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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164화 (164/210)

< -- 164 회: 전운(戰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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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따로 노는 것 같아도 아군의 움직임은 하나 하나 자금성에서 기획된 작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전의 실체를 각 예하 단위별로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작전은 북쪽을 지휘하는 권율, 저력토를 상대하는 곽재우만이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다만 상부에서 내려온 명에 따를 뿐이었다. 어쨌거나 충순왕 소낭태길의 추격이 뜸해지자 할하 부족의 카라쿠라 군은 비로소 한 숨 돌리며 군대를 점고할 수 있었다. 쫓기느라 방향도 분간할 수 없어 사방을 둘러보니, 크고 작은 구릉이 연이어 이어져 있는 대 초원지대였다.

비로소 전마에게도 풀을 뜯기며 현재 남아 있는 인원을 파악해 보니, 4만이 채 안 되는 군사로 삼분의 일이 넘게 줄어있었다. 그래도 끝내 적의 추격이 급박하지 않아 이 정도라도 살아남았다고 위안하며, 카라쿠라는 오늘 따라 유독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때였다.

펑! 하는 일성 포향과 함께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이 전방에서 일었다.

와아........!

놀란 카라쿠라가 한 옆에서 풀을 뜯고 있던 전마에 올라타며 고함을 질렀다.

“전투 준비!”

쫓기느라 정찰대 하나 꾸리지 못하고 적의 추격이 멎자 방심한 것이 큰 실책이었다. 적은 벌써 코앞에 짓쳐들고 아군은 말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와아.........!

재차 함성이 크게 일며 같은 몽골족의 하나인 찰합이 부족이 자신들을 행해 달려들고 있었다. 충의왕 구유크가 지휘하는 3만 기마였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줘라! 그렇지 않은 자는 모두 죽여라!”

용감하지 않으면 부족장이 될 수 없다. 전사로 거듭난 충의왕 구유크가 선봉에 서서 적의 사기를 꺾는 말을 하며 닥치는 대로 베고 또 베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만인장, 천인장, 백인장 할 것 없이 모두 몸을 사리지 않고, 채 전마에 올라타지도 못한 적을 충살해나갔다. 한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지는 카라쿠라 군이었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죽여라! 죽여!”

만인장 몽케 역시 사납게 날뛰며 적을 찌르고 베어나갔다. 용기백배한 구유크의 군사들이 미친 듯인 날뛰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카라쿠라 군은 대부분이 채 전마에 올라타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땅위에 서서 대항을 하니 보군이나 진배없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카라쿠라 군사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용감한 몽골 전사들이었지만 라마교를 믿는 것을 기점으로 그 용감성이 한풀 꺾인 데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은 이들의 전의(戰意)마저 앗아가 버렸다.

곳곳에서 카라쿠라 군사들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욱 광분하며 날뛰는 카라쿠라였다.

“너희들 부모형제가 기다리고 있다. 싸워라! 싸워! 승리를 쟁취해 그들을 만나러 가자!”

“젠장 죽으면 그만인데, 만나긴 누굴 만나!”

칸 카라쿠라의 독전에 발분하는 병사가 있는가하면 투덜거리며 창을 내던지는 자도 있었다. 이런 싸움이 2각 정도 더 전개되자 카라쿠라 군사들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미 반은 벌써 항복을 했고, 사분의 일은 전사. 나머지 1만 정도만 악착 같이 대항하나 전세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구유크가 일직선으로 내달았다.

“전하!”

이에 놀란 만인장, 천인장 및 호위 군사들이 황급히 그를 뒤쫓았다.

구유크가 향하는 곳은 놀랍게도 적장 카라쿠라가 분투하고 있는 곳이었다.

“쏴라!”

“적장을 향해 쏴라!”

달리는 말 위에서도 능숙하게 활을 쏠 수 있는 이들이기에, 한 덩어리가 된 무리들 모두가 카라쿠리 무리들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퍽!

그 중의 화살 하나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적장 카라쿠라의 왼팔에 가서 꽂혔다. 이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화살을 빼어내는 카라쿠라였다. 그 순간 또 한 발의 화살이 그의 안면 뺨에 꽂혔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낙마하는 카라쿠라였다.

와아........!

“적장이 꺼꾸러졌다!”

“적장이 죽었다!”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의 입에서 함성과 함께 서로 서로 사기를 북돋는 말이 쏟아지고, 적은 물론 항복병들 마저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록 자신은 항복했으나 칸은 살아남아 돌아가기를 원했건만, 오늘 이 자리에서 부족의 영화가 끝난다는 것을 직감한 병사들의 탄식이 온 초원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칸의 호위무사들이 시신인지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를 칸의 육체를 내주지 않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수없이 쏟아지는 창질과 난무하는 도검뿐이었다.

주위의 풀밭이 피로 축축해져서야 저항하던 호위 집단도 해체되고, 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백인장 하나에 의해 카라쿠라가 말 잔등에 태워졌다. 이 과정에서 아직 살아있는지 꿈틀거리는 카라쿠라였다.

“살 수 있으면 치료해 줘라!”

충의왕 구유크의 말에 종군하던 의원 하나가 급히 그의 용태를 살폈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전하!”

“그럼, 살려라!”

“네, 전하!”

구유크가 비로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전투는 멎어 있었다. 카라쿠라가 낙마하는 시점을 기점으로 호위 집단만이 저항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전의를 잃고 항복을 자청한 까닭이었다.

“전장을 정리하라!”

“네, 칸!”

몽골의 풍습을 유지하길 원하는 자들 가운데는 때로 구유크를 그렇게도 불렀다. 이때 건듯 바람이 불었다.

