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65화 (65/305)

41, 천휘야, 학관가자.

41, 천휘야, 학관가자.

남천홍은 왕대만의 야반도주를 전해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절정의 무인이나 되는 자가 두들겨 맞고, 야반도주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 남천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재이가 알렸기 때문이다.

◎ 적의 오만함을 꺾고, 공포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적이 대상자와 멀어지려 합니다. 향후 적은 대상자를 향해 근원적인 두려움을 지니게 됩니다. 완벽한 첫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추가 보상이다.

남천휘는 시야 한쪽에 보급창을 띄워놓고 침음을 흘렸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 특기 ‘억압’을 등록하시겠습니까?.(y/n)

- 대상에 대한 억제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이런 식으로 특기가 생성되기도 하는구나.

재이의 말에 의하면 ‘억압(抑壓)’은 대상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특기라고 했다. 즉 왕대만을 다시 만난다면 놈은 예전처럼 쉬이 거드름을 피위 못하리라.

‘등록. 어쨌든 없는 것보다 낫겠지.’

무엇보다 필요 없는 특기는 조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문제는 눈앞에서 비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바로 왕대만의 제자인 무천이다.

“강호인의 맹약은 금과옥조와 같습니다. 하나 왕대만은 삼공자와의 맹약을 어겼지요.”

맹약까지는 아니었잖아.

하나 무천은 왕대만을 역적에 준하는 파렴치한으로 포장하기에 바빴다.

“아아! 이거야말로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자가 별호를 얻고, 명성을 얻으니 강호의 도의는 땅에 떨어진 것이나······.”

그는 왕대만이 자신만 두고 야반도주한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한 듯했다.

‘그보다 배를 갈아타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지만.’

남천휘는 슬쩍 남천홍을 바라봤다.

생각 같아서는 엉덩이를 후려쳐서 백 장 밖으로 날리고 싶었다.

하나 곡부남가의 주인은 소가주였다.

“표국에 자리를 마련해주지.”

무천은 감사를 표하며 자리를 떴다.

“굳이 받아줄 필요가 있어?”

남천홍은 남천휘의 물음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르쳐줄 것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능력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도 알다시피 곡부남가는 사람이 부족해. 표국과 상단은 더 부족하지. 하여 신원만 증명이 되면 아무나 데려다 쓰는 형국이다. 왕대만의 제자였으니 한 수 재간은 있을 터, 표국에서 표사로라도 쓸 수 있으면 우리쪽이 이득이야.”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견 타당해보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러다 뒤통수라도 치면?”

“그 또한 감수해야겠지. 하나 저 자가 통수를 치기 전까지는 표국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해야 할 것이야. 일단 신뢰를 쌓아야 할 테니까. 그 사이 본가가 벌어들일 이득을 생각하면 그 또한 손해는 아닐 거야.”

“흐음, 어렵네.”

남천홍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사는 만사라 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지. 그러니 무천이라는 자가 본성까지 나쁘지는 않기를 살펴야겠지.”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그건 왕 국주가 해야 할 테고?”

남천홍은 육편을 집어들며 말했다.

“그러라고 많은 돈을 주는 거란다. 엇!”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육편을 우물거리다가 표정을 굳혔다.

“그냥 먹어. 보는 사람도 불편해.”

하나 남천홍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사내의 결심은 태산과 같지. 이제 연극을 할 필요가 없으니 살을 뺄 테다. 네게 부끄럽지 않은 형이 되어야지.”

네, 네. 그러세요.

남천휘는 애써 음식을 멀리하는 형을 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수련이나 하러 가야겠다.’

한데 남천홍이 밖으로 향하던 남천휘를 잡았다.

“오늘 중평산장에서 상인들이 올 거야.”

“아! 지난번에 못 다했던 그 계약?”

“그래. 그 때는 우리가 갔으니 이번에는 그 쪽에서 오기로 했다. 이미 서찰을 통해 몇 번이나 의견을 조율했고, 공증까지 받은 상태란다. 그러니 서로 만나서 수결을 하면 계약이 성사될 거야.”

“그런데?”

“너도 그 자리에 참석해라.”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왜?”

남천홍은 히죽 웃음 말했다.

“경험이나 쌓아. 어차피 일처리는 막 노야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곡부남가의 사무를 처리하는 중요 자리에 참석합니다.(1회)

곧이어 돌발 퀘스트가 발동했다.

