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5 회: 전운(戰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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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하 3부의 각 부족을 점령하던 권율 휘하의 보군은 그의 지시에 의해 그대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은 황제 이진의 명에 의해 충의왕 구유크에게 하사된바, 이들의 주된 임무는 카라쿠라 군의 귀환을 이끌어내는 것이었으므로, 목적을 달성한 이상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의식을 회복했지만 아직은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한 카라쿠라를 위해서라도, 또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보군이 모이길 기다리기 위해서라도, 그곳에서 7일을 더 머무른 권율 군은 청해성 쪽의 전황에 신경을 쓰며 감숙성 쪽으로 남하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 청해성 방면을 담당했던 곽재우 군단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틈왕 이여송의 군대와 아군 보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장왕 저력토가 부족민들도 팽개치고 티벳으로 달아난 이 시점에서 그는 여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청해에 발을 들이기 이전에 누루하치 대신 절강에서 운남으로 옮겨 온 낭패아한과 귀주 성의 기병에 의해, 쓸 만한 부족들과 전마는 이미 이들에 의해 빼돌려진 바, 그의 임무는 사실상 임무는 완수했다 할 수 있었다.
곽재우가 여유롭게 이여송의 보군을 기다리고 있자니 마침내 그들이 당도했다. 조선 보군과 함께였다. 전령으로부터 이들의 도착을 미리 통보받은 곽재우는 예의상 그를 나가 맞았다.
“어서 오세요. 틈왕 전하!”
“고맙소이다. 장군! 장군이 아니었으면 우리 군이 자칫하다가는 큰 피해를 입을 뻔 했소이다.”
“별 말씀을.........!”
겸양한 곽재우가 안쪽 팔을 벌려 안내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말했다.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본 장의 천막으로 가실까요?”
“그럽시다.”
예하 금군대장이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지만 이여송은 이를 뿌리치고 덤덤한 얼굴로 곽재우의 뒤를 따랐다. 이들이 자신을 죽이려 생각했으면 저력토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자신을 해할 마음이 없다고 판단한 이여송의 여유였다.
아무튼 이여송이 곽재우를 따라 중군 천막 한 옆에 자리를 잡으니 비록 진중이지만 차가 나왔다. 이 여송이 뜨거운 차를 훌쩍거리고 있는데 곽재우가 말을 꺼냈다.
“전하께 양해를 구할 일이 있사옵니다.”
“무엇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오? 장군!”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묻는 이여송이었다.
“전하가 통치하던 사천과 섬서는 이미 아군 보군의 일부가 접수를 마쳤습니다.”
“뭣이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뜨거운 차를 용포자락에 쏟았지만, 육체의 뜨거운 고통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더 큰 까닭에 미처 느꺼움도 느끼지 못하는 이여송이 대경한 얼굴로 재우쳤다.
“다시 한 번 말해보오.”
울으락 붉으락 칠면조 빛깔의 얼굴이 된 이여송의 물음에 곽재우는 여전히 침착한 모습으로 종전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 뇌였다.
“전하의 땅을 아군 보군 일부가 점령을 마쳤다 했소이다.”
“이런, 의리 없는.........”
“황상 폐하께서도 그간 많이 참고 봐준 것으로 아오. 하니 그 땅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시고, 서장을 함께 점령하여 그 땅을 통치하시는 것으로 합시다.”
“그것이 황상의 뜻이오?”
“황상의 뜻이라기보다는 밑의 참모들의 의견인 것으로 압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선을 위해 싸운 우리를 위해 기안한 안이 고작 그것이오?”
황제 이진을 여기에 연루시키면 그를 설득하는데 빠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최후의 패가 사라지는 것이다. 만약 일이 그릇 될 때는 황제의 명을 들먹여 다른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곽재우가 에둘러 말한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시행되어 번복될 수 없는 사항이니 전하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서장으로의 진공 작전이나 논의합시다.”
조금은 더 고압적으로 나가는 곽재우였다.
“후휴.........!”
긴 한숨과 함께 머리를 절레절레 내젓는 틈왕 이여송이었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 따라서 곽재우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그의 거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인상을 찌푸리며 고뇌하던 이여송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서장을 우리가 온전히 취할 때까지는 장군께서는 함께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곽재우의 말에 비로소 안색이 조금은 풀린 이여송이 고개를 갸웃갸웃 하더니 물었다.
“이 땅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모르긴 몰라도 충순왕에게 지급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린 그럼 뭐요?”
버럭 고함을 지르는 이여송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아무 변화가 없는 곽재우의 얼굴이었다.
“조선을 위해 다 같이 충성한 것은 같지 않소?”
“시종 저들은 우리를 배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중간에 황상 폐하의 뜻을 한 번 거스른 적이 있는 것으로 소장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허허........! 그 깐 일을 가지고........”
“..........”
더 이상 대꾸를 않는 곽재우였다.
“그렇게 이미 결정이 되었다면 다 죽은 놈 불알 만지기이니, 그 문제는 치우고, 어떻게 서장을 점령할 참이오?”
“지금으로서는 딱히 결정된 것은 없고, 그들의 대응에 따라 응변해야죠.”
“알았소. 어쨌거나 지금까지 강행군을 하느라 양쪽 군사 모두 피곤하니, 내일 진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내일 봅시다.”
“배웅해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소.”
