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마지막 선물은 이거다!
34, 마지막 선물은 이거다!
직도가 숨겨진 위치를 알기에 직도를 파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푹! 푹! 푹! 푹!
시간문제라고 했지, 짧다고는 안했다.
“아우! 씨! 누가 이렇게 깊이 묻었어!”
남천휘는 짜증 섞인 외침과 함께 직도를 꽂았다.
땅!
쇠를 두들긴 반발력으로 온몸이 저릿했다.
하나 남천휘는 녹슨 철 상자의 흔적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
철곽을 보는 순간 없던 힘도 생겨났다.
잠시 후 기다란 철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맙소사!”
상자는 녹슬었지만, 내용물은 멀쩡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남천휘는 곡괭이 한 자루를 잃고, 열 자루의 직도를 얻은 셈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 상재!”
열 자루의 직도를 일일이 확인했다.
남천휘는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직도의 가치는 180으로 동일했다.
게다가 수십 년 간 묻혀 있었음에도 녹이 슬지 않았다. 새삼 수련용 직도를 만든 철장경이라는 장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나중에 찾아봐야겠어.’
남천휘는 열 개의 직도를 늘어놓고, 입꼬리를 올렸다. 열 자루의 가치를 모두 합산하면 무려 1800이 아니던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남천휘는 잠시 VIP 포인트를 떠올렸으나, 금세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시스템의 편리한 점은 대부분 선택 즉시 반영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적립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리라.
대신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아이템은 크기나 무게와 상관없이 무조건 한 칸씩 차지했다.
‘열 개가 겹쳐져서 한 칸만 쓰면 더 좋을 텐데.’
이래서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다.
다행히 보급창은 아직 여유로웠다.
남천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어찌됐든 할아버지의 명예는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패륜의 새싹은 왕풍으로 족하지.
“히든 퀘스트 달성률 좀 보자.”
《남추를 찾아서.》
- 연계 퀘스트 4차 대기 중입니다.
- 남은 시간은 49: 24: 30입니다.
- 현재 퀘스트 달성률은 44%입니다.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그가 백파도 남추의 비밀수련장에 와서 진행했던 연계 퀘스트는 세 개다. 그러니 네 번째 퀘스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납득이 갔다.
한데 의아한 점은 달성률이다.
분명 마지막 연계 퀘스트를 진행했을 때보다 달성률이 올랐다.
그것도 무려 15%나 상승했다.
그 말은 곧 성소를 등록하고, 수련용 직도를 찾은 행위까지 모두 달성률에 포함됐다는 뜻이다.
‘아직 히든 퀘스트는 끝나지 않았어.’
주변을 둘러봤다.
땅을 파헤치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렇기에 벌써 사위가 환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눈여겨볼 곳도 없는데······.’
하나 퀘스트 달성률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더 많은 것이 숨겨져 있어.’
D 등급 성소나 가치 180의 직도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이 남천휘가 찾아야 할 기연이었다.
*
단서는 뻔했다.
이곳은 남추의 비밀 수련장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남천휘는 결국 부조물에 숨겨져 있는 수련장으로 돌아왔다.
‘군사, 혹시 대두동에 존재하는 퀘스트가 있나?’
그 순간 지도에는 십여 개 정도의 느낌표가 등장했다. 하나 열 개를 모두 확인한 결과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잡초를 정리하고, 동혈을 청소하는 등의 사소한 퀘스트가 전부였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퀘스트는 아니라는 거지.’
생각해보면 성소나 수련용 직도를 얻은 과정은 자신의 추론으로 이뤄졌을 뿐 퀘스트를 받아서 행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성률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힘만으로 찾아내야 할 듯했다.
‘생각하자. 나는 남추의 후손이야.’
남천휘는 동혈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니면 누가 찾겠어. 그러니 나에게 의미가 있을 만한 흔적을 찾자. 나도 모르게 스쳐갔을 수도 있으니······.’
좋은 방편이 떠올랐다.
남천휘는 처음 얻은 두 자루의 직도를 쥐었다.
집중력이 10% 상승했다는 알림이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잡념이 사라지고, 사소한 행적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 호칭까지 수련충으로 변경했다. 다시 집중력이 5% 상승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동안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성소의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 성소가 안정화됐습니다.
- 보상이 지급됩니다.
- 히든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 성소 관련 보상 또한 히든 퀘스트 완료시 일괄 지급됩니다.
히든은 히든이다.
재이가 설명했던 바에 의하면 히든 퀘스트의 중요도는 메인 퀘스트보다 상위라고 했다. 그러니 모든 과정이 히든 퀘스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하나 모든 것이 히든 퀘스트 완료 후로 미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천휘의 머릿속에는 대두동에 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였다. 단순히 시야와 재화를 공유하는 정도를 지나 주인으로 각인된 것이다
“어!”