계약을 성사시키고, 막대통의 심득을 얻어내라는 퀘스트였다.

‘심득?’

이내 보상이 떴다.

- 성공 시 : 특기 ‘상재’를 획득합니다.

※ 상재 획득 시 득실의 판단력이 증가합니다.

- 실패 시 : 특기 ‘상재’가 시스템에서 삭제됩니다.

※ 더이상 '상재'를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 금전 감각이 평균 이하로 떨어집니다.

※ 사기를 당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제부터 퀘스트 실패의 벌칙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이러다 퀘스트 실패로 인해 하자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설마 나중에 여자를 유혹하라고 한 다음에 실패하면 고자가 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남천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춥냐?”

“아니. 몹시 좋지 않은 생각을 해버렸어. 어쨌든 참관할게.”

남천홍은 남천휘가 떠난 후 동경을 꺼냈다.

이리저리 살펴본 후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벌써 턱선이 나타나는 것 같군.”

*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수결만 하면 되는 상태라며?’

하나 중평산장에서 온 상인들은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마주한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막대통을 위시한 북풍상단의 상인들도 질 수 없다는 듯 상대방을 노려봤다.

“일단 갑 조 삼 항부터 확인합시다.”

북풍상단의 대표는 표면적으로 오용인 듯했다.

그는 혈랑회가 나타났을 때 우왕좌왕했던 것과 달리 서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아무래도 본업에 강점을 보이는 것이리라.

한데 중평산장의 장년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니지요. 먼저 갑 조 이 항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 얘기는 누누이 말했듯 양보할 수 없어요. 북풍상단은 자선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걸 모를까요. 이쪽의 이야기는 비율 부분에서 오차가 생겼을 때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서로의 건실한······.”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긁적였다.

‘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게 하려는 것이 목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북풍상단과 중평산장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떠들어대는 형국이 아닌가.

‘이러다 거래고, 뭐고 간에 한 대 치는 거 아냐?’

쾅!

그 때 중평산장의 상인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 바탕 하지 않을까 싶다.

남천휘는 슬그머니 직도에 손을 얹었다.

하나 상인은 오용을 찢어발길 듯이 노려다보더니 이내 한 숨을 내쉬는 것이 아닌가.

“휴우, 좋소이다. 어쩔 수 없군요. 그 건은 우리가 양보하도록 하지요. 대신 병 조 육 항에 배상 부분을 추가해주시오.”

“어허!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를 어째서 본 상단이 배상한단 말입니까?”

“천재지변이라니요. 강호 백대 고수가 상행에 피해를 끼치는 건데요.”

“그러니까 백대 고수라는 조건 자체가 너무 애매하지 않습니까? 구파오가가 천하 백대고수는 이들입니다. 하고 방문이라도 붙이는 게 아닌데 우리 같은 상인이 그걸 어찌 판단하고, 조율하여 책임까지······.”

남천휘는 재차 이마를 긁적였다.

계속 듣다 보니 저들은 불리한 얘기만 나오면 주절주절 떠드는 듯싶다.

이거야 말로 아무 말 대잔치가 아니던가.

‘이거 언제 끝나나?’

그 때 막 대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놀랍게도 멀쩡한 상태였다.

하루 종일 술에 절어 있던 사람이 오랜만에 정광 어린 눈빛을 흩뿌리는 광경은 너무나 낯설었다.

“밥 먹고 합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흰 소리?

겉으로 보기만 멀쩡할 뿐 이미 술에 취한 걸까.

한데 중평산장의 상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장부를 덮더니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곡부남가의 음식 솜씨가 좋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오용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상인들을 인도했다.

“허허, 소가주께서 직접 요리를 명하셨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얼씨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멱살 잡고 싸울 것 같더니 누가 보면 의형제인 줄 알겠네.

‘나는 복장 터져서 못 하겠다.’

회의는 오후에도 계속됐다.

남천휘는 형님 한 입, 동생 한 입 하던 자들이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하나 자리를 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상인들의 돌발 행동을 헤아렸다.

그 결과 삿대질 이십칠 회, 멱살잡이 오 회를 끝으로 양측은 계약서에 수결했다. 하루 종일 논의했음에도 계약서는 이전 내용과 별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양측은 불만이 가득했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 정도였다.

“휴,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네요.”

계약서에 수결한 막 총관은 술을 마시며 웃었다.

“클클, 삼공자는 재미없었겠군.”

