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49화 (49/305)

33,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33,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남추를 찾아서.》

- 나의 유산? 원한다면 주도록 하마.

- 잘 찾아보라고. 너라면 찾을 수 있을 거다.

- 내 유산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까.

- 남은 시간은 78: 44: 30입니다.

※ 1회성 연계 퀘스트입니다.

※ 시간제한 이후 재시도가 불가능합니다.

※ 퀘스트 달성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백파도 남추의 족자에서 생성된 히든 퀘스트였다.

남천휘는 침음을 흘리며 창을 닫았다.

곡부남가를 떠난 후 수십 번이나 재독했기에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기억했다.

그러나 버릇처럼 틈 날 때마다 창을 열었다.

‘도대체 뭐하던 분이셨던 거야.’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일개 산적이 남길 법한 유언은 아니지 않은가.

누가 보면 녹림왕이나 해적왕은 되는 줄.

◎ 생전 언행을 바탕으로 작성된 유언입니다.

재이가 어쩐 일인지 답을 줬다.

하나 들으나 마나 한 대꾸였다.

‘아무리 네가 천상 제라지만 어떻게 백수십 년 전의 일을 장담해?’

깊이 파고드니 돌아오는 건 침묵이다.

‘못된 것. 두고 보자.’

그래, 난 남천휘. 굴욕을 잊지 않는 남자지.

◎ 기상 조건이 변화합니다.

- 표식이 한시적으로 사라집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가득했다.

“몽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더니······.”

몽산(蒙山)은 곡부에서 동쪽으로 이틀거리였다.

삼백 여개의 봉우리와 삼백 여개의 골짜기가 모인 몽산의 날씨는 약초꾼들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몽산이 유적지라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산적인 거잖아.”

그는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노란 동심원이 두 발을 감싸고 있었다.

동심원의 모양은 ‘♂’이고, 방향은 북동쪽을 가리켰다. 백파도 남추의 유산이 있을 장소였고, 그가 가야할 곳이기도 했다.

한데 표식은 날씨가 맑을 때만 활성화됐다.

비라도 내린다면 표식은 사라질 것이고, 산중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강제 휴식인가.”

남천휘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조금 전에 지나쳤던 관제묘에서 잠시 비를 피할 요량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한데 남천휘는 관제묘에 접근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을씨년스럽던 곳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직도의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나 경계심은 저들의 대화를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화전민이잖아.’

끼익-

관제묘 안의 광경은 예상대로였다.

화전민 수십 명과 그들의 가재도구가 가득했다.

“엇!”

털보 장한이 순박한 눈망울을 끔뻑이며 경계심을 보였다. 남천휘는 양 손을 펼쳐 보인 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비가 와서요.”

때마침 관제묘 밖으로 겨울비가 싸늘한 바람을 동반한 채 쏟아졌다.

솨아아아아아!

털보 장한은 경계심을 지우고 물러섰다.

“관제묘에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객은 후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니 공자께서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떠도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불을 피우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들은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관제묘 곳곳에 모닥불을 피웠고, 남천휘에게 기꺼이 한 자리를 내주었다.

*

화전민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밭을 갈아서 생활을 영위하고, 지력이 쇠하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그렇기에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전 재산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그러니 수십 명이 모였지만,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겨울이라 가실 만한 곳이 마땅치 않겠군요.”

자신을 촌장이라 밝힌 털보 장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겨울보다 사람이 더 무섭지요.”

“네?”

“요즘 산중에 흉사가 워낙 많아서 다시 산을 내려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람을 피해서 올라왔다가, 사람을 피해서 다시 내려가는 거지요. 하여 지금 곡부 남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곡부 남쪽이라면 곡부남가의 영역이 아닌가.

아니나다를까 촌장은 곡부남가를 거론하며 겨울 동안 머물려 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동네에?’

그가 의아해하는 사이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여 떠들었다.

“곡부에 부처님이 있데요.”

“착한 돼지가 있다던데?”

“아니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는 좋은 부처님이라고 했어.”

“그럼 돼지 부처인가 보지.”

“아니라고! 이 똥멍청아.”

남천휘는 아이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했음에도 눈동자가 맑았다.

부모의 애정을 잔뜩 받고 자라온 것이 분명했다.

“이거 먹을래?”

남천휘는 손가락을 몇 번 튕겨 육포를 꺼낸 후 내밀었다. 손바닥만한 육포 한 장에 은자 한 냥인 고가의 주전부리였다. 시각적 효과는 둘째 치고, 육향만으로도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냉큼 받아가지 않았다.

아비가 허락을 한 후에야 두 손을 배꼽 댄 후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녀석들이다. 한데 아이들은 조막만한 손으로 육포를 쥔 채 어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하아, 자식들. 귀엽네.’

