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2화 (22/305)

15, 역시 천재! (2)

처소에 돌아와 세안을 하고, 의관을 정제했다.

‘아!

확실히 예전에 비해 피부가 좋아졌다.

미연시의 첫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세안 덕이다.

‘세안’은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주고, ‘교골’은 뼈를 교정하며, ‘청혈’은 피를 맑게 한다 했다. 미연시의 퀘스트 보상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중 하나가 부여된다지 않던가. 막상 효과를 보니 생각보다 대단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남천휘는 동경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러다 송옥과 반안이 울고 가는 미남자가 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교골로 인해 어깨도 조금 더 넓어진 듯했다. 굽었던 허리나 목뼈가 펴진 덕분에 키도 큰 듯싶었다.

‘좋은 걸?’

남천휘는 동경을 보며 히죽거리다가 표정을 굳혔다.

동경에 자신 외에도 소혜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춰지는 것이 아닌가. 반짝이는 큰 눈과 있는 힘껏 환하게 웃는 입매로 봤을 때 소혜가 분명했다.

“언제부터 있었어?”

“방금요.”

맙소사! 쟤는 어디 가서 기척을 지우는 은신술이라도 배워온 건가.

“그렇구나.”

소혜는 슬쩍 다가와 남천휘의 어깨에 장삼을 걸쳐줬다. 푸르스름한 색에 흰 천을 덧댄 고급스러운 겉옷이었다.

“이것도 걸치시면 더 잘생겨 보이실 거예요.”

젠장, 아까부터 봤군.

“이런 건 어디서 난 거야?”

남천휘의 말에 소혜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마님께서 주셨어요.”

“한데 나는 왜 처음 보지?”

“공자는 관리를 안 하시니까 제가 맡아두고 있었지요. 이것 말고도 쓸모 있는 것이 아주 많으니까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러더니 영웅건과 화려한 관을 꺼내더니 머리에 씌워주기까지 했다. 잠시 후 요대를 둘러줬고, 생전 처음 보는 신발까지 꺼내오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저 많은 물건이 튀어나오는 거야?’

재이가 일전에 시스템에 관해서 말했던 놀라운 능력 중 아공간이라는 것이 있다.

‘아공간’을 얻으면 단순히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 모아둔 것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꺼내는 것이 가능하단다.

물론 엄청난 고 레벨에게만 허락된 이능이었다.

‘이런 게 아공간이라는 느낌인 걸까?’

남천휘는 멀뚱히 선 채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후 소혜가 소매 끝에 매듭까지 지은 후 한 걸음 떨어졌다.

“공자님, 멋지세요.”

“이건 너무 과하지 않냐? 누가 보면 나 어디 팔려가는 줄 알겠다.”

소혜는 마치 장성한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그것처럼 그윽한 눈빛을 발산했다.

“소가주를 뵈러 가는 거잖아요. 소가주는 격식을 중시하시니 잘 풀리실 거예요.”

후우, 이놈의 집구석은 비밀이라는 게 없구만.

남천휘는 소혜와 함께 처소를 나섰다.

“그래도 네가 손재주가 있네.”

“헤헤.”

“밥만 잘 먹는 줄 알았더니.”

소혜는 손을 흔들며 남천휘를 배웅했다.

“잘 다녀오세요.”

방금 내 말 무시한 것 맞지?

◎ 소혜의 애착도는······.“

알아! 안다고.

남천휘는 재이의 말을 끊고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오랜 만에 큰 형과 마주하는 자리가 아닌가.

내심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채 가라앉지 않았다.

*

가주전에서 고성이 오갔다.

밖에 있던 남천휘가 헛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천재입니다! 제 눈을 믿어주십시오.”

“어허, 이 친구! 과장이 심하군. 그게 말이 되는가?”

북풍대주인 조상과 곡부남가의 핵심 세력 중 한 곳인 북풍표국의 표국주가 싸움이라도 하려나 보다.

“조장 급, 아니 그 이상입니다.”

“조장들의 몸이 굳었겠지. 최근 주변이 조용했잖아.”

목소리에 점점 날이 서는 듯했다.

‘나중에 들어갈까?’

