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호쾌함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22, 호쾌함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단순한 만큼 그 위력이 확연하게 와 닿았다.
직도를 사용했으니 도수일 것이고, 지금껏 동수나 고수를 상대로 패배하지 않았으니 불패일 터였다.
불굴이 생성된 의미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신안으로 인해 불굴을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정도였다.
‘명칭부터 멋있어!’
남천휘가 확인 가능한 고위 레벨은 5다.
즉 15레벨인 현재 20레벨 까지만 확인이 가능했다.
한데 그 범위가 증가했단다.
내일 당장 북풍대를 상대로 시험해본다면 범위를 알 수 있으리라.
남천휘는 기분 좋게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이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무희? 나 남자야.’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파진악은 오행군림보를 수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니 만약 파진악과 연관된 것이 생성된다면 무희가 아니라 검무여야 했다.
아, 도를 쓰니까 도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무희는 아니라고!
‘내가 언제 여자처럼 춤을 췄는데?’
중양칠도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도법이야. 산에서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흉터도 막 있고, 그런 분이 펼치셨단 말이다.
그런데 무희라고?
‘우리 할아버지! 산적이야! 남자의 상징, 산적이라고! 알겠냐?’
혈연이란 늘 필요할 때 품는 것이 아니던가.
남천휘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재이를 향해 한참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
*
남천홍은 바깥출입을 즐기지 않았다.
애초에 비대한 체구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시비나 하인들은 그가 바깥으로 나오는 대신 안에서 먹을 것에 심취한다고 여겼다.
하나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달랐다.
곡부남가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곡부남가 자체가 멈춰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그가 가주전을 나설 때면 북풍대주를 비롯해 십여 명의 대원들이 함께 했다. 만약 곡부남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숫자는 배가 됐으리라.
하나 그는 시동만 대동한 채 남천휘의 처소를 찾았다.
‘때를 잘 맞췄군.’
그는 연무장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남천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알릴까요?”
시동이 연무장으로 들어서려 했다.
하나 남천홍은 그를 만류한 채 한참동안 남천휘의 등을 바라봤다.
‘많이 넓어졌구나.’
어린 시절 자신을 쫓아다니던 허여멀건 한 꼬마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키도 크고, 체구도 건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릿해.’
몰래 동생의 행적을 살필 때마다.
‘늘 새로워.’
게다가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 참 잘 생겼다.
‘최고야. 내 동생.’
남천홍은 슬쩍 코를 벌름거렸다.
하루 종일 수련을 했다더니 땀 냄새마저 전해지는 듯했다.
그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읊조렸다.
‘벽 부대주를 이겼다니 믿을 수가 없군.’
그의 입가에는 장성한 자식을 보듯 보기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제는 남천휘가 조상의 주장처럼 천재가 아닐까 싶다.
저런 동생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참 많다.
그러나 쉬이 나설 수 없는 입장이다.
지금껏 남천휘를 치마폭에 꽁꽁 싸매놓은 이유가 뭐였던가.
그가 안전하고, 평온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와서 아낌없이 베풀어버린다면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만에 하나 십년 전처럼 누군가 남천휘를 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크흑!”
남천홍의 부드럽게 휘었던 눈매가 역팔자로 치솟았다. 생각만으로도 온 몸의 살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울화가 치밀었다.
“소가주.”
시동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남천홍은 다년간 숙달된 영업 미소를 선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오랜만에 동생이랑 술 한 잔 해야겠구나.”
내일이면 강호로 떠날 동생이 아닌가.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술 한 잔을 나누며 회포를 풀 요량이었다.
한데 시동이 반대편을 힐끔거렸다.
“총관.”
남천홍은 소로에서 나타난 막 총관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막 총관 또한 남천홍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그러나 이내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요. 한 번 빗장을 열면 다시 닫을 수 없거든요.”
남천홍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 노야께서 아집을 깨주신 덕분입니다.”
“하나 오늘은 때가 아닌 듯하외다.”
“네?”
막대통은 연무장에 앉아 있는 남천휘를 보며 말했다.
“삼공자는 내일 처음으로 강호행을 떠납니다. 아마 홀로 무언가 다짐한 바가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가주의 따스함이 삼공자의 굳은 결의를 녹이지 않을까 걱정되는 군요.”
남천홍은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아!”
“형제간의 회포는 돌아온 후로 미루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막대통의 말에 남천홍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렇군요.”
“대신 제가 슬쩍 언질을 해 놓겠습니다.”
남천홍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 총관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부탁드립니다.”
막대통은 남천홍이 쓸쓸히 가주전 쪽으로 사라진 후에야 연무장에 들어섰다.
*
남천휘는 시큰둥했다.
홀로 특기를 살피고, 술을 마시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데 막대통이 찾아오더니 비운고의 일을 자랑하며 은근슬쩍 옆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벌써 두 병째야.’
남천휘가 두어 모금 마실 때 막대통은 술 한 병을 해치웠다. 아무래도 월봉 대신 술을 줘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술값만으로도 곡부남가는 파산할 것이 분명했다.
“자네도 해가 바뀌면 스무 살이야.”
“그렇지요.”
“그러니 이번 강호행은 자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걸세. 생각한 바가 있는가?”
왠지 불길한 질문이다.
남천휘는 빠르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없습니다.”
