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공을 배워주마.
6, 무공을 배워주마.
◎ 정보 수집 내역 상 오류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남천휘는 직도를 들어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도 만들어진 표식은 마흔아홉 개.
잠시 후 시간이 흘러 표식은 녹아내렸다.
다시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도 마흔아홉 개의 표식이 만들어졌다.
착각이 아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투로와 달라.’
남천휘는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인 남운군은 삼형제에게 직접 중양칠도를 가르쳤다. 그러니 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버지가 펼치던 중양칠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머릿속에 아버지가 보여줬던 투로를 그렸고, 반드시 지나쳐야 할 경로를 헤아렸다.
‘마흔여덟 개였어.’
자신의 기억은 잘못되지 않았다.
“표식 지워봐.”
기수식을 취했음에도 표식은 나타나지 않았다.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한 듯했다.
남천휘는 표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칠도격의 투로를 이어갔다.
촤악!
평소였다면 칠도격을 펼치는 순간 지쳤을 것이다.
하나 근력과 체력의 상승으로 인해 여전히 온 몸에 힘이 가득했다.
도풍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어느덧 칠도격의 끝이 보인다.
남천휘는 마지막 일격을 위해 손목을 비틀었다.
직도의 날이 위를 향했다.
동시에 왼손으로 직도의 끝을 받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비스듬히 직도를 쳐올리는 순간 왼손 검지가 손잡이의 고리를 파고든다.
쉬이이익!
직도의 기세가 매섭다.
하나 칠도격은 단순히 올려친 것으로 끝나는 초식이 아니다. 오른팔을 최대로 뻗은 순간 직도를 놓았다. 그 순간 왼손 검지에 걸린 직도가 한 차례 더 공간을 찢어발겼다.
촤아아아악!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다시 내리찍는 공격이다.
중양칠도를 상대해보지 못한 자라면 오른팔의 거리만큼 안심하고 있다가 대경실색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칠도격이 아니던가.
“후우.”
남천휘는 초식을 마무리한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가 펼친 칠도격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줬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훌륭했다. 만약 남운군이 보았다면 엄청나게 성장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터였다.
‘이거 먹힌다!’
몇 번 당했다면 모를까, 처음이라면 영락없이 큰 피해를 입을 만큼 위협적인 초식이다.
한데 재이는 아니란다.
그렇다면 재이가 잘못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무려 하늘이 준 기연이 아니던가.
지금껏 천상 제(製)의 대단함을 체험했던 남천휘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아버지도 잘못 알고 계셨던 건가?’
어쩌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을 수 있다.
남천휘는 이마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재이,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오롯이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야?’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대상자의 기억과 시스템이 미치는 권역의 모든 정보를 집약한 후 만들어졌습니다.
예상대로다.
시스템이라는 것의 권역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 지금껏 재이가 보여준 권능이라면 인간의 범주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을 터였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게 답이다.
‘어차피 중양칠도에 큰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20의 가치를 지닌 도법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남천휘는 아랫입술을 핥으며 직도를 고쳐 잡았다.
지하에서 선조가 땅을 치고 후회할지언정 퀘스트 완료가 먼저였다.
‘조상님, 중양칠도가 더 강해지는 거니까 불만 없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 가상 표식이 제공됩니다.
힘 있게 뻗어나간 직도가 다시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일도격부터 시작했다.
쉬잉! 쉬잉! 휙!
부쩍 성장한 근력과 체력으로 인해 도법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따따따따 배배배배.”
초식이 이어질 때마다 장단이 흘러나왔다.
그에 따라 남천휘의 신형은 박자를 타며 도풍을 쏟아냈다. 하나 격렬한 움직임과 달리 눈빛은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칠도격의 표식이 생성됐다.
표식의 개수는 마흔아홉 개.
원래 존재했던 48개와 새롭게 나타난 1개.
해결방법은 간단했다.
새로 나타난 표식을 48개 사이에 한 번씩 넣어보면 될 터였다.
띠! 띠! 띠! 띠!
