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6 회: 가례(嘉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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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는 예상보다 황제의 비답이 늦어져 보름 후에야 러시아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물론 그의 귀국길에는 로마노프 가의 루사 황녀 또한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한편 황제 이진은 러시아로의 친정이 좌절되자 곧 바로 다시 북경으로 입성해 정무를 보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조회시간이었다.
어느 날부터 장관이라는 칭호가 어색하니 대신이라 호칭하는 게 낫겠다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총무 대신인 된 이항복이 아뢰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미루어졌던 황자들의 혼례를 거행하심이 어떠하옵니까? 황상!”
이항복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원래는 왜국 정벌 이후 치루기 위해 그동안 간택이 진행되어 삼간택까지 완료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러시아 파병으로 인해 수면 하에 잠들고 있던 이 안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항복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진이 말했다.
“이왕 늦어진 것 명년 봄에 가례를 행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에 대해 재무대신 김신국이 반론을 제기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이옵니다.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과히 좋은 일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그 안에 혹여 사달이라도 난다면 민망한 일이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
“흐흠.........!”
이진이 침음하며 다시 생각에 잠기는데 내무대신 이이첨이 발언을 했다.
“모처럼 만에 맞는 황실의 경사이온데 시간을 촉급하게 잡은 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관리와 장군들까지 참여하는 큰 잔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니, 명년 봄이 타당한 줄 아뢰옵니다. 황상!”
“흐흠........!”
“그런 시간을 감안해도 2달 후면 충분히 가능할 줄 아옵니다. 황상! 하니 두 달 후로 날을 잡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황상!”
법무대신 유영경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 이진이 단안을 내렸다.
“좋다! 두 달 후에 가례를 행하는 것으로 하겠다. 제 대신들은 차질 없이 이를 준비하라!”
“망극하옵니다. 폐하!”
제 대신들이 일제히 복명하는 가운데 이진은 수염을 쓸며 흐뭇한 용안이 되었다.
이때 국방대신 강홍립이 발언을 했다.
“곧 신대륙으로 파견 나갔던 원정군이 돌아옵니다. 귀환하는 장령들 중에는 이제 나이가 들어 군문에서 떠나고자 하는 자들도 상당수가 될 것으로 아옵니다. 아국이 이렇게 번성한 즈음 그들에게 명예직이나마 포상을 하여 그들의 공을 기리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황상!”
“좋은 안이오. 구체적인 방안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이때 회의에 참석했던, 내각대학사로 자리를 옮긴 원응태가 발언을 했다.
“저희 제도 중에 공, 후, 백작 등의 제도가 있으니 이를 원용하심이 어떻겠사옵니까? 황상!”
“그래요? 그것 아주 좋은 안이오. 기왕 포상하는 것이니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합시다. 예를 들면 이순신장군이나 권율 장군 등 말이오. 해서 이르노니 총무대신은 공적을 상세히 조사하여 알맞은 품계를 상신하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폐하!”
총무대신만이 아니라 제 대신들이 일제히 부복하여 황제 이진의 뜻을 기렸다.
“다른 안건 있소?”
“.........!”
모두 침묵하자 황제 이진은 회의를 파하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 * *
그로부터 이십일 후.
곽재우 군단이 북경 성 안으로 들어왔다는 품신이 있었다. 이에 황제 이진은 외문 밖까지 나가 장병들의 공을 치하하고 이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다시 궁으로 돌아가는데 옆으로 따라 붙은 곽재우가 아뢰었다.
“황상!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래요? 아니래도 술이라도 한 잔 나누려했소이다. 함께 궁으로 갑시다.”
“망극하옵니다. 황상!”
돌연 고개 돌린 이진이, 뒤를 따르고 있던 최담령과 원승환을 보고 말했다.
“최 군사와 원 비서도 짐을 따르오. 그간의 공훈담도 듣고 싶으니 말이오.”
“망극하옵니다. 황상!”
일행은 곧 건청궁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이곳에는 미리 일러둔 대로 풍성한 주안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비서진도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황제 이진은 그의 방식대로 몇 개를 이어붙인 교자상에 이들을 둘러앉히고 말했다.
“자, 그간의 고생과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짐이 한 잔씩 하사하려 하니, 그런 줄 알고 사양 마오.”
