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0 회: 기물(奇物)의 출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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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이진이 감회에 젖어 잠시 용안을 허공에 두고 있는데 얼마 전에 가례를 올린 예(禮)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아바마마, 저 역시 전장을 질타하고 싶사옵니다. 어느 전선이든 보내주십시오.”
외조부가 신립이라 무인의 피가 흘러서인지 욱(홀라구)의 발언에 용기를 내어 일어선 그였다. 욱이 상대적으로 방기되어 컸다면 더 많은 관심 속에 교육을 더 많이 받은 그였다. 이를 본 황제 이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종전 짐이 한 말을 못 들었느냐?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욱 갈고 닦아라!”
“네, 아바마마!”
군말 없이 도로 자리에 앉는 예였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황제 이진은 분위기가 경직된 것 같자 황태후 박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마마마께는 덕담 한마디 하시라 해놓고는 엉뚱한 데로 이야기가 흘러 그런 시간을 드리지 못했군요.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한 말씀 해주시죠.”
“안 하고 넘어가면 어때서, 자꾸 늙은이 보고 주제넘게 나서라고 그러나 그래?”
이렇게 운을 뗀 황태후 박 씨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이 할미로써는 손자 손녀들이 별 탈 없이 커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어요. 그러니 모두 밥 잘 먹고, 강건하기만 하면 돼. 모두 알았지?”
“네, 할마마마!”
30명이 넘는 자식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전각이 떠나갈 듯했다. 이에 실내의 어른들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이진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황후를 보고 말했다.
“황후도 할 말이 있으면 하오.”
“네, 황상!”
가볍게 고개를 조아린 황후 허 씨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모두 아직은 어리지만 다음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학문과 무예를 부단히 연마해, 너희들 세상이 오면 이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활보하거라. 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황상에게 조를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힐 시절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가 때가 되면 마음껏 세상을 누비라는 말이다. 또한 공주들은 부덕을 쌓는데 게을리 하지 말 것이며 예절을 배우는데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될 것이야. 자꾸 말을 하다 보니 황상의 어투를 닮아 가는데, 큰 어미로서의 잔소리는 이쯤 해두고, 큰 어미로서 선물을 안 줄 수가 없지.”
말을 마친 황후 허 씨가 눈짓을 하자 모시고 왔던 수직상궁이 준비한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역시 은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 역시 차례로 아이들을 불러 은화 한 잎식을 내렸다.
“자, 차려진 음식 맛있게 들고 오늘의 모임은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짐이 바빠서 말이야. 어마마마 어서 드시지요.”
“그럽시다. 황상부터 어서 드시오.”
“네, 어마마마!”
황제 이진이 수저를 들자 비로소 즐거운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오일 후.
모처럼 날씨가 따뜻한 날이었다.
사시(巳時) 정(正:오전 10시)이 되자 자금성 문이 활짝 열리며 일단의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진 행을 위한 황제 이진의 행렬이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2만 금군 속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황제 이진은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장대한 행렬이 꼬리를 물고 궁궐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백마를 탄 황제 이진과 각 부처 대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앞뒤로 수많은 의장과 기 삼엄하게 나부끼는데, 백마 위에 의젓하게 올라앉은 이진은 연신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떠난 행렬이 오 일 만에 천진 앞바다에 이르니, 그곳 포구에는 벌써 증기선 한 척과 이를 발명하는데 공이 큰 세 명이 공손히 맨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이를 본 황제 이진이 갑자기 노성을 질렀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대우하라 더냐?”
황제의 노성에 이들과 함께 온 현지인 관리는 물론 각 부처 대신들 또한 찔끔해, 서로의 얼굴만 살필 뿐 대답하는 자 아무도 없었다.
“어서 일으켜 세우지 못할까?”
“네, 황상!”
조선에서부터 이들을 인솔해온 관리가 파리 손이 되어, 황망히 달려가 이들을 바로 세웠다.
“열 성(城)을 싸워 빼앗은 자보다 공이 많은 장인들이야. 하니 앞으로는 이렇게 함부로 다루고 대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 황상!”
제 대신들이 황망히 대답하는 가운데 이진은 뚜벅뚜벅 걸어가 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말했다.
“짐이 종전에 말한 그대로다. 그대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변할 것이야. 앞으로는 좀 더 자중자애하고, 더욱 이를 개량하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데 힘쓰도록!”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폐하!”
황상의 총애에 셋은 다시 황급히 엎어져 어깨를 들썩였다. 이를 자애한 눈으로 바라보던 황제 이진이 이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애썼다. 짐의 기분이 매우 흡족하다. 해서 짐이 그대들에게 천 냥의 황금은 물론 비단 백 필을 하사하겠노라. 그렇다고 이제 배불러졌다 해서 한 눈을 팔면 안 될 것이야. 더욱 발분하여 이제는 증기기관차도 만들어 보도록 하자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또 다시 셋이 언 땅에 엎어지려하자 황제 이진은 황망이 이들을 제지하고 말했다.
“앞장서라! 기선(汽船)에 올라 기관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네, 황상 폐하!”
