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7화 (27/305)

19, 다짜고짜 한판승부! (2)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 생각을 왜 못했지?’

왕망과의 대결 이후 많은 보상을 받았다.

하나 고수와의 비무 자체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무무혁명을 통해 숙련도를 올리다보니 잊었던 게다.

‘레벨 10차이라.’

대상은 뻔했다.

왕망이나 조상은 자신보다 월등한 고수였다.

남천휘가 만날 수 있는 무인 중에서는 두 사람이 가장 강했다.

그들과 비무할 수 있다면 완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잠깐!”

그는 북풍대의 처소로 향하려다 걸음을 멈췄다.

똑같은 비무 퀘스트임에도 내용이 다르지 않은가.

‘왕 표국주 때에는 60초식을 버티라 했는데······.’

혹시 승리 조건이 있는지 물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퀘스트 알림이 울렸다.

띠링-

◎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어쩐지 이기고 싶은 오늘.》

- 승리할 시 경험치 아이템 생성.

- 패배할 시 한 시진 동안 경험치 150% 획득.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겨도 좋고, 심지어 져도 좋았다.

‘결국 최대한 차이가 나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를 골라야겠군.’

그렇다면 조상과 왕망은 제외다.

제아무리 재이의 힘을 빌려도 절정 고수인 두 사람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나 남천휘는 여전히 북풍대의 수련장으로 향했다.

‘대주는 몰라도 부대주라면 가능성이 있어.’

북풍대의 부대주인 벽추는 절정을 코앞에 둔 고수였다. 조상의 말에 따르자면 작은 깨달음만으로도 절정의 경지에 오를 만큼 농익은 상태라 했다.

그렇다면 분명 20대 중후반의 레벨일 터였다.

일류 무인과의 비무(比武).

생각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나 남천휘는 북풍대의 연무장에서 벽추를 찾지 못했다.

“부대주는 이곳에 없습니다.”

조상의 말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외부 임무라도 생긴 건가요?”

남천휘의 물음에 조상은 고개를 내저었다.

“삼공자께서는 수련에만 열중하시느라 잘 모르시겠군요. 북풍대는 곡부남가의 직계와 중요 자산을 지키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지금 벽 부대주는 비운고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운고(秘云庫)라면 가주와 소가주만 출입할 수 있는 보고(寶庫)가 아닌가. 분명 가문의 요처라 할 수 있는 비운고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 때가 좋지 않았다.

“이런.”

조상은 실망하는 남천휘를 위로하듯 말했다.

“두 시진 후면 교대 시간입니다.”

늦어! 늦다고.

두 시진 후면 퀘스트는 실패였다.

“지금 가서 잠깐만 만나면 안 될까요?”

지금껏 남천휘의 부탁이라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들어주던 조상이 아닌가.

하나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비운고의 출입은 가주와 소가주에게만 허락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군요.”

역시 무공을 수련할 때가 아니면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사람다웠다.

‘그래서 정이 안가!’

한데 조상의 말을 듣는 순간 막 총관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조건 없이 돕겠다던 한 마디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래, 그라면 분명 답을 주리라.

“아씨!”

문을 여는 순간 훅 퍼져 나오는 주향(酒香)

이른 아침부터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한 잔 할 텐가?”

인사처럼 자연스럽게 술잔을 내밀지 말라고!

혹시 일부러 빈틈을 유도하기 위해 사람이 올 때마다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는 건 아닐까?

‘그건 절대로! 아니야.’

남천휘는 슬쩍 거리를 둔 후 말했다.

“총관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막대통은 술잔을 꺾으며 탄성을 흘렸다.

“호오, 내가 필요한 일이라. 뭐든 말해보시게.”

“비운고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야 벽추를 만나서 비무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데 막대통은 남천휘의 말을 듣자마자 술잔을 내려놨다.

“진심인가?”

당연히 진심이지.

남천휘는 시야 상단에 위치한 퀘스트 제한 시간을 보며 말했다.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길이 있겠습니까?”

막대통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비운고에는 곡부남가의 출납장부와 금원보, 그리고 기물을 모아놓은 곳이다.

‘그런 비운고에 들어가겠다는 건 가문의 핵심에 다가선다는 뜻! 생각보다 행동력이 좋아. 저돌적이군.’

막대통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런 표정을 보였다.

‘그래, 한 문파를 좌지우지할 사내라면 저런 욕심도 부릴 줄 알아야지.’

*

남천휘는 비운고가 초행이다.

그렇기에 내원을 지나 비운고를 마주했을 때 탄성을 흘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 다르잖아.’

비운고라고 해서 창고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나 비운고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공간이다.

담장을 빙 둘렀고, 출입구가 따로 존재했다.

“오셨습니까.”

북풍대의 대원이 남천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미 막 총관을 통해 소가주의 허락을 얻은 상태였기에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입구를 지난 후 다시 한 번 놀랐다.

입구만 지난다고 해서 비운고가 아니었다.

자신의 연무장보다 넓은 앞마당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자께서는 이곳에 초행이시겠군요.”

사실 부끄럽지만 내 방 말고는 아는 곳이 없었답니다.

대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넓은 앞마당은 도적의 접근을 방비하기 위함이란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게 청석을 고르게 깔아놓은 앞마당에는 몸을 숨길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가 밟는 곳만 밟으셔야 합니다.”

대원의 말로 보아 기관도 설치된 듯했다.

‘우리 집 돈 많구만. 기관도 쓰고.’

하나 남천휘는 감탄할 뿐 대원을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벽 부대주를 만나러 온 겁니다. 그냥 그를 불러주지 않겠어요?”

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부에서는 비운고에 들어가신다고······.”

남천휘는 발밑을 내려다봤다.

“들어왔잖아요.”

