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기습 공격.
27, 기습 공격.
질풍뇌격궁을 떠올리는 순간 손에 잡혔다.
착!
그 순간 시야 곳곳에 푸른 원이 생성됐다.
일견하기에도 숨어서 활을 쏘기 좋은 장소였다.
남천휘는 그 중 잎사귀가 우거진 나무 위에 올랐다.
‘침입자가 어디 있는 거냐?’
적의 위치는 지도상에서 붉은 점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으로 보는 지형과 지도에 표시된 곳을 일치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동안 안력을 집중한 끝에 적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와라.’
남천휘에게 제아무리 특기 ‘원사’가 생겼다고 해도 체계적으로 수련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적이 두 번째 목책을 지나는 순간을 노리기로 했다. 다행히 목책 주변은 은폐물이 많지 않았다.
한데 저들은 여전히 느릿하게 접근했다.
'혈랑회라면서 더럽게 신중하네.'
남천휘는 짬을 내서 상태창을 펼쳤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대화동(大化洞)
- 호칭 : 신사의 품격
- 별호 : 없음
- 등급 : 19
- VIP : 1등급(잔여 점수 : 74)
근력(筋力) : 115. 민첩(敏捷) : 155(+200)
체력(體力) : 119. 지혜(知慧) : 125
내공(內功) : 120.
- 미 배분 능력치(+30)
그러고 보니 영웅 등급의 무기를 얻으면서 레벨이 올랐다.
남천휘는 추가 능력치를 배분하려다 멈칫했다.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배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적을 상대하면서 결정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나저나 민첩 수치 대단하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예전과 달리 미세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육신을 스치고 사라지는 바람의 흔적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바람은 동풍, 속도는 10로 나눴을 때 3 정도일까?’
다행히 적은 서쪽에서 접근하는 중이다.
화살을 쏘면 위력은 배가 되리라.
‘좋아, 좋아!’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활을 처음 쥐었음에도 자신감은 배가됐다.
혈랑회가 접근하고 있음에도 묘한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저 새끼들, 왜 이렇게 느려!’
풍향도 좋고, 위치도 좋고, 무기도 좋다.
한데 적이 못쓸 지경이다.
'그냥 와라! 아예 대놓고 손이라도 흔들어 주랴?'
남천휘는 혈랑회를 탓하던 중 눈을 가늘게 떴다.
특기 목록을 확인하던 중 기이한 광경이 보였다.
다섯 개의 특기에 검은색 막대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서서히 흰색으로 물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그 인스톨이라는 거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순간 재이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군사가 아니라 이 순간은 재이였다.
◎ 특기가 연계되어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 유무를 확인 중입니다.
말을 어렵게 하는 것도 참 재주다.
남천휘는 짜증을 내려다 지난 일을 떠올렸다.
처음 특기가 활성화됐을 때의 상황이다.
특기와 특기를 조합하여 고위 특기로 승급 되거나, 연계로 인하여 새로운 부가 기능을 찾아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지), (원사), (탐지), (불굴), (신안).
이 다섯 개가 연계되어서 뭐가 나온단 말인가?
잠시 후 귀를 찌를 듯한 기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이이.》
이거 왠지 예전에 히든 모드인 ‘미연시’가 발동했을 때 들었던 것 같은데.
*
혈랑회의 부회주는 신중했다.
남천휘로 추정되는 목표가 혈금채로 향했음이 드러나는 순간 더욱 신중해졌다. 그들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남천휘가 태산에 온 건 이번이 초행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혈금채에 갈 리가 없어.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거다!”
그렇기에 그는 수하들의 진격 속도를 늦췄다.
아울러 후발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부회주.”
혈랑회의 무인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조금 더 빨리 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 목책을 지나면 바로 산채입니다. 행여 놈이 도망이라도 치면 어떻게 합니까?”