아직도 노화가 남았는지 곽재우의 말을 거절하는 이여송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재우는 따라 일어나며 그를 장막 밖으로 바래다주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저녁 일찍 취침에 든 병사들이 새벽 일찍 밥 지어 먹고, 동이 틀 무렵에는 양군 도합 25만의 병사가 일로 서장을 향해 쾌속 행군을 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서장으로 달아난 저력토는 포달랍궁으로 서장의 활불을 만나러 갔다. 당연히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꼬드길 때는 언제고 상가집 개꼴이 되어 만나러 오니, 만남 자체도 쉽지 않은 달라이 라마였다.
다섯 잔의 찻잔을 비우고서야 합장한 활불을 대할 수 있는 저력토였다.
“이렇게 될 줄 알고 본 왕이 거절했거늘.........”
“벌써 과거가 된 일이오.”
“좋소이다. 도와주시는 것이죠?”
긴 흰 눈썹 즉 백장미(白長眉)의 활불이 조용한 미소로 읊조렸다.
“조선의 칙사가 다녀갔소이다.”
“그들이 다녀간 것과 우리가 무슨 상관.........?”
“지원을 끊으면 우리의 영토를 보전해 준다고 했소이다.”
시종 담담한 어투의 활불의 말에 더욱 격분한 저력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이제 와서 우리를 버리겠단 말이오? 계율을 믿지 않는 범인도 그렇게 의리 없지는 않소?”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는 피하고 봅시다.”
“그 안에 우리는 다 죽소이다.”
“허허........! 윤회전생이 있거늘 무슨 안달을 그렇게 하오.”
말 하는 모양새를 보니 모든 것이 틀린 것을 안 저력토가 자리를 박차며 외쳤다.
“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
그 길로 불전을 나온 저력토는 오늘도 여전히 봄기운 가득한 산하를 보며 긴 한 숨을 불어냈다. ‘이렇게 끝날 인생을 무엇 때문에 아옹다옹 했던가........!’
혼자 중얼거리며 한동안 불전 앞의 뜰을 거닐던 그가 모종의 결심을 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포달랍궁을 벗어났다.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온 저력토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한동안 그곳에서 칩거를 했다. 그러던 사흘 후. 그가 아들과 부족장들을 자신의 군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적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소.”
이렇게 운을 떼고 담담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던 저력토의 말이 이어졌다.
“과인의 판단 잘못하나로 우리 전 부족이 수난을 당하게 된 것을 깊이 통감하는 바이오. 해서 하는 말 이오만 그냥은 용서가 안 될 테고, 과인의 목으로 저들에게 자비를 구해보오.”
“안 됩니다. 칸!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한 부족장의 말에 눈가가 뜨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저력토는 애써 끓어오르는 격동을 억누르고 말했다.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오. 벌써 반이나 절단이 난 우리 부족이지만 이대로 멸절을 당할 수는 없지 않소. 하니 나의 목을 가지고 가서 저들의 자비를 구하되, 단 어린 아들을 잘 보위해 줬으면 좋겠소.”
“전하.........!”
“칸..........!”
벌써 결심이 굳은 것을 안 부족장들이 일제히 부복해 그를 부르나, 저력토는 여전히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며 아들에게 당부를 했다.
“못난 아비의 전철을 밟지 말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 우리 부족을 다시 재건하길 바라노라.”
“전하........”
아들 또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 앞에 꿇어앉아 흐느끼나 울음만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부족장들에게 간곡히 아들을 부탁한 저력토는 이내 아들과 모든 부족장을 밖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한 시종 하나를 불러 사전에 작성한 유서를 넘겨주고 말했다.
“과인이 죽거든 네가 목을 쳐서 상자에 담아 세자에게 넘겨주기 바란다.”
“전하..........! 흑흑흑..........!”
시종 또한 닭똥 같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나 저력토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곧 단정히 무릎 꿇고 앉은 저력토가 앞가슴을 드러내더니 평소 애용하던 장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곧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가 쓰러지고, 애통한 속에서도 시종은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신속히 그의 목을 쳤다.
* * *
그로부터 5일 후.
곽재우가 이여송과 함께 서장의 경계에 이르니, 생각지도 못한 일단의 인물들이 있었다. 곧 저력토의 아들이자 새로운 칸에 오른 카이두(海都)와 일부 부족장들이었다.
“무슨 일이오?”
이여송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선 곽재우의 말에 카이두가 급히 부복해 말했다.
“저희들의 항복을 받아주십시오. 여기 선왕의 유서와 목이 있나이다.”
그의 말에서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한 곽재우가 호종한 부장 하나를 시켜 저력토의 유서와 상자를 가져오도록 했다. 곧 부장이 상자와 유서를 들고 오자 말없이 상자를 열어 본 곽재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거기에는 소금에 절여진 저력토의 머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상자를 닫은 곽재우가 저력토의 유서라는 것을 펼쳐 읽어보니, 자신의 잘못을 빌며 아들 이하 부족민 및 전사들의 목숨을 구걸하는 내용으로 씌어 있었다.
“흐흠.........!”
읽기를 마친 곽재우가 깊게 침음하며 저력토의 유서를 이여송에게 넘겼다. 급히 이를 받아 읽어본 이여송의 얼굴도 남의 일 같지 않은지 침통한 표정이었다.
“본 장으로서는 저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오?”
“피를 흘리지 않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만은 저들을 어찌 처리하려고 하는 지요?”
“저들에 대한 처리는 이미 사전에 지침이 내려져 있었소이다. 곧 조선의 선봉이 되어 어느 전장이든 서야겠지요.”
“그렇다면 부족민들은?”
“지금의 근거지에서 생활하게 해야지 어찌 하겠소?”
“그럼, 서장의 활불은 어찌 처리 하려 하오?”
“이렇게 되니 그 일이 난감 하외다.”
곽재우의 말에 이여송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 역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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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