대원은 마당 너머의 창고와 남천휘를 번갈아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그렇군요. 그럼 부대주를 부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부대주는 근무 중이라 문 밖으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보면 돼요.”

남천휘는 조심스럽게 청석을 밟으려던 대원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잠깐! 그런데 비운고 출입이 허락됐다고요?”

“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비운고는 가주와 소가주에게만 허락된 장소였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모를까 소가주인 남천홍이 자신의 출입을 허가했을 리 만무했다.

“진짜?”

대원은 남천휘의 의아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남천홍의 인자함은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곡부남가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누지 않는다 했다.

“제가 두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삼공자의 출입이 허가됐고, 물품 또한 한 가지에 한해서 가지고 나올 수 있게 하라 명을 받았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욕심쟁이 형님이 어쩐 일로?’

하나 이내 수긍했다.

막 총관이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을 하지 않았던가. 분명 그가 소가주를 설득해서 자신에게 선물을 준 듯했다.

‘술 주정뱅이인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이었어.’

남천휘는 시야 상단에서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 이야기는 부대주와 할게요.”

“네,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후 벽추가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체구는 조상보다 이조장인 홍춘이와 흡사했다.

‘저런 사람이 쾌검을 펼친다면······.’

남천휘는 진저리를 쳤다.

하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고수와 검을 섞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왠지 무인으로서 한 걸음을 내딛은 듯하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벽추는 그 사이 남천휘 앞에 서서 절도 있게 포권을 했다.

군부 출신이라는 소문이 뇌리를 스쳤다.

“삼공자께서 저를 찾으셨다고요.”

스릉-

남천휘는 직도를 뽑았다.

“시간 괜찮으시면 비무 한판 합시다.”

벽추는 남천휘가 다짜고짜 비무를 신청하자 난색을 표했다.

“제가 근무 중이라······.”

“제가 급해서요. 지금 해야 합니다. 부탁 좀 합시다.”

남천휘는 억지를 부렸다.

떼쟁이처럼 매달리면서도 자괴감이 가득했다.

‘이 나이 먹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래도 예법이나 평판을 따지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남천휘가 눈물이라도 흘려볼까 싶던 순간 의외의 광경을 확인했다.

벽추가 말과는 달리 아쉬운 듯 검배를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 역시 회가 동하는 듯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대원을 바라봤다.

“현재 쉬고 있는 대원들을 모두 소집해라.”

대원은 울상을 지었다.

“부대주, 저는 이제 교대 시간인 걸요?”

벽추는 피식 웃으며 남천휘를 바라봤다.

“삼공자는 너희들의 노고를 몰라주실 분이 아니다.”

남천휘는 이때다 싶었기에 호언장담을 했다.

“오늘 근무 끝나고 제 이름으로 술을 쏩니다!”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되물었다.

“술?”

“거기에 고기까지! 무제한!”

남천휘의 호언장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숫자 백을 헤아리기도 전에 비운고 근처에서 쉬고 있던 북풍대 일조, 스무 명이 모두 집결했다.

그들은 마치 생사대적을 앞둔 것처럼 결연한 눈빛을 번뜩이며 창고 주변을 둘러쌌다.

벽추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남천휘를 향해 포권을 했다.

“저 또한 지난 번 삼공자의 비무를 보고 투기가 들끓었습니다. 삼공자의 호탕함 덕분에 기회가 생겼군요. 감사드립니다.”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그럼 살살 부탁드립니다.”

벽추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아무렴 제가 고용주인 삼공자의 목숨을 빼앗기라도 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농담을 뭐 그리 과격하게 해.

대주나 부대주나 비무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사람들이 분명했다.

“좋아요. 먼저 갑니다!”

남천휘는 직도를 겨눴다.

◎ 벽추와 비무를 시작됩니다.

- 레벨 차이는 17입니다.

- 돌발 퀘스트 ‘위험해져볼까?’ 달성됐습니다.

- 비무 시간에 따라 보상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비무시작을 예고하는 듯한 알림이 이어졌다.

띠, 띠, 띠, 띠이-

그 순간 오행군림보의 주제가인 파진악이 울렸고, 다섯 개의 표식이 깨끗한 청석 위에 내려앉았다.

*

조상이 이르길 벽추는 절정을 코앞에 뒀다고 했다.

한데 벽추의 현재 레벨은 29였다.

그렇다면 30레벨이 절정을 뜻하리라.

나도 절정 고수가 되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레벨 업을 하다보면 세자리 레벨도 꿈은 아니리라.

아! 세 자리 레벨하니 연하연의 고운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잘 지내니? 행복하렴.'

채채채채채챙!

남천휘는 벽추의 검격에 휘말린 채 뒷걸음질 쳤다.

하나 그의 얼굴은 상기된 채로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또 올랐군.’

그 동안 정지됐던 중양칠도와 오행군림보의 숙련도가 상승했다. 이제 보법은 87에서 89가 되었고, 도법은 91에서 94가 되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예상 외로 벽추를 상대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할 만해!’

부대주 벽추의 무위는 상당했다.

빠르고, 날카롭고, 정확하다.

20레벨 전후인 홍춘이나 양방언과는 격이 달랐다.

하나 왕망과 조상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검에는 절정의 경지를 떠나 자신만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시스템을 등에 업은 남천휘마저 때때로 주눅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것이 고수의 기세일 것이다.

하나 벽추는 강했지만, 그런 날 선 기세를 지니지 못했다. 남천휘에게 우세를 점할 뿐 끝맺지 못했고, 밀어붙일 뿐 쓰러트릴 수 없었다.

물론 남천휘가 본신의 실력만으로 버틴 것은 아니다.

적선단과 벽선단을 사용해서 체력과 내력을 몰래 회복한 후였다.

뭐 어때? 쓰라고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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