“상관없어. 이곳은 분지야. 입구가 아니면 절벽을 기어 올라가야 해. 남천휘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의뢰자에게 받은 정보는 신뢰할 만 했다.
그러니 남천휘는 분명 산채에 있을 터였다.
부회주는 장고 끝에 수하를 향해 손짓했다.
‘어차피 놈은 혼자다. 늦데 가나, 빠르게 가나 차이가 없겠어.’
수하가 부회주의 손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신호는 목책을 지나는 순간 돌입하라는 뜻이다.
그는 목책 위로 슬그머니 목을 뺐다.
동료들의 위치를 살핀 후 수신호를 보내기 위함이다.
부회주는 저 멀리 수풀 너머로 보이는 산채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혈금채의 부채주가 배신을 하는 순간 채주를 비롯한 산적들을 도륙했다.
그 후 돈이 될 만한 건 모조리 빼낸 상태였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저 놈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한데 그 순간 산채 쪽에서 녹광(綠光)이 번쩍였다.
"어어!"
뻑!
나무가 꿰뚫린 듯한 파열음.
부회주는 목을 웅크린 채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주변에 있어야 할 수하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그는 뒤를 돌아본 후 자신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수하는 나무에 박힌 채 절명한 후였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녹색의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이 꽂힌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죽창?’
*
남천휘는 조금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고막이 터질 듯한 기음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다섯 개의 특기 위에 존재하던 막대가 완전히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다.
《삐이이이이이이.》
《다섯 종류의 특기에 관한 연계성이 확인됐습니다.》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을 부여합니다.》
《한시적으로 히든 모드 ‘저격’이 해금됩니다.》
그 순간 시야가 맹렬한 속도로 확장됐다.
특기 ‘유지(有志)’를 얻었을 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광경과 달랐다. 마치 시력이 급상승하여 멀리 있던 것이 코앞에 있는 듯했다.
백 장 밖의 나뭇가지를 헤아리고, 풀이 흔들리는 광경을 또렷하게 지켜봤다.
‘내 눈으로 보는 거 맞지?’
그 순간 교관의 목소리처럼 투박한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기습 공격을 시작하세요.》
저격(狙擊)이라.
이처럼 안전한 공격이 또 어디 있을까.
남천휘는 확장된 시야를 양껏 활용하며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그 순간 경악할 만한 일이 연이었다.
시야가 좁아지더니 테두리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원형의 시계만 남아 안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서역의 귀물(貴物)이라 불리는 천리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다.
띠띠띠띠띠-
그 순간 원형의 시계를 사등분하는 십(十)자 점선이 그려졌다. 종(縱)과 횡(橫)으로 그어진 점선이 맞닿는 부분은 마치 표적을 노리라는 듯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쏘면 되는 건가?’
활을 쏴본 적이 없으니 매순간이 낯설었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다.
《저격이 활성화됐습니다.》
- 민첩 수치가 200% 상승합니다.
- 체력과 근력의 소모가 조금 빨라집니다.
- 내공의 소모가 빨라집니다.
- 저격 모드 시 이동속도가 90% 저하됩니다.
- 저격 모드 시 피해량이 50% 증가합니다.
- 현재 발사 가능 횟수는 5 회입니다.
민첩 상승 수치를 듣는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이에게 배운 바에 의하면 민첩 수치가 세 배나 오른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민첩 수치는 1065다.
네 자리 수치라니!
모든 능력 수치를 합한 것보다 많다.
비록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치였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었다.
‘후아! 이 정도 수치면 민첩에 한해서는 절정, 아니 초절정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재이의 알림이 이어질수록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이동 속도 저하와 피해 량 증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움직여봤다.
하나 며칠 동안 밥을 굶은 사람처럼 느릿했다.
‘맙소사! 이거 하다가 뒤로 접근하면 그냥 골로 가는 거잖아?’
남천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빛과 그림자, 동전의 양면.
히든 모드라고 해서 만능은 아닐 터였다.
