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 회: 기물(奇物)의 출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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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없는 겨울 햇살이 원형 창을 통해 침궁을 비추고 있었다. 간접 조명으로 크게 어둡지 않은 실내에서 황제 이진은 오늘도 주석정치를 재현하고 있었다. 벌써 술잔이 몇 순배 돌았는지 술이 약한 원숭환의 얼굴은 불콰해져 있었다.
황제 이진이 풍성한 검은 수염을 쓸며 입을 열었다. 이미 재정이 열악해 대규모 군사를 파견할 수 없다는 것과 우랄산맥에서 출발한 군대가 동쪽 해안까지 이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자세한 설명으로 사전에 한 상태에서 재차 입을 열고 있는 것이다.
“해서 말 이오만 이번에도 소수 정예를 파견해야겠소. 그래서 아무르 강 이북부터 차례로 북쪽을 점령하다가 그 끝 무렵에는 이제 바다를 건너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그곳이 신대륙의 제일 북쪽 땅이 되겠지요. 소위 말하는 알래스카 땅이라는 것이오. 그 밑으로 쭉 타고 내려가면 북아메리카에 이어 스페인 포르투칼 등이 지배하고 있는 남미와 마주하게 될 것이오.”
잠시 따라 놓은 술로 목을 축인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잠시 지리에 대해 설명했소만, 요는 알래스카에서 서부를 쭉 타고 내려가면 아직 이곳은 원주민 뿐, 대서양의 세력 어느 하나 제대로 세력을 일군 곳은 없소. 그러니 경쟁상대가 없는 이곳부터 차례로 점령하자는 게 짐의 복안이오.”
마저 술잔을 비우고 안주마저 한 점 집은 황제 이진의 말이 계속되었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해가며 정복전쟁을 계획했더라면 신대륙에 파견나갔던 군사를 굳이 회군시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오. 군량이라던가 보급품 운반 등 모든 것을 원주민에게 빼앗고 그들을 이용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지 않으려니 이렇게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오. 짐이 말한 취지를 잘 알겠지요?”
“황상의 어심이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만, 아무리 소수 정예를 파견한다 해도 군량 및 탄약 등의 보급은 필수 일터, 이를 어찌 해결할 요량이십니까?”
원숭환의 물음에 이진이 가벼운 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래서 상인들의 협조를 받으려는 것이오. 무작정 진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짐의 백성으로 만들어가며 진군해야 하오. 짐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뒤집어 이야기 하면, 외적으로부터 우리의 군사적 보호를 받는 대신에 일정량의 세금을 부담한다는 이야기겠죠. 해서 아무르 강 이북을 실례를 든다면 그들로부터는 모피라든가 산삼, 때로는 해산물 등도 받을 수 있겠죠. 이를 상인들이 사들이는 대신 그 여로에 군량과 탄약 등을 보급하자는 게 짐의 복안이오.”
“그들이 내는 세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사옵니다. 황상!”
최담령의 말에 이진이 부언 설명을 했다.
“짐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소. 그래서 정복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대규모 사냥과 채집도 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그 땅에는 광산기술자는 물론 관련 학자들도 보내 생태를 연구관찰하고, 필요하다면 광산도 개발할 생각이오. 그래서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땅 어디라도 반란 등 불순한 무리들을 일차적으로 그곳에 가족과 함께 파견해, 실제 많은 백성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게 짐의 2차 복안이기도 하오.”
“흐흠.......!”
지금까지 경청만 하고 있던 곽재우가 침음성을 발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질문을 던졌다.
“하옵시면 황상께서는 얼마를 파견할 요량이시옵니까?”
“장군의 의견부터 말해보오.”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황제 이진이었다.
“소신이 지난번 러시아 정벌 전에 데리고 갔던 기마병 3만이면 어떻겠사옵니까? 황상!”
“짐도 그 정도 규모를 염두에 두고 곽 장군을 부른 것이오.”