결국 남천휘는 가지고 있는 육포를 모두 꺼내 화전민들에게 나눠졌다.

좋은 육포는 좋은 곳에 데려가준다는 말과 함께.

“곡부남가로 가신다고요?”

“그렇습니다.”

남천휘는 촌장에게 자신이 왔던 길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도 초행인 길이지만, 재이가 지도를 통해 알려준 지름길이 아니던가. 지름길로 간다면 반나절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으리라.

“고맙습니다. 대협의 존성대명이라도······.”

촌장이 거듭 이름을 물었으나, 남천휘는 손사래를 쳤다. 나중에 기회가 되어 곡부남가에서 재회한다면 서로 반갑지 않겠는가.

띠링-

잠시 후 비가 그쳤다.

발아래 있던 표식은 다시 북동쪽을 향했다.

남천휘는 아이들에게 육포 몇 조각을 더 쥐어준 후 기분 좋게 관제묘를 나섰다.

*

심산유곡에는 빛조차 스며들지 못한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개까지 사방에 자욱하니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만약 지도상의 표식과 발아래 화살표가 없었다면 길을 잃고 헤맸으리라.

“이게 땅이야? 늪이야?”

남천휘는 질척거리는 산길을 오르며 투덜거렸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옅어지더니 거대한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잡초가 허리께까지 자란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였다.

띠링-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첫 퀘스트 완료와 함께 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보상은 히든 퀘스트 완료시 일괄 지급됩니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천휘는 분지의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부조물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리부리한 눈매로 분지의 입구를 노려보는 거대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장소가 존재하다니....’

단순히 움막이나 산채를 예상했던 남천휘로서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활사인묘를 찾아서.》

- 남추의 수련장소를 찾으세요.

- 남은 시간은 72: 24: 15입니다.

아직도 삼일이라는 여유 시간이 남았다.

‘꽉 막힌 곳에서 수련 장소를 찾는 것쯤이야.’

하나 남천휘는 안개가 걷히며 분지의 전경이 드러나는 순간 침음을 흘렸다.

좌우 절벽에는 동혈이 가득했다.

이름도 없고, 크기가 동일한 백여 개의 동혈을 보는 순간 개미굴이 떠올랐다.

‘이걸 다 뒤져야 해?’

활사인묘(活死人墓)는 도가의 수행자들이 만드는 수련처였다. 땅을 파고 들어가 좌선을 한 채 명상을 통해 구도를 꿈꿨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이 분지가 평범한 장소일 리 만무했다.

“젠장! 이건 왜 이렇게 깊어?”

동혈의 입구는 동일한 크기였다.

하나 내부는 동혈마다 천양지차로 어떤 곳은 사람이 겨우 누울 만큼 좁았고, 어떤 곳은 미로처럼 여러 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깊었다.

남천휘는 절벽을 오르며 동혈을 수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만 늘어갔다.

그나마 오행군림보의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남천휘는 사위가 어둑해지자 미간을 좁혔다.

애초에 희미했던 햇빛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시계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쯧.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는 적당한 쉴 곳을 찾으려다 부지불식간에 얼굴 형태를 하고 있는 부조물을 바라봤다.

‘눈이 다른 동혈의 입구 크기랑 같잖아.’

그렇다면 저곳 또한 활사인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타탓!

남천휘는 빠르게 보법을 펼쳐 부조물을 기어올랐다.

그리고 두 개의 눈 중 한 곳에 들어서는 순간 반가운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 활사인묘를 발견했습니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동혈에 들어서는 순간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보급창에서 작은 대통을 꺼냈다.

대통을 여는 순간 불씨가 기름종이에 옮겨 붙었고, 이내 동혈 안이 환해졌다. 그리고 누군가 새겨 넣은 경구가 시야를 사로잡았다.

- 팔진(八眞)이 묻기를.

삼교일치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이름을 올리기 부끄럽다.

- 일진(一眞)이 대꾸하기를.

욕(慾)을 멀리하고, 치(恥)를 참으며, 자신은 고초를 겪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면 족하다

‘이게 무슨 선문답이야.’

남천휘는 문답을 지나 내부로 향했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 명백하게 남아 있었다.

다만 서책은 원형을 알 수 없을 만큼 낡았고, 건드리는 순간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몇몇 옷가지가 남아 있었으나, 주인의 행적을 유추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반대편 눈으로 이동했다.

‘저쪽이 침소였고, 이쪽이 수련장이었나 보네.’

남천휘는 횃불을 앞세운 채 천천히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 눈에 비해 오른 쪽은 깊었다.

그리고 동혈의 끝에는 사람이 몸을 움직일만한 공동이 존재했다.