한데 총관의 웃음이 섞여들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총관이 있는 이상 싸움은 어불성설이다.

남천휘는 그제야 안심을 하며 가주전의 문을 열었다. 한데 장내의 광경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천 리는 동떨어졌을 만큼 냉랭했다.

조상과 표국주가 서로를 응시한 채 안광을 번뜩였고, 총관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탁자를 치며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난장판은 도대체 뭐냐?’

그리고 상석에는 남천홍이 엄청난 살덩이에 감긴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형은 살이 더 쪘네.’

남천홍은 오랜만에 마주한 동생을 보며 말했다.

“당사자가 왔으니 직접 물어봅시다.”

잠깐! 천재라는 게 나였어?

*

일단 정리부터 하자.

정면에 앉아서 ‘고기 학살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큰형인 남천홍이다. 가주인 남운군이 자리를 비운 이상 곡부남가의 대소사는 그의 손끝에서 결정됐다.

‘눈꺼풀이 내려앉아서 그런지······.’

단춧구멍 같은 눈이 더욱 번쩍였다.

식욕과 권력욕의 화신.

그게 바로 큰형이다.

“오늘은 고기가 조금 질기군.”

“노야께서는 이제 고기보다 두부 같은 걸 드셔야지요. 건강을 생각하십시오.”

“클클, 다른 건 다 끊어도 고기와 술은 못 끊지.”

소가주와 어우러져 바쁘게 음식을 흡입하고 있는 노인은 바로 곡부남가의 총관인 막대통(莫大通)이다.

고목(枯木)처럼 삐쩍 마른 사람이 먹기는 또 엄청 잘 먹는다. 한데 막대통은 목이 멨는지 갑자기 술병을 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술을 물처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지금 회의 중 아니었어?’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차려져 있지 않은가.

거기에 술 한 잔 더한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나만 정상인 거지?’

하나 막대통은 기행과 달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총관으로서 곡부남가의 살림을 도맡았고, 상단의 부단주로 자금을 관리했을 정도였다.

그의 과거 또한 화려했다.

곡부남가에 투신하기 전에는 대막과 천산을 주름잡던 상계의 전설이었단다.

‘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있지.’

아! 참고로 남천홍이 상단의 단주였다.

즉 그는 소가주이면서 상단까지 운영하는 셈이다.

어쨌든 막대통은 수십 년간 곡부남가를 성장시킨 일등공신이다. 가주인 남운군조차 사석에서는 숙부라 칭할 정도였다.

“삼공자.”

남천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마치 할아버지 앞에서 숙제를 검사 받는 심정이다.

“네, 막 노야.”

한데 막대통은 히죽 웃더니 빈 술잔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한 잔 하시겠는가?”

여기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재 운운하며 고성이 난무하던 자리였다.

이래도 돼?

그 때 남천홍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어른이 주시는 거다. 괜찮아.”

남천휘는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시큰한 주향이 입안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뱃속이 부글거렸다.

막대통은 콧잔등을 찡그리는 남천휘를 보며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소채 무침이 담긴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안주 먹게. 고기는 나 얻어먹을 것도 부족하거든.”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술이야 틈 날 때마다 조금씩 마셨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냥 분위기 자체가 불편해!’

강호행이고 뭐고 간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차라리 수련하면서 재이에게 무시당할 때가 마음 편했을 정도였다.

“배도 채웠으니 회의나 계속 합시다.”

막대통의 말에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조상과 표국주는 언제 목소리를 높였냐는 듯 얌전하게 자리를 지켰다.

‘장사판에서 놀던 가락은 어디 안 가셨네.’

막대통은 소가주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물었다.

“삼공자. 조 대주의 말처럼 보법을 홀로 깨우쳤소?”

남천휘는 잠시 말을 아꼈다.

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이의 존재를 알린다고 믿어주기나 할까.

“일전에······.”

하여 지난 늦은 귀가 때 운 좋게 귀인(貴人)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때 신묘한 발재간 몇 가지를 배웠기에 수련했을 뿐이라는 적절한 핑계였다.

어? 이거 안 먹히나.

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막대통은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미간을 좁혔다.

“허어, 설마 그 귀인이 여인이었소?”

