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70화 (170/210)

< -- 170 회: (수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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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왜왕 이하 스스로 결박 지은 이들의 행렬이 이순신 대 제독 앞에 도착했다. 이를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보던 이순신이 측근에 있던 자들에게 명했다.

“모두 결박을 풀어주어라. 그래도 일국의 왕이 아니 더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줌이 맞다.”

“네, 장군님!”

측근 장교의 지휘 하에 왜의 항복 인사들에 결박 해지가 한동안 진행되었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신충일이 한마디 했다.

“스스로 오라를 진 자들이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매처럼 눈이 매섭고 담대한 면이 있어 오늘의 지위까지 오른 신충일이었다. 그런 그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대에게 관용을 베풀 국량은 애초부터 지니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게, 이 사람의 정확한 인물평일 것이다.

그에 반해 이순신은 대인대의(大仁大義)한 사람으로 신충일의 협량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 여기서 거론하는 자체가 낯 뜨거운 일일 것이다. 아무튼 신충일의 말에 이순신이 온유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항복한 사람들일지라도 지위에 맞게 예우하는 것이 맞소.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맙시다.”

“알겠습니다. 대 제독!”

신충일이 비록 장관의 지위에 있으나, 그 위상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 차이이므로 금방 이순신의 말에 수긍했다.

“이들을 어찌 처리하실 런지요?”

“황상의 뜻이 자금성으로 압송하여 그곳에 상주케 하는 것이니, 곧 선편을 이용해 모두 북경 성으로 보낼 것이오.”

“항복한 군사들은 요?”

“그들은 당분간 휘하에 두고 본국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소이다.”

“알겠습니다.”

이들의 대화대로 곧 일 처리가 진행되었다. 군선 천여 척의 보호 속에 실려 왜왕 이하 왜의 중요 인물이 북경성으로 향하고, 항복한 왜병들은 수군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제반 조치를 취한 이순신은 10만의 병력을 교토에 주둔시켜 치안을 확보하는 한편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에도 성으로 향했다. 그 시간 에도 성에서는 이제 막바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보군까지 진격을 하자 아니래도 상대가 안 되는 싸움에 겁을 먹고 있던 왜병들 대부분이 투항 쪽으로 기우는데, 이를 총 지휘하던 도쿠가와 히데타다 또한 타인에 의해 영어되는 몸이 되고 말았다.

히데타다 또한 사정을 해도 성문이 열리지 앉자, 일부 휘하들과 무조건 달아나는데 이를 쫓던 일부 기병들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수렵으로 다져진 여진족 기병들로 이들은 무조건 대장기만 바라보고 쫓았다.

이윽고 천여 명에 에워싸여 달아나는 이들을 따라 잡은 삼백여 명의 여진족 기병들이었다. 이들은 무조건 대장기를 향해 쇄도했다. 이에 총대장을 지키고자 달아나면서도 조총으로 응사하는 왜병들이었다.

따라서 히데타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수십 명이 낙마를 했지만, 나머지는 기어코 천여 명의 왜병들을 제치고 히데타다와 마주하였다. 말이 통하겠는가? 불문곡직 돌진한 한 소부족장이 백마 위의 금장 투구를 쓴 히데타다에게 그들 특유의 무기인 마삭을 던졌다.

백발백중.

어려서부터 달아난 망아지를 옭아 메는데 쓰던 마식 던지기가 대어 히데타다에게 던져진 것이다. 인간 히데타다의 행동이 어찌 달아나는 망아지보다 빠를 수 있을 손가!

‘컥!’

마삭이 졸려지자 외마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마상에서 지상으로 나뒹구는 천하를 호령하던 왜장 히데타다였다.

이에 왜병들이 ‘주군!’ ‘주군!’ 소리를 연발하며 그를 구하려 달려드나, 나머지 여전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가로막으니, 히데타다가 개 끌려가듯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전혀 없었다.

“주군!”

“주군!”

