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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36화 (36/305)

26, 지금, 나는 무기를 가졌다! 호, 호, 호.

26, 지금, 나는 무기를 가졌다! 호, 호, 호.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너 왜 그래? 무서워.

갑자기 들려온 경극 말투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재이야, 미친 거야?’

◎ 소신은 재이가 아닙니다. 군사입니다.

재이 맞잖아.

◎ 아닙니다. 소신은 대화동의 번영을 위해······.

그러니까 재이잖아.

몇 번이나 되물었더니 갑자기 알림이 끊겼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한 이 기분은 물론 착각이겠지.

한데 그 순간 시야가 붉은 색으로 점멸(點滅)하기 시작했다.

띠이- 띠이-

‘이 불길해 보이는 경고음은 뭐냐?’

이내 재이, 아니 군사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외쳤다.

◎ 적이 출현했습니다.

화제 전환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

어찌됐든 남천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 구석에 위치했던 지형도가 확장됐다.

혈금채, 아니 이제는 대화동이라 불릴 영역의 경계에 붉은 점이 번쩍였다.

열 개의 점은 열 명의 적을 뜻하리라.

남천휘의 눈동자에 결연한 의지가 맺혔다.

“적이라니.”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망치자!”

◎ 방어 상태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합니다.

저기요. 제 말 안 들리나요?

군사라며. 그런데 왜 주인 말을 듣지 않는 거니.

남천휘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다시 말했다.

“도망치자고.”

◎ 주군, 명령을 내려주시옵소서!

“허허.”

이거 봐. 제 할 말만 하는 걸 보니 재이 맞네.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갈 거야. 혈랑회와 굳이 싸울 필요가 없잖아.”

그가 혈랑회의 존재를 알면서도 혈금채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오행군림보라면 혈랑회라고 해도 쉬이 쫓아올 수 없으리라.

혈금채의 부채주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오행군림보의 성취가 일정 수준에 오르는 순간부터 지형지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경공만큼 속도도 준수했다.

‘다만 자세가 좀 어정쩡해서 그렇지.’

어쨌든 얻고자 하는 걸 다 얻은 이상 굳이 혈랑회와 드잡이 질을 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한데 남천휘는 돌아서기 무섭게 걸음을 멈춰야 했다.

◎ 공백지 획득 이후 일정 시간을 머물지 않으면 성소가 파괴됩니다. 이는 곧 공백지의 무효화를 뜻하며, 취득한 물품은 자연 회수됩니다.

“뭐라고?”

이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생떼야.

그렇다면 힘들게 얻은 전표 2000 냥과 은자 3200냥을 가져간다는 말이 아닌가. 무엇보다 기껏 적립한 VIP 포인트도 원상태였다.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한 시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천휘는 짜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성질 같아서는 금이고 은이고 모조리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잠깐! 정말 버리고 갈까?’

따지고 보면 영약도 아니고, 은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 집 부자잖아!’

그 때 군사라고 주장하는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다.

◎ 성소를 포기하는 순간 재획득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참고로 S 등급 ‘소림사’의 경우 성소의 각인 시간은 240일입니다.

아! 이건 치명타다.

명치를 파고들더니 온 몸의 뼈와 살을 분리해버리는 듯한 일격이었다.

‘더 이상 성소를 얻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강호에는 성소가 많은 듯했다.

소림사가 S 등급이라면 구파와 거대방파 또한 성소에 해당할 터였다. 그 밖에 혈금채보다 쓸 만하면서 비어있는 공백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나 도망친다면 그 모든 것이 끝.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이쯤 되면 손익 계산이 너무도 명백했다.

그런데 불현 듯 뜻밖의 가설이 뇌리를 스쳤다.

‘참고로?’

이미 성소의 획득 여부를 거론한 순간 남천휘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러니 소림사를 언급하는 건 명백한 사족이다.

평소 재이의 언행만 봐도 정보 통제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녀석이 참고라는 사족을 붙이면서까지 자신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만큼 성소가 중요하다는 반증일 터였다.

‘귀여운 녀석.’

◎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쯤 해서 공개될 정보였습니다.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너 군사잖아. 경극 말투는 안 쓰냐?”

◎ 주군, 적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사옵니다.

역할극에 충실하군.