피 비린내가 온 초원을 쓸고 지나갔다. 전쟁이 끝나자 비로소 피 냄새마저 맡아지는 것이다. 아직 대부분의 병사들 심장은 무섭게 뛰고 있었고, 안색은 술에 취한 듯 붉어져 있었다. 그러나 부교감 신경은 이를 억제하느라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 냄새가 맡아지는 모양이었다.

곧 항복한 병사들이 분리되었다. 중경상자가 가려지고 멀리 달아났던 전마를 불러들이는 자들도 있었다.

“휴.........!”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는 못하고 외따로 떨어진 구유크가 비로소 긴 숨을 불어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푸른 하늘이었다. 때로 전쟁이고 부귀영화고 덧없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구유크였다.

오늘과 같은 큰 전투를 치르고 나면 알게 모르게 몸살을 앓는 그였다.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육체에 공허한 정신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칸! 적 사상자 12, 367명에, 포로가 26,500명이옵니다.”

“수고했다.”

“이제 고향으로 귀대하는 것입니까?”

만인장의 물음에 잠시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던 구유크가 답했다.

“전령의 잇단 보고에 의해 이들의 행방만 알았을 뿐, 아직 다른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 잠시 기다려 보기로 하자. 또 전령이 나타나겠지.”

“알겠사옵니다. 칸!”

복명하고 물러나는 만인장 몽케의 안색도 좋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우리 부족이 남의 명에 의해 움직이는 용병집단이 되었는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대화를 듣기라도 했는지 남북 양쪽에서 동시에 전령이 들이닥쳤다.

남쪽 충순왕이 보낸 전령은 전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전령인 반면에 권율이 보낸 전령은 달랐다. 권율의 지시를 받고 온 전령이었다.

“전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입에 발린 전령의 말에 구유크는 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권율 장군께서 말씀하시길 내일이면 이곳에 당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보고 오늘은 이곳에서 숙영을 하고 있으라는 말이군.”

“그런 뜻으로 들었습니다. 전하!”

노련한 전령이었다. 어쨌거나 상대가 왕의 신분인바, 조선군 장수의 명령을 받는 인식을 가급적 안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전령이 기특한 규유크였다.

“자네는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소졸은 전하께서 승리했을 경우만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하........! 참으로 말을 어렵게 하네만, 가세! 자네가 마음에 들었네. 오늘 밤은 마유주라도 한 잔 하고, 그간의 노고를 풀게!”

“소졸이 감히..........”

“사양 마시게. 비록 자네의 임무가 전령이나, 똑똑해! 장차 빠른 출세를 할 걸세. 조선에는 인재도 많아 하다못해 전령마저도 이 정도이니.........”

끝내는 탄식으로 전령을 이끌고 급히 쳐진 겔 안으로 들어가는 구유크였다.

* * *

다음 날 이었다.

채 풀잎 위의 이슬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규모의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권율이 거느린 4만의 조선 기병이었다.

혹시 몰라 정찰대를 운영하고 있던 구유크는 미리 장막 밖에 나와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권 장군!”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결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권율의 인사에 가볍게 웃은 구유크가 물었다.

“모든 군사들이 식전이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따로 취사를 하지 말고 보르쓰를 끓이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 하세요.”

“고맙습니다. 전하!”

보르쓰.

징키스칸이 그토록 대외정벌을 활발히 펼칠 수 있었던 몽골 특유의 음식이었다.

보르쓰 라는 음식은 유목민들이 전쟁 시에나, 유학생들이 해외로 나갈 때 꼭 가지고 가는 음식이었다. 겨울에 소를 잡아서 고기를 지하창고에 냉동시켜 건조 시킨다. 이를 건조에 건조를 거듭하면 딱딱하게 아주 작아진다.

이것을 작은 절구에 넣어 찧고 또 찧어, 건조된 소의 방광에 넣는다. 그러면 한 마리의 소고기 분량이 한 개의 방광에 다 들어간다. 이 작은 덩어리 한 개를 꺼내어 솥에 넣고 끓이면 양이 무진장 불어난다.

하지만 이 보르쓰 끓일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꼭 찻잎을 함께 넣는다는 것이다. 여름에 채집하여 건조한 찻잎이 그것이다. 아니면 비타민C 부족으로 모두 괴혈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권율은 구유크의 도움으로 번거러움을 피할 수 있어 좋았다.

권율이 구유크의 뒤를 따라 장막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이번 정벌 전에 승리를 하면, 그 땅을 전하께 하사하신다는 언질이 있었습니다. 단 포로들과 전마 5천 필을 그 대가로 달라하셨습니다.”

“하하하.........! 그 넓은 땅이 다 과인의 차지인데 그깟 전마 5천 필이 아깝겠습니까? 정작 아까운 것은 일껏 잡은 포로들이죠.”

끝내는 입맛을 쩍쩍 다시는 구유크였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요긴하게 쓸 때가 계신 듯 했습니다.”

“쩝쩝........!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노동력도 중요하지만 황상의 은혜로 가외 소득을 얻었으니 만족해야죠. 뭐!”

“전하께서는 상당히 솔직하십니다. 그려.”

“과인은 속에 무엇을 숨기고 사는 게 아주 싫소. 속내를 다 내 보여주기 때문인지 몰라도, 과인을 배반하는 사람이 제일 싫고, 의리 있는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오.”

“그건 인지상정 아닙니까?”

“유독 과인이 더 하다는 말이죠.”

“그러시군요.”

“자, 권 장군! 비록 아침이지만 마유주 한 잔 합시다.”

“네? 뭔 술을 아침부터!”

“황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올리는 잔이니 사양 마오.”

이렇게까지 나오니 더는 뺄 수도 없는 권율이었다. 이렇게 되어 얼결에 아침부터 술타령을 하게 된 권율은, 모처럼 낮술에 취해 벌건 얼굴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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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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