막대통은 새 술병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문파와 문파의 관계는 물론이고, 힘과 권력, 인맥으로 인한 부조리가 가득한 곳이 바로 강호일세. 그런 곳에 발을 들이게 됐으니 내가 한 마디 해도 되겠는가?”
길어진다.
잔소리가 한없이 늘어진다.
술 취한 노인네가 한 밤의 흥취를 산산조각 내기 일보직전이다. 이대로라면 밤새도록 훈계를 듣다가 핏발 선 눈으로 출행할 것이 분명했다.
남천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닙니다.”
“응?”
“다 필요 없어요.”
막대통은 눈을 끔뻑였다.
뜬금없이 호기로운 모습을 보이는 남천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천휘는 직도를 연무장에 꽂고, 팔짱을 끼었다.
“강호인에게는 오직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막대통은 직도와 남천휘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 자루 무기로 강호를 질타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수십 년 간 잊고 있던.
아니 애초에 있는 줄도 몰랐던.
호쾌함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크, 크다.’
그가 가늠한 것보다 남천휘는 훨씬 더 큰 사내였다.
남천휘는 뒷짐을 진 채 결의를 드러냈다.
‘재이만 있으면 돼.’
그러면 특급 강호인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닌가.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훗!”
막대통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에 황급히 술을 목구멍에 퍼부었다.
‘천재가 아니라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 같구만!’
*
마차가 달린다.
중평산장과의 거래를 위함이다.
남천휘는 덜컹거리는 마차의 진동에 미간을 좁혔다.
하나 맞은편에 앉은 소혜는 중대한 임무라도 되는 양 산동 강호의 정세를 논했다.
“산동의 대표적인 방파는 세 곳이랍니다. 신공부와 황보세가, 그리고 청도문이지요. 아시다시피 곡부의 신공부, 제남의 황보세가, 청도의 청도문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비등한 세력을 자랑해요. 그 덕에 자연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됐지요. 산동성이 평화로운 이유는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랍니다.”
“알아.”
소혜는 남천휘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열심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일단 신공부부터 설명해드릴게요.”
신공부를 설명하려면 곡부의 명칭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대성인 중 한 명인 공자(孔子)의 고향.
그곳이 곡부였고, 달리 공부라 불렸다.
공자가 묻힌 공묘 동쪽에 위치한 공부는 방만 해도 오백여 개에 이를 만큼 거대한 전각군을 자랑했다.
하나 유명세는 유림을 벗어날 수 없었다.
칼 차고, 창 든 무인들이 공맹의 도리를 논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공부는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중원 곳곳에 뿌리를 내린 공자의 후인들이 있지 않던가. 그들은 기꺼이 사문을 위해 무공을 수집했고, 머리를 맞대고 무공을 개선했다.
그 결과 공부는 무가로 다시 태어났다.
하여 신공부(新孔府)라 불렸다.
본래 공자의 뛰어난 열 명의 제자를 가리켜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했다. 그러나 신공부의 공문십철은 유학보다 무공에 능했고, 각기 일문을 거느렸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잘 계시나 모르겠네.’
남천휘의 외조부인 노국장주(魯國莊主) 또한 공문십철에 속했다. 그렇기에 곡부남가는 반쯤 신공부의 속가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알게 모르게 상당한 금액이 신공부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어차피 신공부는 공자도 잘 아시잖아요. 황보세가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명성만 따지자면 황보세가가 최고잖아요.”
남천휘는 배시시 웃고 있는 소혜를 빤히 쳐다봤다.
“곡부남가의 녹을 먹으면서 황보가를 칭찬해도 되는 거냐?”
“제 고향이 제남이거든요. 팔은 원래 안으로 굽는다잖아요. 헤헤.”
배신자! 아니, 배신녀다.
언젠가 곡부남가의 출납 장부를 들고 황보세가로 뛰어갈 위험분자야.
“그래도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사실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위명은 신공부와 비슷했다. 하지만 무공의 수위만 보자면 조금 윗줄이 아닐까 싶다. 어찌됐든 그들은 이백 년 가까이 무가(武家)로 버텨오지 않았던가.
오십여 년의 역사를 지닌 신공부가 비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문제는 청도문이예요. 아! 청도문, 싫다.”
소혜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입이 커서 조금만 실룩거려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소녀였다. 그런 그녀의 입매가 불퉁할 정도라면 얼마나 불쾌해하는지 가늠이 됐다.
한데 그도 그럴 만하다.
산동성 동부의 해안가를 끼고 있는 청도문(靑島門)은 밀염은 물론이고, 온갖 잡다한 범죄에 개입했다. 심지어 사람 장사를 한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는 정파의 세력이라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여간 청도문의 깃발만 봐도 일단 말 머리를 돌려야 해요. 그들과 얽혀서 좋을 게 없어요.”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가 곡부 밖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기껏 해야 청주까지 가는 거잖아.”
중평산장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청도문의 영역과 이백 리는 족히 떨어진 곳이다. 그들이 애써 찾아오지 않는 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위치였다.
하나 소혜는 일부러 미간에 주름까지 만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꼭 기억하셔야 해요.”
“그 책은 어디서 났어?”
“오늘 아침에 막 총관께서 주셨어요.”
“그럼 너도 처음 본 거잖아.”
“네!”
남천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데 중요한 걸 어떻게 확신해?”
소혜는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본분이라도 떠올렸는지 눈을 부릅뜬 채 말했다.
“이건 중요합니다! 아무튼 중요해요.”
너 누구한테 그렇게 강조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