좋아. 어울려주마.

“대신 여차하면 그냥 튈 거야. 에헴! 군사니까 책략을 내놓아라. 대화동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인 적도들을 처단하라!”

◎ 하단의 건축물이 대화동의 공격과 방어 시설을 표시합니다. 즉시 활성화하여 적의 침입을 방어하시는 것을 좋을 듯합니다.

남천휘는 반색하며 건축물의 목록을 펼쳤다.

하나 목록을 확인할수록 굳은 표정을 지었다.

숙소, 숙소, 숙소, 연회장, 숙소, 창고, 숙소.

“없잖아! 쓸 만한 건물이 하나도 없어!”

산채에 망루나 포루가 있는 게 이상할 터였다.

기껏 발견한 곳이 산채 주변에 둘러놓은 목책이었다. 그래봤자 성인 남성이 도움닫기를 하면 넘을 수 있을 만큼 낮았다. 그러던 중 목록 하단에 존재하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진법 설치?”

◎ 성소 포인트로 진법 설치가 가능합니다.

◎ 건물 해체 시 성소 포인트로 반환됩니다.

하자! 당장 하자.

어차피 산적의 숙소 따위를 아까워할쏘냐.

“그래서 성소 포인트가 얼마냐? 얼마면 돼?”

◎ 최하급 진법 설치에 4천 점이 소모됩니다.

“그래서 나한테 몇 점이나 있지?”

◎ 포인트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안 되는 거잖아!

“그럼 얘기를 하지 말라고? 지도에 빨간 점 좀 봐라. 벌써 목책 근처까지 왔어. 너 군사 때려 치고, 그냥 재이로 돌아오는 건 어때?”

남천휘는 황급히 ‘구성원’을 펼쳤다.

하나 자신의 이름만 덩그러니 나타날 뿐이다.

별 기대 없이 ‘물품류’를 펼쳤다.

“어?”

그 순간 대화동의 지도 곳곳에 문양과 수치가 떠올랐다. 숙소 안에 존재하는 온갖 물품의 종류와 수량을 표시해놓은 것이다.

‘엄청 자세하잖아.’

나무 아래 묻어놓은 술 항아리는 물론이고, 누군가 처마 아래 숨겨놓은 춘화집까지 표기됐다.

“저 춘하집은 어디서 본 듯한데? 혹시 ’내사귀‘ 하편은 아니겠지.”

내사귀는 평소 화를 잘 내던 사매가 어느 날부터 귀여운 척을 한다는 내용의 춘화집이다.

남천휘는 미련이 잔뜩 남은 표정으로 다른 건물을 살폈다. 다행히 창고에는 무기라고 할 만한 것들이 남아 있었다.

- 활 다섯 개.

- 화살 삼백 발.

- 녹슨 검 세 자루, 죽창 서른 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긴 쓸 만한 게 있었다면 산적 놈들이 먼저 가져다 썼을 터였다.

남천휘는 창고를 확인한 후 고개를 내저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무기 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화살이 유일했다.

하나 활도 없이 화살만 가지고 무엇을 하랴.

‘안 되겠네. 그냥 가야겠다.’

그러던 중 지도에 표시된 물품 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산채의 채주가 머물던 숙소였다.

채주의 비밀 장소로 보이는 곳에 뇌물이라는 명목으로 문양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거 모양이 활인 걸?’

남천휘는 채주의 처소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가 가까워질수록 보폭은 넓어졌고, 속도는 배가 됐다. 그 이유는 활 모양의 물품이 영롱한 빛으로 번뜩였기 때문이다.

콰쾅!

곰 가죽을 걸어놓은 의자의 바닥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남천휘의 신장만큼이나 거대한 철궁(鐵弓)이 숨겨져 있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것으로 보아 한동안 이곳에 숨겨져 있었던 듯했다.

“아아, 이거 범상치 않은데······.”

남천휘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철궁을 쥐었다.

그 순간 수십 명이 북과 징을 치는 듯한 웅장한 울림이 들려왔다.

◎ 최초로 영웅 등급 아이템을 습득했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읊조렸다.

‘확인.’