말과 함께 손수 술병을 든 황제 이진이 우선 곽재우의 잔에 술 한 잔을 쳤다. 이어 이진은 최담령과 원숭환에게도 각각 술 한 잔씩을 따라주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세 사람이 일제히 부복해 감사를 표하는 것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짓던 황제 이진이 손짓을 하니, 대기하고 있던 차비들이 황제의 뜻을 간파하고, 황제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제히 술을 쳤다.
“자, 일제히 잔을 들어 오늘의 승리를 자축합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 이진의 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 모두가 잔을 들고 황제 이진 만을 바라보았다.
“대조선제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각자의 술잔을 힘차게 부딪친 이들이 곧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잔 술을 가볍게 비운 이진이 곽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곽 장군께서는 하고픈 말이 있으면 하시오.”
“그게........!”
막상 멍석을 깔아놓으니 주저되는 곽재우였다. 자신이 아뢰기만 하면 분명 황상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곽재우가 입을 열었다.
“황상, 사실은 러시아 황녀 한 명을 진상 받았사옵니다.”
“뭣이라고?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오! 짐이 언제 여인이 부족하다고 안달이라도 났소?”
“물론 소신도 황상께서 색에 담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한 여인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장래가 달린 일이옵니다. 황상!”
“그래도 그렇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종전보다는 확연히 누그러진 황제 이진이었다.
“러시아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은 보다 안심을 할 것이고, 우리는 또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패 하나를 손에 쥐는 것이니, 물리치지 마시옵소서. 황상폐하!”
“허허, 그것 참........!”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던 황제 이진이 물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어디 있소?”
“세 여단장 보고 입궐을 시키라 했으니, 아마 지금쯤은 마차에 실려 궁 안에 도착해 있지 않나 싶사옵니다. 황상!”
“허허, 그것 참........! 이제 와서 돌려보내라 말하기도 그렇고........”
“맞사옵니다. 돌려보낸다는 것은 저들을 욕보이는 행위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옵니다. 황상!”
최담령마저 한 팔 거드니 결연한 표정이 된 이진이 말했다.
“좋소!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짐의 비(妃)로 들이되, 공식적으로 예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오.”
“황자들의 가례 날 함께 식을 올리는 것이.........”
비서 허균의 말에 노성을 지르는 이 있으니 김상헌이었다.
“어찌 아비와 자식이 한 날에........”
“그만 됐소. 공식적인 잔치는 열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러시아 황녀에게는 너무 실례가 되는 일이 될 것이니, 가까운 종친들이나 모시고 술 한 잔 나누는 것으로 합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저희들이 첩을 들이는 것도 아닌데, 일제히 부복해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어느덧 무르익어 주흥이 도도해질 무렵 곽재우가 황제 이진에게 물었다.
“한 번 보시겠사옵니까? 황상!”
“좋소! 당장 이 자리로 데리고 와 보오. 그러나 저러나 말이 통하지 않을 것 아니오?”
“그 나라 말과 청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역관 하나를 데리고 왔사옵니다. 황상!”
“하면 그와 함께 들이도록 하오.”
“네, 황상!”
답을 한 곽재우가 잠시 전각을 벗어나 이곳까지 따라온 부관에게 몇 마디 명을 내리고 돌아왔다.
잠시 후.
황상의 아낙을 본 다는 것에 대해 송구함을 느낀 제 신하들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는 곽재우와 방금 전각 안으로 들어온 루사 황녀 그리고 역관만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루사 황녀는 흰 드레스에 하얀 면사를 쓴 차림새였다. 그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이진이 곽재우에게 물었다.
“설마 추물은 아니겠지?”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러시아의 체면이 달린 일인데 설마 그 지경까지야 되겠사옵니까? 황상!”
짐짓 시침을 떼는 곽재우였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베일을 벗겨보오.”
“네, 황상!”
이제 나이 많아 퇴임한 정옥분 제조상궁을 대신해 그 직위에 오른 개똥이, 납신 대답은 했으나 과히 좋지 않은 얼굴로 황녀 루사에게 접근해 갔다.
오십 고개가 넘은 개똥이지만 은근한 질투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못 볼 리 없는 이진이었다. 내심 실소를 흘린 황제 이진이 내심 무언가를 작정하고 개똥의 손끝만 바라보았다.
이런 이진의 마음을 전혀 알 리 없는 개똥은 황제 이진을 놀리기라도 하듯 아주 천천히 면사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황녀 루사의 미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 황제 이진 또한 그녀를 처음 대면하던 곽재우와 같이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 그것 참........!”
