 걷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퍽! 퍽! 빠각!

첫 두 방과 달리 세 번째는 뼈라도 맞은 듯했다.

아마 금이 갔겠지.

“으아아악!”

왕대만은 고통에 익숙하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 몇 대 맞지도 않았으면서 오두방정을 떠는 거겠지. 다리를 맞으면 폴짝 뛰었고, 팔을 맞으면 움츠려들었다.

“이놈아! 그만해.”

하나 한 번 시작된 공세는 점차 매타작으로 변했다.

직도가 왕대만의 손목을 후려쳤다.

그는 무인의 생명이라는 병장기를 놓쳤음에도 비명을 연발할 따름이다.

“그, 그만!”

아니지. 사과를 해야지. 착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단다.

그리고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지.

퍼퍼퍽!

왕대만은 화려한 옷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주저앉았다.

“씨벌, 그만하라고.”

“우리 대만이가 혀가 짧네.”

남천휘는 아예 두 자루 중 한 자루를 보급창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도끼질을 하듯 양 손으로 직도를 쥔 채 후려쳤다.

퍽!

이번에는 날이 아니라 면이다.

왕대만은 엉덩이를 얻어맞고 반장이나 밀려났다.

그는 양 손으로 빠르게 엉덩이를 부비며 소리쳤다.

“아흑! 그, 그만! 그만! 그만해. 이 새끼야!”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인 것 같은데?

남천휘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왕대만은 주저앉은 상태로 뒷걸음질을 쳤다.

“어흐흐흐. 가족이라며! 이 빌어먹을 놈아! 그만 때려! 그만 하라고.”

남천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왕대만이 주저앉았던 곳부터 물기가 번져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지. 아닐 거야. 눈이 녹은 거겠지.

남천휘는 직도를 늘어트렸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사과는 받지 못했다.

하나 왕대만의 꼴을 보아하니 더 했다가는 앞문이 아니라 뒷문이 열릴 기세였다.

‘이래서 사람은 바닥을 봐야 안다는 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거만하던 왕대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안쓰럽기는커녕 통쾌하기만 했다.

그 때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비무에서 승리하셨습니다.

- 보상이 인벤토리로 지급됩니다.

이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찜찜했다.

그 이유가 금세 밝혀졌다.

왕대만을 중심으로 지린내가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크흠.”

잠자코 있던 남천홍이 나섰다.

그 역시 남천휘의 무위에 놀라고, 왕대만의 추접함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한 상태였다. 하나 소가주로서 마냥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크흠, 왕 대협.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크흠, 크흠. 죄송합니다. 제가 냄새에 민감해서······. 씻을 물도 준비하도록 하지요.”

왕대만은 고개를 숙인 채 어기적거리며 처소로 향했다.

남천홍은 말없이 남천휘의 어깨를 다독였다.

형의 표정은 체증이 내려간 사람처럼 밝았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 자존심이 상했으리라.

다만 동생의 일이었으니 참았을 뿐.

남천홍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밥이나 먹자.”

“여기 오기 전에 먹었잖아.”

남천휘의 말에 남천홍은 침음을 흘렸다.

“흐음, 이거 버릇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구나.”

“그냥 먹어. 나도 힘썼더니 배고프네. 기왕 먹을 거 대만이도 불러서 같이 먹어야겠다.”

남천홍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동생으로 삼을 생각이냐?”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놈은 우리 가문과 형을 모욕했어. 강호의 법도대로라면 무공을 폐해도 할 말이 없지. 우리가 약했다면 놈은 더 심하게 날 뛰었을 거야.”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그러니 동생으로 삼아주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지.”

왕대만은 그 날 밤 담을 넘어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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