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3화 (23/305)

16, 비정상회담.

16, 비정상회담.

남천휘는 황망함에 눈을 끔뻑였다.

‘1-1’로 표기됐으니 메인퀘스트와 연결된 임무가 분명했다.

그런데 60초(招)나 버티라고?

표국주의 표풍십이검(飄風十二劍)이 다섯 차례나 반복될 때까지 버티라는 뜻이 아닌가.

‘게다가 칼을 다섯 번 이상 맞으면 실패라니······.’

메인퀘스트의 첫 연계 임무 치고는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게다가 부연 설명을 들으니 거절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거절을 거절하니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탄성 3회는 진짜 어처구니없지 않냐?’

재이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스릉-

남천휘는 신경질적으로 직도를 뽑으며 읊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천재의 실력을 보여드리지요!”

*

흐음, 너무 설레발을 쳤나.

남천휘는 검을 늘어트린 표국주를 마주하는 순간 주눅이 드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은 없다.

‘자세 봐. 진짜 멋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풍표국의 국주인 왕망(王莽)은 진짜 고수였다. 가주 남운군과 의형제를 맺은 이후 단 한 번의 문제도 없이 표국을 운영했던 강직한 사람이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여 북대죽(北大竹)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의형(義兄)의 자식이라 하여 장난처럼 상대할 리가 없으리라.

“도를 쥐었다면 마음 또한 다잡았을 터, 삼공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가늠해보세.”

역시 검상 5회의 페널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자칫하면 칼 맞고 며칠 동안 누워 있어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무공에 대한 면에서는 북풍대주인 조상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숙부.”

남천휘는 작은 기대를 가진 채 왕망을 향해 다가섰다. 왕망은 남천휘가 숙부라는 호칭을 쓰자, 조카를 대하듯 말을 낮췄다.

“왜 그러느냐?”

“좀 봐주세요.”

“뭐?”

남천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육십 초식만 양보해주세요?”

지혜 수치의 증가에는 넉살도 포함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철면피 신공이라도 생긴 걸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강호에는 선배가 후배에게 삼 초식을 양보하는 관례가 있다. 하나 그것은 관례일 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 초식도 아니고 육십 초식이라면.

“어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럼 삼십 초식이라도.”

선심 쓰듯 절반을 깎았다.

하나 왕망는 남천휘가 있던 곳을 가리키며 단호히 말했다.

“안 돼. 돌아가.”

남천휘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래도 제가 조카인데 십 초식 정도는 기분 좋게 양보해주실 수 있지 않나요?”

“검에는 눈이 없지. 오늘의 비무는 삼공자의 강호행을 위한 것이야. 이제 제대로 붙어 보세나.”

조카에서 삼공자가 됐다.

잡담을 끝낸 왕 표국주의 얼굴은 더없이 진중하다.

“오라!”

지금의 비무를 실전처럼 여기는 듯하지 않은가.

아니, 어떤 부분에서 열의가 생기신 거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검으로 물어봐야겠지.

‘아니 도. 도! 나까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왕망은 냉정한 모습과 달리 세 번의 기회를 줬다.

덕분에 퀘스트 창에 적힌 수치는 3/60이 됐다.

하나 마음 편히 세 번의 공격을 함으로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상보다 강해. 그리고 표국주는 보법을 익혔어.’

오행군림보가 더해진 중양칠도는 아예 다른 도법처럼 보였다. 북풍대의 양방언과 홍춘이는 물론이고, 조상조차 처음에는 당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왕망은 십 수 년 간 봐왔을 중양칠도의 변화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도격에서 벗어나거나, 능수능란하게 직도를 걷어냈다.

‘그리고 무거워.’

남천휘가 사용하는 직도는 면적이 넓은 패도의 일종이다. 그렇기에 힘을 더하기 편했고, 여차하면 양수도(兩手刀)로 전력을 다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나 왕망의 검을 떨쳐낼 수 없었다.

검이 뱀처럼 직도의 끝을 쫓아다니는 바람에 초조함은 배가 됐다. 귓가에서 울려 퍼지던 파진악마저 시끄럽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소리 좀 낮춰봐!’

채채챙!

왕망의 검이 한순간 번뜩이더니 남천휘의 팔뚝을 휘감는 듯했다.

‘큭!’

소매가 두 치 정도 잘렸다.

하나 피부가 상한 것은 아니다.

왕망이 손속에 정을 둔 게다.

◎ 팔목에 검상을 입었습니다.(1/5)

피 안 났다고!

하지만 재이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다행히 왕망은 공격은 이어가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며 호흡을 조절했다.

표풍십이검의 초식이 한 바퀴 돈 것이다.

남천휘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였다.

표풍(飄風)이라는 말처럼 쉴 새 없이 들이치는 검초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도 12초 버텼네.’

다행히 체력이나 내력의 문제는 없다.

왕망이 봐준 덕이다.

실제 왕망의 별호인 북대죽은 곡부 전체에 알려졌을 만큼 유명했다. 술집에 들어가서 비싼 술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를 떠도 될 정도였다.

물론 다음 날 값은 치러야겠지.

어쨌든 그리 유명한 고수가 남천휘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리 없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적당히 시간을 끌며 초식의 횟수를 채우려 했다. 하나 표풍십이검의 이회 차가 시작되자,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쉭쉭쉭쉭쉭!