띠링-

◎ 백파도 남추의 비밀 수련장을 발견했습니다.

남천휘는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음에도 귓등으로 흘렸다. 그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내부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동혈의 끝에는 넓적한 두 자루의 도가 예(乂)자 형태로 걸려 있었다.

고급스러운 가죽에 휘감겼으나, 형태만 봐도 직도임을 확신했다.

남천휘는 조심스럽게 두 자루의 직도를 잡은 채 읊조렸다.

‘확인.’

직도의 가치가 떴다.

남천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치가 180이라고?’

하나 정작 그를 놀라 게 만든 건 직도의 가치가 아니라 명칭이었다. 재이는 남천휘가 본 것이 진짜임을 증명하듯 알림을 생성했다.

◎ 백파도 남추의 수련용 직도를 발견했습니다.

남천휘는 굳은 표정으로 직도를 뽑았다.

스르륵-

여인이 얇은 옷이 흘러내리듯 희미한 소음과 함께 직도가 도신(刀身)을 드러냈다.

쥘 때부터 느꼈지만, 평범한 도가 아니다.

그런데 이게 수련용이라고?

남천휘는 직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손잡이에 감긴 가죽조차 싸구려가 아닐 만큼 공들여 만든 도였다. 심지어 남추가 활동했던 시절은 족히 백 년 전이 아니던가. 백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도신에서 녹이 슨 부분을 찾지 못했다.

‘이게 수련용이면 진짜는······.’

상상만으로도 등허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쯤 되면 축복받은 확인서라도 사용해서 숨겨진 내용을 밝혀내야 할 듯했다.

‘축확 한 장 쓰자.’

왜? 뭐? 수련용 직도에 쓰는 건 아깝다고?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때? 그럼 한 장 날리는 거지.

갈 때 가더라도 그 정도는 괜찮잖아?

그 순간 축복받은 확인서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가루는 수련용 직도에 스며들었다.

《백파도 남추의 수련용 직도.》

- 철장경이 은공을 위해 직접 제련한 강도(剛刀).

- 스무 자루가 한 세트로 구성됐다.

- 확인 대상은 11호와 12호다. (가치 : 180)

- 무기 등급 : 특수(特殊).

- 부가기능 : 집중력 10% 증가.

- 내구도 (78/180)

도대체 몇 번이나 놀라야 하는 걸까?

남천휘는 허공을 응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좀 한 번에 모아서 놀라게 해주실래요?’

하나 이내 침을 꿀꺽 삼키며 욕망의 눈빛을 드러냈다.

철장경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하나 가치 180의 도를 스무 자루나 만들어낸 장인이 평범할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남추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으리라.

'그렇게 좋은 걸 버리시지는 않았겠지?'

남천휘는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폈다.

당장이라도 열여덟 자루의 직도를 찾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하나 공동을 샅샅이 뒤졌으나, 비밀 통로나 창고는 찾지 못했다.

"잠깐!"

남천휘는 동혈의 입구에 서서 분지를 내려다봤다.

그리 넓지는 않았으나, 좁은 입구만 막아버리면 천혜의 요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소였다. 게다가 정녕 인간이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부조물을 보라.

평범한 장소일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가치 180짜리 수련용 칼을 사용하던 선조의 비처가 아니던가.

‘이런 곳이라면······.’

남천휘의 뇌리에 성소라는 두 글자가 스쳐갔다.

그는 태산의 초입에서 획득했던 E 등급 성소, 대화동을 떠올렸다.

수령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성황목.

그것만으로도 성소가 탄생하지 않았던가.

“일 리가 있어!”

혹여 진짜 이곳이 성소라면 수련용 직도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남천휘는 동혈 곳곳을 돌아다니며 손을 댔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찾아내겠어. 네가 증인이다!”

재이는 남천휘의 결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 대상자의 결심과 관련된 정보가 없습니다.

◎ 대상자의 명예를 걸고 다시 검색할까요?

남천휘는 정색하며 말했다.

“미쳤어? 내 명예를 왜 걸어. 어차피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어도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너도 듣고 흘려.”

그 후에도 재이가 유혹하듯 알림을 띄웠으나, 매몰차게 귓등으로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남천휘는 성소의 단서라고 할 만한 장소를 찾아냈다.

“아무리 봐도 이게 제일 있어 보여!”

일진과 팔진의 선문답이 적혀 있던 벽.

아니나다를까 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자세를 잡던 중 발아래 예(乂)자 문양이 반짝였다.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 X를 밟고 경의(敬意)를 표하십시오.

그래도 한 번 해봤기에 금세 호흡을 조절했다.

남천휘는 싱긋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후손 남천휘가 선조께 인사드립니다. 남겨놓으신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전해주세요. 제가 유용하게 잘 쓰겠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는 순간 문양이 백광을 쏟아냈다.

