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9화 (29/305)

21, 내 도였다.

21, 내 도였다.

벽추는 소리 없는 탄성을 흘렸다.

‘신중함과 섬세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

보통 젊은 무인의 경우, 그것도 갑작스런 성장을 이룬 자라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마련이다. 오만함으로 허리를 세우고, 잘난 척으로 어깨를 으쓱거릴 터였다.

한데 남천휘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련하는 근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무하려는 열정.

똑같은 무기를 두고도 고심하는 신중함.

같은 남자로서 따르고 싶은 마음이 비온뒤 죽순처럼 치솟았다.

‘멋지군. 곡부남가에 드디어 무인이라고 할 만한 직계가 나타난 게야.’

그 때 남천휘가 침음을 흘렸다.

큰 고민거리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삼공자, 제가 도울 일이라도······.”

남천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하나 그의 이마는 손톱자국으로 인해 발갛게 변한 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벽추가 나선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째 병장기라고 모아놓은 게 다 이 모양일까.’

직도 수십 자루의 가치는 대동소이했다.

5에서 40사이.

‘그리고 나는 골라도 어째 그런 걸 골랐을까?’

뛰어난 안목으로 골라냈던 직도의 가치가 7이었던 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해야겠다.

남천휘는 생각에 잠겼다.

이쯤 되니 무기를 구하는 것보다 높은 가치의 도자기나 들고 나갈까 싶다.

가장 비싼 도자기의 가치가 200이더라.

남천휘는 VIP 점수를 계산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병장기 너머에 작은 공간이 보였다.

“여기는 뭔가요?”

벽추는 고개를 살짝 빼더니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곡부남가의 선대가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그런 걸 여기에 둔다고?”

남천휘의 말에 벽추는 어색하게 웃었다.

“귀하거나 사연이 있는 건 모두 가주전에 비치됐습니다. 이곳에 있는 건 쓸모가 없지만, 버리기는 애매한 잡동사니들이지요.”

“흐음.”

잠시 살펴본 바로는 이곳에 두기도 하찮은 물품들이 가득했다. 낡은 벼루와 털 빠진 붓, 그 밖에 깃털 빠진 보료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책들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건드려 확인을 해봤다.

‘역시나군.’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없어야 하는데······.

‘좀 아쉽네.’

이쯤 해서 가문의 숨겨졌던 보물 정도는 나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쉬운 마음에 낡은 책자를 만지작거렸다.

하나 같이 먹이 번졌거나 찢겨서 내용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이건 그나마 조금 보이네.’

먼지를 털어내고 침까지 묻혀봤다.

그러자 빛바랜 제목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냈다.

‘산, 산적 십계명?’

남천휘는 벽추 모르게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그리고 표지를 있는 힘껏 문지른 후 가장 밑바닥에 밀어 넣었다.

‘조상님, 대체 뭘 하고 다니신 건가요?’

산적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벽지를 대신해 덕지덕지 붙여놓은 부적과 족자 사이로 시선을 끄는 물건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봉두난발을 한 채 고슴도치처럼 수염이 삐죽삐죽한 노인이다. 어린 아이가 낙서를 하듯 대충 그린 그림이다. 한데 시선을 뗄 수 없는 건 노인이 직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경은 하필 산중(山中)이다.

‘복장은······. 호랑이 가죽?’

자세히 살피니 눈가에 칼자국까지 존재했다.

완벽했다.

남천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산적 십계명까지는 모른 척할 수 있었다.

하나 이것마저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그머니 족자를 벽에서 뜯어버렸다.

‘확인.’

이딴 물건의 가치는 당연히 1일 것이다.

《백파도 남추의 추억이 깃든 그림》

- 히든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 20레벨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 중양칠도의 숙련도 100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잠깐, 이건 가치를 따질 문제가 아닌 걸.

‘숨겨진 임무라고?’

메인, 보조, 돌발에 이어 히든이 등장했다.