‘좋다고 함부로 쓸 것도 아니야.’
다시 한 번 긴장한 탓일까.
흥분됐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머리 또한 맑아졌다.
흔들리던 시계도 또렷해진다.
‘상태창.’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긴장감은 배가됐다.
재이의 설명처럼 저격 모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능력 수치가 하락하고 있었다.
하나 남천휘는 침착하게 숫자를 헤아렸다.
‘체력과 근력은 열에 하나씩, 내공의 소모는 다섯에 하나. 길어야 일각 정도 유지되겠네.’
다행히 적선단과 벽선단이 있었기에 여차하면 활용할 생각이다. 능력 수치가 회복되면 원래보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으리라.
“후우.”
꽉 다문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호흡을 이어갔다.
그럴수록 조준선 안의 풍광이 한눈에 보였다.
풀, 잎사귀, 나무, 벌레, 새, 그리고 적.
이미 적의 위치는 확인했다.
다만 자세를 낮추고 있기에 노릴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을 뿐이다.
남천휘는 당겼던 활시위를 풀었다.
그러자 천리경처럼 보이던 광경이 변했다.
다시 시야는 넓어졌고, 조준선은 사라졌다.
‘하나, 둘, 셋, 넷······.’
적의 움직임을 유심히 주시했다.
매우 규칙적이다.
혈랑회는 한낱 흑도 패거리에 살수 집단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만큼 신중했다.
분명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으리라.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라.’
하나 두렵지 않았다.
아무리 진짜 정체를 숨겼더라도 자신만큼은 아닐 터였다.
남천휘는 검지로 활대를 두드리며 적의 습성 이해하려 했다.
‘찾았다.’
이내 열 명 중 마지막 놈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다음은 두 번째 놈이 고개를 내밀 차례였다.
놈이 안전을 확인하면 나머지 인원이 조금씩 나아가는 방식이다.
“후우.”
눈빛은 호수처럼 흔들림이 없고, 호흡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솨아아아-
등 뒤에서 바람이 분다.
동풍(東風)이다.
‘좋구나.’
남천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활시위를 당겼다.
끼이이이익-
시야가 좁아지며 저격이 다시 활성화됐다.
◎ 적이 구십 장 이내로 진입했습니다.
재이의 알림은 아주 먼 곳에서 말하는 것처럼 희미하게 귓가를 스쳐갔다. 온 신경을 저격 모드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게는 네가 있지.’
인생 이십 년의 세월 중 몇 달 전부터 오늘까지.
모든 시간 재이가 없었던 적이 없다.
이제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이 순간.
산새소리와 스산한 바람소리가 피부를 때린다.
폭풍전야(暴風前夜).
활을 손에 쥔 적도 없는 초심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나 너희들의 혈랑회가 허접한지, 내 죽창이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느낌이 좋다.’
그 때 두 번째 자리에 위치한 적이 모습을 보였다.
남천휘는 여인의 살결을 어루만지듯 천천히 활시위를 놓았다.
텅-
그 순간 죽창은 녹빛 꼬리를 남긴 채 공간을 꿰뚫었다. 그리고 허공에 그려졌던 녹빛 광채가 사라지기도 전에 굉음이 울렸다.
죽창에 담긴 힘은 엄청났다.
적을 꿰뚫고도 이장이나 날아가더니 장정 두엇이 감싸야 할 만큼 커다란 나무에 박혀버렸다.
첫 번째 위치한 적이 당황하여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멈칫했던 적들은 은폐물을 찾아 흩어졌다.
‘저 자가 대장이군.’
그 때 알림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재이가 아니라 군사였다.
그냥 우리끼리는 군사라고 치자.
호응해주면 떡이라도 하나 더 주겠지.
◎ 침입자를 제거하여 500 성소 포인트를 획득했사옵니다.
성소가 있는 곳, 즉 대화동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점수였다. 포인트로 성소를 강화하거나, 성능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이걸로 뭘 할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