표식이 연결되지 않을 때마다 날카로운 신호음과 최악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투로라고 해도 건너뛰지 않고 모조리 대입했다.
그렇게 두 시진을 보냈다.
“후우, 후우.”
남천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 시진 동안 중양칠도의 전 초식을 마흔여덟 번이나 쉬지 않고 펼쳤다.
하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찾았다.’
마지막 표식의 순서는 의외였다.
바로 칠도격의 절초를 펼친 다음에 존재했다.
‘젠장! 거꾸로 해볼 걸.’
기쁜 마음과 달리 마음속은 복잡하다.
오른 손으로 직도를 올려친 후 왼손의 검지에 걸린 고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것이 절초의 묘리(妙理)였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매서운 공격과 예기치 못한 공격을 연이어 상대해야 했다.
한데 재이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단다.
‘그게 가능할까?’
무엇보다 48번 째 표식과 49번 째 표식의 위치는 동떨어져 있었다. 내공을 있는 힘껏 짜내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을 거리였다.
“후우!”
고민은 여기까지.
남천휘는 직도를 고쳐 잡았다.
지금껏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재능의 유무는 둘째치고서라도 부유한 삶에 몸을 맡겼던 것일 수도 있다.
한데 더 이상 그렇게만 살기는 싫었다.
낙천적인 것은 괜찮아도 나태한 것은 사양이다.
그러니 원기를 회복하고 나서, 또는 내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길이 있을 때 가는 거다.
그러고 싶었다.
◎ 가상 표식이 제공됩니다.
재이의 알림과 함께 직도가 힘차게 뻗어나갔다.
하나 보통과 불호, 또는 최악이 연이었다.
띠- 띵- 띠- 띠- 띠-
불협화음으로 인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마지막 것만 집중적으로!’
남천휘는 칠도격의 묘리를 펼쳐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니 그 전의 투로가 형(形)을 지킬 뿐 의(意)까지 염두에 둘 여력이 없었다.
마침내 칠도격이 시작됐다.
마흔아홉 개의 표식을 한 눈에 담았고,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직도를 휘둘렀다.
최후의 순간 오른손에 쥐고 있던 직도가 왼손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치솟은 것만큼이나 빠르게 내리 찍혔다.
‘지금!’
남천휘는 왼 손에 쥔 직도를 횡으로 그었다.
촤아아아악!
하나 직도의 끝이 표식을 스치기도 전에 시간이 끝났다. 마지막 표식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녹아내렸다.
“쯧! 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그렇기에 호흡만 가다듬고, 재차 표식을 띄웠다.
남천휘는 오전 내내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다.
결국 정오가 지나자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육신이 굳건한 결의를 이겼다.
“아! 지금이 여름이냐? 겨울이냐?”
땀에 젖은 옷이 달라붙어서 거동이 불편했다.
남천휘는 이마의 맺힌 땀을 닦으며 소혜가 놓고 간 물통을 들었다.
하나 텅 빈 물통을 보며 실의에 빠져야 했다.
그는 물통을 흔들다가 미간을 좁혔다.
“잠깐! 그런데 숙련도가 왜 안 오르는 거지?”
칠도격의 모든 표식을 완벽하게 펼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도격부터 육도격까지는 잠을 자다가도 펼칠 수 있을 만큼 능숙했다.
‘벌써 백 번은 넘게 펼쳤는데······.’
남천휘는 의아한 표정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현실을 마주했다.
《삼황내문》
- 숙련도(59/100). (가치 :20)
《중양칠도》
- 숙련도(60/100). (가치 :20)
※ 민첩 부족으로 인해 성장이 둔화됩니다.
“이건 또 뭐야?”
중양칠도의 설명에는 한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남천휘는 민첩 부족이라는 말에 황급히 상태창을 살폈다.
근력(筋力) : 20. 민첩(敏捷) : 14.
체력(體力) : 20. 지혜(智慧) : 12.
내공(內功) : 16.
- 미 배분 능력치(+0)
중양칠도를 수련하면서 모든 능력치가 상승했다.
근력과 체력 위주였지만, 민첩과 내공도 2개씩 오른 상태였다.
