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공을 배워주마. (2)
남천휘는 미소를 헛기침을 감춘 채 몸을 일으켰다.
“하하하, 또 그러시네. 중양칠도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어쨌든 볼 일은 다 봤으니 일어나볼게요.”
조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삼공자의 체형이라면 쾌도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텐데요.”
남천휘는 회가 동한다는 듯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제 어디를 보고 그러시는 겁니까?”
조상이 반색을 했다.
평소 쓰지도 않는 안면 근육을 한껏 활용했겠지만, 여전히 어색한 웃음이었다.
그만큼 섬영검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뜻이리라.
‘진짜 좋은 사람이기는 해.’
목숨을 구해줬다고 십 년 넘게 호위를 서는 모습이나, 아무 조건 없이 무공을 가르치는 성격만 봐도 그랬다.
그래도 더 이상 얽혔다가는 섬영검법을 대성할 때까지 헤어나올 수 없을 터였다.
조상은 그 와중에도 쾌검을 익혔을 때의 좋은 점을 나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냥 진중하기만 한 줄 알았거늘 무공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열의가 넘쳤다.
무공광이었냐?
“좋아요.”
“삼공자!”
조상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남천휘의 말에 조상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차돌 같은 단단한 사람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구는 모습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제게는 중양칠도가 우선입니다. 그러니 조 대주가 원하는 만큼 수련할 수 없을 거예요. 수련에 대한 과정은 대주에게 일임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원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관리해주세요. 무례한 부탁인 것 잘 압니다. 그래도 감안해주세요. 대주가 간절히 원하셔서 하는 수련이잖습니까.”
조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주도권을 잡은 보람이 있다.
한데 남천휘는 조상의 입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조만간 쾌검의 매력에 흠뻑 빠질 거라는 말이 들린 것도 같았다.
착각이겠지.
‘어쨌든 그건 퀘스트 뜨면 생각해 볼게요.’
임무만 생성된다면 수련이 대수냐.
남천휘는 당장이라도 수련을 시작하기 위해 운을 뗐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한데 조상이 난색을 표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한데 미시 초에 소가주와 약속이 있습니다. 보고 해야 할 사안도 있고요.”
미시(未時) 초라면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할 터였다.
남천휘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미 여러 서책을 통해 민첩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수치를 올려야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시야 상단에 위치한 퀘스트 제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조상은 실망한 남천휘를 달래기 위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금방 돌아옵니다. 급하지 않으시면 잠시 수련을 하고 계시겠습니까?”
“혼자요?”
남천휘의 말에 조상은 북풍대의 말단 대원인 송겸을 추천했다.
“녀석이 기본적인 자세와 수련법을 알려줄 겁니다. 그 사이 제가 다녀오도록 하지요.”
송겸이라면 엽사 출신의 대원으로 지난 날 토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줬던 사내였다. 산을 제집삼아 뛰어다니던 사람이니 범인보다 민첩할 것이 분명했다.
“좋네요.”
남천휘는 어쩌면 조상이 돌아오기 전에 민첩 수치를 크게 끌어올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당장 불러주세요.”
*
“그건 불가능합니다.”
송겸은 대주의 호출을 받자마자 날 듯이 달려왔다.
그는 삼공자의 수련을 맡게 됐다는 말에 호언장담을 했다.
북풍대 내에서 자신의 기본기가 가장 탄탄하다며.
그렇겠지.
말단이라서 지금도 기본기를 수련하고 있을 테니.
한데 그랬던 그가 다짜고짜 민첩해지고 싶다는 남천휘의 말에는 난색을 표했다.
‘뭐만 했다하면 불가능이냐?’
남천휘는 송겸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분명 삼공자의 체형은 쾌검을 익히기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꾸준한 수련을 통해서······.”
어째 토끼 잡을 때와 대화의 흐름이 묘하게도 일치했다.
너 나 싫어하냐?
송겸은 남천휘의 찌를 듯한 시선에 말끝을 흐렸다.
“일단 몸부터 풀어보시겠습니까?”