《D 등급 공백지를 발견했습니다.》

《성소를 차지하는 순간 공백지의 주인이 됩니다.》

《새로운 주인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대화동보다 성소 등급이 높다.

‘하긴 거기는 그냥 들판이었잖아.’

남천휘는 예상했다는 듯 평안한 표정으로 문양에 손을 댔다.

《성소의 동조화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 순간 시야 상단에 검은 막대가 생성됐다.

대화동보다 동조화 작업 시간이 길다.

일각 정도 손을 댔을 때였다.

막대가 완전히 하얗게 변하며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동조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공백지의 이름을 정해주시겠습니까?》

이미 성소를 찾을 때부터 명칭은 정해졌다.

누군지 모를 거대한 얼굴은 분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대두동.”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음이 연이었다.

◎ 공백지의 명칭이 대두동으로 등록되었습니다.

◎ D 등급의 영역을 차지했습니다.

◎ 특기 ‘유지(有志)’가 한시적으로 다시 재활성화 됐습니다. 지금부터 대두동의 모든 권한을 이양 받고, 정보와 시야를 공유합니다.

오랜만에 특기가 다시 활성화됐다.

대화동 때와 마찬가지로 시야가 끝 모르게 확장되더니 하늘에서 대두동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대두동(大頭洞) 주변에 흰 선이 생성됐다.

‘좁군. 좁아.’

대화동의 방대한 영역과 달리 대두동은 분지가 경계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대두동은 마치 보금자리처럼 아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크기도 별 차이가 없을 걸?’

◎ 대화동과 대두동의 면적은 59:1입니다.

남천휘의 표정이 구겨졌다.

“야! 그냥 혼잣말 한 거야.”

대답하라는 건 안하더니 쓸데없는 건 잘만 대답하는 모습이 참으로 밉상이다.

어쨌든 코딱지만한 땅이라고 해도 생긴 게 어디더냐. 자기 한 몸을 뉘일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일만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머니! 땅이 또 생겼어요.’

이러다 겨울이 지나고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자신은 땅 부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남천휘는 감정을 있는 대로 발산하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두동도 대화동처럼 시야 하단에 목록이 존재했다.

(건축물)(구성원)(물품류)

건축물을 건드리자, 수많은 동혈에 번호가 붙었다.

그리고 동혈을 건드리는 순간 동혈의 내부가 지도처럼 그려졌다.

하나 남천휘의 시선을 끈 건 대두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부조물이다.

‘이거 왜 안 눌려?’

그 때 헛기침과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남 공자.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군사인 제가 설명을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군사네. 너도 재이가 아니라고 하겠지?”

군사는 재이가 누구냐며 예전의 그 놈처럼 역할 놀이에 심취했다.

남천휘는 기꺼이 어울렸다.

말을 섞어봤자 득 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성소를 벗어나면 뭐하고 있을지도 모를 놈이다. 그러니 그냥 머슴처럼 여기며 부려먹으면 될 터였다.

“됐고, 저 대두는 뭐야?”

◎ 현재 주군의 능력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땅을 넓히고, 장수들을 모은 후 확인하시는 것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전쟁하고 싶어? 피나고 싶어?

뭔 땅을 늘리고, 장수를 모아.

남천휘는 군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어차피 부조물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중요한 건 물품류지!”

그가 물품류를 건드리는 순간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대두동에 존재하는 물품이 나열됐다.

‘직도, 직도, 할아버지가 쓰던 수련용 직도는 어디 있는 거냐?’

잠시 후 남천휘의 두 눈에 환희가 섞였다.

“찾았다!

한 자루도 아니고 무려 열 자루가 존재했다.

한데 수련용 직도의 위치가 문제였다.

그는 절벽 앞에서 탄식했다.

“이 안에 있다고?”

◎ 일차적으로 묻혔고, 이차적으로 토사물이 덮어서 조성된 장소이옵니다. 군사들을 동원하여 땅을 파헤친다면 일각 안에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주군! 징집령을 내려 정병을 만드시옵소서.

닥쳐! 이 전쟁광아.

남천휘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결국 내가 파야 한다는 건데······.’

하나 마땅한 도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잠시 후 허리춤에 묶인 직도를 내려다봤다.

‘확인.’

《벽추가 선물한 직도》

- 진짜 도, 베이면 피가 난다.(가치:7)

- 부가기능 : 벽추의 호감도 +10.

- 내구도 (7/20)

남천휘는 직도를 뽑으며 읊조렸다.

“지금부터 넌 직도가 아니라 곡괭이다.”

그는 직도를 거꾸로 쥔 채 절벽에 꽂아 넣었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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