잠시 후 정신을 수습한 황제 이진이 탄식하듯 말했다.
“여기 경국지색의 미모가 또 하나 있구나!”
“후후후.......!”
이를 보고 내심 기분이 좋아 가볍게 웃음 짓는 곽재우였다.
그러나 곧 표정을 지운 곽재우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떻사옵니까? 황상!”
“과히 천하절색이로다!”
“소신이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서운하실 뻔 하셨죠?”
“과히 그렇다마다! 하하하........!”
홍소를 터트리는 황제 이진을 보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곽재우가 물었다.
“오늘밤 바로 신방을 꾸미는 것이.........”
“아, 아니오.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니, 짐이 종전에 말한 대로 행합시다.”
“역시 황상이십니다!”
흐뭇한 웃음을 지은 곽재우가 덧붙였다.
“여간한 철심 아니고서는 행키 어려운 일이옵니다. 백이면 백, 저런 미녀를 본다면 바로 품지 못해 안달을 할 것이나, 역시 황상은 다르시옵니다. 황상!”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그녀의 심정이나 한 번 물어보오.”
“네, 황상!”
대답은 곽재우가 했으나 곧바로 묻는 자는 역관이었다.
“황상께서 지금의 심정을 말해보라는 하교가 계셨소.”
“andjfk dndfjrjflsk ehwjfgl .......”
무어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옹알거리나 알 수 없는 말이기에 역관의 입만 바라보는 황제 이진이었다.
“무척 떨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하옵니다! 황상!”
이를 듣고 황제 이진이 곽재우에게 물었다.
“시녀들은 데리고 오지는 않았소?”
“유모 포함하여 다섯 명이 함께 왔사옵니다. 황상!”
“함께 들이지 그러셨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됐소. 짐을 처음 본 느낌을 말해보도록 하오!”
곧 역관이 통역을 했다.
“웅혼하면서도 자상한 풍모에 마음이 놓인다고 하옵니다. 황상!”
“그렇다면 다행이고. 음........! 머지않아 약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합방을 할 것이라 전해주오.”
“네, 황상!”
곧 역관이 황제 이진의 말을 통역해주자, 그녀는 살짝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 또한 미모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을 터. 아마도 그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나 말거나 황제 이진은 손짓으로 그녀를 물리고 갑자기 시선을 개똥에게 향해 말했다.
“모처럼 네 방에 들 것이니, 준비하고 있거라!”
“네, 황상!”
그 나이에도 복사꽃이 되어 몸을 배배 꼬는 개똥이었다.
그날 밤.
이진은 낮에 언약한 대로 개똥의 침소를 찾았다. 궁녀에게까지 전각 하나를 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황제 이진은 세 여인에게 전각 하나를 내려 세 명이 함께 기거하고 있는 궁을 찾아들었다.
건청궁에서 가장 서쪽으로 외따로 떨어진 전각으로 춘희전(春喜殿)이라는 전각이었다. 이곳에는 퇴임한 정옥분은 물론 부제조상궁에 오른 금란까지 셋이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황제에게 승은을 입은 여인들이므로, 전각 하나를 통째로 배정했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황제 이진이 춘희전에 나타나자 곧 궁이 벌컥 뒤집어 졌다. 전 제조상궁 정옥빈이 나타는 것은 물론, 사저에서의 전담시녀에서 부제조상궁에 이른 금란에 이르기까지, 모두 버선발로 뛰쳐나와 황제 이진을 맞았다. 그 중에 개똥이 있었음은 불문가지였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자!”
“네, 황상! 은혜가 사무치옵니다. 황상!”
황제 이진보다 26세가 많아 벌써 육십 대 중반이 된 정옥빈이, 들어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리려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금란 역시 말없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개똥만은 무언가 마땅치 않은 얼굴로 황상의 용포를 잡고 말했다.
“어서 전으로 오르시지요. 황상!”
“그래. 모처럼 만의 거동이니 주안상 하나 보아, 셋이 잠시 담소나 좀 나누자!”
“네, 황상!
자신만 보러 온 줄 알았더니 두 여인을 더 챙기자 마뜩지 않은 개똥이었지만, 감히 황상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어, 곧 대답하고 아래 것들을 지휘하여 주안상을 봐오도록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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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