하나 이것도 부족하단다.
‘민첩이 낮아서 49번째 표식을 제 시간에 찍지 못한 걸까?’
가설이었지만, 왠지 맞을 듯했다.
그렇다면 민첩 수치를 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남천휘는 임무 수행을 위해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침음을 흘렸다.
‘닷새라.’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민첩 수치를 올린 후 칠도격의 마지막 표식을 완벽하게 펼쳐야 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민첩 수치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남천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민첩하면 쾌검 아니겠어?’
북풍대주라면 답을 줄 수 있으리라.
사냥은 못하지만, 쾌검이라면 곡부남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
남천휘는 대충 점심을 해결한 후 북풍대로 향했다.
그는 곡부남가의 삼공자가 아닌가.
곧장 북풍대주인 조상을 마주했다.
조상은 남천휘를 보고 탄성을 흘렸다.
마지막에 만났던 시점에서 고작해야 열흘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한데 남천휘는 낯설 정도로 변한 상태였다.
“아! 많이 변하셨군요.”
“그런가요?”
조상은 진심을 담아 대꾸했다.
“기도가 완전 달라졌습니다. 아! 기도란 기세와 다릅니다. 무인이 내력을 운용해서 일부러 드러내는 기운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학자의 혜안 어린 눈빛이나 고수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품격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진지한 사람답게 묻지도 않았는데 애써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여전히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라고 하지요. 삼공자는 며칠 사이에 큰 변화를 겪으신 듯합니다.”
남천휘는 어색하게 웃었다.
재이를 얻고, 삶의 궤적 자체가 변했다.
하나 매일 같이 그를 지켜보는 소혜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뿐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수가 되면 그런 것도 보이는 건가?’
남천휘는 조상의 머리 위에 쓰인 두 자릿수의 등급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겨울이 되니까 몸이 찌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운동 좀 하고 있습니다.”
조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북풍대는 곡부남가의 경계와 호위를 담당했다.
그렇기에 남천휘의 하루 일과에 관해서 대략적이나마 보고받았다.
‘운동 치고는 좀 본격적이기는 하시지만······.’
하나 그가 거론할 일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그는 곡부남가에 고용된 입장이 아니던가. 게다가 한량처럼 지내던 삼공자의 변화는 환영할만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일로?”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난번에 신세진 일도 있고 해서 간식을 좀 준비했어요. 밖에 술과 음식을 가져다놨으니 저녁에 대원들과 함께 드세요.”
조상은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대원들이 좋아할 겁니다.”
그러는 당신은 술 안 마시잖아.
그러고 보면 소식(小食)에 금주(禁酒)까지 하면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남천휘가 지루한 표정을 짓자, 조상이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음식은 당연히 토끼 고기겠지요?”
폐부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 한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하는 건가?
남천휘는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나 조상은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도 자신의 농담이 재미없음을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그만한 눈치도 없을 리 만무했다.
“일전에 토끼를 수십 마리나 잡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번의 일과 연결해 봤을 때 가져오신 음식은 토끼 고기라는······.”
설명하지 마!
이로서 고수와 눈치는 어떤 상관관계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조상은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토끼 가죽을 벗기다가 많이 지치셨다지요? 역시 칼을 다루는 건 힘보다 감이지요. 결을 따라 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은 힘으로도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제 섬영검을 익히신다면 다음에 토끼를 잡을 때······.”
속마음을 저렇게도 쉽게 드러내서야 싸움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허초를 날리면서도 태를 낼 사람이다.
하나 남천휘는 평소처럼 질색을 하며 거절하지 않았다. 이곳에 온 목적은 민첩 수치를 올리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 수는 없지.’
거듭 말하지만 목적은 민첩 수치였다.
남천휘가 먼저 가르침을 청하는 순간 두 사람은 사제 관계가 된다. 정식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두고두고 섬영검을 익혀야 할 터였다.
반면 조상의 간절한 청을 받아주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주도권을 쥠으로써 수련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으리라.
‘한 마디로 단물만 빼먹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