목메어 부르는 왜병들의 목을 파고드는 것은 여진병사들의 긴 창 뿐. 그래도 어느 왜병 하나가 필사적으로 접근하여 헤데타다의 부근까지 다다랐으나 그 역시 다른 여진 병사가 던진 마삭에 걸려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여유가 생긴 히데타다를 생금한 여진족 소부족장이 말 위에서 예의 긴 팔을 뻗어,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히데타다를 마상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가 외쳤다.

“가자!”

와아........!

“왜장을 생포했다.”

여진족 기병들이 환희에 들떠 마상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창을 흔드는 그 순간 울분을 참지 못한 왜병 몇 병이 그들의 뒤에서 조총을 난사했다. 이에 뒤를 따르던 여진 병사 몇 명이 낙마하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분노한 여진족 병사들이 다시 말을 돌려 일제히 쇄도하니 이제는 뿔뿔이 달아나기 바쁜 왜병들이었다.

그 순간에도 히데타다를 생포한 소부족장을 중심으로 그 부하들이 일제히 본영으로 귀환하며 외치기 시작했다.

“적장을 생포했다.”

“적장이 생포되었다.”

여진 말을 알아들은 일부 조선 병사들이 이에 합세하고, 또한 이 말을 항복한 왜병들에게도 외치게 하니, 온 전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이 일각 정도 더 지속되자, 이는 피아의 전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전투에 응하던 왜병들마저 무더기로 무기를 버리니 곧 에도 성 밖은 평온을 찾게 되었다. 이 시간 에도 성 내의 천수각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이에야스 또한 정말 낙망하고 말았다.

온 몸의 기력이 한꺼번에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마는 그였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 이룬 오늘날의 성업이, 성공 바로 직전에서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에야스였다.

대경한 측근에 의해 나무 의자에 앉혀진 이에야스였지만 이후로 이에야스는 반 정신이 나가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전장 정리가 한창인 그 시각, 에도 성 내 한 전각에서는 히데요리 측근들이 모여 한창 회의를 하고 있었다.

논제는 항복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이 항복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옥쇄를 각오한다 해도 문자 그대로 옥쇄일 뿐. 한 오라기의 승산도 없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신의 소유자라면 모두 항복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흐흠.........!”

17세의 소년답지 않게 깊게 침음하는 히데요리의 안색은 창백했고, 공허한 눈은 이따금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곧 그가 그 시선 그대로 중얼거리듯 가신들에게 물었다.

“정녕 그 길 밖에 없겠소?”

“그렇사옵니다.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평생 모시던 가로가 옛 시절을 추억하듯 히데요리를 ‘태합’이라 칭하며 서글픈 기색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태합!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일전을 불사하는 것이 차라리 항복보다는 나을 것이옵니다. 항복해 목숨을 부지한들 어디 그게 산목숨이겠습니까?”

한 가로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히데요리의 표정이 돌연 결연해졌다.

그러나 이 모양을 보고 있던 다른 가로가 급히 아뢰었다.

“승산도 없는 싸움을 해, 애꿎은 병사들과 백성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수장으로서의 취할 바가 아닌가 하옵니다. 태합!”

“흐흠........!”

다시 표정이 흔들리며 갈팡질팡하는 히데요리였다. 그러던 그가 후회스러운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진즉 조선 사자의 말을 들을 걸. 공연한 싸움은 해가지고 처지만 더 옹색해지지 않았소? 하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말에 미혹된 본관의 잘못이지,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소!”

끝내 고개를 떨구는 히데요리를 보는 가신들의 가슴이 찢어졌다.

뜻있는 가신들의 눈에 비분강개한 굵은 눈물 비오듯 흐르는 속에서 곧 곳곳에서 흐느낌이 쏟아졌다. 차라리 남을 원망하며 호통이라도 치는 주군이면 낫겠는데, 유약한 주준은 스스로를 탓하며 고개를 떨구니, 장내는 온통 사내들의 흐느낌으로 들썩였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제일 먼저 진정을 한 노가신이 아직도 잠긴 음성으로 권했다.