남천휘는 백파도 남추가 거론되는 순간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황급히 심호흡을 한 후 질문했다.

‘경험치는 많이 주냐?’

경험치는 숨은, 주요, 돌발, 보조 순으로 많단다.

그 만큼 히든 퀘스트는 특정 물품을 통해서만 발동할 만큼 희박한 임무였다.

어쨌든 경험치가 가장 많다니.

“좋아!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비밀을 풀겠어!”

벽추가 눈을 끔뻑였다.

남천휘는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족자를 내밀었다.

“제가 할아버지라고 했던가요? 노인이라고 했는데. 아! 이 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혈연을 부정했더니 죄책감이 몰아친다.

‘그럴 때에는 수련이 최고지!’

남천휘는 비운고를 나서자마자 처소로 향하려 했다.

한데 벽추가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

남천휘는 늑골 부위를 매만지며 앓는 소리를 내는 벽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비라도 요구하는 건가?’

벽추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안 물어봤는데?

“버틸만합니다. 근무 후에 금창약을 바르면 금방 해결됩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말하는 거냐고요.

애당초 왜 붙잡고 있는 건데?

‘북풍대의 특징인가?’

대주나, 부대주나 끈덕진 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터였다.

그 때 북풍대원이 비운고로 들어서더니 벽추에게 귀엣말을 했다. 벽추는 돈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눈웃음을 쳤다. 반면 찬바람을 맞고 서있는 남천휘로서는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지경이다.

‘자랑하려고 붙잡아 둔 건가?’

“삼공자.”

“네.”

“소가주께 사정을 설명 드렸습니다. 제가 무리하게 비무를 청했기에 직도가 부러졌다고요. 한데 삼공자는 추억이 깃든 족자를 고르셨지요.”

내 추억이 아니야!

벽추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 직도 한 자루를 하사하신다는 명을 받아왔습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수련용 직도는 창고에서 얼마든지 꺼낼 수 있다.

하나 날이 선 직도를 구하려면 가주의 허락이 필수였다.

‘맙소사! 오늘 고기를 엄청 잘 구웠나본데.’

그렇지 않다면 남천홍이 자신의 것을 연달아 내줄리 없지 않은가.

“진짜요?”

벽추는 대답 대신 손짓을 했다.

그러자 대원이 직도 한 자루를 가져왔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비운고 안에는 분명 똑같이 생긴 직도가 수십 자루나 존재했다.

‘왠지 저건 눈에 익은데?’

벽추는 대단한 물건이라도 선물하듯 직도를 내밀었다.

“삼공자께서 가장 오래 들고 고민하셨던 직도입니다. 제가 기억해뒀다가 빼놨습니다.”

그런 걸 기억하지 마!

쓸데없는 배려는 사양이라고.

남천휘는 잠시 호흡을 조절했다.

‘제발! 제발! 아닐 거야. 내 눈썰미는 똥이잖아. 다른 칼일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없이 확인을 읊조렸다.

아니나 다를까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려던 가치 7의 직도가 아닌가.

남천휘는 직도를 받으며 읊조렸다.

‘결국 내 도였다.’

진짜 영혼의 이끌림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면 당장 끊어버리고 싶었다.

끊어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니 기필코 부숴버리겠다.

꽈드득.

직도를 쥔 손에 힘이 가득하다.

‘밤새도록 수련해주겠어!’

남천휘는 나직이 읊조렸다.

‘중급 경험치 물약 사용!’

*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수련을 했다.

경험치가 2배라는데 어찌 쉴 수 있겠는가.

재이는 이것을 ‘버프’라 했다.

남천휘는 적선단과 벽선단까지 먹어가면서 쉴 새 없이 직도를 휘둘렀다.

‘내가! 일단! 15부터 찍고!’

광적인 수련이 계속됐다.

그 모습은 누가 나서지 않았음에도 곡부남가 전체에 소문났을 정도였다.