여인이라고 하면 안 될 분위기인 걸.

“노인이었습니다.”

지혜 수치를 올렸더니 표정 변화도 없이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 구나.

한데 그 말에 막대통은 안도의 한 숨을 흘렸다.

“허허, 다행이군. 다행이야. 아! 삼공자는 몰랐겠군. 그 즈음 곡부남가의 경계에 봉황곡이 출몰했었네. 곡의 반도를 쫓는다며 며칠 동안 헤집고 다녔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지독한 것들이야. 행여 자네가 여인에게 보법이라도 익혔을까 걱정이 됐을 뿐이네. 봉황곡하고 얽힌 사람 중에서 잘 풀린 사람이 없거든.”

마음속으로나마 사과드립니다.

이미 얽혀도 아주 심하게 얽혔는걸요.

하연아, 잘 지내고 있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잘 지내는 걸로 하자.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백봉 연하연을 떠올리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 게다.

조상이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모았다.

“기연을 얻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삼공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보법을 익히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지. 축하하네. 아주 축하해!”

표국주도 자신의 일처럼 즐거워했다.

하나 소가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질투나 시기가 아니라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남천휘는 형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기가 맛이 없나?’

막대통은 그 사이를 못 참고 다시 술병을 들었다.

저렇게 술을 마시면서도 동전 한 닢의 계산도 틀리지 않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삼공자가 보법을 익혔다니 축하할 일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강호의 일을 무턱대고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야.”

북풍대주인 조상이 확신하듯 말했다.

“삼공자의 무위는 이미 검증됐습니다. 양 조장을 이겼고, 홍 조장과 동수를 이뤘습니다. 아마 끝까지 싸웠다면 삼공자가 승리했을 겁니다.”

막대통은 탄성을 흘렸다.

“호오! 홍춘이라면 일류 무인이 아닌가. 대단하군. 삼공자를 축하하며 한 잔 하세.”

그만 마셔! 이 술주정뱅이야.

표국주는 막대통이 술잔을 비우자, 자신의 차례라는 것처럼 나섰다.

“강호는 단지 무공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아. 굳건한 의지와 뜨거운 의기가 있어도 쉽지 않은 길이야.”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표국주의 열성적인 주장은 마치 퀘스트가 발동될 때 들렸던 연설 같았다.

“그러니 나와 겨뤄보세.”

잠깐! 무공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며?

남천휘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곡부남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네 사람이 모여 있는 자리였다. 한데 이곳에서 평범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찌 이리 힘들단 말인가.

‘아버지는 혹시 도망친 게 아닐까?’

진중한 조상은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사내는 검으로 말해야 하는 법.”

보통은 입으로 말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나는 도를 쓰는데······.’

표국주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디 삼공자의 검이나 한 번 받아보세!”

막대통은 껄껄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그냥 마시기 심심했는데 잘 됐군.”

소가주는 총관이 술판을 벌이고 있음에도 젓가락을 놀려 고기를 흡입하는데 집중했다. 마치 싸움이 일어나도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남천휘는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형아, 물 좀 마시면서 먹어라.’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고기 부침이 어느덧 바닥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삼공자는 매순간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수와의 비무는 안계를 넓혀줄 겁니다.”

조상은 아예 비무가 성사된 것처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남천휘는 내키지 않았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비무를 해야 하나?’

무엇보다 표국주는 고수다.

그것도 조상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였다.

저런 사람을 상대했다가 칼침이라도 맞으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렇기에 거절하려 했다.

강호행이야 언제든 또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내일 당장 제멋대로 뛰쳐나가도 상관없을 터였다.

“저는······.”

그 순간 잠자코 있던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1-1, 검으로 말하라.》

- 표국주와의 비무에서 60초식을 버티시오.

- 표국주의 탄성을 3회 이상 끌어내시오.

- 검상이 5회 중첩될 시 패배로 간주됩니다.

※ 퀘스트 거절 시 모든 스텟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며 반년에 걸쳐 서서히 회복됩니다.

※ 부정적 별호 ‘나는 겁쟁이랍니다.’를 얻습니다.

※ 평판 하락으로 인해 성장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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