잠시 후 등에 올라탄 송겸의 무게로 인해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끄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시면 됩니다.”
남천휘는 다리를 좌우로 찢은 채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사타구니에서 치솟는 고통 때문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이 상태에서 더 찢으면 다리를 날개 삼아 활갯짓을 할 수도 있을 듯했다.
“야! 죽을 것 같아.”
하나 송겸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남천휘의 등을 눌렀다. 지금 이 순간만은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바뀐 듯했다.
‘지금 나를 후임으로 생각하는 거냐?’
“잘하고 계십니다. 거의 다 됐습니다!”
‘되긴 뭐가 돼? 내 다리가 날개냐?’
남천휘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송겸이 몸을 일으켰다.
“잘 하셨습니다.”
녀석의 칭찬도 사타구니의 고통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송겸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보 자세는 미동조차 않으시는 분이 이 정도로 뻣뻣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근력과 체력만 올려서 그렇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천휘는 입술을 내민 채 다리를 주무르는 사이 송겸이 사기라도 진작시켜주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미 근력이 좋으시니 유연성만 겸비하시면 큰 성과가 있을 듯합니다.”
민첩 수치가 오르기 전까지는 믿지 않을 테다.
이후에도 여러 동작에 걸쳐 몸을 풀었다.
양 팔을 어깨 뒤로 젖힌 채 맞잡는 동작으로 인해 어깨가 빠질 뻔했다. 그 상태로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어대니 없던 살의(殺意)도 생길 판국이다.
‘이 새끼!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송겸은 놈과 자식을 거쳐 새끼가 됐다.
하나 그것을 알 리 없는 송겸은 열성적으로 남천휘의 몸을 주물럭거렸다.
“금방 좋아지시는군요. 근육과 힘줄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탱탱합니다.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익숙해지면 근육이 알아서 반응할 겁니다. 근육을 잘게 쪼개면 반응 속도가 엄청나거든요. 한데 삼공자는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알아서 갈라지는 듯합니다. 이래서 대주가 그토록 욕심을 냈나 싶습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듣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왜인지 모르게 녀석의 말처럼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될 것 같기도 했다.
이 자식, 교관 체질인가?
그 순간 반가운 알림이 뇌리를 스쳤다.
《민첩이 상승합니다.》
우와! 이렇게 쉽게 되다니!
기쁜 마음도 잠시였고, 이내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애초에 나 혼자 했어도 되는 거 아닐까?’
괜한 일을 벌였다는 자책감은 비틀린 허리에서 솟구친 고통으로 인해 사그라졌다.
“으아악!”
송겸은 빨래를 다루듯 남천휘의 몸을 쥐어짰다.
두 발로 남천휘의 골반을 감싼 채 양 손으로 상체를 있는 힘껏 비틀고 있는 게다.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어디 있어?
한데 무식한 만큼 효과는 탁월했다.
《민첩이 상승합니다.》
오늘 따라 바람이 차다.
한데 남천휘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푹 젖은 채 헐떡거렸다.
“후우. 후우.”
송겸은 남천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히죽 웃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임마! 그거 무슨 의미야?
추궁할 여력도 없다.
마치 온 몸의 모든 관절 사이에 떡이라도 한 개씩 끼워 넣은 듯했다. 바람 부는 날 흔들리는 종이 인형과 다를 바가 없는 신세였다.
다행인 점은 잠깐의 몸 풀기만으로도 민첩 수치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근력보다 높을 리는 없고 두세 개만 올리면 되겠지?’
운기조식을 한 후 몸을 일으켰다.
남천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는 송겸을 제지하며 말했다.
“잠깐! 중양칠도부터 한 번 펼쳐보자.”
민첩은 한 개만 올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도를 뽑아들었다.
‘또 하기 싫어.’
*
남천홍(南天弘)은 곡부남가의 소가주다.
그에 대한 평은 둘로 나뉜다.
인자하다. 뚱뚱하다.
혹은 머리 좋고 착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전자가 압도적이다.
“잠시만.”
남천홍이 서류를 들여다보며 내뱉은 한 마디였다.