그 순간 뜻밖의 광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혈로 들이치는 햇살이 벽을 훑는다.
그 순간 무수하게 번들거리는 빗금과 구멍은 일견하기에도 정상적인 광경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던 건데······.’
공동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수련의 흔적이다.
한데 어둠 속에서 손으로 만져본 것과 햇살이 만들어낸 음영(陰影)의 흔적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똑같은 크기, 똑같은 깊이의 흔적.
하나 어느 것은 빛을 품고, 어느 것은 절묘하게 빛이 비껴갔다.
이것이 무의미할 리 없지 않은가.
남천휘는 눈을 부릅뜬 채 신경을 집중했다.
‘크흑!’
수백수천 번이나 직도를 휘둘러서 만들어낸 흔적이다. 햇살이 지나는 자리를 한 번에 기억하려고 하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꼼수가 뇌리를 스쳤다.
‘부가 능력이 중복해서 적용되는 경우도 있어?’
가능하다는 대답이 들려오는 순간.
‘직도! 직도! 직도! 직도! 직도! 직도! 직도!’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수련용 직도가 하나씩 손에 잡혔다. 수련을 하기 위해서라면 두 자루 이상 소환하는 건 비효율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오직 집중력 뿐.
수련용 직도의 부가 기능인 집중력 10% 향상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대충 손만 닿으면 돼.’
열두 개의 직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 순간 반가운 알림이 울렸다.
◎ 집중력이 정상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 특기 ‘집중(集中)’이 등록되었습니다.
◎ 생각과 행동할 시 집중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좋구나!
다행히 특기 등록은 히든 퀘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일이 되려니까 재이까지 예쁜 짓을 하는구나.
아! 재이가 아니라 군사였던가.
하나 빛이 이동할수록 기억해야 할 흔적은 급격히 늘어났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남천휘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아이템을 동원했다. 《17대 1》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특기 1회 승급권을 바로 열었다.
집중보다 신안에 투자했다.
신안(神眼)은 단순히 레벨을 보는 능력 뿐 아니라 사물의 근원을 판별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던가.
남천휘는 특기 ‘신안’의 레벨이 3으로 오른 것을 확인한 후 C급 무작위 보급 상자에서 얻은 오감증폭제를 활성화했다.
‘오감증폭제 사용. 시각!’
눈이 맑아졌고, 집중도가 올라갔다.
능력은 중복 적용이 된다니.
‘한 번 더! 오감증폭제 사용. 시각!’
재이의 경고 알림이 울렸다.
하나 이제 와서 꼬리 만 개처럼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한 번 더!’
점점 동혈의 흔적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본능적으로 모든 걸 던져야 할 때라고 확신했다.
‘상태창.’
남천휘는 눈으로 동혈의 흔적과 능력 수치를 동시에 살폈다.
근력(筋力) : 202. 민첩(敏捷) : 208
체력(體力) : 198. 지혜(知慧) : 182
내공(內功) : 200.
- 미 배분 능력치(+25)
‘지혜 수치 최대로!’
182였던 지혜 수치가 207까지 치솟았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능력 수치의 총합이 네 자리 수를 돌파했습니다.
◎ 히든 퀘스트 진행 중입니다.
성소 각인 때와 같은 알림이겠지.
‘쉿! 나중으로 미루자.’
다행히 지혜를 올린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그리고 남천휘는 기적적으로 수천 개에 이르는 흔적을 모조리 기억하는데 성공했다.
하나 기억하는 것과 유지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벌써부터 눈앞이 흐릿했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흔적들이 꼬이고 얽혀서, 뭉개졌다.
불과 열을 헤아리기도 전에 기억에서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 놓을 걸!’
하나 현재가 남천휘의 최선이었다.
더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여력이 되지 않았다.
“아아아아아!”
결국 머릿속에 기억됐던 흔적들은 하나둘씩 지워졌고, 설상가상 격으로 오감증폭제의 효과 또한 사라졌다. 눈알이 터질 것만 같았고, 이내 눈물은 비가 되어 흘렀다. 게다가 허탈함에 직도를 내던지는 순간 집중력까지 바닥을 치더니 능력 수치가 하락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템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일까.
“크흑!”
남천휘는 한순간 탈진하여 널브러졌다.
마치 바보가 된 것처럼 넋을 놓았다.
끝났다고 여겼다.
‘등신처럼 주는 것도 못 먹고.’
남천휘는 시야가 어지러울 정도로 이곳저곳에 더 있는 정보창을 지우려 했다.
한데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특기에 검은색 막대가 붙어 있다.
그것은 서서히 흰색을 물들었다.
‘미연시’ 때도, ‘기습 공격’ 때도 봤던 광경이다.
‘인스톨! 히든 모드인가?’