《질풍뇌격궁(疾風雷擊弓)》

- 신궁천무자의 독문 병기.(가치:600)

- 무기 등급 : 영웅(英雄)

- 착용 시 특기 ‘원사’와 ‘뇌기’가 활성화.

- 착용 시 민첩 수치 +200.

- 착용 시 내공전달력 +15% 증가.

- 특수 화살 사용 시 공격력 30% 증가.

- 내구도 (4/150)

질풍뇌격궁의 공능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적이 접근하고 있다는 알림도, 군사 흉내를 내느라 경극 말투를 쓰는 재이도 기억에서 지워졌다.

이 세상에 오직 그와 질풍뇌격궁만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숫돌을 갈아 넣고 있었다.

◎ 질풍뇌격궁의 내구도가 회복됐습니다.

◎ 질풍뇌격궁의 내구도가 회복됐습니다.

숫돌 2개를 사용하자, 내구도는 64까지 회복했다.

왠지 철궁이 더 반짝거리고, 견고해 보였다.

남천휘는 활을 단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철궁을 껴안았다. 그리고 정인을 대하듯 활대에 얼굴을 부비며 히죽거렸다.

“이건 포기 못해.”

혈랑회고 뭐고 간에 보이는 족족 물리치겠다는 결의가 가득했다.

‘그런데 어떻게 조져버리지?’

남천휘는 철궁을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영웅 등급의 무기를 얻었건만, 활을 쏴본 기억조차 없다.

차라리 검이나 도였다면.

그 순간 철궁이 부르르 떠는 듯했다.

“삐친 거야?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야. 네가 최고다! 최고야.”

남천휘는 철궁을 달랜 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특기 ‘원사’가 해제되었사옵니다.

◎ 특기 ‘뇌기’가 해제되었사옵니다.

그래, 재이가 아니라 군사라고 치자.

한데 질풍뇌격궁을 넣는 순간 특성이 사라졌다.

남천휘는 다시 철궁을 꺼낸 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없어졌던 특기가 다시 활성화됐다.

원사(遠射)

- 질풍뇌격궁으로 인해 조건부 활성화.

- 활의 숙련도를 올려줍니다.

- 화살의 사정거리를 늘려줍니다.

뇌기(雷氣)

- 질풍뇌격궁으로 인해 조건부 활성화.

- 화살에 미약한 뇌기가 흐릅니다.

아! 신이시여.

남천휘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엄지를 세웠다.

이것이 하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내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쏠게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이번 경우에는 가는 칭찬에 오는 선물이라 하겠다.

◎ 100 장 밖의 대상을 장시간 인지했습니다.

◎ 특기 ‘탐지’가 활성화됩니다.

◎ 레벨에 따라 탐지 범위가 넓어집니다.

◎ 대화동 영역에서만 조건부로 발동합니다.

얼씨구! 특기가 비처럼 쏟아지는구나.

‘조건부기는 하지만.’

지역 유지가 되니까 별의 별 것이 다 생기는 듯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출세하고 싶어서 환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천휘는 시시덕거리다가 이내 인상을 썼다.

성소를 빼앗기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터였다.

황급히 대화동의 지도를 확인했다.

적은 첫 번째 목책을 지나 두 번째로 향하는 중이다. 다행히 기습이나 매복을 걱정하는 듯 산개한 채 느릿하게 다가왔다.

‘화살부터 챙기자!’

남천휘는 창고로 향했다.

그러나 삼백 발의 화살은 멀쩡했지만, 길이부터가 철궁과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쪽에 쌓여 있는 서른 개의 죽창(竹槍)이 보였다.

“하하.”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죽창을 활에 걸어 쏘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한데 걸어보니 얼추 크기가 맞았다.

‘할 수 없지. 아쉬운 대로.’

그러던 중 질풍뇌격궁의 공능이 떠올랐다. 특수 화살 사용 시 공격력이 증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중에라도 전용 화살을 찾아내야 할 터였다.

촤라라라락!

죽창을 모조리 인벤토리 안에 넣어버렸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사상 최고의 도적이나 되어야겠다.’

남천휘는 죽창을 챙겨 나오며 성황목 앞에 섰다.

수백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한 그루의 나무를 지켜야만 대화동이 유지될 터였다.

그는 성황목에 손을 댄 채 결의를 드러냈다.

“성소야, 내가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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