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82화 (182/210)

< -- 182 회: 시비르 -- >

3

황제 이진이 생각하기에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 이곳 바이칼 호부터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늦었지만 이곳까지 점령한 차제에 민족의 시원이라 생각되는 이곳에 마땅히 사당 하나는 지어져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진은 그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이 호수에서도 가장 큰 섬인 알혼 섬에 누각을 짓도록 명했고, 얼마 전에 완성이 되어 그 제사를 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바이칼 호는 2500만 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호수요,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또한 저수량이 2만 2000㎦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이런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Olkhon) 섬이었다. 알혼 섬은 호수 내에 위치한 섬으로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즉 제주도 반 정도의 크기였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이곳 원주민인 부랴트인의 말로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에 상징물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이진은 급히 공사를 감행하게 했고, 완공되어 이제 제사를 모시려함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진은 전혀 여자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목욕재계까지 마쳤다. 섬의 정상에 선 황제 이진은 제 신하들을 이끌고 금빛 화려한 누각으로 향했다. 누각 정면에는 ‘삼성사(三聖祠)’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즉 천제(天帝)인 환인(桓因), 그의 아들 환웅(桓雄) 또 그의 아들인 단군천왕(壇君天王)을 배향한 사당이라는 뜻이었다. 이진이 제 신하들을 이끌고 누각 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커다란 세 분의 초상화였다.

위엄 있으면서도 자애한 세 분 성조께 가볍게 고개를 숙인 이진은 곧 고색창연한 청동향로에 눈길이 멎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세 발 달린 청동 향로에는 이미 향이 피워져 파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상에는 많은 과일과 풍성한 제 기물들 또한 차려져 있었다.

황제 이진은 세 분 성조께서 내려다보시는 가운데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손수 세 개의 향을 새롭게 살라 청동 향로에 꽂았다. 그러자 내각수보 유성룡이 제주를 따라 그에게 받쳤다.

이를 받아든 이진은 세 번 향불 위에 돌리고 상위에 놓게 했다. 그리고 세 번의 큰절을 올렸다. 이어 제 신하들이 일제히 절을 올리는 가운데, 이진은 미리 작성해온 축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옛날 환인천제의 아들 환웅이 자주 세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시다.

환웅천왕께서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셨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비니,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며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먹고 근신하길 3·7일(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니 곧 웅녀(熊女) 이시니라. 웅녀께서는 혼인해주는 이가 없었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시니라.

누천년이 지난 작금 민족의 열린 날을 읊고 되돌아봄은 용렬한 자손들이 비로소 민족의 시원이 열린 신시(神市)에 이르렀으니 그 죄를 빌려 함이 그 첫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함이 그 둘째니라. 비록 차린 것 없는 소찬(素餐)과 한 잔의 제주(祭酒)일 뿐이오나 세분 성조께서는 부디 강림(降臨)하시어 음향(飮饗)하여 주시옵소서! 하옵고 굽어 살피시어 못난 후손들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시옵소서!”

읽기를 마친 이진은 곧 신하들과 함께 제주를 나누어 마시고 사당을 빠져나왔다. 발밑에는 바다와 같이 드넓은 푸르른 호수가 따사로운 햇살아래 펼쳐져 있었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나 된다는 호수답게 정말 맑고도 깊었다.

이를 내려다보는 이진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파문이 일었다. 끝 간 데 없는 웅심이었다. 이제 비로소 속속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상의 모든 영토를 점령하여 발치 하에 두고픈 욕구였다.

수난의 민족사를 생각하니 그런 욕심이 끝없이 끌어 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시시각각 변한다는 이곳의 날씨도 오늘만은 이들의 정성에 감복했는지 계속 좋기만 했다.

그리고 새삼 호수를 둘러본 이진이 말했다.

“앞으로 이 호수를 ‘천지호(天地湖)’ 또는 밝달호로 명명하니 그렇게 부르도록 하오.”

“네이, 황상!‘

모두 궁신하는 가운데 이진은 천천히 옥보를 옮겨 하산하기 시작했다.

선착장에 도착한 이진은 곧 대기하고 있던 검박한 누선에 올랐다. 뒤를 따라 제 신하들이 몸을 싣자 배는 천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진이 ‘천궁(天宮)’으로 명한 이궁에 들어오니 곧 번잡한 일상이 펼쳐ㅤㅈㅓㅆ다.

어디가나 그가 선 곳이 곧 조정이나 다름없었기에 곧 비서실장 송익필이 마침 올라온 곽재우의 장계를 들고 온 것이다. 이를 읽어본 이진은 곧 각료회의 소집을 명했다. 채 일각이 지나자 제 대신들이 모였다는 전갈이 왔다.

이진은 곧 어전에 임해 입을 열었다.

“곽재우 대원수의 장계를 읽어보니 러시아가 심히 어지럽소. 차제에 러시아까지 아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고자 하는데 제 대신들의 고견을 들어봅시다.”

“하면 또 전쟁 아닙니까? 아니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확전 아니옵니까? 황상!”

재무대신 김신국의 물음에 이진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느낀 소회도 있고 해서 주저 없이 시인한 이진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황상!”

재무대신 김신국의 이의제기에 이진이 노여운 눈으로 시선을 번뜩였다.

“한마디로 재정이 엉망이옵니다. 황상! 매해 큰 병력을 움직이니 신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황상! 황상이나 제 대신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전쟁이 몸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드는 전비로 말미암아 한 성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나라 전체가 기울 판입니다. 황상!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상!”