북풍대주인 조상은 맞은편에서 대기했다.
‘오늘도 여전하시군.’
남천홍은 서류를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뻗었다.
그럴 때마다 음식이 잡혔고, 그것은 이내 입안으로 사라졌다. 흡사 서류 한 장을 처리할 때마다 접시 하나를 비우는 듯했다.
하나 조상은 소가주가 아귀처럼 음식을 먹어치우는 모습에도 인상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남천홍은 조상이 올린 보고서까지 확인한 후에야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좋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전언은 따로 없었나요?”
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가주와 가모께서는 당분간 노국장에서 지내신답니다. 아마 봄이 올 즈음 돌아오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국장(魯國莊)은 가모(家母)인 안설영의 친가다.
원앙의 환생이라 불리는 남운군과 안설영은 여행을 즐겼고, 현재 처가인 노국장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남천홍은 웃으며 말했다.
“외조부께서 계시는 노국장이라면 안심입니다. 금슬이 워낙 좋으시니 두 분만 계셔도 부족할 것이 없지요. 북풍대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보고를 해달라고 하세요.”
“따르겠습니다.”
조상은 보고를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한 시라도 빨리 돌아가 남천휘를 가르치고 싶었다.
한데 그 순간 남천홍이 한 마디를 건넸다.
“요즘 막내가 바쁘다면서요?”
곡부남가의 모든 사람이 소가주의 눈과 귀다.
남천휘의 변화를 모를 리 만무했다.
“네. 토끼 사건 이후로 심경의 변화라도 생기셨는지 수련에 매진 중입니다.”
소가주는 히죽 웃었다.
남천휘가 토끼우리를 발칵 뒤집은 사건은 꽤 유명했다.
“수련이라면 중양칠도인가요?”
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허리춤에 직도를 달고 다니시더군요.”
곡부남가에는 몇 개의 무공이 존재했다.
하나 중양칠도의 역사가 가장 깊었다.
그러니 직계라면 당연히 익혀야 할 도법이다.
소가주는 고기를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며 말했다.
“비운고에 얘기를 해 놓을 테니 좋은 약재 좀 챙겨주세요.”
조상은 눈을 끔뻑였다.
비운고(秘云庫)는 곡부남가의 요처다.
가주와 소가주만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출납장부와 값비싼 물건들을 쌓아놓은 곳이 아닌가.
소가주는 조상을 보며 웃었다.
“많이 당황스러워하시는군요.”
“아, 아닙니다.”
“탐욕에 찌든 돼지 같은 놈이 갑자기 동생을 챙기는 모습이 이상하신가요?”
조상은 그답지 않게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저도 소문을 들었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군요. 곡부남가는 제 손 안에 있으니까요.”
소가주를 향한 소문 중 탐욕과 권력욕에 관한 것이 없지는 않다. 하나 그것을 제외하면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릴 만큼 선행에 힘쓰는 사람이 아니던가.
소가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둘째와 막내는 제 허락 없이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조상은 어색한 표정을 보였다.
소가주가 곡부남가를 쥐고 흔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는 소가주였고, 곡부남가의 공식적인 후계자였다.
게다가 그가 겪어온 삼형제의 우애는 충분히 두터웠다.
“나가셔도 됩니다.”
소가주는 손을 내저으며 축객령을 대신하더니 이내 수저를 놀리기 시작했다.
조상은 연무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엇! 삼공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남천휘가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직도를 휘두를 때마다 강맹한 기세가.
햇빛에 반사되는 도신에서 위협적인 기운이.
모든 광경이 자연스러웠다.
그는 마치 한 사람의 무인처럼 중양칠도를 펼쳤다.
“맙소사!”
남천휘가 조상의 외침을 들은듯 직도를 거뒀다.
“오셨군요.”
조상은 남천휘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처럼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
“삼공자, 감축드립니다!”
남천휘는 자신 앞에서 가쁜 호흡을 이어가는 조상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뭘 축하하는데요?”
조상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중양칠도를 대성하셨군요!”
남천휘가 되물었다.
“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