“그것보다 하루가 그냥 날아갔으니 아깝지요.”

남천휘의 넋두리에 막 총관은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후원을 거닐었다.

“천휘야.”

집안의 어르신으로 묻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가장 좋은 거래란 무엇일까?”

남천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퀘스트를 수행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또한 질문에 대한 답조차 쉬웠다.

“당연히 우리가 이득을 보는 거래지요.”

“그렇다면 가장 오래 지속되는 거래란 무엇일까?”

“서로 만족하는 거래?

막 총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 서로 손해를 봤다고 여기는 거래가 가장 오래 간단다.”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거래는 사람이 하는 거란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요물이 살고 있지. 예를 들어 내가 이득을 보는 거래였다고 치자. 하면 손해를 본 자는 그것을 잊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 만회를 하려 하지. 위치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지. 그런 거래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 서로 만족하는 거래가 최선이잖아요.”

“그건 더 위험해.”

남천휘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처음에야 좋겠지.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의 요물이 귀엣말을 한단다. 상대방이 웃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게 싫은 거야. 내가 놓친 게 있었나? 나도 모르게 손해를 보고 있나?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해는 가요. 그런데 서로 불만스러워하는 거래는 왜 오래 가는 건가요?”

막 총관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계약을 논의했던 장소를 가리켰다.

“아까 분위기가 어떻더냐?”

“험악했지요. 제가 몇 번이나 칼을 뽑을 뻔했다니까요. 아주 자기 말만 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더군요.”

“그쪽도, 우리도 이득을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지. 지난 수십 일 간 북풍상단이나 중평산장의 문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약서를 분석했다. 글자마다 뜯어보며 이득을 볼 부분은 있는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면?”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납득했군요.”

“그래, 서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양측 다 앞으로도 손해를 봤다고 여길 거야. 하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계약서는 완벽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관계였다.

이것은 장사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사람을 대할 때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 아니던가.

그 때 남천휘의 작은 깨달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알림이 울렸다.

◎ 막대통의 심득을 얻었습니다.

- 특기 ‘상재’를 획득하셨습니다.

곧이어 남천휘도 예기치 못한 알림이 들려왔다.

◎ 대인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에 성공했습니다.

- 특기 ‘변설’의 레벨이 오릅니다.

변설의 레벨이 2가 된 것을 확인하니 막 총관에게 감사한 마음이 샘처럼 솟아났다.

한데 그러고 보니 막 총관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서로 불만족스러워야 한다면서요. 한데 노야는 즐거워보입니다?"

막 총관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독소 조항을 몇개 넣어놨단다. 한데 그 중 하나는 저들도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어. 클클, 다음에 써먹을 걸 생각하니 즐겁구나."

남천휘는 진저리를 쳤다.

아, 노야랑은 돈 문제로 싸우지 말아야겠다.

그러던 중 막 총관이 물었다.

“아! 모레 학관에 들어간다고 했던가?”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재이를 얻은 날 작성했던 입관 서류가 통과했고, 입관하기 위한 소집일이 바로 모레였다.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학관이니 들어가려는 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나 지금에 와서는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특급 강호인을 목표로 한 이상 학문에 매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진짜 가르침은 학관이 아니라 지금처럼 일상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됐네요.”

남천휘가 학과에 가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는 사이 막 총관이 물었다.

“입관 선물로 문방사우라도 사줄까?”

질 좋은 붓을 줘봤자, 이름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싶다.

그렇기에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막 총관에게는 이미 큰 선물을 받지 않았던가.

“괜찮아요. 제가 붓을 쓸 일이 어디 있다고요.”

한데 거절하기 위해 한 말이 진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

이틀 후 남천휘는 학관으로 향했다.

곡부남가 인근에서 유명한 곳으로 남천홍도 수학했던 장소였다.

날은 좋았다.

바람도 선선했고.

가는 길에 만난 웅도는 질 좋은 옷으로 멋을 냈다.

기골이 장대한 녀석이기에 문사보다는 무장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두 사람은 그 간 있었던 일을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학관에 발을 들였다.

잠시 후 노문사가 단상 위에 올랐다.

한때 유명한 사찰에 있던 파계승으로 인근에서 명망이 두터웠다. 학관주는 스무 명 남짓한 관도들을 내려다봤다.

잠시 후 통보 하듯 한 마디를 건넸다.

“학관은 오늘 부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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