왕망이 검을 내지를 때마다 검풍으로 인해 피부가 따끔거렸다.

이 아저씨가 왜 이래?

족히 두 배는 빠르고, 두 배는 더 날카롭다.

마치 지금까지는 연습이었다는 것처럼 매섭게 검을 휘돌렸다.

‘큭!’

터터터터텅!

직도와 검이 부딪칠 때마다 둔탁한 소음이 퍼진다.

제대로 흘려냈다면 ‘챙’이라는 청명한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하나 남천휘가 걷어낼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검세였다.

그 말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뜻이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힘겨운 와중에 표풍십이검은 삼회 차에 돌입했다.

“삼성의 내력을 담았거늘! 삼공자의 무위가 예상외로군. 조금 더 강하게 가겠네!”

과대평가하지 마!

‘으으으으!’

남천휘는 이를 악 물었다.

파진악의 연주 소리와 병장기의 부딪침 외에도 재이가 수다스럽게 귓가를 어지럽혔다.

◎ 체력이 –1 하락합니다.

◎ 민첩이 –2 하락합니다.

◎ 근력의 저하가 정상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뭔 놈의 수치가 이렇게 빨리 떨어져.

이러다가는 60초식을 버티기 전에 탈진해서 널브러질 상황이다.

위안이라면 퀘스트 수치가 48을 돌파했다는 것이 유일했다. 하나 남천휘의 손목과 어깨에는 왕망의 검이 긁고 지나간 상흔이 남아 있었다.

‘벌써 4번이야. 한 번만 더 당하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 개고생을 하고 퀘스트까지 망칠 수는 없지.

‘그래, 그걸 쓰자!’

적선단과 벽선단으로 체력과 내력을 회복하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하나 남천휘는 위태로운 와중에도 참았다.

지금 써봤자, 버티는 시간이 늘어날 뿐이다.

어차피 왕망이 자신을 쓰러트리는데 필요한 건 일초로 충분했다.

‘59에서 쓴다.’

터터터터터텅!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를 비집고 왕망의 검이 파고들었다.

하마터면 직도를 놓칠 뻔했다.

하나 남천휘는 버텼다.

‘아! 손에 감각이 없어. 이거 안되겠는데.’

황급히 시야 좌측에 능력치를 띄웠다.

수치의 하락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모든 능력 수치가 15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15 정도의 능력이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오히려 더 버텨낼 수 있었다.

“허허, 이쯤이면 북풍대의 부대주도 힘들겠는 걸.”

탄성 한 번 터졌고요!

그런데 두 번 남았고요.

‘나는 죽을 것 같고요.’

하나 왕망은 남천휘를 몰아붙이면서도 대화를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남천휘의 상태는 누가 봐도 당장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그 때 퀘스트 수치가 (59/60)에 이르렀다.

표풍십이검의 마지막 초식만 남은 게다.

‘적선단, 벽선단 사용!’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는 심경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온 몸에 청량한 기운이 휘돌았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모든 수치가 2할 이상 회복됐다.

‘파진악! 소리 최대로!’

때마침 파진악의 연주는 절정에 이르렀다.

수십 개의 타악기가 빠르게 연주되니 덩달아 몸까지 빨라지는 듯했다.

타다닥!

“엇!”

왕망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탄성을 내뱉었다.

손가락으로 밀면 쓰러질 것 같았던 남천휘가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직도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아래에서 솟구쳤다.

쇄애애애액!

하나 절정은 절정이다.

왕망은 황망한 와중에서도 상체를 비틀어 직도를 흘려보냈다. 한데 그 순간에 맞춰 직도의 궤적이 종에서 횡으로 바뀌었다.

‘칠도격?’

중양칠도의 칠도격을 변칙적인 잔기술로 여겼던 왕망은 남천휘가 바라마지 않던 세 번째 탄성을 흘렸다.

“헛! 좋구나.”

결국 검을 내뻗었고, 직도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쩡!

한데 직도가 다시 한 번 궤적을 바꿨다.

남천휘가 직도의 끝에 달린 고리에 검지를 끼우더니 비스듬히 올려친 것이다.

채채채채채챙!

왕망은 검을 쉴 새 없이 교차시키며 직도의 여력을 분산시켰다. 그 결과 두 걸음이나 뒷걸음질 친 상태로 멈춰서야 했다.

“이런.”

그는 자신이 어느덧 벽까지 몰린 것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 봤으면 충분하군.”

남천휘는 왕망이 납검을 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날렸다.

꼼수가 이긴다!

‘됐어!’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퀘스트 완료부터 보상까지 아주 노다지를 캔 것처럼 뿌듯했다.

왕망은 그 사이 자리로 돌아갔다.

“소가주, 총관. 이 정도면 됐다 싶군요.”

막대통은 술 잔 두 개에 술을 가득 따랐다.

“멋진 비무를 보여준 두 사람을 기념하며······.”

그리고는 자신이 들이켰다.

“크하! 좋군. 소가주, 어떠시오? 저 정도 실력이면 곡부남가의 사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일을 맡겨보는 건 어떠시오?”

소가주 남천홍은 바닥을 드러낸 고기 접시를 치운 후 소면을 앞에 놨다.

그는 면을 한 입에 빨아들인 후 말했다.

“천휘가 곡부 밖으로 나가는 건 허락하지 않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