“아국의 점령 지역에서의 반란이나 우리의 조공국에서, 외적의 침입을 받아 파병을 요청하면 어쩌시려고요?”
원숭환의 말에 이진이 허허거리며 대답했다.
“아국의 군사가 어디 그들뿐이오. 지금 당장이라도 모병을 하지 않더라도 100만 대군을 동원하는 것은 여반장 아니오?”
“하긴 그... 그렇습니다만.......! 오늘은 술이 좀 과해서 그런지 머리가 영 민활하게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황상!”
“하하하........!”
원숭환의 말에 이진이 대소를 터트리는데 반해 황제 앞에서 함부로 웃음을 터트릴 수도 없는 둘은 단지 엷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웃음이 가시고 장내에 잠시 침묵이 감돌자 이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말이오. 짐의 두 자식도 데리고 가도록 하시오.”
“하옵시면 두 분 황자가 원정군의 총사령이 되시는 겁니까?”
촤담령의 물음에 이진이 조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분상으로는 그러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짐은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들을 참모로 데리고 다니다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천인장 정도의 직위를 내려 실전을 경험시키고 싶소.”
“아니 될 말입니다. 황상! 어찌 황자님들을 참모로 부린단 말입니까?”
곽재우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이진 역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짐의 명으로 그렇게 할 것이니 곽 장군은 그런 것이 구애받지 말아요. 단지 후생을 미래를 위해 훈련시킨다는 개념만 머릿속에 지니고 있으면 될 것이오.”
“허허........! 황상께서 붕어하시면 다음 대라도 어떻게 명의 독립을 꾀해볼까 했으나, 황상의 용인술을 보아하니 그것마저도 그른 것 같사옵니다. 소신 역시 일찌감치 신대륙인지 구대륙인지에 왕조나 하나 개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황상!”
원숭환의 말에 곽재우와 최담령의 두 눈을 부릅뜨는데 반해 황제 이진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이 그런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면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터. 짐은 경이 이 조선제국이 세계를 경영하는데 크게 일조하리라 보오. 그렇게 되면 짐 또한 아주 의리 없지는 않으니, 한 나라의 총독 정도의 직위는 하사할 의향이 있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원숭환이 황제의 말에 감격해 급히 부복하는데 최담령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아무나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황재(皇才) 또한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님을 황상의 배포에서도 알 수 있겠사옵니다. 신 오늘 또 한 번 크게 깨우쳤습니다. 황상!”
“그 말은 분명 아부 지요?”
“후후후........! 천학비재, 입으로라도 점수를 따야지 그나마 목이라도 붙어있지 어찌 하겠사옵니까? 황상!”
“하하하.........! 짐 또한 그대의 재주 높이 평가하고 있거늘 너무 겸양할 것 없소이다. 자, 오늘의 대화는 이쯤 해두고 술이나 한 번 제대로 마셔봅시다.”
이때였다.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대전내관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
“황상! 정보부장 송익필 입시했사옵니다.”
“무슨 일이라던가?”
“급한 전갈이라고만.........”
“허허.......! 또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가? 짐의 강역 넓어지고 다스리는 백성이 많아질수록 편히 술 한 잔 기울일 짬을 안주는군.”
크게 탄식한 황제 이진이 곧 명을 내려 송익필을 들도록 했다. 그러자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섰다.
“소신들은 이만 자리를 비우는 것이........”
“그럴 필요 전혀 없소. 경들을 믿지 못했다면 지금 이 깊숙한 곳에서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오. 하니 그냥 자리를 지키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가 금방 부복하는 자세로 바뀐 셋이 일제히 감루를 떨어트렸다. 이때 송익필이 조용히 들어와 그 역시 황제 이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소신 황상 폐하를 배알(拜謁)하나이다!”
“거추장스러운 예는 그만 생략하고 무슨 일이오?”