“것 참.........!”

입맛을 다시던 내가 이의 제기를 했다.

“해마다 새로 점령한 땅에서 조세가 올라오고 있질 않소?”

“그 수입만으로는 그들 치닥거리에도 벅찬 지경이옵니다. 황상! 하니 차제에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원정 나가있는 군까지 불러들이는 것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황상!”

“것 참........!”

내가 다시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내각수보 유성룡마저 입을 열어 재무대신의 말에 찬동발언을 했다.

“재무대신의 말이 가한 줄 아뢰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상 폐하!”

이를 따라 제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 꿇고 간하니 나로서는 난처한 지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천정을 주시하고 있던 내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다! 나라의 재정이 그 정도로 급박하다면 안 되는 일이니 아메리카에 나가 있는 원정군 모두를 불러들이도록 하라! 단 소규모 전쟁은 계속해 우리의 국력이 어디까지 뻗치는지 시험하겠다. 또 소규모의 전쟁이라도 거기에 드는 전비는 현지 마련을 원칙으로 하겠다. 그렇다고 현지인을 착취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체 수입원을 찾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줄 알고 마음을 놓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나의 이런 결정으로 인해 러시아 스트로가노프 가문에 대한 일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전쟁이 더욱 확대되면 러시아 원정까지 고려했던 나의 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 나는 제 대신들을 물리고 곧 나는 비서들만을 모아 긴급 논의에 들어갔다. 의견이 백출했고 그중에서 나는 타당성이 있는 것만 몇 개 골라 곽재우에 참조하도록 하라며 비답에 적어내려 갔다.

* * *

한편 황제 이진이 내린 비답을 읽어 본 곽재우는 잠시 혼자 앉아 숙고를 했다. 그리고 제장들과 모사에 이어 관계있는 자들까지 불러들였다. 여기서 관계있는 자라 함은 스트로가노프  가의 니콜라스 루츠는 물론 금번 전쟁에서 패한 바 있는 알 마크까지였다.

“황상의 칙명이 내려왔소. 해서 말하거니와 니콜라스 루츠는 가서 전해라. 황상께서는 너희 가문에서 제안한 모피산업을 허한다 하셨다. 단 우리는 모피 수집을 맡고 너희들은 판매를 맡되, 그 이익 배분은 최소 6:4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하니 이를 통보하고 회신을 받아 오너라.”

“네, 장군님!”

그가 물러가자 곽재우의 시선이 이번에는 알 마크에게 향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의 시비르 원정을 본 장이 품신한 바, 황상의 허락이 계셨다. 이를 어찌 생각하느냐?”

“맡겨만 주신다면 제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 드넓은 시비르 땅을 차례로 점령하여 모피를 수집해 옴은 물론 정복한 땅은 모두 조선의 영토로 편입시키도록 하겠사옵니다.”

“하하하........! 역시 그대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황상께서는 그대의 작위를 계속 인정해주심은 물론 점령한 땅의 일부를 너희 영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언질도 주셨다. 단 공국이라는 국명 하에 조공은 해마다 행해야 된다는 단서 조항도 계셨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장군!”

“그 뿐만 아니다. 정복한 땅의 백성들에게는 조선에서 생산된 철제 사냥도구 외 여타 물품은 물론 담배, 술도 함께 판매해 아군의 전비로 삼으라는 말도 계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것들은 우리가 상인들은 보호해줄 테니, 그들을 시키심이 어떠십니까?”

“바로 그 말이다. 너희에게 장사까지 하라는 말은 아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부하 1만 명만 엄선해 데려가도록!”

“알겠습니다. 대원수님!”

비로소 정식 호칭을 사용하며 고개를 숙이는 알 마크였다.

여기서 잠깐 위에 언급된 말 중 시비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시베리아(Siberia)의 어원이 되는 말로, 원래 시비르(Sibir)는 타타르(Tatar)어로 ‘잠자는 나라’라는 뜻이다. 타타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시베리아는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고장이었다.

시베리아에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였으나 북부의 주민은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침체상태에 있었으며, 아직도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유목문화 생활을 하면서 청동기 문명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진은 이들에게 철제 칼이며 솥 등 생활용품은 물론 잘 순치된 부족에 한해 철제 사냥 무구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들의 생활상을 이진이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한 때 이진은 아무르 강 이남을 점령한 신립 장군에게 명해, 강 이북의 땅도 한때 점령하도록 명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곧 바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정복 사업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때 파악한 실상으로 인해 이런 명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들 모두가 나가자 곽재우는 아까부터 눈을 빛내고 있는 카춤 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께서는 기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점령한 이 땅을 중심으로 이 일대 모두를 그대들의 영토로 인정해주셨소. 단 당신들은 대조선제국의 일원으로서 공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이며, 해마다 조공을 행해야 한다는 말씀도 계셨소? 어떻소? 수용하겠소?”

“황상의 칙유에 따르겠사옵니다. 대원수님!”

카춤 칸이 고개를 숙이자 대소한 곽재우가 말했다.

“하하하........! 나에게 감사를 표할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주신 황상께나 하시오.”

“네, 장군님!”

곧 카춤 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쪽을 향해 세 번 절하는 것으로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때 절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으니 재사 야율성률 이었다. 그 또한 함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에 감사를 표했다.

------------------------------

============================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