남천휘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아니나다를까 군사가 아닌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완벽하게 기억하고, 완벽하게 잊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단계를 경험했습니다. 백파도 남추의 과거와 관련된 1차 조건이 달성됐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남천휘가 기다렸던 알림이 울렸다.
띠링-
◎ 특기가 연계되어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 유무를 확인 중입니다.
남천휘의 혼탁하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도수)(신안)(심상)(유지)(집중)(무희)
무희? 가장 쓸모없다고 여겼던 특기도 새로운 무언가와 연계가 됐단다. 현재 번쩍이고 있는 여섯 개의 특기를 조합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나 재이는 늘 기상천외한 것을 선사하지 않던가.
시스템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이이.》
《여섯 종류의 특기에 관한 연계성이 확인됐습니다.》
《백파도 남추의 강렬한 의지가 더해집니다.》
- 2차 조건을 충족합니다.
《지정 장소에 남추의 후손이 존재합니다.》
- 3차 조건을 충족합니다.
《반쪽짜리 중양칠도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합니다.》
- 4차 조건을 충족합니다.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을 부여합니다.》
《한시적으로 히든 모드 ‘VR’이 해금됩니다.》
남천휘는 VR이라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
머릿속에 ‘가상 현실’이라는 네 글자가 각인됐다.
하나 ‘가짜’ 또는 ‘환각’을 연상케 하는 모드의 정체를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남추의 생전 영상이 존재합니다.》
생전? 영상?
개소리도 적당히 하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이었다.
누군가 눈에 먹물을 뿌린 것처럼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마치 빛 한 점 없는 무저갱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던 중 한 줄기 빛이 남천휘를 인도했다.
솨아아아악!
빛은 급류처럼 들이쳤고, 이내 낯익은 장소가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천휘가 서있던 장소였다.
하지만 수련장의 중앙에 선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족자를 통해서 수천 번을 봤을 백파도 남추가 두 자루의 직도를 양 허리에 찬 채 존재했다.
‘맙소사!’
충격이 조금씩 사그라졌고, 수련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있던 곳과 달리 남추가 서있는 수련장의 벽은 흔적 없이 깨끗했다.
마치 과거의 어느 날을 보여주듯이.
스릉-
남추는 호흡이 안정되는 순간 직도를 뽑았다.
모양은 지금껏 봤던 직도와 다를 바가 없다.
한데 도신의 빛이 달랐다.
묵광(墨光).
남천휘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저처럼 새카만 빛을 품은 건 묵철(墨鐵)이 유일했다.
하늘의 허락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다는 신의 선물.
남추는 흔히 현철(玄鐵)이라 부르는 묵철을 통짜로 갈아낸 직도를 지녔다.
‘할아버지.’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겁니까?
하나 그처럼 거대한 의문조차 남추가 직도를 휘두르는 순간 뇌리에서 사라졌다.
쇄애애애애액!
첫 수부터 강맹한 도풍이 일어나더니 수련장 곳곳에 도흔(刀痕)을 새겨 넣었다. 두 개의 직도는 부딪칠 듯 서로를 스쳐가며 아름다운 궤적을 만들어냈다.
‘아, 아름다워.’
수염이 숭숭 난 장년인의 몸놀림이 저토록 현란할 것이라 누가 예상했을까.
이제야 특기 ‘무희’가 생성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중양칠도의 원형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도법이 아니었다.
불현 듯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뭘 어떻게 남기면 저게 중양칠도가 되어 전해진단 말입니까!’
이내 남추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다짐하듯 읊조렸다.
“삼교일치를 이루지 못했으니 구도의 삶은 내 길이 아니야. 그러니 더더욱 비천무상도만은 대성하여 내 길을 찾으리라!”
비천무상도(飛天無常刀)라고?
남천휘는 당장이라도 무공창을 열어 확인하고 싶었다. 하나 남추는 남천휘의 조상임을 증명하듯 조금의 휴식 이후 재차 수련을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양 팔을 편 채 검지를 고리에 걸었다.
그 순간 두 자루의 직도는 손바닥 아래에서 회전하며 벽면에 거대한 흔적을 남겼다.
남천휘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크고, 아름다워!’
특기 집중이 발휘되기라도 한 것일까.
점점 비천무상도에 빠져들었다.
그는 남추도, 수련장도, 히든 퀘스트도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재이의 알림조차 먼 곳에서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 민첩 수치가 +3 상승합니다.
◎ 모든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 특기 ‘쌍수(雙手)’가 등록됐습니다.
◎ 대기에 분포된 정기를 받아들여 내공이 소폭 상승합니다.
◎ 내공 수치가 +4 상승합니다.
◎ 내공 수치가 +5 상승합니다.
◎ 깨달음에 대한 보상으로······.
◎ 지혜와 내공이 동시에······.
이제 끝없이 울리던 재이의 알림조차 희미해졌다.
하나 남천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가상현실’을 통해 전해지는 기연을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