황제의 지엄한 명이 떨어지자 과기대신 한효순 및 김체건을 비롯한 경호요원들이, 이들과 함께 앞뒤를 다투는 가운데, 황제 이진은 도선(渡船)을 위해 널빤지를 건넜다. 이어 황제 이진은 과히 크지 않은 배의 내부를 일일이 찬찬히 둘러보고는 최종적으로 기관실에 들렀다.
그러나 모두 뚜껑을 해 닫아 내부를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보나마나 상상이 되었으므로 황제 이진이 기관실 내부까지 따라 들어온 발명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앞으로는 이 기관을 병렬로 구축해 보거라. 무슨 말인가 하면 두 개의 기관이 서로 연동되어 배의 힘을 낼 수 있도록 해보란 말이다. 하고 배의 외부에는 철판을 덧대어 군선을 짓는 방법도 연구해 보도록.”
안까지 수행한 국방대신 강홍립이 물었다.
“과연 뜰까요?”
“물론이오. 철선만으로도 뜰 것이나, 아직 철선만으로 배를 건조한다는 것은 무리이니 일단은 그렇게 시험해 보도록 하오.”
“네, 황상!”
“자, 나갑시다!”
“네, 황상!”
일행 모두가 황제 이진을 따라 다시 갑판에 오르니 여전히 쌍돛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 이 증기선은 단독으로 증기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 돛을 같이 이용하여 항해하는, 아직은 초보적인 증기선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말없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갑판을 둘러본 이진이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보다 큰 전함을 증기선으로 짓는 것은 물론 철선을 두른 배도 제작하고, 이에 맞는 더욱 구경이 큰 함포 개량은 물론 증기기관차의 발명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하오. 하고 오늘 듣고 본 바를 조보에 대문짝만하게 실어, 짐이 장인들을 이렇게 우대한다는 것을 전 짐의 치하 백성들에게 알려, 대대적으로 장인들을 모집하도록 하오. 이 옛 명 땅에서도 이런 장인들을 일차 모집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조선과 같이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해서 이르는 말이오. 하니 명심해 새기고 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제 신하들이 고개를 조아리거나 말거나 먼 바다를 바라보던 이진이 다시 그 자세로 명을 내렸다.
“아무래도 이들을 다시 뱃길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 해서 이르노니 이들을 육로로 한양까지 귀환시키되, 금군 천 명으로 하여금 이들의 신변을 보호하도록. 알겠는가?”
“네, 황상!”
경호대장이요, 금군의 수장인 김체건이 큰 소리로 복명하자, 흡족한 미소를 지은 황제 이진은 비로소 준비된 숙영지로 향했다.
* * *
귀로에 오른 황제 이진은 도중에 불시에 도로 변의 한 마을을 방문해 백성들이 사는 삶을 직접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는 그로 하여금 한숨만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게 할 뿐이었다.
딴에는 백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했건만 백성들은 여전히 가난했고, 팍팍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남몰래 한 줄기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훔친 황제 이진은 더욱 발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민생의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이진은 귀환하는 도중 불시에 세 번을 아무 마을이나 찾아들었다. 그 결과는 다 전과 동이었다. 아직은 모두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이었다. 그렇다고 국고가 풍성해 세금을 더 경감할 처지도 아니었다.
강희제는 풍족한 나라 살림으로 인해 해해연년 흉년이 든 곳은 조세를 면하게 하고, 덜한 곳은 경감조치를 했다는데 자신의 치하 백성들이, 그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음이야. 보다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정성을 기울이도록 하자!’
내심 다짐을 한 황제 이진의 행렬이 돌연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시도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워 길을 재촉한 때문이었다.
* * *
황제 이진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 매일 백성들의 삶이 펴지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즈음이었다. 왜의 광해로부터 골치 아픈 문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 내용인즉슨 신대륙으로부터 철수해 고향으로 돌아간 무사들의 횡포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싸움이 생업인자들인지라 농사나 여타 직종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툭하면 술이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어떤 자들은 때로 조직적인 저항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황제 이진으로서는 일찍이 예견한 문제였다.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이들을 대거 신대륙 개척이라는 명목 하에 그곳에 뿌리도록 했는데, 군비 문제 때문에 이들을 철수시키고 나니, 예견한 대로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황제 이진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신하들과도 논의를 거듭해, 특단의 대책 하나를 내놓았다.
즉 그런 자들은 전원 체포해 다시 신대륙 개척에 써먹도록 한 것이다. 이번에는 신대륙 개척도 전과는 많은 것을 달리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이 모든 논의가 끝나자 이진은 왜의 광해에게 명을 내렸다.
‘개전의 정이 있는 자에 한해 북경으로 보내라! 그렇지 못한 자들이나 죄질이 나쁜 자들은 전원 본보기로 삼대를 멸하도록 하라!’ 연좌제가 전혀 죄짓지 않은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가족의 정이 남아 있는 자라면 반발을 삼갈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가혹한 명을 내린 것이다.
이 명을 내리자마자 황제 이진은 아직 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조선의 거상들은 물론 옛 명치하의 거상, 여기에 왜의 무역항 히라도의 성주 오무라 스미타다까지 궁으로 불러들이도록 했다. 그들에게 협조 요청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제 이진은 곽재우를 늦은 오후 침궁으로 불러들였다. 그와 논의할 것이 있어서였다. 이 자리에는 최담령과 원숭환 또한 배석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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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