“폴란드의 왕 지그문트 3세가 5만 군사를 휘몰아 다시 러시아 국경을 침공했다는 러시아 측의 급보이옵니다. 황상!”
“허허.......! 대국을 경영하다보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군. 요는 러시아가 군사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렇사옵니다. 황상!”
참고로 이 당시 폴란드는 유럽의 최강국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찌 하면 좋겠소?”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보면 아국의 군사를 파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사옵니다. 황상!”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웃 스웨덴과는 왕위 계승 문제로 여전히 다툼이 있고, 또 하나 코사크 인들과는 종교 문제로 갈등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 두 세력을 잘 이용한다면 아국의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도 저들을 격퇴시킬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황상!”
“중국이 즐겨 사용하던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사용하자는 말이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하면 외교로써 두 세력을 달래 폴란드 왕국과 맞서게 한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복안이라도 있소?”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는 없으나, 코사크 인들에게는 별도의 왕국을 개창케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고, 스웨덴 왕에게는 폴란드 왕까지 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응하지 않을까 싶사옵니다. 황상!”
“그렇다면 이를 이행할 세객(說客)이 필요하겠군.”
“외무대신의 직위가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충일을 보내자는 말이지?”
“그렇사옵니다. 황상!”
참고로 원래 신충일은 스페인의 대사로 나갔던 것을, 관직을 현대적으로 세분화 하는 과정에서 불러들여, 외무대신을 맡겨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황제 이진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경의 생각대로 신충일과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하고, 그래도 정 성과가 없으면 그때 가서 군사를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하지.”
“명 받자옵니다. 황상! 소신은 그럼, 이만........”
예를 올린 송익필이 자리를 뜨자, 황제 이진이 말했다.
“어떻소, 송 부장이 들어온다고 해서 자리를 떴더라면 파했을 술자리가, 계속 이어가도 되겠지요?”
“그 전에 황상........?”
“말해보오.”
곽재우의 주저에 이진이 발언을 재촉했다.
“정말 송 부장의 장담대로 되겠사옵니까?”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니, 일단은 믿고 맡겨 볼 밖에요.”
“그렇게 되면 다행인데........”
더 이상 말을 않고 머리만 절레절레 흔드는 곽재우였다.
“아마도 짐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오. 짐도 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니, 그 문제는 이제 그만 신경 쓰고, 자, 술잔이나 듭시다. 허허....... 이건, 짐의 잔이 비어잖소? 여봐라!”
“네이, 황상!”
대기하고 있던 내관은 물론 재조상궁 개똥과 부제조상궁 금란까지 이진의 호령에 문을 열고 얼굴을 디밀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났다. 와서 술 좀 치거라!”
“네, 황상!”
개똥이 서슴없이 대답하고 발을 들이는데 반해 금란은 차녀들을 들여보냈다.
“저건 또 무슨 짓이야?”
이진의 말에 다가온 개똥이 말했다.
“달거리가 끝나도 도통 침궁에서는 황상의 용안 뵈옵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오니 저런 것 아니옵니까? 황상!”
누가 있거나 말거나 거침이 없는 개똥의 입담이었다.
“허허........! 지금 투정이라도 부린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구나?”
“왜, 아니겠사옵니까? 황상!”
“그럴 아이가 아닌데?”
“사람도 세월 따라 변하는 법이옵니다. 황상!”
“됐고. 그 문제는 그쯤 해두고 어서 술이나 치거라!”
“네, 황상!”
이진의 명에 개똥이 직접 황제 이진의 잔에 술을 치고 나머지는 차비들에게 명해 술을 따르게 했다. 하긴 지금 개똥의 지위로 보면 내각수보도 함부로 못할 권세를 지녔다 할 것이다. 제조상궁 직위 자체가 그럴진데 하물며 황제의 승은까지 입은 여인이니, 그 어느 누구도 그녀 앞에서는 함부로 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술자리는 촛불이 방안에 밝혀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고담준론도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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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드리고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