“자식! 그것 밖에 못주는 형을 이해해다오.”

소가주는 기분 좋게 고기를 입 안 가득 우겨넣었다.

“클클, 벽추를 이기고도 수련에 열중이라니······.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어.”

막 총관은 남천휘를 핑계 삼아 쉴 새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조상은 휴무(休務)인 북풍대의 대원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모든 대원이 널브러질 때까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천재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수련뿐이야. 나를 따르라.”

곡부남가 전체에 활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중평산장의 거래 장소로 떠나기 위한 날이 잡혔다.

출행(出行) 전 날.

남천휘는 드디어 15레벨에 이르렀다.

◎ 특기 활성화 조건이 완료되었습니다.

◎ 특기가 개방됩니다.

◎ 지금 즉시 특기를 등록해주세요.

그 순간 아무리 눌러도 반응하지 않던 특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

오늘 따라 달이 밝다.

내일 먼 길을 떠나지만, 이런 날 술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남천휘는 술병을 들었다.

즉묵노주(卽墨老酒).

황주(黃酒) 중에서도 으뜸이라 칭해지는 산동성의 명주였다.

‘물론 소흥주가 더 유명하지만······.’

어쨌든 북의 즉묵노주, 남의 소흥주가 아니겠는가.

라고 산동성 사람들이 주장했습니다.

역사와 평판이야 어찌됐든 익숙한 술이 최고였다.

남천휘는 밀봉된 마개를 뜯고 눈을 가늘게 떴다.

향이 좋다.

누렇게 찰랑이는 황주를 보고 있자니 절로 입맛이 돌았다. 백주에 비해 순한 황주는 반주로도 유명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남몰래 음미하지 않았던가.

날이 추워서, 눈도 내려서, 따뜻하게 마시면 더욱 좋았으리라.

하나 황주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오늘은 차게 한 잔!’

그렇기에 남천휘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황주를 꺼냈다.

물론 형 몰래 주방에서 몰래 빼돌린 것이다.

“크하!”

훔쳐 마시는 술이라 더 알싸하구나.

남천휘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천품육포가 잡힌다.

은자 한 냥짜리 안주라니.

‘부자라서 다행이야.’

그는 노주를 두어 모금 정도 마신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 능력(有) ▼ 장비(有) ▼ 무공(有)

▼ 특기(有) ▼ 비책(無) ▼ 인맥(有)

특기(無)가 유(有)로 변했다.

이제 열어볼 시간이다.

‘특기.’

그 순간 하위 목록 다섯 개가 사라지고, 특기가 도드라졌다. 두루마리를 펼치듯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특기가 활성화됐다.

하나 내용을 확인하기 전 경고를 하듯 재이의 알림이 글자로 시야를 가득 채웠다.

◎ 특기는 비활성 능력입니다.

1, 대상자의 연혁에 따라 습득할 수 있습니다.

2, 특기끼리 결합하여 상위 특기로 변화합니다.

한 마디로 사기를 많이 치면 사기 능력이 생기고, 싸움을 많이 하면 싸움 능력이 생기고, 연애를 많이 하면 연애 능력이 생긴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아직까지 획득 제한에 대한 알림은 없다.

‘그러면 많을수록 좋겠네.’

다행히 특기에서 레벨은 확인되지 않았다.

역시 행복은 레벨 순이 아니었어!

‘질보다 양인 거지!’

◎ 등록된 특기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수락하는 순간 알림이 사라지고, 다시 한 번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많아!’

아무 것도 없거나, 기껏 해야 한 개 정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데 두루마리에는 다섯 개의 특기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가.

도수(刀手)

- 도를 쥐었을 때 투기와 열정이 증가합니다.

불패(不敗)

- 패배하지 않는 한 근성과 호승심이 증가합니다.

불굴(不屈)

-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신안(神眼)

- 상대의 레벨 확인 범위가 증가합니다.

무희(舞姬)

- 파진악에 한하여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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