“태합!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입니다. 항복하시어 뭇 생령들이나 구하소서.”

노 가신의 말에 갑자기 고개를 번쩍 치켜든 히데요리의 눈이 희번뜩이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충혈 된 눈이 광기로 번뜩이고 있는 것이다. 조울증 환자처럼 수시로 변화무쌍한 감정을 노정하는 히데요리의 모양새였다. 그런 그가 악을 쓰듯 외쳤다.

“정녕 이렇게 무기력하게 항복해야 하는가?”

“세궁역진한 이 상황에서는 정녕 전년의 태합이 살아오신다 해도 이제는 대책이 없사옵니다.”

“정녕 그렇다는 말인가?”

“.........!”

더 이상 대답을 않고 모두 처연한 표정으로 히데요리의 표정만 주시하는 가신들이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히데요리가 외쳤다.

“좋다! 그냥 항복하기보다는 항복 사절을 파견해, 조건을 논해보도록 하자.”

“잘 생각하셨습니다.”

곧 죽더라도 ‘짹!’ 소리는 한 번 내보고 죽자는데, 이마저 거부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 같아, 늙은 측근 하나가 찬동 발언을 하니, 잠시 후 스스로 이들의 굳게 닫혔던 성문이 열렸다.

이때 이미 이에야스는 반 정신이 나가 온전한 사람이 아닌데다, 성안의 군사 대부분이 그의 군사였기에 어렵지 않게 성문이 열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히데요리를 대표한 항복 사절이 대원수 신립 진영을 찾았다.

그 시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처소. 곧 측근 하나가 와서 고했다.

“히데요리 진영에서 항복사절을 적진에 파견했사옵니다. 주군!”

“뭣이.........!”

지금까지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하던 이에야스가 돌연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방금 보고한 측근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정녕 그 말이 사실이더냐?”

“틀림없사옵니다. 주군!”

“허허허........! 내 생애의 말년에 어찌 이런 비극적인 일이........!”

곧 뇌전처럼 타오르던 안광이 푹 꺼지며 고개까지 떨군 이에야스가 중얼거리듯 한 말이었다. 그 자세에서 한참을 그렇게 있던 이에야스가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다다미 문을 보고 중얼거렸다.

“정녕 한 줌의 승산도 없을까?”

“히데요리 진영마저 항복을 자처한 마당에는 백이면 백 전패뿐이옵니다. 주군! 차라리 함께 항복하여 치욕이나 면하시옵소서! 주군!”

“항복보다 더한 치욕이 어디 있느냐?”

여전히 그 자세에서 뇌까리듯 반문하는 이에야스의 물음에 고개를 떨군채 아무헌 말을 못하는 측근이었다. 이런 그를 고개 돌려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에야스가 돌연 광태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온통 쥐어뜯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 것이다.

“카카카.........!”

“크크크.........!”

“꺽꺽꺽..........!”

끝에 가서는 마치 귀신의 곡성 같던 웃음소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잠시.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번쩍 치켜든 이에야스의 얼굴은 뜻밖의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눈동자이나 표정만은 마치 득도한 고승처럼 욕념 하나 없이 평화로웠다.

그런 그가 울림 있는 낮은 목소리로 젊어서부터 그를 따랐던 측근 가신에게 말했다.

“계절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사람의 인생행로도 마찬가지. 예측할 수 없는 길흉화복의 운명 속에 많은 것을 이룬 나날이었다. 이제 와서 한 점 미련이야 없겠냐마는, 마치 동백이 온몸을 던져 지듯, 이제는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질 때. 여기서 더 이상 미련을 떤다는 것은 추함만을 자초하는 것이다! 준비 하여라!”

“주군! 큭큭큭.........!”

가신의 흐느낌에도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이에야스는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녕 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하겠느냐?”

“주군! 엉엉엉.........!”

오히려 더욱 소리 내어 흐느끼는 측근 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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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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